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00화 (100/169)

〈 100화 〉 아카대공 ­ 100

* * *

우리가 기용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모은 지금. 마침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야 할 때가 되었다.

현재 프리실라는 자신을 떠났던 귀족들의 지지를 원래의 75%가량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를 위해 일하던 정보원들 역시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여 황실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하였으나 서기관과 3 황자는 그들의 근무지를 백은궁으로 한정시켰다.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모두에게 보여지는 전쟁을 벌일 생각이다.

마르바스와 파이몬이 도착한 다음날. 현재 나는 알현실에서 마르바스와 함께 황제의 앞에 서게 되었다.

“‘재앙을 벤 검성’ 마르바스 공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요.”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이리 환영해주니 정말로 고맙네.”

황실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갑자기 돌아온 제 1황녀의 일과 그녀를 노린 암살 건에 대한 일. 서기관을 노린 암살과 ‘검성’ 마르바스의 방문까지.

이 모든 일이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마르바스 공은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황녀와 로제 폰 유글리아의 초대로 우리 황실을 방문하시게 되었다네.”

우선 광산에 대한 건은 아직 밝히지 않는 것으로 했다.

지금 황궁의 분위기에 마계의 대공들과 광산에 대한 건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퍼진다면 여파가 상당하리란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친분’을 가장한 마르바스의 방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외통수로 삼으려 했다.

“마침 우리 3황자가 검술에 대한 흥미가 뛰어나서 말이오. 마르바스 공. 혹 내 아들에게 그대의 검술을 식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소?”

바로 3황자와 우리가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프리실라나 주변인들의 말로는 3황자는 평소에도 검을 훈련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성인 마르바스가 황실에 방문하여 친분을 통해 황자에게 검술을 아주 약소하게나마 지도해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폐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소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마르바스 공 역시 먼 길을 달려오셨을 터이니 우선은 여독을 풀 시간을 주시는 게 어떠련지요.”

3황자가 선택한 것은 시간벌기였다.

갑작스러운 마르바스의 등장과 자신을 엮고 들어가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기관과 다른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하고자 시간을 벌려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못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행히도 마족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뛰어난 몸 때문에 정정한 것인지, 몸에 여독은 없다네. 걱정해주어서 고맙군. 3황자.”

그레고리식 협상법.

‘거절을 거절하기.’

마르바스가 마계의 대공이기에, 프리실라의 스승이자 과거 재앙과 함께 싸웠던 영웅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어렵사리 발걸음을 하여 준 검성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또 빼는 것은 마르바스의 명예를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뒤에서 누군가에게 조종만 받는 3황자가 그런 것을 알 리가.

다시 한 번 반대하려던 3황자의 앞을 서기관이 막아서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역시 찬성합니다. 다른 이도 아닌 ‘검성’ 마르바스 공께서 저리 말씀하시는데, 3황자께서도 분명 부끄러운 마음에 거절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요?”

“그, 그렇다네. 그야말로 좋은 기회이지.”

“그렇기에───”

이번에는 서기관의 수비가 이어진다.

“──제 3황자님 뿐만이 아니라 황실에 있는 기사단들에게 그 광경을 견식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 어떠하신지요. 분명 보는 것만으로 큰 진보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3황자를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역시 어젯밤에 예측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내 좀 불쾌할 것 같군. 내 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련한 검이 아니라서 말이네.”

그레고리식 협상법.

‘완강한 거절.’

권위를 내세워 상대의 의견을 묵살 시키는 그레고리식 협상법의 필살(必?)이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그야말로 권위와 명예, 실력이 모두 공존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인 만큼, 웬만한 상대가 아니고서는 받아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기술.

그야말로 협상계의 ‘즉사 치트’나 다름없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송구하지만 마르바스님께 여쭈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마르바스님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저 혼자뿐인지요?”

3황자가 마르바스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에 대한 대답을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젓는 마르바스.

“현재 내 역할이 ‘소환사 아카데미’의 교관이다 보니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함께 수업에 참여할 걸세. 어찌 보면 나는 보충수업을 위해 보낸 교관이나 다름없으니 말일세.”

즉, 우리는 전부 있을 테니 너는 혼자 오라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억지 미소를 지은 3황자가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다른 황자들도 마르바스 공에게 검을 배워보고 싶을 터인데, 다들 자리를 비운 상태라 쉽지 않구려. 양해 부탁드리오.”

“인연이 된다면 그 또한 이루어지겠지.”

그렇게, 알현실에서 이루어진 마르바스의 ‘명목상’의 환영식이 끝이 났다.

백은궁으로 돌아가는 길. 프리실라가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온다.

“카넌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오지 않을 거예요. 아마 몸이 아프다고 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고 하겠죠.”

“걱정하지 말아라. 그 역시 예상했으니까.”

“……네?”

프리실라의 의문에 내 왼편에 서 있던 로제가 씨익 웃으며 ‘세계수의 열매’를 보였다.

“이거 들고 가는데 자기들이 막겠어요? 그땐 이거 들고 가서 쳐들어가면 돼요. 아니면 라파엘님이 함께 계시는데 자기들이 정말로 아프다고 하겠어요?”

“아…….”

우리 진영에 로제가 있기에 가능한 작전. 그들 역시 황제의 병은 작약공이 치유했다 생각할 것이기에 예측하지 못할 터였다.

“그레고리는 항상 놀랍단 말이지. 그래서 더 매력적인 건가?”

어느새 프리실라의 뒤로 다가온 라파엘이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라고, 이게 쉬웠겠는가.

황실에 있는 동안, 따로 일이 없을 때는 하루 종일 ‘심상 공간’에 처박혀서 온갖 외전과 본편을 플레이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인 그레고리의 방식, 다른 인물들의 방식을 최대한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그야말로 피와 살을 깎아내는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걸 또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나는”

나는

“그레고리이니 말이다.”

이미 그레고리였으니까.

* * *

점심시간이 지난 후.

황자 측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서신을 보내왔다.

[3황자의 가신으로 있는 귀족의 영지에 일이 생겨 급하게 떠나게 되었다. 마르바스 공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라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뻔뻔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오지 않겠다는 거네요. 설마 마르바스님을 이렇게 대할 줄이야…….”

“그만큼 자기 뒤에 있는 사마엘을 믿겠다는 거겠지. 정말이지, 어이가 없군.”

“카넌이라면 마르바스님이 황궁을 떠나실 때까지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겠지.”

그야말로 황실을 벗어나 버린 상황.

그렇다고 우리가 이럴 때의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세우면서도 설마 정말로 이렇게 나올까? 라는 생각을 했었으니 말이다.

“마르바스. 어제 이야기했던 그대로 하지.”

“……진심으로 그걸 하겠다는 건가.”

“결국 황실을 떠난 건 그 녀석이 아닌가. 네가 창피해 할 것은 없다.”

“……정말이지. 이런 걸 할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게야.”

물론, 이 작전 역시 그레고리식 협상법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작전이었다.

* * *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3황자 카넌. 그는 현재 자신의 누이이자 1황녀인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과 마르바스를 피해 자신의 가신이 있는 영토로 피신을 가고 있었다.

“망할 새끼들! 검성? 검성이 찾아왔다고? 그것도 그 망할 누이를 위해서?! 검성이 황실로 오는 동안 너희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는 마차 안에 홀로 있었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것은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과 기사들이었다.

즉, 그들에게 들으라 소리치는 것이었다.

“내 황실에서 내가 도망을 치게 만들다니, 오늘의 일은 결코 잊지 않겠다……!”

3황자 카넌에게 있어 서기관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줄 킹 메이커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모든 일이 잘 풀렸기 때문이다.

1황녀의 세력을 와해시키는 데 성공했고 다른 황족들의 감시 사이에서 몰래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였으며 한때 대천사라 불리던 ‘타락 천사’ 사마엘을 연결시켜준 그.

그렇기에 카넌은 황실을 떠나며 서기관에게 들은 대로 행동하기 위해 빠르게 황실을 벗어나고 있던 것이었다.

‘절대로, 그곳에 가셔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적진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외통수라 생각한 상황에서도 벗어나게 해준 서기관.

처음에는 사마엘과 함께 그들을 쓸어버리면 되는 게 아니냐 물었던 카넌이었지만 서기관은 침착하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대공의 작위를 가진 이들이 무려 두 명입니다. 심지어 상대측에는 대천사도 존재하지요. 그뿐입니까? 유글리아의 하프엘프와 발멩가의 여식을 건드렸다간 제국이 분열하고 말 겁니다.’

결국, 황자 역시 이 방법이 최선임을 깨닫고는 그저 이를 갈며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멈추시오! 멈추시오!”

마차의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 것이다.

“이 마차는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3황자이신 카넌 앤 하인베른님의 마차다! 대체 누가 어떤 권리로 막는단 말인가!”

“황제 폐하의 칙서요! 지금 당장 마차를 멈추시오!”

카넌이 탄 마차를 몰던 기사가 사내가 탄 말과 옷차림, 등에 달린 깃발을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황제의 칙사였다.

칙사의 말에 서서히 마차의 속도를 줄이는 기사.

이에 카넌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마차를 나와 칙사를 바라보았다.

“폐하께서 또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편지 같은 거라도 보내셨나 보군. 그래, 무슨 내용인가?”

카넌의 말에 칙사가 칙서를 양손에 들고 말에서 내려와 칙서를 펼쳤다.

그리고, 카넌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칙사가 스스로 칙서를 풀었다?

그것은 본인에게 온 편지가 아닌 칙사에게 어떠한 것을 ‘명령’했다는 것을 뜻했다.

“‘3황자 카넌 앤 하인베른 황자. 그대는 먼 걸음을 하면서까지 황실에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검성, 마르바스 공의 명예를 무시하였고 실추시켰으며 제국에 대한 믿음마저 실추시켰다.

제아무리 자신의 가신이 귀하다 하여도 어찌 황실의 행사를 본인의 마음대로 파하는가.

이에 나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황제 레프린 앤 하인이 명령한다.

신성 하인베른 제국의 3황자 카넌 앤 하인베른은 지금 당장 황실로 복귀하여 마르바스 공에게 사과하고 본래의 일정을 소화하도록 해라. 이는 황명이다.’……이상입니다.”

“……미, 미친.”

황제의 칙서에 적힌 모든 내용을 들은 카넌이 휘청거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상대가 이런 유치하고도 치사한 방법을 사용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황명? 돌아오라고……? 하, 하하, 하하하……!”

땅바닥에 주저앉은 카넌이 하늘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뱉는다.

그야말로 이번에는 어떠한 발악도 할 수 없는 외통수.

당연히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라 믿었기에 대비조차 하지 못한 방법.

그레고리식 협상법

비기(??)

고자질

“……설마 아바마마께 곧바로 고할 줄이야. 칙서를 어기면 반역에 준하는 일인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하, 하하!하하하하!”

땅바닥에 주저앉아 미친 듯이 웃어 젖히는 카넌의 뒤로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