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아카대공 109
* * *
“그……. 괜찮은 거 맞나? 아까부터 팔이 부르르 떨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본인의 손에 들린 성검을 들여다보며 흡족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르바스.
그 모습만 본다면 성검을 들여다보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부르르르르르르르르─────
성검을 든 손을 무척이나 심하게 떨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화상을 입은 듯한 손으로 말이다.
“하하, 생각보다 앙칼진 검이어서 말이네. 길들이는 맛이 있겠군.”
뭐?
“성검을 길들인다고……? 자네가?”
“안된 건 또 뭔가? 성검도 결국 검인데. 허허.”
마르바스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그의 손에 쥐어진 성검은 계속해서 지잉─ 지잉─ 울고 있다.
“고통은 없나? 신성력 때문에 손이 타들어 가고 있다만.”
“뭐, 보다시피 불타는 정도의 고통이라 참으라면 못 참을 것도 없지.”
그리고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파이몬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나 역시 한 취미 한다고 생각한다만……. 저 영감은 ‘진짜’라서 무섭단 말이지.”
“마왕이 성검이라니. 이상한 그림이긴 하네. 흐으음…….”
마르바스의 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라파엘이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러나 라파엘. 무슨 문제라도 있나?”
라파엘과 연관된 물건인가 싶어 물어보니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 우리가 사용하는 신성력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 들어서. 천상신이 계시는 천계 물건은 아닌 모양이네.”
“그래?”
이 세계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신들 덕분에 꽤 많은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보물고에 간단한 설명 같은 게 붙어있지 않나? 무슨 물건인지 설명은 쓰여있을 텐데.”
“그저 정체불명의 성검이라 쓰여있더군? 그것 때문에 마음에 든 것도 있지만 말이다.”
마르바스의 말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교관인 셀루아 네갈 만큼은 다른 모양이었다.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며 검을 길들이시다니…… . 그야말로 검성!”
아무래도 콩깍지 같지만.
아무튼, 보상까지 야무지게 챙겼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려 했는데 황제의 공식 행사가 있다는 모양이었다.
제국을 구해준 은인들을 위한 연회라고 하는데…….
논공행상이야 지루한 파트가 아닌가.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고른 보상을 황제의 손으로 따로 받는 훈훈한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중간에 성검을 건네받은 마르바스의 손에서 고기 굽는 냄새와 동시에 연기가 올라오는 작은 헤프닝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간단한 연회.
황실의 연회를 간단히 말하자면…….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로제가 가지고 있는 파이프 담배의 능력 때문인지 수많은 남자들이 로제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유글리아 영애! 부디 저와 춤을!”
“유글리아 영애? 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심이?”
“소문대로 정말로 아름다우시군요! 유글리아 영애!”
어이가 없는 건 이런 꼬드김에도 넘어가지 않던 로제가 ‘같이 흡연하러 가시겠습니까? 영애.’라는 말에 넘어가 버렸다는 거지만…….
뭐, 나랑 같이 간 덕분에 그렇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딜 감히 제국의 귀족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녀석들이 우리 로제를 넘보려고.
마음만 같아서는 연회장 한복판에서 변신을 외치며 현란한 코사크댄스를 추고 싶었지만 다른 동료들의 체면이 있었기에 겨우 참아냈지만 말이다.
물론, 로제에게 접근하는 인물들을 나 혼자서 막아낸 건 아니었다.
“따끔하군.”
황제의 손으로부터 다시 건네받은 성검을 허리춤에 차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마르바스.
신성력에 실시간으로 지져지고 있는 대악마 검성이 로제의 옆에 버티고 앉아있으면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제 본인은 노림 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후아아~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너무 좋았어요!”
연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로제가 배를 두드리며 해맑게 웃는다.
연회를 위해 묶었던 머리핀을 풀고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는 로제.
“먹자마자 바로 누우면 소가 될지도 모른다.”
“네에? 아이, 참, 제가 어릴 때 엄마가 하던 말을 그대로 하시네요. 절대 안되거든요~?”
왠지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는 로제를 보고 있자니 괜히 골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목소리를 깔고 로제의 옆에 앉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었지.”
“……네?”
“그때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면 나도 벌레 같은 모습이 되지 않았을 텐데?”
“네, 네엣?!”
“그래……. 나도 너처럼 밥을 먹고 바로 누운 덕분에 벌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지. 다른 벌레형 악마들도 모두 밥을 먹고 바로 누워서 그렇게 된 거고 말이다.”
“자, 잠깐만요! 진짜로요?! 위험하잖아요!!!”
내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로제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본인의 정수리와 옆구리를 허겁지겁 쓰다듬기 시작했다.
“더듬이! 더듬이! 팔! 팔!”
“아, 여기 팔이 조금 나왔군.”
“윽갸아아악?!! 어, 없잖아요!”
“그야 당연히 농담이기 때문이지.”
“노, 농담이라니!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시니까 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농담이라는 말에 안심하며 다시 침대에 앉는 로제. 그래도 혹시 모른다 생각하는 건지, 로제는 의식적으로 계속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정말 내일이면 아카데미로 돌아가네요.”
그렇다. 길고 긴 제국에서의 일상이 마침내 끝나고 말았다.
‘타락 천사’의 세뇌로 인해 타락했던 3황자는 신관들에게 맡겨져 사실상 감금이나 다름없는 치료를 받게 되었고 프리실라는 저번보다도 더욱 확실한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신성 하인리히 제국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하아, 셀루아 교관님의 말로는 들어가면 엄청난 보충수업 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데……. 돌아가기 싫어요오…….”
그야 그렇게 긴 시간을 빠졌는데 보충수업이 없을 리가 없었다.
“유감이군. 나는 소환수라 듣지 않는데.”
“윽! 배신자! 같이 들어주세요!”
“바빠질 예정이라.”
“너무해요오오!!!”
그렇게 로제를 놀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었나?”
“아니요? 딱히 누가 찾아온다는 말은 없었는데요?”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설마……. 로제에게 꼬리치던 남자 귀족?
“내가 나가지. 변신.”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외치자 화들짝 놀란 로제가 뒤로 물러섰다.
“히엑! 꼭 변신까지 하시고 나가셔야 하나요?”
“……날 아는 사람이라면 딱히 놀라진 않겠지.”
“그, 그거야 그렇지만요…….”
변신한 상태로 문을 벌컥 열자 무표정인 상태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프리실라의 여동생. 에자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열어주셨─────.”
아.
“딸꾹.”
에자젤의 작은 몸이 움찔 떨린다.
“딸꾹.딸꾹.딸꾹.딸꾹.딸꾹.딸꾹.딸꾹.”
그리고 심하게 딸꾹질을 시작하던 에자젤의 눈에.
“흐윽!”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좆됐다.
* * *
에자젤을 진정시킨 건 로제였다.
“자, 에자젤~. 심호흡이에요! 후! 하! 후! 하! 하고! 담배 필 때처럼!”
“후……하……후……하……. 근데 저는 담배 안 피웁니다만….”
“앗! 그런……! 그럼 그대로 계속하세요! 후! 하!”
“……아닙니다. 진정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제님.”
“다행이네요……. 변신하고 나가신 그레고리님이 나빴어요.”
“……그게 본 모습인 걸 어쩌겠나.”
“그래도……. 그레고리님의 변신 모습은 어린아이가 보기에 좋은 정서는 아니죠…….”
누구는 바퀴벌레가 되고 싶어서 됐겠나.
괜히 속상해졌지만 그렇다고 정말 내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닙니다. 그레고리님의 본 모습을 보고 놀란 제가 실례이지요. 죄송합니다.”
“에자젤……! 착한 아이!”
그렇게 외치며 에자젤의 작은 몸을 와락 끌어안는 로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일까? 그대로 아무 저항 없이 끌려간 에자젤.
“숨믁흡느드…….”
가슴에서 들려오는 뭉개진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로제가 에자젤을 끌어안은 팔을 놓아주었다.
“앗!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옛날부터 언니께 자주 당해서 익숙합니다.”
너무 쉽게 끌려간다 했더니 익숙했던 거였나.
그러다 문뜩, 누군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자젤. 산달폰은?”
“아, 여기까지 몰래 오다 보니 심상공간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녀도 소환해야겠네요. 산달폰?”
에자젤의 부름에 빛무리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등장하는 천사 산달폰.
“아, 도착한 거 맞지? 방금 전에 에자젤이 깜짝 놀라는 게 느껴져서 위병에게 걸린 줄 알았지 뭐야?”
그녀는 한없이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등장한 그녀는 에자젤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거 해야겠지?”
“……네. 해야겠죠.”
그거라니. 뭘 말하는 걸까.
“언니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제님. 그레고리님.”
“라파엘님을 구해줘서 고마워! 하프엘프! 그레고리!”
궁금해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에? 가, 갑자기요?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이고! 프리실라양이랑 라파엘님은 우리의 친구이기도 하고! 그, 그렇죠? 그레고리님?”
“아니, 이럴 땐 감사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는 게 예의다. 로제.”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긴 황녀와 천사인데, 이런 건 괜히 괜찮다고 해주는 것보단 받아주는 게 맞았다.
그래야 상대방의 짐을 더 덜어줄 수 있을 테니까.
“네? 그런가요? 크, 크흠! 여러분의 감사는 감사히 받겠어요! 고개를 들어주세요!”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고압적으로 받으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네? 고, 고압적이었나요?!”
“농담이다.”
“놀랐어요!”
우리의 긴장감 없는 대화 때문일까. 고개를 든 두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두 분 덕분에 언니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두 사람 덕분에 라파엘님이 큰 위험을 지나칠 수 있었어. 은혜는 나중에 갚을게!”
“그래? 은혜를 갚는다라…….”
그렇다면 마침 은혜 갚기 좋은 건수가 하나 있지.
“은혜라고 하니 두 사람에게 제안할 게 있다만.”
“제안인가요? 듣겠습니다.”
“제안? 듣고 대답해줄게. 그레고리.”
그래, 이 제안은 훗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제안이 될 것이었다.
물론, 두 사람에게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