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아카대공 99
* * *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마르바스와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갈리어.
마르바스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훗날 볼 때가 기대되는 학생이었네. 나중에 ‘소환사 아카데미’에 오게 될 때 더 성장해서 볼 수 있겠군.”
“제가요?”
마르바스의 평가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짓는 갈리어. 나는 덧붙여 말해주었다.
“훗날 2학년 때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교환 학생으로 올 수 있겠지.”
“아…! 네! 꼭 갈게요! 기다려주세요!”
“허허! 좋네. 내 기다리지.”
저 둘은 저렇게 훈훈한데.
“주구우운!!! 벌써 가시는 겁니까!”
이 녀석은 왜 나한테 달라붙어서 질척이는 건지…….
“떨어져라. 헤라클레스. 무겁다.”
“주구우운……!”
그대로 헤라클레스를 밀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헤라클레스. 너도 수련에 정진하도록 해라. 지금처럼만 훈련한다면 충분히 강해질 수 있을 거다.”
“……예! 더욱 정진하여 어떤 벽이라도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악마가 되겠습니다!”
“아니, 벽이 나오면 좀 돌아가던가 그래라.”
“그런 방법이……! 역시 주군이십니다!”
얘는 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지 궁금할 정도다.
“그럼 돌아가지, 마르바스.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다른 녀석들이 걱정할 거다.”
“……그러도록 하지. 갈리어. 다음에 ‘소환사 아카데미’에서 보세나.”
“네!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렇게, 눈물 어린 이별을 한 후, 우리는 다시 나이트메어를 타고 백은궁을 향했다.
“아! 그레고리님! 마르바스님! 늦지 않게 오셨네요? 같이 게임 하실래요?”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꽤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로제와 프리실라, 라파엘과 파이몬이 모여 함께 카드를 만지고 있던 탓이었다.
“어……. 둘이, 괜찮은 건가?”
대천사와 악마가 함께 하는 카드놀이라니. 심지어 파이몬과 라파엘은 인간계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였을 터였다.
“음? 누구 말인가?”
“나?”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파이몬과 라파엘. 이내 파이몬은 별것 아니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 전쟁 중도 아닌데 어떤가. 옛날부터 자주 봐서 그런지 익숙 하느니라.”
그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바라보는 라파엘.
“아까 파이몬이 타로란 걸 봐줬는데 말이야, 곧 운명의 상대가 찾아온다고 했었거든? 이게 맞네? 후후.”
“……잘 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아멜과 교관은?”
“아, 두 분은 저녁 식사 전에 훈련하러 간다고 자리를 비우셨어요.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레고리님!”
갑자기 로제가 고개를 젓더니 내 팔목을 붙잡고는 안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음? 중요한 게 있나?”
“네! 엄청 중요해요!”
로제는 그대로 나를 질질 끌고 가더니 파이몬의 앞에 앉혔다.
“자, 파이몬님! 아까 이야기 했던 그거! 그거 해봐요!”
“흐음, 확실히 재미있겠군. 영감. 영감도 추운데 거기에 있지 말고 여기서 구경이나 해라.”
그대로 마르바스 역시 얼떨결에 들어와 나란히 내 뒤에 앉는다.
“자, 그럼 시작하겠느니라.”
갑작스레 내 앞에 있던 파이몬이 들고 있던 카드 뭉치를 섞기 시작하더니 내 앞에 깔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자, 여기서 네가 마음에 드는 카드를 3장 뽑아보도록 하거라.”
무조건이다. 이거, 무조건 타로다.
“그레고리님! 어서요! 어서!”
“자기는 무슨 카드를 뽑으려나?”
“으아……. 저는 못 보겠어요. 라파엘이 대신 봐줘요!”
그리고 나보다 더 신나서는 무슨 카드를 뽑는지 보겠다 앞다투고 있는 소녀들.
제국 아카데미에서 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서 뽑으래도?”
“빨리요! 빨리!”
“자기는 무슨 카드를 뽑으려나?”
“뽑았어요? 뽑았어요? 라파엘, 뽑았어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그 전에 대체 무슨 점을 보려는 건지 알려나 주면 좋겠는데.”
힐끔 파이몬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내 뒤쪽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뒤에 있는 저 아해들이 반대할 듯싶구나. 넌 그저 뽑으면 된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건가.
그럼 나도 나의 방식대로 할 수밖에.
나는 카드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카드 위에 손을 올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나.”
갑작스레 내뱉은 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너희들은 나의 미래, 나의 운명이 어떠할지를 궁금해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말이다…….”
그대로 손을 카드들이 올려진 양탄자 밑으로 집어넣는다.
“……나는 운명 따위, 믿지 않아.”
흩날려라. 타로앵.
“으와아아앗!! 뭐하는 짓이냐!!!”
사방에 카드가 휘몰아친다.
광대. 거꾸로 매달린 왕. 말을 타고 달리는 기사. 현자. 거대한 탑. 죽음.
그 사이에서 나는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쉬러 가보겠다. 식사 시간이 되면 나오지.”
그대로 심상 공간으로 도망.
뒤에서 따가운 시선과 원망 담긴 시선이 느껴지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야, 남들 앞에서 타로를 보는 부끄러운 짓 같은 걸 어떻게 하겠는가.
이럴 때는 도망이 최고다. 암.
* * *
“아아……! 치사한 그레고리님! 도망가시다니 너무해요!”
바닥에 타로들이 비산해 있는 로제의 방. 그곳에는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는 4명의 소녀가 앉아있었다.
“엄청 궁금했었는데, 안 그래요?”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로제가 심통이 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마르바스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레고리의 타로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아쉽네…….”
“결국 못 봤네요……. 아쉬워라.”
“……화나는군. 너무 그레고리 그 녀석다워서 화가 나.”
그때 멍하니 앉아있던 마르바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겐가 결국?”
“영감은 몰라도 돼! 거기 널브러진 카드나 좀 주워주던가!”
괜히 말을 꺼냈다가 욕만 먹고 마는 마르바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뜩, 유일하게 카드 한 장만이 앞면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마르바스가 카드를 집어 올린다.
“파이몬.”
“왜 부르는가. 영감.”
“이 카드의 뜻은 뭐지? 유일하게 그림면이 나와 있던데.”
“뭐, 뭐라?!”
마르바스의 말에 파이몬이 두 눈을 부릅뜨며 카드를 채간다.
그녀의 손에 올려진 카드에 적혀있는 단어 [The Devil].
작은 악마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카드였다.
“그, 그거 악마 카드잖아요!”
카드를 확인한 로제 역시 화들짝 놀라며 파이몬에게 달라붙고, 다른 소녀들 역시 우후죽순 파이몬을 향해 몸을 내민다.
“악마 카드? 그건 무슨 뜻이야?”
“악마 카드라니, 그레고리님답네요.”
“다들 조용!”
주변이 시끄러웠던 것일까. 파이몬은 표정을 찡그리며 주변을 침묵시킨다.
이내 크흠, 큼. 하고 목을 가다듬는 파이몬.
“다들 알다시피. 악마 카드는 그리 좋은 카드가 아니라네. 폭력, 격렬, 바꿀 수 없음, 흑마술, 타락과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이 바로 악마 카드이지. 허나──”
잠깐 호흡을 가다듬은 파이몬이 씨익 웃으며 카드를 위로 올린다.
“──연애운에서의 악마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네.”
“여, 역시! 파이몬님! 뭔가요?!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요!”
“악마? 천사가 아닌 게 아쉽긴 한데…… . 뭘까?”
“으아아……. 못 듣겠어요! 라파엘, 먼저 듣고 나중에 알려줘요!”
“악마 카드의 의미는…… 바로……”
모두의 시선이 파이몬의 입술로 모인다. 긴장한 모습으로 마른침을 삼키는 소녀들.
이는 마르바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사심. 사심이 있다는 카드일세.”
“사심!!! 그레고리님이 사시이이임!!”
“어머, 사실 마음에 날 품고 있던 걸까?”
“그레고리님이…… 사심……!”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는 세 사람. 그 모습에 파이몬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어디까지나 한 장으로 본 연애운인데 왜들 그렇게 진지한 건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라 파이몬님의 점이잖아요! 전 대륙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파이몬님의 점!”
“파이몬의 점은 천계에서도 유명했으니까.”
“사심……! 사심……!”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그 광경에 파이몬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 명의 연애운 때문에 세 명이 죽으려고 하다니, 녀석이 사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사심을 품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우뚝.
모두의 몸이 멈춰선다.
“아니, 이 경우에는 전부. 인가?”
이내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을 둘러보는 파이몬.
킥킥 웃는 파이몬의 모습을 보고 있던 마르바스가 바닥에 떨어진 나머지 타로들을 정리하며 한탄을 내뱉는다.
“대천사와 대악마, 엘프와 황녀가 모여서 연애운이나 보고 있다니…….”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에, 한숨만 내뱉는 마르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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