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07화 (107/169)

〈 107화 〉 아카대공 ­ 107

* * *

이미 5번째 절단당한 오른팔.

라파엘은 다시 한번 자신의 팔을 회복시키며 눈앞의 존재를 노려보았다.

과거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수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죄로 타락 천사가 되어버린 천사. 사마엘.

무척이나도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그는 이야기보다는 칼과 주먹을 섞는 것을 선호하고 있었다.

“하하하! 라파엘님. 소환수가 되시더니 너무 약해지신 거 아니에요? 도마뱀 같은 회복 속도는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오네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라파엘을 유일하게 존댓말로 대하는 사마엘.

하지만 라파엘은 그러한 모습이 더욱 눈살 찌푸려질 뿐이었다.

“그 더러운 아가리 닥쳐. 사마엘. 너와 섞을 이야기는 없어.”

“네에? 서운하네요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신께 용서를 구하라고 말해줬던 게 누군데요? 벌써 절 포기하시는 거예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가슴 위에 양손을 올리는 사마엘.

그 모습을 본 라파엘의 표정이 구겨지자 사마엘은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하하하하! 그 표정은 뭐에요? 진짜 재미있네!”

“그저, 더욱 타락했구나. 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래요? 타락이라니! 아아, 타락한 사마엘~ 신에게 버림받고 지옥에서도 배척받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비운의 천사여~ 뭐, 그런 거요?”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던 사마엘이 우뚝 멈춰서서는 라파엘을 노려본다.

“그럼에도. 저는 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렇기에 ‘타락’했어도 저는 살아갈 수 있거든요.”

“……미친놈.”

“미쳤다니요! 오히려 저를 제외한 다른 천사들이 미친 거죠! 천상신이 깊은 잠에 드신지 벌써 수백 년이에요! 어째서 신께서 돌아오지 않으시는지 의심도 안 해보신 건가요?”

사마엘의 외침에 라파엘이 의문을 표한다.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말하네?”

“그야 당연하죠! 신님을 다시 돌아오시게 만드는 게 제가 살아가는 이유인걸요!”

그렇게 외치며 양팔을 벌린 사마엘은 마치 그것이 진실이라는 냥 외쳤다.

“바로 재앙이에요! 재앙이 없기에 신이 주무시는 거라고요! 신께서는 다음 재앙에 대비하시기 위해 깊은 잠에 드신 거니까요! 그렇다면? 재앙을 불러오면 되잖아요? 재앙만 불러오면 신님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어요! 그 빌어먹을 메타트론. 그 망할 년을 치우고 신님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그의 외침은 처절하다 못해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신님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재앙을 불러들이겠다고? ……너는 미쳤어.”

“네! 미쳤어요! 신님을 다시 돌아오시게 하기 위해서라면 미치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요! 그것만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니까요!”

“……신성 교단의 아이들도 그렇게 꼬드긴 거니?”

“꼬드기다니요. 진실을 알려줬을 뿐이에요. 아이들도 모두 납득했고요. 강제성은 1도 없었는 걸요?”

“역시……. 너는 잘못됐어.”

라파엘은 그렇게 말하며 완전히 회복된 오른팔과 왼손을 사마엘을 향해 겨누었다.

“나는 너를 막을 거야. 사마엘.”

“당신이요? 약해빠진 황녀 때문에 3성급의 능력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당신이?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봐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사마엘이 손목을 쳐올리자 허공에 생성된 새하얀 검이 라파엘의 왼팔을 스쳐 지나간다.

주륵. 하고 흘러내리는 새빨간 피. 그 모습을 본 사마엘이 피식 웃는다.

“제 손짓 하나에 피를 흘리는 당신이 어떻게 저를 막겠다는 거예요?”

“나의 방식으로.”

“당신의 방식? 처맞아 가면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거? 지금까지 그 방법을 쓰다가 날려 먹은 팔만 5개에요! 아시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이렇게 말을 많이 안 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네?”

“네 이야기를 듣고 싶었거든. 정말로, 진심으로 상대해야 할지 말지 말이야.”

쾅! 하고 라파엘이 양 주먹을 부딪치자 그 사이에서 생성된 새하얀 불꽃이 주먹 위로 모여들며 십자가 모양의 너클을 만들어 냈다.

“그건……. 진심이에요?”

“그래, 진심이야.”

라파엘의 주먹 위에 생겨난 은색의 십자가. 양손에는 한 개의 글귀가 두 개로 나누어져 적혀 있다.

‘Cui resistite fortes fide, scientes eadem passionum ei’

‘quae in mundo est, vestrae fraternitati fieri’

‘믿음에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앎이라.’

세상을 오염시키는 적들을 부수기 위한 라파엘만을 위한 무기.

“……그 물건은 신의 적에게만 사용하도록 주어진 물건이잖아요?”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신의 적으로 판단했다.”

──캉! 하고 다시 한번 불꽃이 튀어 오른다.

“성유물(??物) 대적자((??者). 능력은 너도 알겠지? 지금부터는 쉽지 않을 거야.”

“……라파엘께서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마엘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라파엘을 향해 날아가는 수많은 칼의 무리.

스텝을 밟으며 앞으로의 전진을 시작한 라파엘은 비처럼 쏟아지는 칼들을 너클로 쳐내거나 피해내며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 그래봐야 회복력과 신성력을 증폭시켜주는 무기! 그것만으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의 왼쪽 허벅지를 칼이 스치고 지나간다.

새하얀 허벅지 위로 생겨나는 새빨간 선. 허나, 그 선이 벌어지기도 전에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듯 상처가 닫히고 만다.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겠지.”

거리를 좁힌 라파엘이 정면의 검을 쳐내며 사마엘을 향해 튕겨낸다.

재빨리 눈앞에 검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을 막아내는 사마엘.

검을 튕겨내자 그 뒤에 미소 짓고 있는 라파엘을 발견하고는 얼굴에 경악이 깃든다.

“그 뒤로 온다고……?!”

“잡았다.”

그대로 손을 뻗어온 라파엘의 손에 멱살을 잡힌 사마엘이 재빨리 라파엘의 오른팔 위로 검을 떨어뜨리지만.

검은 마치 팔을 통과한 것처럼 앞에 박힐 뿐. 아무 일도 없었다.

“무슨……?!”

“잘리기야 했어. 회복이 빨랐을 뿐이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으로 사마엘을 끌고 오는 라파엘.

“우선, 맞자?”

콰앙! 하고 무식하리만큼 끔찍한 소리가 라파엘의 너클과 사마엘의 얼굴 사이에서 울려 퍼진다.

“지금까지 참았어. 네가 뭔 짓을 해도 참았다고.”

콰앙! 쾅! 쾅!

“자, 잠까안……!”

“3황자? 뭐 상관없어. 네가 어떻게 할 수는 있지. 그 아이가 아이도 아니고 말이야.”

쾅! 쾅! 쾅!

점점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은색의 너클.

비산하는 혈흔에도 라파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날린다.

“그런데, 감히 프리실라를 건드려? 우리 프리실라를? 사마엘, 네가?”

콰앙! 콰앙! 콰앙!

“라파엘……!”

“네 녀석은 그저 신님을 변명거리로 삼는 추악한 천사일 뿐이야. 타락 천사 사마엘.”

어떻게든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마엘의 몸부림.

라파엘의 복부에 하나.

라파엘의 허벅지에 세 개.

라파엘의 왼팔에 둘.

라파엘의 오른팔에 하나.

그리고 등에 여섯.

그것이 모두 라파엘의 몸에 박힌 검의 개수였다.

“그만……!”

“누구 마음대로? 왜, 3성한테 처맞으니까 기분이 나빠?”

쾅!

이번에는 사마엘의 얼굴 앞에 형성된 검에 의해 라파엘의 주먹이 막히고 만다.

그럼에도, 라파엘은 주먹을 멈추지 않는다.

뿌득. 하고 라파엘의 오른팔에 혈관이 솟아오른다. 힘을 얼마나 준 것인지, 팔에 박힌 검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사마엘.”

점점 주먹과 함께 밀리는 사마엘의 검.

“과거 나의 동료이자 사랑했던 나의 후배야.”

이내 검과 사마엘의 얼굴은 점점 가까워지며 마침내 그의 뺨에 검이 닿았다.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날 생각은 하지 마?”

마침내, 라파엘의 왼팔에 붙잡혀 있던 사마엘의 옷이 찢어지며 뒤로 날아가고 만다.

그렇게 날아간 곳은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작약공(?藥?)의 검에 의해 쓰러진 사제가 있는 장소였다.

“아아…….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일련의 사태를 뒤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던 황실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천사의 도움을 받아 황실로 잠입. 황실 내부에서부터 조금씩 잠식하여 황실을 흡수하고 신성 하인리히 제국의 중추를 ‘신성 교단’으로 만든다는 완벽한 계획.

그 계획이 모두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황녀와 함께 온 저 망할 하프엘프와 괴물 벌레 악마 때문에!

“으아……. 으아아아!”

눈앞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교단에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 걸까.

교단의 검과 사마엘을 막아 세운 자들이 있다고?

마계의 대공. 마왕 3명과 대천사 라파엘. 작약공과 하프엘프. 수인 검사가 모든 계획을 막았다고?

……과연 교단은 이 사실을 믿을까?

그것보다,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을 도달시킨 알로스 휴스고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미 작전은 완벽히 실패했다.

그렇다면 탈출만 하면 될 뿐.

허나, 그에게는 3명의 대공과 대천사를 상대할 여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교단의 검들은 모두 패배하여 너덜너덜해진 상황.

심지어 ‘타락 천사’인 사마엘마저 라파엘에게 패배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사마엘님……! 사마엘님……!”

자신의 앞에 축 늘어진 사마엘의 몸에 손을 올린 알로스 휴스고가 자신에게 남은 모든 마력을 쏟아붓는다.

빛의 문을 개방하느라 사용한 마력이 아무리 방대하다 하더라도 프리즘 쥬얼을 사용했던 만큼 여력의 마력이 남아있던 상황.

그는 자신의 모든 마력을 쥐어짜며 사마엘을 깨우고 있었다.

“탈출을……! 탈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사마엘.

그동안, 주변의 사제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수인 검사과 작약공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으……. 아…….”

“황실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

마치 재판장의 판사와도 같은. 파이 폰 유글리아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내려 꽂힌다.

“그대는 황실을 우롱하였으며 배반하였고 반역을 저질렀다. 이에, 황실경비총책임자이자 신성 하인리히 제국의 공작인 나 작약공(?藥?) 파이 폰 유글리아가 지금부터 그대의 신병을 인계하겠다.”

파이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알로스 휴스고에게 겨눈다.

상황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변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알로스 휴스고. 꽉 잡아라.”

땅에 쓰러져 있던 사마엘이 파이의 검을 쳐내며 알로스 휴스고의 목덜미를 붙잡은 것이다.

“사마엘님……!”

지금까지 소멸하지 않고 바닥에 꽂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검이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사마엘의 의도를 가장 먼저 파악한 그레고리가 파이를 향해 외쳤다.

“막아라! 파이!”

허나, 우습다는 듯 사마엘이 부어오른 얼굴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늦었어.”

검들의 빛이 연결되기 시작한다.

외각을 빙 두른 듯한 검들의 위치.

검들은 서로와 서로를 선으로 연결하며 하나의 마법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동시에, 이미 완전히 제압당한 교단의 검들과 사제들의 신체 부위 중 한 군대씩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목, 어떤 이는 손, 어떤 이는 다리.

지금껏 다른 이들이 신성 교단을 뜻하는 문양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에 라파엘 역시 무언가를 눈치챈 듯 사마엘을 향해 달려가지만───

“다음에 또 봬요. 라파엘님.”

사마엘은 알로스 휴스고와 함께 새하얀 빛무리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승천하듯,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는 사마엘의 검들과 새하얀 빛들.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파이는 멍하니 주변에 널브러진 사제들과 교단의 검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의 마력과 신성력을 모조리 빨아들이고는 도주했어요.”

이에 교관, 셀루아 네갈이 묻는다.

“그렇다면, 여기에 남은 녀석들인 전부 버려졌다는 겁니까?”

“……네.”

그리고, 그 광경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어이가 없군.”

그레고리 존스. 그는 마지막까지 탈출을 준비한 사마엘을 떠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3황자 측.

3황자 생포.

교단의 검 3명 생포.

신성 교단 사제 12명 생포.

‘타락 천사’ 사마엘, ‘황실 서기관’ 알로스 휴스고. 2명 도주.

1황녀 측.

전원 부상.

이로써, 황실에서 벌어진 1황녀와 3황자의 ‘계승권 다툼’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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