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아카대공 110
* * *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수월했다.
우리가 돌아가기 전 황제는 제국의 영웅들이니 성대하게 보내줘야 한다며 난리를 피워댔지만, 프리실라가 단호히 거절하자 결국 꼬리를 말고 말았다.
이유는 우리가 돌아간다는 정보를 퍼지게 되면 습격에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딸이 행사 하나 때문에 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데 진행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비행공항에 도착해 비행선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으으……. 뭔가 아카데미로 돌아간다니까 아쉽네요. 제국 아카데미에 들러서 갈리어의 성장도 확인하고 싶었는데.”
짐을 풀기 위해 객실로 들어서자 로제가 침울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보안을 위해서니 어쩔 수 없지. 다음에 함께 오면 되지 않겠나.”
내 말에 곧바로 화색을 보이며 휙 고개를 돌리는 로제.
“네? 다음에요? 다음에도 여기에 올 거예요?”
“네가 교환학생으로 선발돼서 오면 될 일이지.”
“아! 그렇죠! 그럼 내년에는 프리실라와 함께 교환학생으로 오는 걸 목표로 해야겠네요!”
“그래, 아마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4서클이니까.”
“헤헤, 다 그레고리님 덕분이죠.”
그렇다.
현재 로제는 [축복의 동충하초]를 섭취하고 4서클에 이루는 데 성공했고, 나 역시 그 결과로 4성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네가 노력한 덕분이 아니겠나.”
그렇게 새롭게 얻은 스킬이 바로 이것이었다.
[스킬 : 동화]
[설명 :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심연의 암살자인 그대. 적들의 눈을 피해 주변에 동화하십시오.
주변 환경에 동화하여 존재감을 지극히 낮춥니다.]
그리고 덕분에 상태창도 오랜만에 열어보게 되었다.
[마계의 대공, 그레고리 존스]
[★★★★☆☆☆☆☆☆]
[특성]
1. 귀족
2. 지독한 생명력
3. 탐(?)
[스킬 목록]
1. 변신 (Lv.Master)
2. 날개 펼치기(Lv.4)
3. 폭발적인 속도(Lv.5)
4. 바퀴벌레 킥(Lv.3)
5. 검은 늪 (Lv.2)
6. 후각 상승 (Lv.2)
7. 화염 인챈트 (Lv.2)
8. 동화(?化) (Lv.1)
동화. 게임 속에서는 적들에게 발각될 확률을 줄여주는 스킬. 허나 이곳에서의 메커니즘은 조금 달랐다.
“동화(?化).”
우선, 이 스킬의 장점은 변신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어? 그레고리님? 갑자기 어디 가셨지? 아아! 또 동화 쓰셨죠!”
내가 존재감을 지우자 깨달은 듯 주변을 바라보며 외치는 로제.
“저도 이제 알아냈거든요! 흡!”
기합을 넣은 로제의 눈 주변으로 마력이 뭉치기 시작하며 파란색의 일렁임을 낳는다.
“아아! 찾았다!”
이게 바로 동화 스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적은 마력으로 오랫동안 존재감을 지울 수 있지만, 마력을 이용해 기감이나 안력을 강화하면 금세 들킨다는 것.
“후후, 어떠십니까! 이 4서클 소환사 로제의 실력이!”
나를 찾아낸 것이 그리도 좋은지, 턱을 들어 올리며 ‘나 잘났음!’ 포즈를 취하는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은지 귀를 파닥인다.
“그래그래, 대단하군.”
“헤헤. 그쵸?”
사실 일반인이라도 직접적으로 접촉하거나 집중한다면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날 찾겠다며 마력까지 운용한 게 기특하니 칭찬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학교에 돌아가면 많은 게 바뀌어 있겠네요.”
“그렇지. 거의 한 달 좀 넘게 자리를 비웠으니 말이다.”
“흐음……. 기숙사는 당연히 완공됐을 테고. 과연 데킬라양이 돌아왔을까요?”
“아, 데킬라 크로프트 말인가.”
아카데미에서 로제의 몇 없는 흡연 친구. 데킬라 크로프트.
우리가 제국으로 출발하기 전, 새로운 소환수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던 아이였다.
“글쎄. 도착해보면 알지 않겠나?”
“헤헤, 기대되네요.”
그렇게 비행정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찾아왔다.
심상공간에 앉아 4성이 되며 새롭게 열린 [소환사 아카데미아 – 외전]을 플레이를 하던 도중,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오늘은 분명 심상공간에서 따로 쉰다고 이야기를 해놨을 터.
그럼에도 이렇게 애타게 날 찾는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가기 전 확인해 보는 게 맞겠지.”
그런 생각으로 TV를 켰을 뿐인데…….
[누구냐아아아아────!!!]
[파이몬님이 폭주했다아!!!]
[파이몬님 진정하세요!!!]
[파이몬! 우선 검부터 내려놓고 이야기하게나! 진정해!]
[내 초콜릿을 가져간 게 대체 누구야아────!!!]
“……….”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 *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본래 우리가 있던 서머니아로 돌아가기 전.
파이몬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점의 초콜릿을 잔뜩 구매해 양손 가득히 비행정에 탔다고 한다.
파이몬의 초콜릿은 파이몬의 방 탁자 위에 올려놨으며 첫째 날에는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자고 일어나보니 초콜릿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에 파이몬은 대폭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파이몬을 말리기 위해 온갖 힘을 써가며 파이몬을 막아내고 있었다.
“……라는 거로군?”
“네, 정확해요…….”
결국 파이몬의 폭주는 내가 등장해 ‘변신’을 외침으로써 종료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소강상태로 모두가 파이몬의 방에 모여 파이몬의 눈치만 보는 형국이었다.
“서머니아에 돌아가면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고생한 아이들에게 나눠줄 초콜릿이었단 말이다……! 그것을 대체 어떤 녀석이 훔쳐 간 것인지……!”
빠득빠득 이를 갈며 분개를 토해내는 파이몬.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둘러보았다.
로제, 프리실라, 마르바스, 아멜, 셀루아 네갈, 라파엘, 휴고.
사실상 전원이 모여 있었다.
“사실상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확실히 다른 곳에 있었던 건 그레고리님밖에 없으니까요. 그레고리님이 중재해주시면 좋겠어요.”
본인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프리실라가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즉, 내가 중간에서 범인을 가려줬으면 좋겠다는 건가.
“좋다. 중재는 물론이고 범인까지 찾아주지.”
“정말인가?! 역시 그레고리! 마계의 대공! 믿고 있었네!”
범인을 찾아준다는 말에 지금까지 죽상이던 파이몬이 환하게 웃는다.
“그래, 그럼 우선……. 어젯밤에 각자 뭘 했는지 말해주지 않겠나.”
고인물 탐정 그레고리 존스가 범인을 찾아주지.
사건파일 1
용의자 로제.
“저는 어젯밤에 그레고리님이 심상공간으로 들어가시고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공부를 했어요! 아! 그 증거로 노트를 제출하겠습니다!”
그렇게 외친 로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방으로 달려가더니 이내 귀엽게 생긴 노트 한 권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여기요!”
노트를 열어보니 소환학개론의 내용이 귀여운 글씨로 필기 되어 있었다.
“로제가 이 정도 양을 필기했다면……. 확실히 방에서 나오진 않았겠군. 로제는 용의자에서 제외다.”
“와! 제외!”
그다음 차례는 프리실라였다.
용의자 프리실라.
“저는 어제 라파엘과 함께 제국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방에서 잠들었어요.”
용의자 라파엘.
“맞아. 내 신성을 걸어도 좋아. 우리는 그러고 서로 껴안고 잤다구?”
“라, 라파엘! 그것까지 꼭 말했어야 했어요?”
“소환사랑 소환수가 같이 잔 게 어때서? 그럴 수도 있지~.”
라파엘이 신성까지 걸며 이렇게 이야기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프리실라와 라파엘도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군.”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아멜과 교관, 마르바스, 휴고였다.
“그럼 나머지, 남은 아멜과 셀루아 네갈 교관, 마르바스와 휴고는 어젯밤에 뭘 했지?”
4명을 바라보며 묻자 교관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내가 대표로 말하지. 우리는 어젯밤에 다 함께 모여 비행정의 훈련장에서 훈련했다네.”
“다 함께?”
4명이 함께 훈련을 했다고?
이에 휴고가 머리를 긁적인다.
“이번에 제국에서 내가 했던 게 별로 없잖아? 자괴감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마르바스 영감님께 부탁 좀 했지.”
그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교관이었다.
“나 역시 부족함을 느껴서 가르침을 부탁드렸지. 확실히 여기 있는 인원 전부 새벽 내내 훈련을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인원 모두 알리바이가 있다는 건데.”
힐끔 파이몬을 바라보니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 대체 누구란 말이냐! 2층을 통째로 빌렸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말고 다른 범인이 있을 리가 있느냐!”
그때, 복도에서 터벅터벅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언가가 쑥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응?”
모두의 시선이 벽면으로 몰린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푸르르───”
자신에게 시선이 몰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지, 영체화를 한 채 방을 뚫고 들어왔던 파이몬의 말. 나이트메어가 우리를 바라보며 머리를 턴다.
해골로 이루어진 입가에 묻어있는 갈색의 반고체.
“아아……! 아아아앗……!”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것인지 파이몬이 벌떡 일어나 나이트메어를 가리킨다.
“……아무래도 범인을 찾은 모양이군.”
“푸르릉─!”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다시 영체화를 하고는 방 밖으로 나가버리는 나이트메어.
털썩─ 하고 땅에 주저앉은 파이몬의 입가에선 허탈한 웃음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돌아가지.”
마르바스를 필두로 하나둘 나가는 인원들.
그렇게, 방 안에 남은 것은 나와 로제. 파이몬만이 남게 되었다.
“하하하……. 하하하…….”
아니, 파이몬의 눈물까지도.
그렇게, 우리는 파이몬의 눈물과 함께 아카데미가 있는 서머니아에 도착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