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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01화 (101/169)

〈 101화 〉 아카대공 ­ 101

* * *

“……그대의 계획대로, 황제에게 따로 말을 전했네.”

완전히 침통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그렇게 말하는 마르바스. 평소 여유 넘치던 그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잔뜩 침울한 모습이었다.

“본인은 검성이거늘…… 마계의 대악마이자 다른 악마들을 거느리는 마왕이거늘…… 고자질이라니! 대악마이자 대 마왕인 본인이 고자질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아, 그것 때문이었나.

다행스럽게도, 마르바스가 이렇게 나올 것을 예측한 나는 마르바스가 황실에 갔다 돌아오기 전에 작업을 쳐둔 상태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마르바스님! 마르바스님 덕분에 저희가 이길 수 있었잖아요!”

그것은 바로 로제의 다독임.

“마르바스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거예요. 정말로 감사해요!”

로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여기서 마르바스가 더 꼬장부릴리는 없었다.

여기서 더 뭐라고 했다간 정말로 쪼잔한 대악마가 되어버리는 셈이니 말이다.

“맞습니다. 마르바스 공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프리실라의 감사 인사와

“다시 봤어? 영감.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악마일 줄은 몰랐군.”

“마르바스, 남자네?”

파이몬과 라파엘의 칭찬.

이렇게까지 체면을 차리는 마르바스가 이런 상황에서 더 화를 내는 것은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크, 크흠. 그대들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이 몸의 체면 하나로 그대들을 도울 수 있었으니 싸게 먹힌 것이지.”

봐라.

결국 먹히지 않는가.

칭찬으로 대악마의 체면으로 사다니, 그야말로 싸게 먹히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황제가 3황자를 황명으로 불러들였다고?”

“그렇다네, 그리고 오기 전 황자가 마차를 돌려 황실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리도 들었고.”

“좋군. 그럼 앞으로 기다리는 일만 남았나.”

황명에 의해 돌아온 3황자는 어쩔 수 없이 마르바스의 가르침을 받으러 백은궁으로 와야만 할 터.

그 과정에서 우리는 3황자에게 타락 천사인 사마엘과 무슨 관계이며 서기관과는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물어볼 예정이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황위 계승권을 두고 싸움을 하되 서로 목숨만은 빼앗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황제에 대한 배려였다.

그때, 프리실라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음? 올 사람이 있었나.”

갑작스러운 노크에 프리실라에게 묻자 그녀 역시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요? 누가 방문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황녀? 로제? 그레고리님?”

파이의 목소리였다.

“음? 이 목소리는?”

마르바스 역시 익숙한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본다.

“제가 열어드릴게요!?”

자리에 앉아있던 로제가 벌떡 일어나 도도돗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연다.

그곳에는 며칠 전보다 훨씬 초췌해진 얼굴의 파이가 헤실헤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안 열어주기에 와봤더니, 역시 여기에 있었네.”

“황실의 경비 일 때문에 바쁘셨을 텐데……. 저를 찾으셨어요?”

고개를 갸우뚱해 하는 로제의 머리를 파이가 쓰다듬는다.

“응,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고 들어서 말이야. 그렇죠? 마르바스님.”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던 파이가 힐끔 마르바스가 있는 이곳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허, 포션이나 만들던 그 꼬마 아가씨가 벌써 이렇게 자랐나?”

방금까지만 해도 살짝 침울해 보였던 마르바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파이를 맞이한다.

“수백 년 전이니까요. 저도 이젠 꽤 나이가 많은 편이거든요? 아, 황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프리실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얼마든지요. 작약공.”

“감사해요. 그럼 잠시 실례할게요.”

방 안으로 들어서는 파이.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마르바스를 보며 방긋 웃는다.

“오랜만이죠?”

“……그렇군. 정말 오랜만일세. 제국에서 공작 작위를 받고 지내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만, 여기서 다 보게 되는군.”

“저는…… 마르바스님의 소식을 따로 접할 기회가 없었네요.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하하, 그야 그러겠지. 자네는 원체 말수가 적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나 말고 저 녀석이 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나 보군?”

“네? 다른 누군가가 또……파이몬님?”

“흥, 빨리도 발견하는구나.”

“꺄악! 파이몬님!!!”

파이몬을 발견한 파이가 그대로 파이몬에게 달려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으, 으윽! 숨 막혀! 떨어져라! 떠러져엇!”

“아아~ 여전히 귀여우시다니, 반칙이에요.”

그리고 그 광경을 못 말리겠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마르바스.

이에 조심스럽게 다가온 로제가 내게 물었다.

“그, 그레고리님! 낯을 심하게 가리기로 유명한 고모가 마르바스님과 엄청 친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파이몬님을 와락 끌어안고 있어요……!”

아무래도 로제의 눈엔 그게 꽤 생소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과거 용사 라스와 함께 재앙을 물리친 멤버들이니 말이다.”

“아, 그랬죠? 전설로만 전해지던 영웅들의 만남이라니, 신기하네요…….”

그런 우리에게 프리실라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저희가 자리를 비켜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 방으로 가지. 녀석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묵힌 이야기가 꽤 많은 모양이야.”

“그럴까요?”

우리는 살며시 자리를 옮겨주기로 했다.

그렇게, 원래 우리 방으로 돌아와 이후 있을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거나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 환한 미소를 지은 세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아하니 회포는 전부 푼 모양이군.”

“네, 설마 로제가 마르바스님과 계약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거기에, 파이몬님과는 친구 관계……?”

“네? 헤헤…… 그렇게 됐어요.”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로제.

파이는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느낀 건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잘하고 있네. 로제.”

“네? 아……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세사람의 뒤에 안절부절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 황녀전하와 마르바스님. 그리고 일행분들? 방금 황실에 온 정보에 따르면 3황자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입고 있는 메이드복과 태도, 모습을 보아하니 프리실라의 사람인 모양. 그녀의 말을 들은 프리실라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고마워요. 아무래도 카넌이 도착한 모양이네요. 저희도 준비를 해볼까요?”

아마도, 오늘은 제국에 있던 날 중 가장 위험한 날이 될 터였다.

* * *

저 멀리,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3황자 카넌 앤 하인베른과 황실 서기관이었다.

“……도망자가 오셨군.”

목검을 들고 백은궁의 공터에 나와 있던 마르바스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죽거린다.

표정에 그야말로 불쾌함이 가득 서린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하더니 천천히 다가와 마르바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검성 마르바스님을 뵙습니다.”

“그래, 반갑네. 듣자 하니 가신이 몸이 매우 아프다 들었네만…… 상태는 괜찮아졌다고 하는가?”

마르바스의 말을 해석하자면 ‘도망가려다 붙잡혔는데, 기분이 어떠냐?’ 정도가 되겠다.

“폐하께서 황실의 의사를 친히 보내 주신다고 하셨으니 괜찮을 듯싶습니다. 자리를 비울뻔한 것에 대해 마르바스 공께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황자의 말을 해석하자면 ‘우리 아버지가 알고 있던데 네가 한 짓이냐? 개 같네. 진짜.’ 정도가 되시겠다.

“다행이로군. 그런데, 그쪽의 서기관은 무슨 일로 온 겐가?”

이 역시 번역하자면 ‘응~ 내가 한 거 맞아~ 꼬시야~ 그런데, 넌 뭔데 여기 있냐?’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황자전하께서 혼자 움직이시는 것은 황실의 명예에 손상이 될까. 우려되는바. 마법에는 자신이 있기에 제가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번역 : 얘 혼자 보내면 너희가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보내냐. 나 마법 좀 치니까 허튼짓하지 말아라.

“뭐, 그대의 마음도 이해는 가니 넘어가겠네. 저쪽에서 구경이라도 하고 있게나.”

번역 : 그래, 너 하나 있어봤자 달라질 건 없다. 저기 찌그러져서 구경이나 해라.

“예, 검성 마르바스 공의 검술을 실제로 보게 된바.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번역 : 넹.

공손한 어조로 상대를 욕하니 그야말로 이것이 예절이 아니겠나.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라 느껴졌다.

“로제, 우리는 저 영감의 검술 말고 그레고리류를 연습하지.”

“오랜만에 그레고리류네요! 그레고리류 사범 로제 폰 유글리아! 그레고리류의 마스터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받아드리마.”

로제와 적당히 콩트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데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마르바스와 3황자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어쩌라고.

대충 그런 눈으로 봐주니 마르바스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황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이들을 기다리도록 하지.”

“……누님이겠군요.”

“그래, 황제가 부탁한 것은 그대와 황녀이니 말일세.”

그리고 마침, 프리실라가 단아한 느낌의 무도복으로 갈아입고 라파엘과 함께 백은궁에서 나왔다.

“야호~ 그레고리~ 로제~ 우리 옷 갈아입었어.”

평소 활동할 때 입고 있던 아카데미의 제복이 아닌 새하얀 무복 차림.

평소와 다른 그 모습은 그야말로 색다르게 느껴졌다.

“프리실라! 라파엘님! 너무 귀여워요!”

“그치? 프리실라. 내 말이 맞잖아. 완전 귀엽다니까?”

“부끄러우니까 그만 해요, 라파엘……. 그나저나 저야 마르바스님께 가르침을 받는다지만, 라파엘은 왜 무복을 입은 거예요?”

“나? 나는 그레고리랑 로제한테 그 그레고리류라는 걸 배우려고 했지. 그레고리가 주먹을 쓰다 보니 배우면 좋을 것 같더라구?”

“그래요? 이번 기회에 잘 배워서 저도 알려줘야 해요?”

“응~.”

그렇게 프리실라는 마르바스에게 라파엘은 우리에게로 온다.

그리고 저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서기관까지.

모든 배우가 모였으니 연극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라파엘님! 그레고리류에 입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그레고리류의 사범. 로제입니다! 지금부터는 로제 사범이라 불러주십쇼! 슉! 슉슉!”

제자리에서 스텝을 밟으며 허공에 화려한 주먹질을 선보이는 로제.

“……….”

얘는 또 왜 이렇게 진심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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