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아카대공 114
* * *
그곳에서는 화려한 불쇼와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와하하하! 적셔라! 적셔!”
“그렇지! 잘한다!”
“마셔~마셔~ 먹고 죽어~!”
그야말로 이른 아침의 풍경이라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입으로 술을 내뿜으며 불쇼를 벌이는 흑마법사부터 해서 곡예를 부리고 있는 흑마법사와 테이블 위에서 열심히 탭댄스를 추고 있는 흑마법사.
그리고 그런 흑마법사들을 바라보며 크게 웃고 있는 파이몬의 모습까지.
“…이른 아침부터 대단하군.”
“응? 어라? 이게 누군가. 그레고리 아닌가!”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웃고 있던 파이몬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외친다.
그러자 내게로 몰리는 수십 명의 시선.
“제국의 영웅!”
“타락 천사를 물리친 악마!”
“서머니아의 공포!”
뭐?
“……대체, 녀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거냐 파이몬.”
“음? 나는 진실만 말했다네. 거짓으로 말한 건 단 한 개도 없지. 그렇지 않은가? 나의 아이들아!”
“그렇습니다!”
“파이몬님은 항상 진실을 바라보시는 분!”
“저희는 파이몬님이 태양을 바라보며 달이라 하셔도 믿겠습니다!”
그야말로 광신도들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냐.”
“별로 안 됐다네. 어제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했으니…… 응? 그레고리여. 그대의 등 뒤로 햇살이 비춘다만?”
내 등 뒤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해 하는 파이몬.
“그야 당연하지 않나. 밖은 이미 아침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자리를 피해 햇볕이 온전히 가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크아아앗! 햇빛! 무서워!”
“마이 아이! 마이 아이즈!”
“키에에엑!”
아니,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왜 이렇게 쪼는 거냐고.
그러다 문뜩, 과거에 담인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어둠의 자식들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어둠의”
“아이들?”
“저희에게 어울리는 이명이로군요!”
대체 술을 얼마나 먹은 것인지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며 받아넘긴다.
그 광경에 한숨을 내쉬고 아직도 춤을 추는 녀석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파이몬을 본다.
“오늘 같이 갈 곳이 있어 찾아왔건만, 오늘은 힘들겠군.”
“응? 갈 곳?”
갈 곳이 있다는 말에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파이몬.
“상점 말이다. 전에 이야기했던.”
“상점? 아아~ 기억났다. 분명 소개로만 갈 수 있는 희귀한 상점이라고 했지. 흐으으음……. 확실히, 오래 놀기도 했구나.”
짝! 하고 손뼉을 치며 주변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파이몬. 그와 동시에 시끌벅적하던 주점이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인다.
“이번엔 여기까지만 놀도록 하자꾸나. 볼일이 생겨서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선 파이몬은 손짓 한 번으로 마력을 운용하며 몸 안의 술기운을 몰아낸다.
“흠, 괜찮군. 갈까?”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는 파이몬. 그 모습은 하루종일 술을 마셨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러지.”
우리는 그대로 나란히 술집을 나온다.
“그레고리여. 그대와 단둘이 하는 쇼핑이라니,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구나.”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단 거겠지.”
“그런가? 확실히, 옛날에 비해 많은 게 바뀌기는 했지. 마르바스 영감이 인간들을 가르치질 않나. 천사와 함께 전투를 치러보지 않나.”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는 듯, 파이몬이 피식 웃음을 내뱉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체스의 가게인 ‘가울의 만물상’은 파이몬의 주점인 ‘파리와 염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정말 여기가 맞는 거냐?”
‘가울의 만물상’의 외형을 보고 혹시나 하는 어조로 묻는 파이몬.
“그래, 여기가 맞다.”
“어……. 생각보다 생긴 게 많이 허름하다만?”
“네 주점도 외견이 화려한 편은 아니지 않나.”
“그, 그거야 그렇다만…….”
“여기도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먼저 앞으로 나서며 상점의 문을 열었다.
“네에……. 어서오세여. 가울의 만물…… 그레고리님?!”
“체스. 오랜만이군.”
계산대 안쪽에 앉아 엎드린 채 멍하니 앉아있던 체스가 내 얼굴을 보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여전히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것인지 상점 곳곳에는 쌓인 먼지와 거미줄이 보였다.
“그, 그레고리님! 최근에 제국에 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여! 돌아오신 건가여?!”
“그래, 어제 돌아왔지. 새로운 물건은 들어왔나?”
“네! 오랫동안 오시지 못한 만큼 새로운 상품들이 가득이에여! 카탈로그를 보시겠어여?”
“부탁하지.”
대답을 들은 체스가 ‘넵!’ 하고 대답하며 자신이 앉아있던 곳 밑에서 카탈로그 한 장을 꺼내 이쪽으로 다가온다.
“응? 어어? 뭐, 뭔가 처음 뵙는 분이 오셨네요?”
“……그걸 지금 봤다고?”
대체 눈썰미가 얼마나 없는 거야?
“이 아름다운 여성분은 대체……?”
“상인이라 하더니, 역시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구나.”
후후후. 웃음을 지은 파이몬이 체스가 내게 건네려던 카탈로그를 가로채고는 펼친다.
“어디 보자……. 대체 무슨 물건들을 팔기에 그레고리가 그리 자신만만 했는……지……? 자, 잠깐? 진짜? 진짜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카탈로그를 바라보는 파이몬.
“이런 물건들을 판다고? 전 대륙을 뒤져도 찾기 힘든 이런 물건들을?”
경악하는 파이몬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체스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후후, 역시 그레고리님의 소개를 받고 오신 분이라 그런지 보는 눈이 있으시네여. 그런데, 저 여성분은……?”
“아, 마계에서 마왕을 하고 있는 파이몬이다. 서머니아에 위치한 주점의 사장이지.”
“아아……. 주점 사장님……네? 누구여?!”
“마왕 말이다. 마계의 서열 9위를 담당하고 있는 녀석이지.”
“서, 서열 9위여? 이, 이것이 마계 대공의 인맥!”
“이, 이것이 그레고리의 단골 상점!”
양쪽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두 녀석들.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기에 한숨을 내쉬고는 아래로 향하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만 떠들고 아래로 내려가지. 직접 보고 고르겠다.”
“아, 넵! 그…… 파이몬님? 안으로 모실게여!”
“역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건가? 기대되는구나.”
체스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향하는 우리.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우리는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띠링. 소리와 함께 멈춰서는 엘리베이터.
“자, 도착했어여!”
여전히 새하얀 풍경. 확실히, 저번에 왔을 때보다도 질 좋은 상품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호오, 내부에서부터 기운을 차단하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구나. 이러니 밖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
여전히 흥미롭다는 눈을 하며 진열대들의 안쪽으로 향하는 파이몬.
“호오……. 재미있구나. 좀 더 둘러봐도 되겠나?”
“얼마든지여! 그레고리님도 편하게 둘러보세여!”
그 이후로는 간단한 쇼핑 시간이 이루어졌다.
파이몬과는 떨어져 서로가 고를 물건들을 살펴보았는데 진열대 너머에서 계속해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랄까. 내가 소개해준 상점이라서 그런지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괜히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고른 물건은 3개. 파이몬은 양손 한가득 물건들을 들고 왔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체스의 입꼬리는 이미 잔뜩 올라간 상태였다.
“파이몬. 괜찮겠나? 여기 물건의 가격은 상당하다.”
“응? 아아, 살짝의 출혈이야 있겠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이 정도 가격에 이만한 물건들을 구한다면 이득이지.”
“암여! 암여! 역시 9위의 대악마시라 그런지 보는 눈이 있으시네여! 계산은 어떻게 하시겠어여?”
“프리즘 쥬얼로. 상관없겠지?”
“프, 프리즘 쥬얼! 그럼여! 그럼여! 대환영이에여!”
흐뭇해하는 두 사람.
역시 파이몬에게 이곳을 소개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고리. 그대에게도 빚을 지고 말았구나. 이렇게 좋은 장소를 알려주다니. 고맙다.”
자신의 아공간에 구입 한 물건을 때려놓은 파이몬이 가게를 나서며 싱긋 웃는다.
안의 물건들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군. 곧바로 돌아가나?”
“그래, 이번에 보아하니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물건도 몇 개 보이기에 사버려서 말이다. 당장이라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지.”
‘나이트메어. 그 녀석이 초콜릿만 먹지 않았어도……!’ 라며 주먹을 부르르 쥐는 파이몬.
역시, 그 많은 물건은 전부 자신이 쓰려고 산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대는, 바로 아카데미로 돌아가나?”
“아마 그러겠지. 슬슬 점심시간이니 로제가 날 기다릴 거다.”
“후후, 오늘부터 보충수업이라고 했나? 마르바스 그 영감과 계약을 해놓고도 그 아이는 쉬질 못하는구나.”
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정 안.
마침내 4서클에 도달한 로제는 마르바스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우리의 생활반경은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뭐, 로제가 5 서클에 도달하고 6 서클에 도달한다면 모르겠지만.
“너하고도 계약을 하겠다며 벼르지 않았었나.”
“아직 로제의 슬롯이 부족한 걸 어쩌겠나? 뭐, 기회가 된다면 언젠간 하게 되겠지. 나도 제약을 받으면서 인간계에 있는 것보단 재능있는 소환사와 계약을 하는 쪽이 좀 더 편하니 말이다.”
그렇다.
나와 마르바스만으로도 모자라 파이몬까지 노리고 있는 마왕 헌터 로제.
게임으로 치자면 그야말로 마왕 덱을 짜는 고코스트의 컨셉 현질 고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마. 로제에게 안부나 좀 전해주면 좋겠군. 그레고리.”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려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파이몬.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적당히 바라보다 나 역시 아카데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도착함과 동시에 로제에게서 들은 말은 그야말로 앞으로의 일상이 고되어질 것이라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레고리님!!! 서열전! 서열전을 한데요!!!”
아……,
좀 쉬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