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아카대공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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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가슴의 아래! 갈비 부분을 쳐주는 게 좋아요! 여기가 바로 간장이라는 곳인데 맞으면 고통 때문에 움직이기가 힘들거든요. 이렇게! 슉! 슉!”
입으로 리얼한 소리까지 내주며 라파엘의 앞에서 열심히 ‘그레고리류 로제 펀치’라는 것을 선보이는 로제.
라파엘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자, 어때요?”
“음~ 자세가 좋네? 역시 로제는 무투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는 걸?”
“진짜요?!”
아니, 네가 사부라면서.
왜 사부가 제자에게 재능있다는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거냐고.
“자, 여기서는 주먹을 눕히는 게 아니라 세워서…….”
“이, 이렇게 인가요?”
“좋아~ 잘하고 있어.”
역시 천계에서도 무투로 이름을 날렸던 라파엘인 만큼 자칭 ‘그레고리류 사범 로제’를 잘 알려주고 있다.
그야말로 화목한 풍경.
하지만 우리가 위치한 곳에서 조금만 더 뒤로 간다면…….
“형편없군. 이 정도로 검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치켜세운 거였나?”
“거기서는 검로를 끊는 게 아니라 이어서 올라갔어야지.”
“형편없군.”
“형편없다.”
“네 누이의 반이라도 따라 해 보도록.”
“어이가 없군. 끔찍할 정도야.”
“지금이라도 검을 포기하는 건 어떤가.”
“쓰레기 같군.”
조용히 앉아 3황자 카넌의 검술을 바라보고 있는 프리실라와 팔짱을 낀 채 표정을 찡그리며 폭언을 날리는 마르바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부터 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무엇이 저보다 낫다는 것입니까!”
결국 마르바스의 폭언을 참지 못해 폭발하는 카넌.
이에 마르바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심검(心?) 마음의 검이라고도 하지. 네 누이는 현재 심검으로 수련 중이다.”
“무슨 그런 억지가……!”
“3황자, 그대의 수준에서 심검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는 마르바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든다.
아, 분명해, 저 녀석. 지금 즐기는 자 모드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
“저도 심검(心?)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누이가 심검을 이루고 있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로군?”
“그럼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어쩔 수 없지. 프리실라 황녀, 한 번 보여주게.”
“네, 그거야 어렵지 않죠.”
도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프리실라가 장난기 실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잇!”
“……방금 뭘 한 겁니까? 누님.”
“역시 이번에도 보지 못했군.”
“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카넌에게 마르바스가 넌지시 말했다.
“방금, 자네 누이가 하늘을 반으로 갈랐네.”
“……예?”
“못 들었는가? 방금 자네 누이가 하늘을 갈랐다고. 그걸 내가 막아냈고 말일세. 프리실라.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뒤에 있던 녀석들에게 넌지시 말해주었다.
“지금이다. 박수갈채.”
내 말과 동시에 신나게 손뼉을 치기 시작하는 라파엘과 로제.
“역시 우리 중 최강의 심검! 프리실라 최고예요!”
“방금 하늘이 갈라졌다면 식겁했겠는데? 천계까지 참격이 닿았을 거야. 역시 우리 프리실라야~”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세상을 가르려면 멀었는걸요.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프리실라의 모습을 본 3황자, 카넌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수십 분의 수업을 듣고 나서야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애초에 이 자리가 자신을 농락하고 희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라는 것을.
허나, 그가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일은 없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검성’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얼마나 큰 분노를 참는 것인지 카넌의 꽉 쥔 주먹이 새하얗게 질려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냥 보내주겠는가.
“아직 그대의 아버지인 황제와 약속한 시간이 되지 않아서 말이네. 본인은 그대가 좀 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네만.”
방금까지의 미소는 전부 거짓이었다는 듯. 정색한 모습의 마르바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카넌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를 놀리고 있을 뿐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목검을 땅에 박아넣은 마르바스가 카넌에게 물었다.
“패배의 대가로 대체 뭘 생각하고 온 겐가.”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마르바스가 마기를 내뿜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대를 뒤에서 돕고 있는 그 천사가, 정말로 그대를 아무 이유 없이 그대를 돕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천사도 아닌 ‘타락 천사’ 사마엘이? 만약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정말로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지.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 내 친우 라스와 릴리, 다른 전우들이 구했던 이 제국의 황위를 이어서는 안 돼. 그게 바로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라네.”
“하, 하지만. 그는 바라는 것이 없다 했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제가 황제에 어울린다 생각하니 도와준다고───”
“……멍청한 새끼였군.”
“……예?”
갑작스러운 마르바스의 욕설에 놀란 카넌이 고개를 들며 마르바스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아닌 어이가 없을 때 나오는 표정이 나와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타락 천사’에게 그런 말을 듣고 그대로 믿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정도야.”
그리고 그런 마르바스의 뒤에서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프리실라가 나섰다.
“그게 ‘타락 천사’의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라파엘이 자주 경고해줬거든요. 그들은 선의를 바탕으로 욕망과 배신을 부추긴다고.”
“……그게 맞는 표현이로군. 본인이 세뇌를 당한 지도 모르는 눈치야.”
“세뇌……? 세뇌……. 내가? 개지랄하지마아아!!!”
아마, 그 ‘세뇌’라는 단어가 기폭제로서 작용한 것인지, 카넌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외쳤다.
“알로스 휴스고! 더 이상의 기다림은 없다! 지금 당장 사마엘을 불러! 그냥 여기서 전부 치워버리고 내가 황좌를 차지하겠어!”
……어이가 없군.
“3황자. 그대가 찾는 서기관이라면 이미 자리를 비운 지 오래다.”
“……뭐?”
내 말을 듣고는 서기관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카넌.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텅 비어있었다.
“이, 이게 무슨…….”
“나도 꽤 놀랐지. 설마 그대를 버리고 도망칠 줄이야. 웃기지 않나?”
“그럴 리가 없다! 알로스가 날 버렸을 리가 없어!”
사실, 카넌이 우리의 앞에서 사마엘과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것에서 이미 상황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는 카넌이 타락 천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가 없어 직접적으로 움직일만한 근거가 없었지만, 프리실라를 포함한 우리의 앞에서 그것을 부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타락 천사’를 색출한다는 명분이.
“로제, 3황자를 제압해서 네 고모에게 데려갈 수 있겠나.”
“네! 충분해요.”
지금부터 우리가 향할 장소에 로제가 동행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렇기에 로제는 이곳에 남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프리실라, 아멜과 교관은?”
“말씀하신 대로 서기관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아멜양은 작약공께, 교관님은 서기관에게 따라붙었어요.”
“좋군.”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마르바스, 라파엘. 교관에게 신호가 오는 대로 그곳으로 이동하겠다. 프리실라, 너는 파이몬을 부른 후 로제와 함께 황실로 가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대로 프리실라는 백은궁 안으로 들어가고, 로제는 아직 멍하니서 있는 카넌에게 다가간다.
“자자, 될 수 있으면 좋게좋게 갈까요?”
“뭐? 네 녀석까지 날 무시하는 게냐! 나는 카넌 앤 하인베른! 이 제국의 황자다!”
“넹넹, 저는 로제에요! 로제 펀치!”
그대로 다짜고짜 카넌의 간장을 향해 주먹을 날려버리는 로제.
“커헉!”
로제의 주먹에 얻어맞은 카넌이 새우처럼 몸을 앞으로 수그린다.
“라파엘님! 방금 어땠어요?”
“배운 대로 주먹을 세웠네? 허리에 스핀을 줘서 가속도를 높인 것도 좋았고…… 만점!”
“와! 만점!”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카넌을 앞에 두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는 로제.
아니, 마르바스도 때리지는 않았는데…… 저렇게 때려도 되는 거 맞나?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로제가 내 표정을 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세뇌당한 거잖아요? 제가 때렸다 해도 세뇌 때문에 착각하는 거 같다고 하면 돼요. 로제 펀치는 상처를 남기지 않거든요!”
……그래, 계획이 다 있었구나.
“순순히 따라오시지 않을 거 같으니까……. 마침내 이걸 써야 할 때가 된 거군요!”
그렇게 말하며 로제가 꺼내 든 것은 파이의 손에 업그레이드가 된 파이프 담배였다.
“……간접흡연으로 협박하겠다는 건가?”
아직 로제의 파이프 담배의 능력을 모르는 마르바스가 어이없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본다.
간접흡연으로 협박이라니…….
“아무리 로제여도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있겠나. 이번에 파이의 손을 거치며 담배 연기에 상대를 매료시키는 효과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담배 연기에 매료?”
“그래, 지금까지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첫 실전이니 저리 신날 만도 하지.”
이윽고, 로제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직도 거칠게 숨을 내뱉고 있는 카넌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서서히 몸을 펴며 몽롱한 표정을 짓는 카넌.
“우리, 같이 황실로 가요?”
“……네.”
세뇌로 인해 정신이 불안정해져서인지 완전히 넘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저러면 문제는 없겠군.”
잠시 후, 프리실라가 파이몬과 함께 백은궁에서 나왔다.
“드디어 본인이 나설 때가 온 게냐?”
양손을 깍지 끼고는 기지개를 피며 나오는 파이몬.
“그래, 곧 있으면 신호가 올 거다.”
그리고 동시에, 황실의 하늘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 마침 신호가 왔군.”
저곳이 바로, 사마엘과 서기관이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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