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아카대공 111
* * *
“그럼 나는 아이들에게 가보겠느니라…….”
저벅저벅 축 처진 몸으로 먼저 자리를 뜨는 파이몬. 그 뒤로 측은한 표정을 지은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하며 조용히 팔을 흔든다.
“흠, 그럼 나머지는 모두 아카데미로 향하는 인원들이군?”
자리에 남은 우리를 쓱 둘러본 마르바스가 짧은 수염이 난 턱을 쓰다듬는다.
“예, 제국에서 출발하기 전, 아카데미 측에서 마차를 보내준다고 했으니 기다리고 있으면 될 듯합니다.”
“그러도록 하지.”
결국 마차가 올 때까지 비행 공항 앞에서 대기하게 된 상황. 그새를 못 참은 것인지 몸을 오들오들 떨던 로제가 나와 마르바스를 힐끔 바라보더니 싱긋 웃는다.
“그레고리님! 마르바스님! 기?”
입술 앞에 검지와 중지를 모아 담배를 피우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엄지로 뒤편을 가리키는 로제.
아니,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
“흠……. 괜찮겠지. 가세나.”
확실히, 마차가 바로 올 것 같진 않고 지금 빠르게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렇게 모여서 담배를 피울 거면 파이몬이 가기 전에 같이 피우는 건데 말이지.”
아쉽다는 듯 허허 웃으며 중얼거리는 마르바스.
그렇게 우리는 비행 공항 구석에 위치한 흡연 구역으로 들어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한 모금 정도를 빨았을까? 저 멀리서 프리실라의 목소리가 들려있다.
“그레고리님! 마르바스님! 로제! 마차가 왔어요!”
아니, 현실에서도 택시를 기다리다 담배에 불만 붙이면 택시가 오더라니, 여기서도 이런다고?
아무래도 어떤 세계든 공용되는 현상인 모양이었다.
“앗, 방금 불붙였는데!”
마차가 도착했다는 말에 울상을 짓는 로제. 그 모습에 마르바스가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웃었다.
“천천히 피게나. 어차피 앞 사람들이야 먼저 가면 될 일이고 마부가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일 아닌가.”
역시 악마답게 철저히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마르바스였다.
“그러면……. 괜찮겠죠? 헤헤.”
뭐, 나도 불을 붙였겠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바로 가고 싶진 않았기에 여기서 함께 천천히 가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담배를 모두 피우고 돌아가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부가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리실라와 라파엘, 교관과 아멜, 휴고는 먼저 돌아간 모양.
“……진짜로 돌아가는 거네요.”
“그러게 말이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아카데미.
그래, 이 게임 이름부터가 [소환사 아카데미아]인데, 마침내 돌아가는구나.
‘소환사 아카데미로’
* * *
“와아……! 아카데미를 떠날 때만 해도 외관 공사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 몰랐는데……. 대박인데요?”
기숙사 앞에 도착한 우리는 눈앞에 새로이 지어진 기숙사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신설이라 그런지 확실히 더 깔끔해 보이는군. 우리 방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나?”
“아, 네! 어제 교관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1402호라고 했어요! 무려 프리실라랑 같은 층이래요!”
“총장이 약속을 지켰군.”
“네? 아……. 그런 일이 있었죠?”
기숙사에 떨어진 이프리트를 물리치는 데 성공시켜서 받은 보상.
왕족과 고위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14층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로제, 궁금한 게 있다만. 세계수를 관리하는 네 가문 정도라면 원래 최상층을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로제는 엘프 중에서도 사실상 왕족을 제외한 최고 등급의 귀족으로 볼 수 있었다.
사실상 사제 계급이니 어쩌면 왕족과 같은 취급일 수도 있고 말이다.
허나, 어째서 로제는 최상층이 아니었던 걸까?
“아아, 보통 최상층에 가기 귀해서는 가문의 힘이 조금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저희 가문이 그런 걸 중요시하는 가문이 아니라……. 천장이 있고 침대만 있으면 다 똑같다면서 아예 신경도 안 써주는 거 있죠.”
……방관주의. 뭐 그런 건가.
가문 성격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런가 보다 해야지.
“그럼 들어갈까요? 으잇차!”
자신의 상반신만 한 가방을 다시 등에 짊어 메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서는 로제.
물론 나 역시 그것보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기도 했고 로제가 ‘이거라도 들어야죠!’라며 극구 사양을 했기에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레고리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어요!”
“아, 그래.”
열심히 나를 부르는 로제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14층.
아카데미 최고의 계급이나 능력, 권력을 가진 학생들만이 오를 수 있는 최상층.
심지어 우리와 같이 타고 있던 여학생이 우리가 14층을 누르는 것을 보곤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설 정도였으니 말이다.
[14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 내장된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문이 서서히 열림과 동시에, 신천지가 펼쳐졌다.
“여, 여기 기숙사 맞죠?”
“……제대로 작정하고 만든 모양이군.”
그야말로 제국의 황실과 비교될 정도의 인테리어.
값비싼 미술품과 샹들리제, 고급 카펫이 깔린 복도는 그야말로 기숙사가 아닌 고급 호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우와아……. 와아……. 대박…….”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온 로제가 [1402호]라 적혀있는 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열쇠 구멍 같은 건 없는 문.
하지만 그곳엔 마치 대보라는 듯 특수한 문양의 판이 있었는데 로제가 그곳에 손을 가져다 대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마나 감응 시설’이 적용된 문까지……! 진짜 대박이에요! 이젠 더 이상 열쇠를 잃어버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열쇠를 꽤 자주 잃어버렸던 것인지 심지어 울먹이기까지 하는 로제.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 로제가 이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로제?! 무슨 일이냐!”
갑작스럽게 주저앉는 로제의 모습에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니 로제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이…….”
저기? 저기에 대체 뭐가 있다는…… 아.
“있어요……. 있다구요……!”
로제의 말대로였다.
그곳에는 우리가 원래 살던 기숙사에 없던 것이, 심지어 백은궁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방 안에 흡연실이 있어요……!”
내부 흡연실.
항상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배 향과 함께 살아야만 했던 로제의 방에 마침내 흡연실이 생겼다.
“……총장이 힘을 쓴 모양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사람들의 방에 내부 흡연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다른 방보다도 더욱 거대한 14층만의 특권인 모양이었다.
“그만 울고 우선 짐 정리부터 하는 게 어떠냐.”
“아……! 그랬죠! 짐 정리!”
물론, 이후에도 로제가 더욱 넓어지고 화려해진 자신의 방을 보고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고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는데 진땀을 빼고야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짐 정리가 모두 끝났다.
“아……. 이 모습을 엘라와 가족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죠. 이 로제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이벤트도 있었지.
“아카데미로 가족들이 찾아오는 행사가 있지 않았나?”
“맞아요. 가족의 날 행사! 앞으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아 엘라 보고 싶다아.”
엘라라면 분명 마차 안에서 들었던 로제 여동생의 이름일 터였다.
확실히, 로제의 여동생이라니 나 역시 궁금해지기도 했다.
로제의 말만 들었을 땐 로제보다 좀 더 어른스러웠다고 했는데…….
실제로 만나면 어떨까.
“짐 정리도 끝났겠다. 그럼 저는 잠시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음? 지금 말이냐? 어차피 오늘까지는 쉬어도 된다고 교관이 말했을 텐데?”
내 말에 로제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아카데미를 떠난 지 오래됐잖아요? 혹시 지금이라면 테킬라 양도 아카데미에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아, 데킬라를 찾아가려고 하는 건가.
“데킬라의 방은 알고 있나?”
“아니요, 대신 흡연장에 가볼 생각이에요. 뭔가, 흡연장은 만남의 장소 같은 곳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가면 데킬라양이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헤헤…….”
흡연장인가.
“같이 가지.”
“와! 진짜요?”
“그래, 데킬라가 내가 알려준 장소에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아~ 분명히 어디에 가서 백합꽃? 을 주라고 하셨죠?”
“뭐……. 비슷하긴 하다만.”
정확히는 내가 알려준 장소에서 백합꽃을 들고 녀석과 계약을 진행하라고 했지만.
SR 등급의 데스나이트 데모닉.
데킬라 역시 내가 키우는 뉴비답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기에 확인 절차는 필수였다.
“과연 데킬라양은 얼마나 강한 소환수를 찾았을까요. 아~ 기대되네요!”
“기대할 만할 거다.”
데스나이트 데모닉은 SR 등급의 소환수임에도 항상 1티어에 위치해있던 녀석이었으니 이곳에서도 분명 쓸만할 터였다.
그렇게, 로제와 함께 식당 근처에 있는 흡연실로 향했다.
보통 데킬라와는 이곳에서 마주쳤기에 이곳부터 온 것이리라.
“음? 이 냄새는?!”
갑자기, 흡연실에 도착하기 전 우뚝 멈춰선 로제가 앙증맞은 코를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킬라양이 피우는 연초의 냄새!”
“뭐?”
담배 냄새만으로 사람을 특정하는 게 가능하다고?
“데킬라 양!!!”
자신 있게 데킬라의 이름을 외치며 흡연실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로제.
“로, 로제님?”
놀랍게도 로제의 추측이 맞았는지 안에는 연초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는 데킬라가 놀란 눈으로 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감동적인 재회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달그락── 달그락──
……데킬라의 옆에 붙어있는 저 뼈따구는 뭐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