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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13화 (113/169)

〈 113화 〉 아카대공 ­ 113

* * *

“네! 얼마든지요! 아! 그러면 그 전에 담배 피우고 올래요!”

그렇게 말한 로제는 마치 영화가 시작하기 전 화장실을 들르는 사람 같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데모닉에 관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과거 그가 하나의 세계를 구원한 용사라는 사실을.

그가 용사로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던 가족들을 자신이 충성한 제국에 맡기고 떠났다는 사실을.

마침내 세상을 구해내고, 온전히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길 결심한 남자가 돌아간 자리에 남아있던 건 싸늘한 주검이 된 가족들이었다는 사실을.

“가족……분들이요?”

“그래, 용사가 제국의 수도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재앙 진형의 별동대가 수도를 습격한 거지. 용사의 가족을 챙겨주기로 한 황족들은 자신의 재산과 가족들을 챙기느라 용사의 가족을 버려두고 말이야.”

결국 세상을 구한 용사는 폐인이 되고 만다.

가족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마왕을 죽였건만, 결국 스스로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과 도박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던 데모닉에게 어느 날 암살자들이 찾아왔다.”

그 세계의 황제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용사의 가족을 버려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용사가 자신을 노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술과 도박에 찌든 용사의 몸으로 황제가 보낸 암살자들을 상대하기란 버거웠다.

필사적으로 세계를 위해 싸웠던 남자. 허나 그는 모든 것을 잃고도 자신이 지켜낸 이들에게까지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남자는 울부짖었다.

결국 가족까지 저버리며 지켜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자신은 결국 세상을 지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였다고.

그렇게, 용사였던 남자는 몸에 32개의 자상과 7개의 구멍을 남기곤 쓸쓸히 죽고 말았다.

그는 저주했다.

자신의 가족을 죽게 만든 세상을.

자신을 죽인 세상을.

단 한 명도, 자신에게 감사하지 않은 세상을.

그런 그의 증오는 쌓이고 쌓여 원한이 되고 원한은 죽었던 몸을 일으키게 했으며 세상은 그에게 더 이상 지치지 않는, 죽지 않는 몸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그는 재앙 아닌 재앙이 되어 본인의 세상을 죽이고 말았고 그 저주로 본인의 세계에 묻히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세계에 오시게 된 거군요. 언데드가 된 몸으로.”

내 앞에 앉아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제의 눈망울에서 또르르 눈물이 흐른다.

“그래, 본인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녀석은 사령의 숲이라 불리는 곳에 잠들게 되었지.”

“그러면……. 데킬라양에게 백합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나요?”

“녀석의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기 때문이지. 그가 가장 믿었던 소환사의 이름이기도 하고.”

“네? 백합…… 릴리?!”

“그래, 네 조상인 릴리 폰 유글리아. 데모닉은 릴리의 소환수였다.”

게임 스토리에서도 그러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 무덤, 그곳에 자신의 이름과 같은 꽃. ‘백합’을 들고 찾아온 엘프 소환사.

릴리 폰 유글리아.

게임 속에서 데모닉은 릴리의 곁을 지키는 가장 충직한 기사였다.

“그런 과거를 가진 녀석이 자신의 머리를 날린 너를 보고서도 금방 화를 풀었다. 그게 왜 그랬던 거 같나.”

로제가 자신이 알고 있는 릴리의 모습을 무척이나 닮았기에 그랬던 것이리라.

그 전에 데킬라에게 따로 설명을 들었을 수도 있고.

“그랬었군요……. 생각보다도 더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그래, 그러니 내일 대련을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다.”

“네!”

오늘 하루 우리의 대화는 이걸로 끝이었다.

제국에서 아카데미까지 오며 쌓인 여독 때문인지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한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얼마 안 남았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니터에 떠 있는 [소환사 아카데미아]를 바라보았다.

현재 띄어놓은 창은 소환수 ‘데모닉’에 관한 정보들.

물론 2성이나 차이 나는 만큼 질 것 같진 않았지만 다른 소환수도 아닌 그 ‘데모닉’이지 않은가.

“……진짜 능력치랑 스킬이 말이 안 되네.”

그래서일까?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으아아악! 수업이라니!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요오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절규를 내뱉으며 기상하는 로제.

그런 로제를 바라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자 로제가 휙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레고리님은요?! 가, 같이 가주시는 거죠?”

“유감이군.”

“안돼에에에엣!!!!”

다시 한번 절규하는 로제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커피 한 모금.

음,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오전에 가울의 만물상에 갈 예정이라서 말이다. 올 때 선물이라도 사 오지.”

“진짜요?”

“그래.”

“……믿을게요!”

“그런데, 늦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말하며 힐끔 거실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8시 10분.

준비하고 아카데미로 향하기엔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아아앗! 언제 시간이 이렇게! 얼리어버드 등교 준비!”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방 안으로 직행하는 로제.

로제가 완전한 상태로 나올 때까지 약 5분이 소요됐다.

“빠르군.”

“지각 전의 학생은 빛보다 빠른 법이에요!”

로제와 함께 기숙사를 나와 달린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로제의 입에는 식빵이 아닌 파이프 담배가 물려있는 상황.

“……달리면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건가?”

“불은 안 붙였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확실히, 입에만 물고 달리는 건 큰 문제가 없지.

“그럼 그레고리님! 저 먼저 수업 들으러 가 볼게요!”

손을 크게 흔들며 아카데미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로제.

등교하는 로제라니,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왜인지 모르게 그리운 감정이 들었다.

“……그럼 나도 하루 일과를 시작해 볼까.”

터벅터벅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아카데미 밖으로 나서며 주변의 풍경을 바라본다.

“으아아! 2분! 2분!”

“달려!”

늦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달리는 학생들을 지나치며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마침 시간에 맞춰 문을 닫고 있는 워커의 모습이 보였다.

“워커.”

“아, 이게 누구야. 그레고리 존스! 제국의 영웅이 아닌가.”

나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건네는 워커.

나는 악수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저었다.

“제국의 영웅이라니, 과분한 별칭이다.”

“하하! 그대가 신성 교단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이미 다 들었네! 그 정도면 충분히 영웅이라 불릴 만하지! 암!”

벌써 워커에게 말을 한 건가.

“그러게 말이다. 제국 아카데미에 보고만 하러 가면 된다더니……. 꽤나 큰일들을 겪었지.”

“그것에 대해선 명목이 없군. 그녀를 대신해서 내 사과하겠네.”

“아니, 그녀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 말이다. 그대가 사과할 필요는 없네.”

“그래도, 죄책감이란 게 있어서 말이지. 하하! 그나저나…… 아카데미에 돌아오자마자 수업을 안 듣고 나가려는 겐가?”

“오랜만에 온 만큼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보니.”

“아, 그런 거라면야……. 조심히 다녀오게나. 제국의 영웅님.”

싱긋 웃는 얼굴로 정문을 살짝 열어주는 워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짧게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아카데미의 밖으로 나왔다.

……언제 봐도 무서운 영감.

분명 나와 로제가 제국에 가게 된 것에 저 영감이 관여돼있을 것이 분명한데 저렇게까지 모르는 척을 하다니.

오싹했지만 우선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워커 스카이블루였으니까.

“변신.”

본래 마차를 타고 서머니아로 이동을 할까 생각했지만 4성이 되며 제대로 날아본 적이 없었기에 날아가기로 했다.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확실히, 평소보다도 빠르게 펼쳐지는 날개. 그럼에도 날갯짓 소리는 크게 줄어든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 외에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하면 제로백 정도일까.

속도는 크게 빨라진 것 같진 않았지만, 일정 속도에 도달하는 시간이 매우 빨라진 게 느껴졌다.

즉, 가속이 빨라졌다는 뜻.

이것을 이용해 좀 더 변칙적인 공격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 녀석이 나타났다!”

“다들 고개 숙여!”

“아이들의 눈부터 보호해!”

문뜩 아래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오기에 시선을 내리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서머니아의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간혹가다 나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기야 했지만…….

“하늘에 검은 물체. 괴물이 내려온다. 심연의 괴물. 으헤으헤헤헤!”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모양.

아래에서 느껴지는 공포의 감정으로 보아서는 외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도 훨씬 강력해진 모양이었다.

“여기부터는 걸어서 가야겠군.”

더 날아서 갔다간 또 도시 괴담이니 뭐니, 로제나 다른 아이들이 잔소리할 게 뻔했기에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가 변신을 해제했다.

“……서머니아의 길거리도 오랜만이군.”

문뜩, 파이몬에게 ‘가울의 만물상’을 알려준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소개시켜주는 게 좋을 터.

마침 착지한 골목길에서 파이몬의 주점이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

파이몬의 주점인 ‘파리와 염소’.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미안하지만 오늘 영업은 없……응? 그레고리? 그대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파리와 염소’의 이른 아침.

그곳에서는 화려한 불쇼와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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