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아카대공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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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대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였다. 폭발의 근원지를 중심으로 새하얀 빛무리가 형성되며 방어막이 형성된 것이었다.
“하하! 그렇지! 뒤지기 싫으면 방어막을 쳐야지!”
반투명한 빛의 구체를 향해 손을 뻗는 신관복 차림의 적들을 바라보며 깔깔 웃는 파이몬.
폭발의 여파가 안까지 들이닥치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적들은 빛의 문을 해제한 상태였고, 그곳에서 나온 적들 역시 나오자마자 폭발에 휩쓸려 전투 불능이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 것인지 본인들이 공격을 막는 꼴이 되었다.
“하하하! 그레고리 봤는가! 저들이 알아서 빛의 문을 닫았다네!”
“파이몬 저 미친년이……!”
갑작스러운 파이몬의 난입에 상황이 난장판이 되자 사마엘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파이몬이 있는 상공을 노려본다.
“사마엘! 오랜만이야! 정말로 오랜만이야!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드는가?!”
“닥쳐! 방금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
“네 부하들의 집에 폭탄을 던진 것 말이더냐? 화려하고 좋았는데 어찌 그리 표정을 구기는고? 하하하하!”
사마엘을 제대로 골탕 먹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까. 파이몬은 여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로스 휴스고! 파이몬이 왜 황실에 있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마왕 파이몬의 입궁 소식은 저도 파악을───”
“상황부터 보고해!”
“현재 전이 인원은 교단의 검 세 명과 신도 12명! 나머지는 빛의 문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전이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파이몬이 저지른 폭탄 투척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파이몬이 이것까지 예상했다고?
“하하하하! 당황하는 꼴은! 하하하하하!”
……아무래도 그것까지 예상한 것 같진 않지만. 어찌 됐든, 파이몬의 행동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 것은 확실했다.
폭발로 인한 연기가 잦아들고, 상황이 조금 진정되었을 때쯤, 마침내 빛의 문에서 나온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로브를 쓴 3명의 인물과 새하얀 로브를 둘러쓴 12명의 인원들.
그들 역시 도착과 동시에 발생한 폭발로 인해 꽤나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방금 전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의 말대로라면 신성교단의 검은 총 3명. 검은 로브를 쓴 인원들이 모두 신성교단의 검인 모양이었다.
“당장 결계부터 펴!”
라파엘을 튕겨낸 사마엘이 서기관과 신도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러자 12명의 신도중 반 이상이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 같은 영창을 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6명은 그들을 지킨다.
본능적으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는 신도들을 향해 달려가자 검은 로브를 쓴 상대 중 한 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재회. 복수.”
익숙한 목소리.
“……유켈.”
과거 기숙사를 침공했던 신성교단의 검.
사마엘이 교단과 함께한다는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악마……!”
녀석 역시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본래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악마를 혐오하는 건 여전하군.”
그러나, 녀석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때와는 다를 거다. 유켈.”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가 유켈을 상대한다 하더라도 머릿수가 부족한 것은 자명한 사실.
사마엘과 교단의 검들은 나와 마르바스, 파이몬과 라파엘이 맡는다고 해도 나머지 신도들을 상대할 인원이 부족했다.
즉, 지금 우리에겐 묘수가 필요했다.
“그레고리님!!!”
그때, 반투명한 결계를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금발의 소녀 두 명. 멀리서 보기에는 둘의 외견은 무척이나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한 차이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완전히 물들지 않아 정수리 부근이 까맣게 물든 머리.
로제와 파이의 등장이었다.
“부, 분명히 결계를 펼쳤을 텐데!”
두 사람의 등장을 바라본 서기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저기 달려오는 녀석 중 한 명이 내가 아는 작약공(?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귀찮아지겠네.”
마침내 등장한 마지막 멤버들의 등장에 사마엘이 표정을 찡그린다.
“이거, 재미있는 짓을 저질러 주셨네요. 황실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 그리고, 그쪽은 사마엘이죠? 오랜만이에요.”
결계를 뚫고 로제와 함께 유유히 안으로 들어선 파이가 목을 양옆으로 꺾으며 말한다.
“거기에 그 복장들은……. 신성교단이 개입했다는 거군요. 상황은 대충 알겠네요.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제국 황실의 경비를 담당하는 작약공(?藥?). 제가 모두 보증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파이가 한 차례 숨을 고르고 말했다.
“힘껏 날뛰어주세요.”
즉, 지금 이 공간 안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선언.
그 발언에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의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사양하지 않으마.”
방금까지만 해도 프리즘 쥬얼로 황실을 날려버리려고 한 대악마부터 해서.
“파이,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제대로 날뛰어도 되는 것이겠지. 흠, 옛날 생각이 나는군.”
자신이 들고 있던 검 자루를 더욱 꽉 쥐며 과거를 회상하는 대악마와
“스케일이 너무 커져 버렸군.”
어느 새엔가 이 빌어먹을 세계에 적응하게 된 대악마까지.
“파이, 로제. 너희는 저쪽에 결계를 치고 있는 신도들을 맡도록.”
“네! 이 로제에게 맡겨주세요!”
“로제는 제가 잘 지킬게요.”
이로써 각 진형 간의 균형이 대략 맞추어졌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서로의 피와 살을 탐(?)하는 전투뿐.
그야말로, 지금의 내게 어울리는 전장이 아닌가.
[(특성 : 「탐욕(??)」을 발동합니다.)]
정말로 진심을 발휘할 때를 위해 아껴놓았던 마력을 검은색의 불꽃으로 치환한다.
“이번에는 후퇴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끔찍함. 처단. 이프리트.”
마지막으로 그녀가 읊조린 말에 힘이 실리며 유켈의 주변으로 열풍이 휘몰아친다.
허공에서부터 시작된 새빨간 불꽃을 휘감으며 등장하는 이프리트.
S등급의 소환수다운 위용을 보이며 ‘이프리트’라는 이름의 소환수가 황실에 강림했다.
“오랜만에 보는군. 이프리트.”
여전히 소름 끼치도록 강해 보이는 모습. 허나,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는 이쪽도 절대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 지난번의 약점을 극복했는지부터 확인해 볼까.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인 상태로 유켈을 향해 달려든다.
저번에 유켈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방법.
허그(Hug)였다.
“이프리트!”
유켈의 외침과 동시에 내가 돌진하는 경로에 새빨간 불꽃의 벽이 형성된다.
하지만, 그 정도 방어로 내 돌진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스킬 : 화염 인챈트)를 발동합니다.]
온몸에 「탐욕」을 두른다. 그 모습은 가히 검은 불꽃을 둘러쓴 바퀴.
현실에 존재하는 단어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
“──바퀴벌레 킥”
[(스킬 : 바퀴벌레 킥)을 발동합니다.]
일직선으로 불꽃의 벽을 돌파해 유켈을 향해 곧장 바퀴벌레 킥을 내다 꽂는다.
그러나, 마치 쇠로 만들어진 벽에 들이박은 것처럼 엄청난 충격량이 발목에서부터 느껴지며 몸이 뒤로 튕겨 나가고 만다.
“대비만전.”
귀갑(??) 형태의 새하얀 돔이 그녀의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형태를 보아하니 이프리트로부터 파생된 스킬이 아닌 신앙 형태의 스킬인 모양.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의 방어마법을 구사하게 될 줄이야…….
“작별인사.”
그리고 동시에, 등 뒤에서 타오르는 듯한 끔찍한 열기가 느껴지며 내 몸이 위로 튀어 올랐다.
“크윽!”
「탐욕」을 몸에 둘렀기에 화염에 대한 데미지는 적었지만, 압도적인 힘과 질량에서 전해지는 충격량만큼은 가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는 공격.
재빨리 날개를 펼쳐 중심을 잡은 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더럽게 아프군.”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심각한 데미지는 입지 않은 모양.
세 쌍의 팔과 다리를 움직여보니 아직은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나도 이프리트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성장한 것이다.
시선을 돌려 주변을 돌아본다.
다른 녀석들도 각자의 적을 상대하느라 분전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한 명이 쓰러진다면 균형이 기울기 시작하며 끝이 날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힘 같은 것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특성 : 귀족)이 발동합니다.]
……자존심 때문인가.
설마 여기서 귀족 특성의 영향을 받을 줄이야.
그래도, 덕분에 조금이나마 힘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가 더 강해졌는지 붙어보지.”
나는 그렇게 외치며 이프리트의 머리 위를 향해, 내 몸속에 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 짜내며 외쳤다.
“검은 늪.”
과연, 모든 것이 삼켜진 불의 정령은 어떤 모습을 할까.
괜히 기대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