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아카대공 117
* * *
마치 검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바닥에서 바퀴의 군세와 강화된 해골들이 뒤엉켜 끔찍한 지옥의 풍경을 펼쳐내고 있었다.
이미 우리 대련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학생들이 태반. 그 와중에 교관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 것인지 입꼬리를 올린 채로 우리의 대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간, 성격 한번 더럽네.
하여튼, 이곳은 마치 전장이나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크기는 다르지만, 군대라 할 수 있는 두 종족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달그락── 달그락──
사박사박──사박사박──
뼈를 열심히 갉아 먹는 바퀴들과 그런 바퀴들을 향해 열심히 손과 발, 무기를 휘두르는 해골들.
물론 그 와중에 나를 노리겠다며 달려드는 해골들이 가끔 있었지만 그레고리 펀치 한 방에 뼛조각이 되기 부지기수였다.
“……봐주시는 겁니까?”
노래 부르기를 멈춘 데킬라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걸 지금 눈치챈 거냐.”
속일 이유는 없었기에 바로 본심을 내뱉었다. 무자비한 대답에 데킬라가 표정을 찡그린다.
“봐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로 최선을 다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최선? 그야 최선을 다하고 있지. 내 소환사를 위해서, 그리고 네 성장을 위해서 말이다.”
어디까지나 내 최선의 목적은 아이들의 성장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곧바로 대련을 끝낼 생각은 없던 것이다.
“대련은 본래 서로 승부를 겨루며 실력을 기르라고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진심으로 널 상대한다면, 아니, 애초에 승부가 성립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금 바퀴들은 스켈레톤의 눈과 코, 입 구멍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며 열심히 해골들이 지키고 있는 데킬라의 근처까지 접근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탐욕을 두른 불꽃을 피어오른다면?
장담컨대, 승부는 곧장 끝날 것이 뻔했다.
“……그랬군요. 애초에 승부가 성립하지도 않는 거군요.”
“그래,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발악해라. 발악한 만큼 너는 성장할 거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나의 성장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발악하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한 데킬라가 손에 들고 있던 낫을 양손으로 쥐었다.
육탄전으로 들어올 생각인 걸까? 데킬라의 육탄전은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기대감이 들었다.
“기대하도록 하지.”
* * *
“우아아악! 데모닉?! 데모닉님?! 이 해골바가지야!!!”
자신을 향해 연속으로 들어오는 검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 로제.
그 앞에는 단출한 복장으로 검을 든 한 해골이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데모닉’ 세상을 멸망시킨 용사.
그레고리가 그렇게 평한 그는 그 이명에 걸맞은 화려한 검격을 선사하고 있었다.
“저는 소환사라고요! 검사가 아니라아아앗!!!”
달그락── 달그락──
“으아아악! 뭐라는 건데! 모르겠다고요!”
그레고리를 해골 소환수에게 도달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마력들이 아직 차오르지 않은 로제는 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본래 검사라 할지라도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켜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도 벅찰 지경.
동생 엘리의 충고 때문에 지금껏 참고 있었지만 이렇게 있다가는 그레고리에게 민폐를 끼칠 것이라 판단한 로제는 마지막 마력을 짜내 불굴에 불어넣으며 데모닉을 강하게 밀쳤다.
“그렇게 나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표정을 짓는 로제. 그녀는 다른 손에 있던 지팡이를 홀더에 집어넣고는 다른 쪽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혹시 몰라 요즘에는 항상 안에 약초를 집어넣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간단하게 불만 붙이면 됐으니까.
탁! 하고 손가락을 튕김으로써 불꽃을 만들어낸 로제가 파이프 담배를 빨아들인다.
마치 연기 그 자체가 마력이 된 듯 폐로 들어간 연기는 곧바로 마력으로 환원되어 몸을 순환한다.
한 입 한 입이 최고급 마력 포션이라 할 수 있는 영약.
세계수의 잎.
그것을 누구보다도 사치스럽게 활용하는 것은 오로지 로제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로제류 오의────”
그녀는 항상 기술을 사용하며 ‘그레고리류 오의’라 외치는 그레고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멋있는 그 모습.
멋있는 이름!
얼마나 동경해왔던지.
그렇기에, 그녀는 자기 자신만의 싸움 방식을 만들기로 했다.
남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이 펼칠 수 있는 기술을.
그렇기에, 새로운 기술의 이름을 그레고리에게 자문받은 결과 ‘기어 세컨드는 어떠냐. 내가 알던 녀석도 몸에서 연기를 뿜으며 그렇게 말하더군.’이라는 의견을 받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로제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결국 남의 기술을 따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로제 스스로가 떠올린 기술의 이름.
“연화(?花).”
연기로 만들어진 꽃.
꽃의 이름을 가진 그녀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기술의 이름이었다.
연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 동안만큼은 무한하다고 느껴지는 마력.
그 마력을 모조리 신체 강화에 투자하자 로제는 믿을 수 없는 충만함을 느꼈다.
이 정도라면 눈앞에 있는 저 괴물 같은 해골을 이길 수 있겠다고.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자신만만히 외친 로제는 격렬한 몸동작에도 파이프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이빨로 파이프의 끝부분을 앙 물었다.
이대로 턱을 얻어맞는다면 이빨이 나갈 수도 있지만…… 신체 강화가 된 이상 그럴 확률은 무척이나 낮았다.
무엇보다도, 얼굴을 향한 가격은 피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달그락── 달그락──
그 모습에 데모닉이 재미있다는 듯 턱뼈를 움직인다.
로제의 기운이 달라진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번에 먼저 공격을 가한 것은 로제였다. 방금처럼 데모닉의 공격을 받기만 해서는 공방이 바뀌지 않고 오로지 방어만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에서 벌어진 행동이었다.
그녀의 발동작은 무척이나 재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레고리가 알려준 스텝과 마르바스가 알려준 검술, 라파엘의 움직임을 접목시켜 그녀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들어낸 보법이었다.
빠르고, 경쾌하며, 극도로 효율적인 동작.
덕분에 공격까지의 딜레이가 무척이나 적었지만, 단점이라면 공격을 완벽하게 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었다.
즉, 데미지를 최소한으로 받으며 효율적으로 상대의 목을 취하는 방식.
살을 내주고 뼈를 내준다는 라파엘의 방식이 접합된 결과였다.
“성불하세요! 해골!”
지금까지 스치지도 못했던 로제의 검이 조금씩 데모닉에게 닿기 시작한다.
골반뼈, 갈비뼈, 대퇴골과 손목뼈. 조금씩, 그녀의 검이 닿으며 뼈가 깎여나가고 있던 것이다.
달그락── 달그락──!
그 모습에 데모닉의 뼈가 더욱 격렬히 움직인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흥미롭다는 듯이.
자신의 갈비를 향해 매섭게 쏘아지는 검을 흘려내고, 하체를 노리는 공격은 회피한다.
오로지 기교로만 이루어진 극강의 회피였다.
“당신 같은 소환수가 어떻게 2성 소환수라는 거에요! 검술로는 웬만한 기사단도 쌈을 싸 먹겠구먼!”
달그락──!
화를 내며 조금씩 커져가는 로제의 동작에 데모닉의 뼈가 싱긋 웃는 것처럼 변이했다.
일부로 촐랑이며 공격을 살짝살짝 회피했던 것이 도발로써 완전히 먹힌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효율적이던 로제의 동작으로 인해 하체가 텅 비어있음을 포착했을 때.
달그락──!
데모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로제의 검에 막히기 전까지는.
“로제살!”
지금까지의 그녀의 동작과 힘이라면 낼 수 없을 속도로, 마치 번개가 내려치듯 아래로 떨어진 로제의 검이 데모닉의 검을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저도 지능캐라고요!”
일부로 상대가 빈틈을 노리게끔 만들어 허를 찌르는 방식.
이것 역시 마르바스에게 배운 검술의 기본이었다.
검과 검의 대결이란 수와 수의 싸움. 계속해서 비슷한 수만 펼치다 숨겨놓았던 비장의 수를 꺼냄으로써 상대의 리듬을 부숴버리는 작전.
로제의 수가 통한 것이었다.
달그락!
검이 부서진 데모닉은 그대로 몸을 뒤로 굴리며 자신의 주위에 쓰러져 있던 해골의 검을 주워들었다.
본인이 처음에 사용하던 검보다도 많이 조잡한, 이가 나가 있는 검이었지만 데모닉은 상관없다는 듯 검을 치켜들고 로제를 겨누었다.
“하! 그런 고물 검으로 절 상대하시겠다고요?! 한 번 부딪히기만 해도 부서지겠구만!”
로제의 말이 맞았다.
그야말로 어디서 주워 온 듯한 검은 로제의 검인 ‘불굴’과 비교하여 무척이나 연약한 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골을 소환하며 같이 나오는 추잡한 고물검 인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그 검은 평범한 검이라 할 수 없었다.
─────♪
뒤에서, 자신의 소환사가 부르는 장송곡(Requiem)이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데킬라의 마법으로 소환된 검은 데킬라가 관여할 수 있는 소환물로 취급되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노래는 데모닉이 들고 있는 검에도, 데모닉의 몸 그 자체에도 깃들어 격(?)을 한 층 더 높여주었다.
뿌득, 뿌드득.
데모닉의 뼈가 비명을 지른다. 그의 뼈는 한층 더 거대해지고, 커다래지며, 단단해진다.
“하아아…….”
데모닉의 턱뼈에서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마치 사기(死?)를 머금은 듯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몸을 떨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놀아보겠구나. 로제. 릴리의 후손이여.”
“마, 말을 하네요?!”
“……잠깐이지만 말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힐끔, 자신의 뒤에서 열심히 괴상한 모습의 적과 싸우는 자신의 소환사, 데킬라를 바라보았다.
모습을 보아하니 상대의 소환수 역시 데킬라의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맞춰주며 대련을 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소환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모양이니, 나도 은혜는 갚아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데모닉은 검을 양손으로 쥐어 잡고는 눈앞에서 달콤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하프엘프, 로제를 바라보았다.
“최선을 다 해보거라. 아이야.”
내 수업은 조금 힘들 테니까.
그렇게 선언한 전(?) 용사는 싱긋 웃으며 눈앞의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 나는 소환사라고요!!!”
정작 수업을 받게 된 당사자는 죽을상이었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