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아카대공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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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심장이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어전회의가 끝난 뒤 우리는 이미 본부가 된 듯한 프리실라의 방에 모였다.
“예, 오늘은 작약공께서 나서주셔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음부터는 쉽지 않을 거예요.”
확실히 그러했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언제나처럼 ‘작약공은 가만히 있을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펼쳐진 일.
허나, 파이가 이쪽에 붙었다는 것을 상대도 안 이상 대처법을 가지고 올 터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저쪽은 프리실라를 마구 괴롭힐 거란 소리예요?”
로제의 물음. 이에 가만히 듣고 있던 교관이 입을 열었다.
“프리실라뿐이 아닐 거다, 아마 우리 모두가 견제 대상이 되겠지.”
“그렇다면 그 타락 천사라는 게 와서 저희를 마구 공격하는 거 아니에요?”
부들부들 떨며 불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녀석 역시 소환사를 통해 인간계로 온 게 아닌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4성 정도 되는 힘으로 황성에서 난리를 피울 수는 없겠지.”
이곳은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황궁이다. 4성의 사마엘 정도는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 터였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래, 지금부터는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을 치른다 생각하도록.”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
내가 한 말이 인상 깊었던 것인지 곱씹으며 중얼거리는 프리실라.
“그럼, 저는 그레고리님이 이야기해 주신 대로 움직이면 될까요?”
“그래, 되도록 라파엘과 떨어지지 말도록. 그리고 라파엘,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라.”
“……나도 알아. 아무리 사마엘이라도 프리실라를 건드는 건 용서 못 해.”
“그래. 그거면 됐다. 그럼 로제,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하러 가자꾸나.”
“……네! 저는 준비 됐어요.”
“그리고…… 아멜, 아까 말했다시피 네 오라비의 행적을 잘 조사해보도록.”
“노력하마.”
“마지막으로…… 교관. 네가 맡은 임무가 가장 막중하다.”
“그래, 이런 일에 말려들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만……. 약속은 유효한 거겠지?”
“물론이다. 그럼 우리도 다음 작전을 위해 움직이지.”
나와 로제는 그대로 백은궁을 나와 황실로 향했다. 황실의 앞에 도착하자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파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 오셨네요.”
파이 역시 우리를 발견하고는 싱긋 웃는다.
“폐하께는 그레고리님과 로제가 독대하기를 청한다 말씀을 드렸어요. 폐하는 승낙하셨고요. 아, 그렇지.”
무엇인가 생각난 듯 갑자기 몸을 돌리며 지나가던 기사의 어깨를 붙잡는 파이.
“오늘 폐하와 약속이 잡혀있는 귀인들이네. 자네가 안내해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예!”
그렇게 안내해줄 사람을 구해주고는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이라는 말과 함께 사라지는 파이.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우리의 옆에 서 있던 기사가 헛기침을 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부탁하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경비를 강화한 것일까. 아침때보다도 배로 늘어난 듯한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중간중간 붙잡혀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우리를 인솔해주는 기사가 ‘작약공의 명령을 받아 폐하께 안내해드리고 있네.’ 라고 말하면 모두가 식겁하며 보내주었다.
“그렇게 작약공의 이름만 팔아서는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못할 텐데. 자네도 꽤 대단한 기사인가 보군.”
다른 이였다면 증명할 것을 보여달라 했을 터.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통과되는 것이 궁금해 물어보니 기사가 멋쩍은 듯 웃었다.
“황실기사단의 부단장입니다.”
……파이는 황실기사단의 부단장이나 되는 녀석을 붙잡고 짬을 때려버린 건가.
그래, 확실히 부단장 정도는 되어야 황제에게까지 프리패스가 되겠지.
이윽고, 지금까지 보아온 어떠한 문보다도 화려한 문 앞에 부단장이 멈춰섰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사와 황실기사단장이었다.
“충. 폐하와 약속이 잡혀있는 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짧게 고개를 굽히며 황실기사단장에게 보고하는 부단장. 이에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말씀은 들었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경들의 친절에 감사하네.”
“가, 감사합니닷!”
여기까지 안내해준 부단장과 우리를 맞이해주는 기사단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 안에는 테이블에 앉아 문서를 보고 있는 황제가 있었다.
“황제.”
“아, 오셨군. 그레고리 대공, 유글리아 영애. 자자, 앉으시게.”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황제.
“차? 커피?”
“커피로 부탁하지. 로제?”
“아, 저는 핫초코가 좋은데요…….”
……여기서 핫초코를?
다행히 황제는 농담으로 들었는지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핫초코는 없다네.”
“그러면 저는 차가 좋아요.”
“알겠네.”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세 커피와 차를 타 자신의 맞은편에 놓아주는 황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나와의 독대를 원했다고 들었는데…… 그 전에 하나만 묻지. 어떻게 한 건가?”
“……작약공 말인가?”
“그렇네, 작약공! 그녀가 정치에 참여하다니, 내 할아버지의 세대 때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알려진 그녀라네. 내가 어렸을 때도 절대 다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었지.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겐가?”
황제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파이를 지켜 봐왔던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궁금한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이 전쟁터로 들어오게끔 한 건지.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닌 로제였다.
“폐하 때문에요.”
“음? 나 말인가?”
“네, 폐하 때문에요. 고모가 저를 돕고 싶어 하신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폐하를 치료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녀가 말인가? 놀랍군. 나는 그저 자네들이 다른 마법이라도 부린 줄 알았네. 그런데 설마, 나를 치료해준 것에 대한 대가일 줄이야…….”
“네, 고모는 폐하를 정~말 좋아하시거든요. 헤헤, 아. 지금은 저희만 있으니까 그냥 아버님이라 부르는 게 좋을까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로제.
제 3자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무례하다 소리칠만한 행동이었지만 황제는 그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편한 대로 하게나. 그럼 나도 그대를 편하게…… 로제. 라고 부르면 되겠군.”
“네! 좋아요!”
아마, 이것이 로제의 매력이자 능력일 것이다.
종족도, 나이도, 성별도 불문하고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능력.
그야말로 세계수의 딸이라 불리기 적합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그대들은 어째서 나와의 독대를 원한 겐가? 그레고리 대공, 로제?”
마침내 본론인가.
그래도 로제가 분위기를 무척 좋게 만들어 준 덕분일까. 이야기가 쉽게 흘러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대의 나라. 신성 하인베른 제국과 외교를 하기 위해서다. 황제.”
“……외교?”
외교라는 말에 황제가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낸다.
“말했다시피. 나는 대공이라는 작위가 있는 악마이지. 물론 마계에 영토도 존재하고 말이다.”
“그런가? 기분 나빠하지 않고 들어줬으면 좋겠더군. 나 역시 그대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네. 황실에 소속된 소환사 중 악마와 계약한 자들에게 그대에 대해 물어보았지. 허나, 아무도 그레고리 존스라는 악마를 모르더군.”
아카데미에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마계에서 활동할 때 이름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누구라도 알만한 직함을 말해주었다.
“마계지하공사의 대표. 그게 나의 또 다른 직책이지.”
“……하, 하하! 정말 상상도 못 한 이름이 나왔군. 마계지하공사라니.”
마계지하공사라는 이름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계지하공사의 대표라는 말은 즉, 마계의 모든 지하가 내 것이라는 뜻이었으니까.
“믿지 못하겠나?”
“지금까지 그대가 행한 것들을 보고서도 말인가? 그대는 작약공을 정치에 뛰어들 게 만들었으며 아몬의 수하를 붙잡았지. 또한, 서기관을 위협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알고 있었나.”
“딱지치기로 황제가 된 건 아니라서 말이지.”
허공에서 나와 황제의 눈빛이 맞부딪힌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웃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서로를 조금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황제. 그대도 서기관과 타락 천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군.”
“얼마 전에 알았지. 허나, 황실에 적의를 드러낸 적이 없기도 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에 가만히 있었지.”
그럼에도, 내가 서기관을 위협한 것에 대한 죄를 묻지 않는 것은 아마 그 역시 서기관의 행태를 좋게만 보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 프리실라에게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기더군. 그래서 어떻게 벌을 줘야 할지 생각하던 찰나, 그대가 나서주었지. 그것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네.”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그럼, 내가 마계지하공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믿는다. 생각하고 이야기하도록 하지.”
“좋네.”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를 마셔 목을 축인 뒤. 이 자리를 만든 이유를 말해주었다.
“제국의 북쪽, 황실에서 운영하는 설산 중 광맥이 묻힌 땅이 있다고 들었다. 이름은 분명…… 라크라 광산. 맞나?”
“음, 확실히 그런 곳이 있지. 허나 광맥이 너무 깊은 곳에 있어 광질을 하면 오히려 손해만 나는 광산이었지. 지금은 버려져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겐가?”
“우리 마계지하공사에서 그 광산을 사들이지.”
“……뭐라?”
“그리고 그 광산에서 나오는 광석과 프리즘 스톤을 전부 제국에 처분하도록 하겠다.”
“그 버려진 광산에서 말인가? 내 말 하지 않았는가. 그 광산은 파면 팔수록 손해만 나는 광산이라고.”
진중히 말하는 그에게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파면’ 이라는 전제가 붙었을 때의 이야기이지. 나와 마계지하공사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 황제.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내 영토에는 수많은 벌레형 악마들이 살고 있지. 그들 중 싸움을 원치 않는 이들은 우리 ‘마계지하공사’에서 지하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깊어서 개발할 수 없는 광산? 그건 내게 해당 사항이 아니네.”
그리고 나는 이 제안을 통해 제국에 영향력을 발휘할 생각이었다.
“그 외에 개발이 힘든 곳이 있다면 말하게. 모두 사들이지.”
마계지하공사의 인간계 진출.
제국과의 협업.
그리고 마계지하공사의 대표.
이것이 성사된다면 나는 프리실라와 함께 황실에 찾아 온 손님의 위치에서 제국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타국의 군주 정도가 될 수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황실의 일에 입김 정도는 넣을 수 있는 위치가 되지 않겠는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황제.”
아마도, 그에게 이 제안은 탐스러운 사과로 보일 것이다.
당장에라도 먹고 싶은 사과.
독? 그딴 건 들지 않았다.
그저, 아주 조금의 우정을 대가로 받을 뿐.
“……대금은 어떻게 지불 할 생각인가.”
“물론 정가로 판매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대들도 버려두고 있는 광산이 아닌가. 음…… 그렇지.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의 20% 황실에 제공하는 것으로 하지. 어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광산을 개발해줄뿐더러, 그곳에서 20%나 되는 수익을 준다고?
장담컨대.
황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건 못 참지.’
라는 얼굴을 하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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