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아카대공 96
* * *
“마르바스. 산책이나 하러 가지 않겠나.”
“……산책?”
“그래, 네게 보여주고 싶은 인물이 있어서 말이다.”
마침 파이몬과 함께 좋은 탈 것도 왔겠다.
마르바스에게 그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대로 나이트메어를 타고 제국 아카데미를 향했다.
파이몬은 때마침 로제와 함께 세계수의 열매를 시연(??) 중이었고 잔뜩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우리에게 ‘마음대로 해라.’ 라 말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나이트메어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슬레이프니르와 다르게 3성이라는 태생 차이 때문인지 수준이 다른 속도를 보여주며 제국 아카데미를 향해 날아간다.
“……탈 때마다 탐나는군.”
나도 모르게 녀석의 말고삐를 쥐어 잡고 그렇게 중얼거리니 뒤에 앉아있던 마르바스가 크게 웃는다.
“확실히, 나이트메어라면 탐날 만도 하지! 그래도 파이몬이 목숨처럼 아끼는 아이이니 포기하는 게 좋지 않겠나?”
아무래도 어지간히 아끼는 모양. 결국 나이트메어를 NTR 하겠다는 나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제국 아카데미의 정문이 보인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예전 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나왔다.
프리실라가 짐부르라 부르던 기사였다.
“또 보는군.”
“……그대는, 황녀님과 함께 왔던 소환수가 아닌가. 제국에서의 용무는 끝났나?”
“아니, 볼 아이가 있어서 말이다. 들어가도 되겠나?”
“아쉽지만 사전에 연락을 줬……어……야………? 마, 마르바스?”
방금까지만 해도 단호하기만 했던 그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으로 내 뒤를 바라본다.
“마, 마르바스 공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날 아는 걸 보아하니 검의 길을 걷는 자인가 보군?”
“그, 그렇습니다. ‘재앙을 벤 검성’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앙을 벤 검성이라니,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칭호에 마르바스를 바라보자 그는 ‘봤어? 내가 이정도야’라는 느낌의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봤자 팔 한쪽만 베어냈으면서. ‘재앙을 벤 검성’은 무슨.
“여기 이 친구가 제국 아카데미에 다니는 아이 중 재미있는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말이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안에 들어가도 되겠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마르바스. 이에 짐부르가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마르바스 공께서 ‘소환사 아카데미’의 검술 교관으로 계신 것은 셀루아 네갈 교관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디, 안으로 드시지요.”
저번에 저 경비와 이야기하러 간다며 몇 번 자리를 비우더니 그런 것까지 이야기한 건가.
“하하! 고맙네! 자, 뭐하는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번에는 ‘내 덕분인 거 알지?’라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얄밉기야 하지만…… 오늘은 부탁이 있어 데려온 것이니 참기로 했다.
그대로 제국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쳐 깊숙이 들어가자 서로 어울리며 돌아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우리가 타고 있는 나이트메어 때문인지 순식간에 여러 시선과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나, 나이트메어야! 3성 소환수!’
‘마계 최고의 탈 것!’
‘멋지다……!’
‘저기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마침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나.”
“네?! 네?”
멍한 눈으로 나이트메어를 바라보고 있는 학생 중 소환학과로 보이는 학생에게 말을 건네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1학년 중에 갈리어라는 아이를 찾고 있다만, 어디에 있는 줄 아나?”
“네? 갈리어요? 글쎄요. 관심이 없어서……. 아, 항상 훈련장에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고맙군.”
우리가 떠나고도 항상 훈련장에 있다는 소문까지 돌다니.
역시 녀석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나이트메어를 타고 훈련장에 도착하자 마르바스가 훈련장의 풍경에 감탄을 자아냈다.
“이정도 크기의 훈련장이라니, 제국 아카데미도 인재 양성에 본격적인 모양이군.”
“아무래도 소환사만 양성하는 게 아니다 보니 그런 거겠지.”
그대로 안으로 들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저 멀리. 혼자서 열심히 검과 주먹을 휘두르는 갈리어의 모습이 보였다.
갈리어의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천천히 기척을 죽이곤 녀석의 뒤에서 멀찍이 바라본다.
“어떤 것 같지?”
내 물음에 턱을 쓰다듬으며 유심히 갈리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마르바스.
“검로로 보나, 움직임으로 보나, 꽤 재능 있는 아이로군. 1학년이라고 했나?”
“그래, 평소엔 검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다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됐지.”
“……한 달도 안 되었다고? 1학년이라 하지 않았나.”
“평민 계급이라는 점과 녀석의 소환수가 벌레형 악마라는 이유로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모양이다. 최근에 우리가 나서며 지금은 온전히 수업을 받게 되었고 말이다.”
“그래? 저게 검을 제대로 잡은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의 검이라 이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갈리어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바라보는 마르바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검술 같다만.”
“음? 그런가?”
“그래, 중간중간에 섞는 주먹질과 발차기. 저건 마치──”
“───그레고리 펀치!”
전방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지르며 외치는 갈리어.
그 모습에 마르바스가 몸을 홱 돌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애한테 뭘 가르친 건가!”
“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검술을 알려주었지. 너도 배워 보겠나? 지금이라면 구배지례를 하는 것으로 제자로 받아주지.”
“……개소리는 집어치우도록. 하아, 하여튼. 짧은 기간 동안 그대에게 검술을 배웠다 이 말인가?”
“정확히는 로제가 가르쳤지.”
“음, 그래서 그랬군. 검술에서 ‘쾌’를 기본으로 하는 동작이 보이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마르바스.
“내 그레고리류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네가 가서 조금 도와주는 건 어떤가?”
“음? 내가 말인가?”
“단언컨대 훗날 이름을 날릴 아이다. 네가 도움을 준다면 후세까지 네 이름이 전해지겠지. 뭐…… 영웅들의 스승. 마르바스. 정도로 말이다.”
“영웅들의 스승…… 마르바스…….”
내가 한 말을 곱씹는 마르바스. 이내 그가 몸을 다시 돌리곤 갈리어를 바라본다.
“……어쩔 수 없지. 그대가 부탁하는 것이기도 하고, 저런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그레고리류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검술을 그대로 사용하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그래, 위대하고 ‘재앙을 벤 검성’ , 훗날 ‘영웅의 스승’이라 불릴 마르바스의 가르침이라니. 그거 대단하군.”
“흥, 그러면서 날 데려온 건 결국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더 우위에 있다 인정하는 것 아닌가.”
“뭐, 그것은 부정할 수 없지.”
마르바스는 그만큼 뛰어난 교육자였으니 말이다.
“마침 숨을 고르는 것 같으니 한 번 가보지.”
마르바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갈리어에게 다가간다.
이렇게 그레고리식 협상법에도 이렇게 당해주면서 그레고리류를 무시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한숨을 한 번 내쉬어주고 마르바스의 뒤를 따르자 우리를 발견한 갈리어가 화들짝 놀란다.
“그, 그레고리님?!”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 갈리어.”
“아, 아닙니다! 배운 대로 열심히 할 뿐이에요. 그것보다…… 여기 신사분은……?”
갈리어에게 도착하자마자 팔과 다리, 어깨를 쓰다듬고 있는 마르바스.
“흐악?!”
“어허! 가만히 있게나. 호오, 뼈도 튼튼하고, 이정도 근육이라면…… 흐음…….”
나는 그런 녀석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보이는 것처럼, ……치매 걸린 노인이다.”
“……네?”
“뭣이?”
마르바스가 진심으로 화낼 거 같았기에 바로 정정했다.
“농담이다. 여기 이 녀석은 마르바스. 보는 것과는 다르게 세간에서 ‘검성’이라 부르는 녀석이다.”
“네? 거, 검성이요?! 자, 잠깐……. 마르바스라면…… 과거 ‘재앙의 팔을 베어낸’ 검성이잖아요?”
“흠흠, 검을 사용하는 아이답게 잘 알고 있구나.”
또 우쭐해 하기는.
“그리고 로제의 소환수이기도 하지.”
“네? 로, 로제님의 소환수요? ‘검성’ 마르바스님이?!”
“뭐, 그렇지. 이번에 너를 찾아온 이유는 네게 마르바스를 소개시켜주기 위해서다. 갈리어.”
“네? 저, 저를요?”
“재미있는 아이가 있다 하여 찾아왔지. 확실히, 재미있는 아이구나. 검을 잡은 지는 이제 한 달이 되어 간다고?”
“아, 네. 그렇습니다.”
“좋구나. 그럼, 이 늙은이가 자세를 봐줄 터이니 그레고리류 같은 이상한 검술 말고 기본적인 검술을 보여주겠는가? 말이네.”
“네? 하지만 그레고리류 검법은…….”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나를 힐끔 바라보는 갈리어. 나는 그냥 받아주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갈리어. 헤라클레스는 어디에 있지?”
“네? 헤라클레스요? 어……. 2시간 전에 수액을 먹으러 간다고 떠났었으니까…… 곧 돌아올 거예요.”
“그래? 다행이군. 그 녀석도 소개 시켜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음? 헤라클레스?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듣고 턱을 쓰다듬는 마르바스.
그의 고민과 동시에, 훈련장의 문이 폭발하듯 열렸다.
“배부름은 곧 나태!!! 사나이는 나태하지 않는다!!! 훈련이다!!! 갈리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훈련장 안을 크게 진동시키며 안으로 들어서는 거구의 장수풍뎅이.
헤라클레스. 그가 훈련장에 나타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