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아카대공 92
* * *
다행히도, 한숨 자고 일어나니 팔과 다리가 모두 자라나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정말 인간을 벗어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바퀴로 산 게 하루 이틀이던가.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몸을 돌려 어제 켜놓았던 TV를 보았더니 로제와 프리실라, 라파엘과 다른 일행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레고리님은요?]
차를 마시는 로제를 바라보며 묻는 프리실라.
[심상 공간에 들어가 계신 것 같은데 몇 번 불러도 반응이 없으시더라고요.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이에요.]
[하하! 황실의 서기관을 죽이려고 하다니, 우리 자기다워서 난 좋은데?]
라파엘까지 어제의 전말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이 퍼진 모양.
확실히 황실의 서기관이 습격받았던 사건이니 퍼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나가봐야겠군.”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두가 모여있을 때 설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초췌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변신을 2번 했음에도 평소보다 초췌해 보이는 얼굴. 어제 회복했던 후유증이 남은 모양이었다.
“……상관없겠지.”
몸 상태는 단정하니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대로 현관을 열고 나타나자 주변의 시선이 내게로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상황은?”
간단하게 물었음에도 프리실라가 뜻을 알아채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어젯밤 황실의 서기관이 벌레형 악마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모양이에요. 서기관의 말로는 자신의 마법으로 그 악마를 무찔렀다는 모양이고요.”
“하, 어이가 없군.”
그 와중에 자기가 처리했다고 소문을 내? 기가 막힌 녀석이었다.
“그럼 어제 그 사건의 범인이 나라는 사실은 따로 퍼지지 않았나 보군?”
“황실에서 그레고리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본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희 정도 되니까 추측한 거죠.”
그렇게 이야기하는 프리실라의 뒤에서, 라파엘이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래서,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몰골은 왜 그렇고? 자세히 이야기해 주면 안 돼?”
어젯밤의 신성력을 느낀 것인지 라파엘이 집요하게 물어오기 시작했다.
끝 가지 숨기려면 그저 왕족 중 한 명이 아니냐 말하겠다마는…… 지금 내 몰골로 속였다간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기리라 판단되었다.
“알겠다. 말해주지. 그러니 우선 자리에 앉아라.”
모두가 자리에 앉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를 바라본다.
상대는 타락 천사. 솔직히 말해 나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상대였다.
“어제, 서기관에 대한 수상한 제보를 듣고 그를 조사하기 위해 찾아갔다.”
“제보…… 인가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에 미간이 구겨지는 프리실라.
본인이 아닌 내게 제보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 제보였지. 그리고 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타락 천사. 사마엘을 만났다.”
“……네?”
“사마엘?”
천계를 배신하고 세상을 배신한 3명의 천사.
그중 한 명인 사마엘의 이름이 나오자 라파엘의 표정이 굳는다.
아마 산달폰이 걱정한 것이 이런 부분이겠지.
“그래, 사마엘. 그가 바로 서기관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던 흑막이다.”
나의 발언에 적막한 침묵이 방 안에 흐른다.
그리고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교관이었다.
“……본래 우리의 목적은 조사의 지원이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것 같군.”
그리고 이에 아멜이 동의하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우선은 폐하께 사태에 대해 말씀드리고 제국 측에 사건을 완전히 넘기는 게 좋을 듯싶다. 이건,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일이다.”
“그럴 수가 없는 게 문제다.”
나는 침착하게 작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서기관에 대한 죄를 황실에 알려봤자 도움이 되는 건 없다. 그쪽에서 우리의 모함이라 잡아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아멜의 표정. 로제의 표정 역시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녀석들이 프리실라가 황실을 비운 사이에 한 행동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프리실라의 사람들을 황실에서 치우는 거였다. 즉, 현재 이 황실에서 프리실라를 지지하는 인물은 극히 적다는 것이지.”
“우리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열심히 폐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면──”
“우리는 프리실라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사이다. 여기서 갑자기 서기관에 대해 알려봤자 황실의 계승권 문제로 자신을 모욕한다고 주장할 게 뻔하지. 우리의 말을 믿을 자가 몇이나 될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고 말이다.”
나는 이래서 정치가 싫다.
생각할 게 무척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프리실라와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예요?”
로제가 잔뜩 걱정이 쌓인 얼굴로 내게 묻는다.
“아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프리실라가 더욱 잘 알고 있겠지.”
“프리실라가요?”
모두의 시선이 프리실라에게로 모인다.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는 프리실라.
“처음부터 다시 세력을 만드는 거예요. 저희의 발언력이 더욱 높아지도록 이요. 하지만, 그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요.”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세력을 구축하는 동안 견제가 들어온다는 거지.”
오랫동안 프리실라와 함께한 라파엘이었기에, 문제점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정확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거지.”
“저희가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인가요?”
“그래, 결국은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지.”
“그럼 그 방법도 안 되는 거잖아요.”
“아니, 가능케 하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네?”
실망감으로 가득 찼던 모두의 표정에 희망이 깃든다.
“그럼, 지금부터 그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도록 하지.”
지금껏 이러한 길을 걸어온 우리이기에 가능한 ‘그 방법’을.
* * *
점심의 황실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어젯밤 서기관이 습격당한 사건이 황실 전체에 퍼졌기 때문이었다.
“폐하! 반드시 배후를 잡아야 합니다!”
“범인은 서기관이 마법으로 죽였다 하지 않았소. 심문할 상대도 없는데 배후를 잡자니, 어찌하자는 것이오?”
그리고 현재, 우리 ‘소환사 아카데미’ 일행은 서기관의 제안으로 소집된 회의에 참여하여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우선 황실의 경비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황실의 서기관인 저를 노리다니, 분명 황실에 적의를 느끼고 있는 세력이 아니겠습니까!”
어제의 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잔뜩 초췌한 몰골로 황제에게 외치는 서기관.
자신을 노렸다고 황실에 적의를 느끼는 세력이라니, 그야말로 비약이 가득한 의견이었다.
황실에 적의를 느낀다면 황제를 노리거나 다른 왕족을 노렸을 터, 심지어 서기관 스스로가 후원하는 3황자를 노린 암살도 아니었는데 저리 외치는 꼴이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허나, 황제의 입장에서는 서기관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황실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암살 시도.
그것도 황제가 직접 임명한 서기관을 노린 암살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사건은 ‘소환사 아카데미’에서 1 황녀님과 손님들이 오고 난 후 벌어진바,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생들 역시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론은 그쪽이었나.
즉, 서기관과 사마엘이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지금 당장 황실에서 본인들을 견제할 세력은 우리밖에 없으니 오히려 당연한 의심.
회의를 소집하면서까지 이런 소란을 벌인 이유는 분명 다른 이들 앞에서 정당성을 들먹이며 우리를 조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기 위해서였으리라.
그야말로 정치를 잘 아는 녀석이 할 만한 행동.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는 결국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
“──그게 말이 되는 의견이라고 생각합니까. 서기관.”
……누군가가 나서 반대의견을 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현실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지로 옮겨진다.
그야말로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상황의 전개.
어느 누가 황제와 대화 중인 서기관의 말을 끊는단 말인가.
감히 누가 황실의 실세라 불리는 서기관의 의견에 반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감히 누가……?”
“감히 제가 말했습니다. 서기관.”
황실의 수백 년 역사.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 개입의 의사를 보이지 않던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9번째 공작 작약공(?藥?).
“불만이십니까? 알로스 휴스고 서.기.관.”
마침내, 그녀가 정치에 개입했다.
“어, 어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작약공께서……!”
“그만큼 이 사태가 말이 안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재앙이 인간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러 온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와준 영웅들이, 정녕 그대를 암살하려 했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해야 했습니까. 제가 보았을 때는 그저 프리실라 황녀를 견제하려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파이의 개입으로 상황이 순식간에 변했다.
‘작약공의 말도 일리가 있소…!’
‘확실히, 그들이 어떤 이유로 서기관을 노리겠소?’
‘작약공께서 저리 말씀하신다면야…….’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귀족들.
그 어느 때에도 개입하지 않던 작약공(?藥?)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더욱 강한 무게감이 있었다.
그뿐일까.
방금 파이가 한 말에는 숨겨진 의도도 담겨져 있었다.
‘나는 프리실라 황녀를 견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즉, 작약공(?藥?). 이 프리실라를 지지함을 암암리에 선포한 것이다.
“저쪽에는 마계의 대공이 있지 않습니까!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행위 아닙니까?”
발악하듯 나를 가리키며 외치는 서기관. 이에 내 옆에 선 라파엘이 내 목을 감싸며 어이없단 투로 말한다.
“그레고리는 나를 위해 바알과 맞섰던 악마야. 그런 그레고리가 굳이? 너를?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거 아닐까? 서기관.”
“바, 바알과 맞섰다고?”
“옛날의 일이지. 그리고 나 역시 그대에게 관심은 일절 없네. 서기관.”
단호한 나의 태도에 서기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쉽게 넘어가자는 겁니까?! 다른 곳도 아닌 황실에서 벌어진 암살미수 사건을?!”
그의 태도에 이번에 입을 연 것은 프리실라였다.
“제가 백은궁에서 암살 시도를 당했을 때도 이렇게 나서줬다면 정말 기뻤을 텐데요. 서기관.”
서기관이 제안한 회의는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모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경비를 강화하지 않았습니까. 황녀마마!”
“그렇다면 이번에도 경비를 강화하면 되겠군요. 작약공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황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불안하다면 오늘부터 제가 황실의 경비에 참여하도록 하죠. 이것으로 되겠습니까? 서기관.”
이로써 서기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작약공(?藥?)이 황실의 경비를 책임지겠다고 하니 어느 누구도 반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은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한 영웅. 작약공(?藥?)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예. 작약공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결국. 싸움은 끝에 이르고 만다.
“이로써 정리가 되었군. 지금 이 시간부로 작약공(?藥?)을 임시직. 황실경비총책임자에 임명한다. 이는 황실기사단장에 필적하는 권한을 가질 것이며 반대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로써 되겠는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폐하.”
결국, 허리를 잔뜩 숙이며 동의하는 서기관과──
“작약공(?藥?).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표하는 파이.
나는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는 녀석을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서기관이 어제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웃는 녀석이 제일 위험한 녀석이라고.
그리고, 웃는 건 바로 나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