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아카대공 94
* * *
그 이후에는 간단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예를 들자면, 광산을 개발할 악마들은 어떻게 불러오는가.
광산의 운영은 어떻게 할 예정인가. 같은 질문들이 말이다.
“마계지하공사 소속의 악마들을 소환할 수 있는 촉매를 주도록 하지. 2서클 이상의 소환사들을 통해 소환하는 것으로 충분할 거다.”
“광산의 운영은 작약공을 통해서 하도록 하지. 결국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 하기도하고, 황제, 그대가 가장 믿으면서도 가장 한가한 자는 작약공밖에 없지 않은가.”
그 외에도 이런저런 질문이 오가고,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표정을 지은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받아들이지. 서류는 내 따로 결재한 후 보내주겠네.”
“좋은 선택이다. 황제. 이로써 좋은 파트너가 되었군.”
“파트너라…… 그럼, 이제 그대는 이렇게 얻은 영향력으로 프리실라를 도울 셈인가?”
역시, 짐작하고 있었나.
이제 와서 숨기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지금껏 내가 보여준 행보가 있었으니까.
이럴 때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그렇지, 아카데미에서 보아온 그녀의 모습은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아이를 도울 셈이다.”
“그 아이가 말인가?”
내 발언에 황제가 흥미롭다는 눈길을 보낸다.
대충 황제의 속셈이 보인다.
자신의 딸을 믿고 후원해 줄 만한 자인지 확인하는 모양.
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그대는 프리실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여튼, 이래서 딸바보들이란.
“그대 역시 보고를 들어 알고 있을 터인데? 신성교단이 기숙사를 습격했을 때, 다른 학생들을 모두 대피시키기 위해 끝까지 막아선 것이 바로 프리실라였다. 대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군주라니, 그야말로 민중이 좋아할 만한 군주이지.”
“군주가 항상 최전선에 선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 터,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는다면 민중은 그런 자를 멍청하고 약한 군주로 생각할 텐데?”
“누가 말인가. 프리실라가?”
하,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프리실라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
“그때 당시 라파엘과 함께 있음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고 들었다만?”
“그럼에도 라파엘은 끝까지 프리실라를 지켰지. 그리고 그 둘은 그 경험으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다가 죽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이게 고민이었던 건가.
프리실라가 위험에 빠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가.
황제는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프리실라는 더 강해질 거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와 함께 할 거다. 그것이 비록 힘든 길이라 해도 말이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이 질문에 내가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로제의 입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친구니까요! 프리실라와 라파엘님은 저희의 친구니까요!”
“……친구? 친구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건가?”
“네! 상관없어요! 그레고리님과 라파엘님이 저희를 지켜줄 테니까요! 물론, 저희도 강해져야 하겠지만…… 절대로 프리실라를 배신하지 않아요!”
자리까지 박차며 외친 그녀의 말에 황제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군! 좋아! 프리실라가 아주 좋은 친구들을 두었어!”
하하하! 하하!
방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웃음을 터뜨리는 황제.
그렇게 계속해서 웃던 황제가 서서히 웃음을 그치며 나와 로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본인은 신성 하인베른의 황제라네. 그리고 내 아이들은 모두 황제가 될 자격을 갖춘 아이들이지.”
진중한 그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네. 경쟁자를 떨어뜨리는 것도, 스스로의 능력을 기르는 것도, 전부 아이들의 능력이니 말이네.”
황제란 그런 자리일세.
그렇게 말한 황제의 표정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자리.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의 경쟁을 막을 수 없네. 그저 아이들이 서로의 목숨을 취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전부이지.”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계승권 싸움에서 누군가의 편을 들지 못한다고.
중립을 지켜야만 한다고.
그러면서도, 그는 말하고 있다.
“잘 부탁하네.”
프리실라. 자신의 딸을 도와달라 말이다.
“……로제, 가지.”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로제에게 말한다.
“할 말은 다 했으니 말이다.”
“아, 네!”
자리에서 일어선 우리는 그대로 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나가기 전.
나는 그대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황제에게 말했다.
“계승권 싸움의 승자는 결국 프리실라가 될 거다.”
“……그렇군.”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이 사실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
“아, 안녕히 계세요! 프리실라 아버님! 프리실라는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로제의 프리실라를 데려가는 새신랑 멘트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황제의 방을 나섰다.
“용무는 끝나셨는지요.”
황제의 방을 나섬과 동시에 우리를 맞이하는 기사들.
“백은궁으로 돌아가겠다.”
“밖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감시를 받으며 황실을 빠져나왔다.
* * *
황제와의 협의 후 5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프리실라는 해체되었던 자신의 파벌들을 한곳에 모으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서기관의 압박과 강제적인 근무지 변경으로 인해 수도 근방으로 퍼져있던 상황이었고, 서기관은 그 상태에서도 그들을 감시했다.
그 결과, 프리실라가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자신의 사람들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고 서기관의 통제에 따른 내용만이 프리실라에게 가게 된 것이었다.
결국, 프리실라는 자신의 사람들을 모두 황실로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말이다.
물론, 프리실라의 세력이 다시 뭉치는 것을 두려워한 서기관은 3황자 카넌의 이름을 빌려서까지 그들을 막아서려 했다.
허나, 작약공이 나서 ‘그들은 어릴 때부터 황실에서 자라던 이들이다.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은 내게 꼭 필요하다.’ 라는 의견을 내세웠고 결국 서기관은 그들의 인사이동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인솔자였던 교관은 이틀 전에 수도를 떠났다. 내가 부탁한 바를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아멜은 자신의 오라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아멜의 오빠인 카릴 발멩가가 3황자인 카넌의 사람이며 그를 위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5일 차 저녁.
로제가 담배를 피우자며 ‘매혹의 장미’가 있던 정원을 가자 떼를 쓰기에 멀리 나갔다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레고리! 로제! 오랜만이로군!”
백은궁에 돌아가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검은 정장 차림에 흰머리가 거뭇거뭇 보이는 올백머리.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남자.
마계의 대공이자 서열 5위의 악마 마르바스.
그가 황실에 도착했다.
“어떻게, 무사히 잘도 왔군.”
“와! 마르바스님! 오랜만이에요!”
에자젤을 통해 보낸 편지가 마르바스에게 잘 전달된 모양이었다.
“하하,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소환사, 로제가 부르는데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나. 그나저나, 최대한 빠르게 오라기에 열심히 왔건만, 안 늦었는지 모르겠군.”
“충분히 일찍 도착했다. 고맙군.”
“하하하! 그거 다행이군.”
그가 이토록 빠르게 제국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편지를 통해 그를 부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편지가 마르바스에게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최소 일주일이 소요될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에자젤을 통해 편지를 보낸 것은 제국 아카데미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소환사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있는 마르바스에게 [그녀와 함께 최대한 빠르게 제국의 황실로 와줄 것.] 이란 메시지를 보낼 것.’
다른 누구도 아닌 에자젤의 편지였기에 제국 아카데미의 총장은 각 아카데미마다 연락할 수 있도록 설치된 장치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소환사 아카데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은 마르바스는 내가 언급한 ‘그녀’와 함께 제국 아카데미로 달려온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빠른 탈것을 가진 자.
“하암……. 제국의 황실이라니, 그야말로 본인에게 어울리는 곳이군.”
‘소환사 아카데미’의 부총장을 피해 마계로 피신해 있던 악마.
마계의 대공작이자 서열 9위의 악마. 파이몬.
“그나저나……. 대악마인 우리가 황실에 들어오는 날이 올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로군.”
그녀와 마르바스는 과거 내가 영토에 가기 위해 탔었던 소환수. ‘나이트메어’를 타고 왔기에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던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보낸 교관이니 말이다. 고생했군. 교관.”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서 나이트메어를 쓰다듬고 있는 교관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 보는 나이트메어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마르바스님과 파이몬 정도 되는 분들을 마중도 없이 오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당연한 일이다.”
교관은 제국에도 이미 이름을 널리 인물. 심지어 우리와 함께 황실에 온 손님이었다.
그렇기에 문지기들은 그녀와 함께 온 파이몬과 마르바스를 보고 막을 수 없었다.
교관이 마르바스와 파이몬을 이번에 황제와 맺기로 한 ‘광산 개발 ’건의 관련자라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의 도움이 있어야 제국의 광산을 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났군.”
“네! 이제 결전만 남았어요!”
타락 천사? 물론 두려운 존재다. 4성급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강자니까.
그런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세계사의 이름을 남길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을, 나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인맥들을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
‘타락 천사’ 사마엘.
내 팔을 잘라내고, 날 죽이려고 한 망할 천사 새끼.
넌 이제 뒤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