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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90화 (90/169)

〈 90화 〉 아카대공 ­ 90

* * *

“그레고리님! 저희는 어디로 가나요?! 전 준비 됐어요!”

자신만만하게 방을 뛰쳐나온 나를 뒤따라오는 로제.

위풍당당한 로제의 걸음만으로 그녀의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선은 파이에게 갈 예정이다. 프리실라와 라파엘에게 비밀이라면 우리를 제외한 다른 아카데미 동료들에게 알리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모에게 도움을 요청이라…… 확실히 고모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믿을만하죠!”

그대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본래 있었던 파이의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공작이면서 황실 안에 이런 작은 집만 가지고 있다니, 그녀가 얼마나 소박한 삶을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똑똑. 하고 로제가 노크하자 안에서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문틈으로 힐끔 밖을 내다본 파이가 우리를 확인하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레고리님? 로제? 뭐라도 놓고 가셨어요?”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서일까. 파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되겠나?”

“네? 네, 얼마든지요.”

몸을 옆으로 비키며 우리를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파이. 우리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 뒤 대신 문을 닫아주었다.

“어…… 대체 무슨 일이에요?”

“방금 전에 우리 방에서 꽤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다. ……도청에 대한 대비는 되어있나?”

“네? 네, 그렇죠? 아무래도 제 제조법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밖에서는 탐지나 도청, 감시가 절대로 불가능해요.”

“완벽하군.”

“네? 대체 뭔데요?”

“우선 자리에 앉지.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니어서 말이다.”

“네? 아, 네.”

결국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와 같이 테이블을 기준으로 마주 앉게 된 우리.

나는 방금 전 방에서 에자젤과 산달폰이 말해주었던 내용을 파이에게 똑같이 말해주었다.

“……타락 천사요? 그런 괴물이 황실 안에 있다고요? 그것도 카너랑?”

“그래, 처음에 나도 믿을 수 없다 판단했지만, 녀석들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시각과 청각, 후각까지 동원하며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았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 하지만……. 정말 타락 천사가 연관되어 있다면 일이 진짜로 커지겠는데요. 그것도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도 엮여있다니…….”

파이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네, 폐하께서 직접 그의 능력을 확인한 후 황실로 데려오신 거니까요. 저 역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었었죠. 망해가는 영지를 되살린 영웅이라던가, 그의 영지는 항상 젖과 꿀이 흐르고 있다던가…… 그런 거요.”

“타락 천사의 힘이 작용했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군.”

“네, 타락 천사의 힘이라면 망해가는 영지 하나쯤은 살리고도 남겠죠.”

우리의 이야기를 옆에서 멍하니 듣고 있던 로제가 내 옷소매를 툭툭 잡아당겼다.

“그……. 그레고리님. 그런데 타락 천사라는 게 대체 뭐에요? 저는 처음 듣는 거라서요……. 방에서도 그냥 분위기를 탔을 뿐이라 사실 지금도 뭔지 모르겠어요.”

“타락 천사 말인가? 말 그대로이지, 천사인 주제에 세상이 타락했다 판단한 존재들을 일컫는 말이지.”

“……그런가요? 그러면 천사님들이 나쁜 짓을 하면 타락 천사가 되는 건가요?”

“나쁜 짓 정도로는 타락 천사라 할 수 없지, 그 정도는 천계에서도 따로 징계를 하면 될 뿐이니 말이다. 천사가 ‘타락’이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말 그대로 세계 자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해야 하지. 루시퍼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봤겠지?”

“네, 과거에 재앙과 함께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했던 괴물이라고…….”

“그래, 그녀가 바로 타락 천사의 대표 격이지. 그녀가 천사라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당시의 신성교단과 천상신을 섬기는 자들이 루시퍼의 존재를 묻으려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루시퍼의 이름은 전해지더라도 그녀가 천사라는 사실은 전해지지 않았지.”

이것은 원작 [소환사 아카데미아]에 나온 내용임으로 확실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손뼉을 치며 말했다.

“파이, 지금부터 너의 역할이 크다.”

“……네? 저요?”

“너는 프리실라를 지지하는 공작 중 한 명이니 말이다. 너는 다른 공작들과는 달리 수백 년 전부터 공작위를 유지하고 있는 황실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네가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내면 너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미치겠지.”

“……제가 그 정도라고요? 제가 한 거라곤 그저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거나 제가 좋아하는 연구를 한 것밖에 없는데요?”

“다른 황족들은 어릴 때부터 너를 두려워했다고 하더군. 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몰라도 너를 무시하는 황족과 귀족은 없을 거다.”

“……뭔가 엄청 귀찮은 일에 말려든 것 같은데요.”

“자칫 잘못하다간 타락 천사에게 황실이 넘어갈 수도 있다. 나와 로제는 오늘부터 3 황자에 대해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공식적인 석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거다.”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 너의 등장만으로도 황실에 있는 적들이 주의를 기울일 테니 말이다. 안 그래도 프리실라의 암살 시도 건으로 시끄러운 황실에 너까지 등장한다면 우리의 적은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그레고리님과 로제님은 그동안 뭘 하실 예정인가요?”

“……우리 말인가? 우리는 3 황자에 대한 조사와 이후 있을 일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지.”

아주 철저한 대비를 말이다.

* * *

모두가 깊게 잠든 밤. 나는 변신을 한 상태로 나와 백은궁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갑자기 장르가 잠입 액션으로 바뀌다니,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군.”

지금 내 몸은 평소와는 매우 다른 형상이었다.

아이템인 「심연의 가면」으로 외형을 최대한 은신과 잠입에 유리하도록 변형시켰기 때문이었다.

칠흑 같은 몸과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발끝에 발달시킨 솜털. 그리고 날렵한 몸까지.

그 모습은 그야말로 심연에서 올라온 괴물 벌레와 같은 모습이었다.

원래 바퀴의 모습이 심연에서 올라온 괴물이나 다름없지만.

본래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스킬 : 날개 펼치기]를 사용하여 건너다닐까 생각했지만, 황실의 경비 수준을 생각하면 불가능이라 판단하고 가능성을 접어두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하나, 길을 따라 잠입하며 황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럼, 움직여 볼까.”

몸을 최대한 낮추고 세 쌍의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어둠이 내리 앉은 백은궁의 정원을 기어 다닌다.

완전히 낮춘 몸은 풀숲보다도 낮은 높이. 솜털들에 둘러싸인 다리들 덕분에 발소리마저도 매우 미세하다.

최근 있었던 사건들 탓에 더욱 강화된 경비들. 바퀴의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니 온갖 보안 마법과 경비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허나, 어둠에 몸을 숨긴 바퀴에게 있어 그것들은 그저 귀찮은 장애물일 뿐, 위협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정원의 사이로, 어떨 때는 벽에 붙어서, 어떨 때는 경비의 뒤에 조용히 달라붙어 조금씩 황실을 향해 다가간다.

목표는 서기관이 지내는 방.

사전에 파이에게 듣기론 서기관이 지내는 방은 4층에서도 서고 옆에 위치한 방으로 중요한 서류들이 많기에 황실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보안이 삼엄한 곳이라고 했다.

황실의 1층에 도착한 나는 어두운 하늘의 달마저 포착하지 못하는

어둠에 스며들어 벽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척이나도 자연스럽게 타지는 벽. 스파이더맨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대로 창문을 통해 안으로 진입, 몸을 바짝 낮추고 주변의 진동을 느낀다.

뒤쪽에 3명, 앞쪽으로는 2명.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값비싸 보이는 항아리와 액자들 뿐.

어디로 몸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이 철컹거리는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철컹. 철컹. 철컹.

“그쪽은 문제없나.”

“예, 문제없습니다.”

“그래, 고생하도록.”

“충성. 고생하십시오.”

천장에 달라붙어 녀석들이 교차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마침내 두 그룹의 기사들이 점점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 난 후 천장에서 떨어져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가장 난이도가 어려운 것은 계단이었다.

계단은 한정된 공간이기도 하며 가장 노출이 많이 되고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물론, 그것은 평범하게 걸어간다면 이겠지만.

기사들이 계단을 두고 교차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스킬을 사용하며 재빠르게 계단을 주파한다.

“……이곳이, 서기관의 방이 있는 황실의 4층.”

[(스킬 : 후각 상승)을 발동합니다.]

후각에 정신을 집중해 잉크와 종이의 냄새를 찾는다.

……왼쪽.

주변의 진동에 신경 쓰며 발걸음을 옮긴다. 인간이 달리는 속도와 필적함에도 그 작은 소음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잠입에 최적화되어있는 몸.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서고로 들어가 바깥 창문을 열고 벽에 매달려 옆 방의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

창문의 커튼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불을 켜고 무언가를 적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저 남자가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일 터, 인상착의 역시 파이가 말해준 것과 동일했다.

“그럼 어디 한 번 테스트를 해볼까.”

그레고리류 조사 1단계.

“검은 늪.”

바퀴로 조지기.

[(스킬 : 검은 늪)을 발동합니다.]

과연 그는, 죽음이나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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