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아카대공 118
* * *
힐끔, 로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눈물까지 펑펑 흘려가며 데모닉의 검을 열심히 맞받아치고 있는 로제.
데모닉은 예상대로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로제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로제를 열심히 괴롭혀주고 있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만약 로제를 정말로 쓰러뜨릴 생각이었다면 그 즉시 데킬라를 먼저 리타이어 시켰을 테니까.
“……하아, 하아. 그렇게 다른 곳을 보셔도 되는 겁니까?”
거친 숨을 내뱉으며 힘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데킬라.
그녀의 주위로는 이미 산산조각난 뼈들이 잔뜩 비산해 있다.
“아직까지 그 정도의 여유는 있어서 말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직접 몸으로 덤빌 셈이지?”
“……하. 해골들을 전부 가루로 만들어 놓으신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역시, 아직 어린애다.
“스켈레톤들이 부서지며 남은 뼈들은 뼈가 아닌가?”
“……그게 무슨.”
“너는 뼈를 다룰 수 있으면서 그것을 스켈레톤 따위를 소환하는 데만 사용하는군.”
“그거야 당연히 제가 소환사이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로제는 소환사이면서 동시에 마법사이자 검사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지? 데킬라 크로프트.”
솔직히, 이 정도면 힌트를 많이 줬다고 생각했다.
어디 네크로멘서가 물량으로만 상대하는 네크로멘서만 있겠는가?
네크로멘서란 본래 뼈를 다루는 자. 그리고, 데킬라는 네크로멘서로서의 재능이 무척이나 풍부한 아이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데킬라가 낫을 든 체 멍하니 바닥을 바라본다.
“저는……. 저는…….”
떨리기 시작하는 데킬라의 동공. 이내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낫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을 풀고선 바닥을 향해 뻗었다.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달칵.
수십, 수백의 뼛조각이 동시에 흔들린다.
“……알 것 같습니다.”
뼈들이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돌며 내 주위를 감싸기 시작하는 뼛조각들.
그것은 이내 나를 덮는 하나의 관이 되어 주변의 풍경으로부터 내 존재를 완전히 차단한다.
그리고, 그런 관 너머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
“Bone Maiden(뼈의 처녀).”
“아.”
이름만 들어도 어떤 기술인지 감이 잡히는 이름.
나를 감싸고 있던 벽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최대한 몸을 수그렸다.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 벽에서 솟아오르는 뼈의 가시들.
이윽고, 바닥의 작은 틈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에 뼈의 가시가 솟아오르며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공간을 꿰뚫는다.
“……맞았으면 꽤 아팠겠군.”
허공을 가득 채운 가시들은 시간을 역행하듯 서서히 벽으로 돌아가고, 나를 둘러싸던 뼈의 벽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힐끔. 뼈 벽의 틈으로, 바닥에 엎드려 가시들을 피한 나와 밖에서 낫에 의지해 힘겹게 서 있던 데킬라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것마저도 피하시는 겁니까.”
“나쁘지 않더군.”
바퀴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구멍송송이 될 뻔했지만, 상대가 나인 걸 어떡하겠나.
“……교관님. 항복하겠습니다.”
낫에 기대어 서 있는 것도 버거웠던 것일까. 부들부들 떨며 교관을 향해 항복을 선언하는 데킬라.
이에 교관은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교관으로부터 ‘대련 종료’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아.”
대련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데킬라.
변신한 상태로 괜히 도와주다간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로제를 통해 알고 있던 나는 재빨리 변신을 해제함과 동시에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사용하여 데킬라에게 달려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붙잡아주었다.
“괜찮나.”
“아, ……감사합니다.”
그녀의 새하얀 얼굴에 붉은 기가 느껴지기에 이마에 손을 대어보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마력 탈진 현상이군. 오늘 하루는 쉬는 게 좋을 거다.”
“……예.”
툭. 툭.
무언가가 발을 건들고 있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데모닉이 내 다리를 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달그락──! 달그락──!
“……뭐라는 거지?”
달그락──! 달그락──!
“데모닉님께서 지금 당장…… 아닙니다.”
“응?”
“별거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정말 별거 아니겠지.
“우에에에엥──! 그레고리니이이임!!!”
저 멀리서 눈물 콧물을 펑펑 흘리며 내게 달려드는 소녀가 보였다.
몸 곳곳에 묻은 흙먼지와 헝클어진 금발의 머리.
“우에에에엥!!! 너무 힘들었어요!!!”
데모닉과 열심히 검을 나누고 있던 나의 소환사. 로제였다.
“그런데…… 왜 그레고리님은 데킬라를 껴안고 있는 거예요?”
……응? 내가?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아직 데킬라를 붙잡아 준 채 놓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서 있을 수 있겠나.”
“네. 이제 괜찮습니다.”
데킬라의 상태를 확인해주고 서서히 놓아주자 내 발을 툭툭 차고 있던 데모닉이 달려와 데킬라를 받쳐주었다.
“감사합니다. 데모닉님.”
달그락──!!!
“……그것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담배를 피우는 로제를 바라보았다.
“……아니, 울면서도 담배를 핀다고?”
“그치만 방금 싸움으로 마력이 완전히 떨어졌단 말이에요! 그야말로 긴급 수혈이에요!”
그래, 로제는 원래 이런 녀석이었지.
“그래서, 데모닉은 잘 가르쳐주던가?”
“잘 가르쳐주긴요! 온갖 괴상한 궤도로 검을 슉슉 휘두르는데 진짜! 막다가 죽을 뻔했어요! 저기 대련장 구석에 프리즘 스톤들 잔뜩 금 간 거 보이죠?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요!”
정말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그리 말하는 로제.
“그래그래, 그렇게 느꼈다면 데모닉이 확실하게 교육한 거겠지.”
“넹?”
“뭐, 나중에 검을 쓸 일이 생긴다면 알 수 있을 거다. 귀한 가르침을 받았구나. 로제.”
“……그래도 저는 그레고리님께 그레고리류를 전수 받는 게 더 좋은걸요.”
아니, 그레고리류라고 해봐야 그냥 실전 압축 주먹질인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해주니 괜히 고마운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래, 나중에 단둘이서 훈련이나 하지.”
“단둘이서! 약속이에요? 약속한 거예요?!”
“악마는 원래 약속을 잘 지키는 법이다. 로제.”
“야호!”
그렇게나 좋아할 일인가.
“그렇게 좋아하기 전에, 보충수업을 먼저 걱정해야 하지 않나?”
“……넹? 아……. 아!!!”
아니, 까먹고 있던 거야??
“이렇게 개고생하고 보충수업이라니! 말도 안 돼!!! 셀루아 교관님!! 살려주세요! 네?!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셨잖아요오오!!!”
보충수업이라는 말에 마침내 멘탈이 나가버리고 만 것인지 로제가 비틀거리며 심판석에 있는 셀루아 네갈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간다.
“살려주세요!!!”
“……미안하군. 오늘 보충수업은 부총장님께서 직접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다.”
“……넹?”
“……힘내라.”
“안돼에에에에엣!”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절규하는 로제.
오늘 보충수업을 부총장이 한다고? ……그 여자가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전형적인 절망의 자세로 뻗은 로제. 그녀는 이내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더니 나를 바라본다.
“어쩔 수 없어요……! 제 소환수인 마르바스님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 참고로 마르바스님 역시 보충수업에 참여한다더군.”
“신은 죽었어!!!”
결국 모든 방법이 소용없게 된 로제는 완전히 시무룩해진 모습으로 터덜터덜 내게 다가와 말했다.
“……기숙사로 돌아가죠. 보충수업 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은 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지금은 그저, 위로해주자.
* * *
대련을 끝내고, 로제 일행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온 데킬라와 데모닉.
데킬라는 기숙사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침대에 몸을 던지며 깊을 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힘든 건 정말 오랜만인데 말이죠.”
달그락──! 달그락──!
“데모닉님이 즐거우셨다면 다행이네요. 로제의 실력은 어땠나요?”
데킬라의 물음에 침대로 다가와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데모닉.
데모닉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데킬라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로제양이네요. 데모닉님이 재능이 있다고 하실 정도라니.”
달그락──! 달그락──!
“예? 검을 휘두르면서 중간중간에 발길질이랑 주먹질을 해대서 여간 까다로우셨다니, 그건 아마…… 다른 소환수님들의 영향일 겁니다.”
데킬라는 그렇게 말하며 로제의 소환수인 그레고리와 마르바스를 떠올렸다.
한 명 한 명이 현세에 본신으로 강림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라 불리는 존재들.
과거였다면 분명히 부러워했었을 데킬라였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달그락──! 달그락──!
“저 말입니까? 저도 좋은 가르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거의 이길 뻔했는데……. 상대가 상대인 만큼 쉽지가 않더군요.”
달그락──! 달그락──!
침대로 올라와 가벼운 동작으로 데킬라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주는 데모닉.
작은 해골에게 위로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것일까. 데킬라가 피식 미소를 짓는다.
“감사합니다. 다음번엔 반드시 이겨보도록 하죠. 데모닉님.”
달그락──! 달그락──!
그래, 지금의 자신에겐 데모닉이 있었으니까.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데킬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해골의 앙상한 뼈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아주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달그락── 달그락──
갑자기 해골이 투덜거리기 전까진.
“……그때 그레고리님께 안긴 건 어디까지나 쓰러질 뻔한 저를 부축해주신 것뿐입니다.”
물론, 중간부터 다리에 힘이 들어갔었지만, 데킬라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해주진 않았다.
그랬다간 데모닉이 또 잔소리해댈 것이 뻔했으니까.
그렇기에 데킬라는 그저 조용히.
수면욕을 받아들이고 꿈속으로 도피하는 것을 택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