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아카대공 115
* * *
그리고, 아카데미에 도착함과 동시에 로제에게서 들은 말은 그야말로 앞으로의 일상이 고되어질 것이라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레고리님!!! 서열전! 서열전을 한데요!!!”
아……,
좀 쉬자.
서열전.
아카데미물의 연례 행사 중 하나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말고도 아카데미 내부에서의 랭킹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행사.
“그런데, 지금 서열전을 한다 했다고? 부총장이?”
“맞아요! 최근에 재앙의 움직임이 활발? 해졌다면서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뭐 이러쿵저러쿵하겠다는데…… 뭐, 결국 서열전을 하겠다는 이야기였어요! 아, 이거 맛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다시 식사에 열중하는 로제.
대충 중요한 이야기는 다 해준 거겠지.
그렇다면 이후 있을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 판단되었다.
“……로제. 우리가 지금 몇 위 정도이지?”
“넹? 우리요? 으음…… 1학년 23위인가 그럴걸요? 앗! 이것도 맛있네!”
23위라.
확실히, 꼴찌나 다름없던 로제가 23위라는 석차인 것은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더 높은 순위도 문제가 없을 테지만 아무래도 급격한 순위변동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멈춘 것이리라.
“로제.”
“넹?”
오물오물 음식을 씹던 로제가 나를 올려다본다.
“목표로 하고 싶은 석차가 있나?”
“음…… 한다면 1등이 좋지 않을까요?”
“현재 1위는 프리실라인데?”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에요……!”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꽉 쥐며 근엄하게 중얼거리는 로제.
“그래, 그렇다면 기왕 하는 서열전. 1등을 노려보지.”
“진짜요?! 할 수 있어요?!”
“내가 한다고 했던 것 중에 안됐던 게 있었나?”
내 말을 듣고는 예전의 대화들을 떠올리는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는 로제.
“음……. 없었죠?”
“그래,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니, 악마다. 그러니…… 1등을 바라는 네게는 악마 교관이 되어주지.”
“어……. 잠시만요? 결국 제가 노력해야 하는 건가요?”
“그럼, 이렇게 밥만 먹고 강해지려고 했나?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정곡을 찔렸는지 로제의 몸이 움찔 떨린다.
“그……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도 있다구요!”
“비만은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도 있지.”
“크흑! 논파 당한 것인가……!”
아니, 결국 네가 강해지는 거잖아.
왜 분해하냐고.
“그래서, 서열전은 어떻게 진행된다고 하지?”
“앞으로 대련 때마다 점수가 매겨진다고 했어요. 대련 상대를 지정할 수 있는 폭도 늘어난다고 했고요.”
대련 때마다 점수가 매겨져?
잠깐만.
“우리, 다음 상대가 데킬라와 데모닉 아니었나?”
“아, 그러네요?”
……원래는 봐주면서 데모닉에게 로제의 검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진심으로 상대해 줄 수밖에.
* * *
5교시는 로제와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다.
오랜만에 듣는 마법 수업이라 그런지 교관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는데 아무래도 수업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나를 안 좋게 보는 듯했다.
뭐, 결과론 적으로는 내 마법을 보고 싶다기에 검은 늪으로 잔뜩 혼내줬지만.
이후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며 울고 불며 비는 마법 교관의 패배 선언을 받아들이고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그레고리님. 너무하셨어요.”
“교관이 먼저 도발을 해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래도 그레고리님의 마법은 뭐랄까……. 공포스러우니까요. 다른 학생들도 검은 늪을 보자마자 도망쳤잖아요?”
확실히, 검은 늪의 발동과 동시에 교실 구석으로 대피하던 학생들의 모습은 볼만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공포의 감정을 포식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젠 마지막 수업이군.”
“저는 보충수업이 남았지만 말이에요…….”
그렇게, 눈물과 공포, 비명으로 얼룩진 5교시를 끝낸 우리는 다음 수업인 대련에 들어가기 전 흡연을 위해 흡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이 냄새는……!”
“또 데킬라의 냄새라고 하겠군.”
“정답이에요! 데킬라야아앙~!!!”
로제가 양팔을 벌리며 흡연장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결국 조금 있으면 싸워야 하는 사이인데 어떻게 저렇게 좋아할 수 있는 건지.
흡연 부스 안으로 들어서자 데킬라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고 있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데킬라야아앙~”
“로, 로제. 담뱃재가 머리에 떨어집니다.”
“데킬라의 담뱃재라면 좋아요오~”
무슨 자석도 아니고 데킬라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로제.
“데킬라가 곤란해하지 않나.”
“데, 데킬라……! 제가 곤란해요?”
“네. 곤란합니다.”
“보, 보통은 거기서 괜찮다고 하는데 말이죠……!”
충격받은 얼굴로 데킬라에게서 떨어지는 로제.
그럼에도 데킬라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좋아하는 로제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역시 데킬라양은 날 좋아했어!”
그리고는 다시 데킬라를 끌어안는다.
결국은 떨어지지 않는 거구나…….
“그런데, 데모닉이 안 보이는군?”
“아, 나중에 있을 대련을 위해서 소환을 해체해두었습니다. 아무래도 데모닉님 같은 분을 계속 소환해두면 마력이 조금씩 고갈되니까요.”
“넹? 소환수를 소환하면 마력이 계속 줄어드는 거였어요?”
데킬라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로제.
어쩐지, 나를 피카츄마냥 소환 해제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같더니……. 몰랐던 건가.
그래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기에 나는 로제에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너야 꾸준히 흡연을 통해 마력을 보충하니 말이다. 마력이 줄어드는 것도 못 느꼈을 거다.”
또한 주변의 감정을 먹으며 나 스스로도 마력을 보충하고 있으니 로제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오오……. 새로운 지식이 늘었네요.”
“……그걸 모르셨다니. 로제도 대단하네요. 아니, 마력이 엄청나신 걸까요.”
“헤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귀한 걸 많이 먹고 자라긴 했죠.”
영약을 농사짓다시피 하는 가문의 장녀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그렇게,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흡연을 마친 우리는 나란히 대련 수업이 있을 대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성거리는 인파들.
수많은 학생들의 틈으로 쫑긋쫑긋 움직이는 청색의 귀가 보인다.
“저 귀는…….”
“네, 교관님인 거 같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무래도 제국에서 있었던 일이 이곳까지 퍼진 것인지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교관인 셀루아 네갈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정말로 신성교단의 습격이었나요?!”
“황자님들은 정말로 잘생겼나요?!”
“제국을 구한 영웅이시라면서요?!”
“지, 진정해라! 곧 있으면 수업시 간이지 않나! 그, 그렇지! 저기 그레고리 존스와 로제에게 물어보도록. 그 둘도 같이 있었으니!”
와, 여기서 이걸 우리한테 떠넘긴다고?
“변신.”
변신을 외침과 동시에 이쪽으로 쏠린 시선이 순식간에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저도 관심 받고 싶었는데! 힝…….”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관심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로제의 귀가 아래로 축 처지는 게 보였다.
“보아하니 오전 내내 이런 관심을 받았을 거 같은데. 지금은 좀 참지 그러냐.”
“그레고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아직 영웅 로제의 로제 펀치를 8번 밖에 이야기 해주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그 짧은 시간동안 제국에서 있었던 일을 8번이나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황제놈. 그렇게 우리를 영웅이라고 치켜 세워주더니 이제는 그냥 이야기를 잔뜩 퍼뜨리고 다닌 모양이었다.
습격도 한 명의 피해 없이 완벽하게 막아 냈겠다.
본인들의 입맛대로 이야기를 각색하여 우리들을 영웅화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제국의 영웅이다.
그러니 다른 녀석들은 손 대지 말아라. 라고.
즉, 우리를 제국에 들이기 위해 미리 찜해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그래봤자 우리가 제국에 들어갈 일은 없겠지만.
"상황도 정리된 것 같으니 슬슬 대련을 시작하겠다. 본 교관이 제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맡는 대련 수업인 만큼, 부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군. 서열전 점수에는 확실히 반영해 줄 테니까 말이야."
서열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다른 학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모든 전투 하나하나가 점수가 된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만 하다 생각이 되었다.
"헤헤……."
내 옆에 있는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교관은 차례차례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대련장에 번호를 지명해주었다. 데킬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하위권 학생들에게 도전당하는 형식으로 상대가 정해지는 모양.
데킬라 역시 사전에 우리를 호명하였기에 같은 대련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교관. 왜 또 우리 대련장에 있는 건가."
다른 곳은 아카데미의 직원들이 관리하거나 선도부의 학생들이 관리하고 있건만, 셀루아 교관은 어째서인지 당연하다는 듯 우리 대련장의 심판석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제일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반박할 수가 없군.
그야, 이번에 새로운 소환수를 데리고온 데킬라와 떠오르고 있는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둘의 대련이다.
아마 지금 대련을 펼치고 있는 녀석들 중에서는 가장 볼 만 하겠지.
셀루아 교관이 나와 로제의 실력을 제국에서 보았단 사실도 한 몫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두 팀 모두 각자의 위치로 이동해라."
더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교관이 우리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선언한다.
우리 팀의 위치에는 나와 로제가, 반대편에는 데킬라가 혼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두 팀 모두 준비."
대련의 시작이 가까워지는대도 아직 미동도 하지 않는 데킬라.
어째서 소환수를 소환하지 않는 거지?
"시작."
교관의 외침과 동시에.
땅이 까맣게 물들었다.
"하."
가만히 있던게 아니라, 소환수들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던 건가.
"그, 그레고리님? 너, 너무 많은데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당황하는 로제.
새까맣게 물든 운동장. 그곳에서,수를 셀 수 없는 언데드의 군세가 기어올라왔다.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로제. 그레고리님."
이거, 좀 위험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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