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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19화 (119/169)

〈 119화 〉 아카대공 ­ 119

* * *

“확실히, 모두 온 모양이군.”

보충수업을 위해 별도의 교실에 모인 우리. 잠시 후, 비서로 보이는 직원과 함께 교실 안으로 들어선 부총장, 오르가 레빈포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교탁의 앞에 섰다.

차갑고도 무심하게 느껴지는 눈으로 교실에 있는 인원들을 훑어보는 그녀.

그녀와 눈이 맞았던 것일까? 내 옆에서 손가락을 꼬물거리던 로제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화, 확실히 부총장님은 느껴지는 아우라가 다르네요…….”

속삭속삭 앞에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내게 소근 거리는 로제.

로제의 말과 끝남과 동시에 레빈포트가 우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로제 폰 유글리아. 내가 들어온 시점부터 보충수업은 시작됐다. 잡담은 삼가도록.”

“죄, 죄송합니닷!”

시작부터 레빈포트의 강압적인 모습에 움츠러드는 보충반의 분위기. 그나마 그곳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프리실라의 옆에 앉아있는 라파엘뿐이었다.

‘안녕~ 자기?’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만 뻐끔뻐끔 움직여 메시지를 보내는 라파엘.

나는 한숨을 내쉬곤 다시 레빈포트가 있는 교탁을 바라본다.

대체, 어떤 보충수업을 하려고 하기에 본인이 직접 나선 것일까.

마침내 레빈포트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아몬이 재앙과 함께 이곳에 강림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낸 학생들이다. 심지어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기까지도 했지. 그렇기에, 다른 설명은 하지 않으마. 지금, 중간계는 미증유의 위험에 빠졌다.”

그렇기에. 하고, 레빈포트가 운을 뗀다.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로제 폰 유글리아.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아멜 발맹가. 그리고 그녀들의 소환수들.”

이미 셀루아 네갈 교관이 제국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보고한 모양이었다.

뭐, 아카데미의 교관인 셀루아 네갈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대들의 힘은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나다. 실제로 그대들 모두 각 학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 그렇기에, 본 부총장은 그대들에게 보충수업을 포함한 특별수업을 실행할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특별수업 선언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로제. 옆을 바라보니 프리실라와 아멜 역시 특별수업을 딱히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저, 저희들만 그 특별수업이라는 걸 받는 건가요?!”

손을 번쩍 들며 질문하는 로제. 이에 레빈포트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각 학년의 최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각 성적에 맞는 추가적인 교육을 할 예정이지.”

“이른바 단계별 수업이라는 거군.”

내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레빈포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단계별 수업?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그런고로 너희는 축복받은 학생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교관도 아닌 내게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하는 레빈포트의 표정에는 그 어떠한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야말로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오늘은 OT의 개념으로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수업을 하게 될 테니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올 수 있도록. 이상.”

그 말을 끝으로 교실 밖으로 나간 레빈포트를 우리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짧고도 강렬했던 보충수업이 끝난 이후, 기숙사에 들어가는 길에 흡연실에 들른 로제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곤 연기를 내뱉은 후 내게 물었다.

“……그레고리님, 부총장님의 정체는 대체 뭘까요?”

목소리를 벌벌 떨며 묻는 로제,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자기한테 교육을 받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하는 거나, 너무나도 당당한 그 태도나. 대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기에 이렇게까지 저희를 굴리는 건가요오!”

아무래도 수업이 좀 더 빡세진다는 말에 정신이 불안정해진 모양.

그래도 일단,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래곤이라면 응당 그 정도의 자신감을 가질 만하지.”

“아니 본인이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넹? 뭐라구요?”

뭐야, 설마 진짜 몰랐던 건가?

“드래곤 말이다. 드래곤. 서머니아를 건국한 소환사가 계약했다는 전설의 소환수. 그게 바로 소환사 아카데미의 부총장이자 드래곤, 오르가 레빈포트다.”

“……아니, 진짜요? 진짜로 부총장님이 전설 속의 그 드래곤이라구요?!”

“그래, 서머니아를 세우고 소환사 아카데미를 세운 그 드래곤이다.”

“……부총장님이 드래곤이라니, 그레고리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을 거예요.”

“사실인 걸 어떡하겠나.”

실제로 원작 게임인 [소환사 아카데미아]에서도 나오는 설정이니 거의 확실할 터였다.

그뿐일까. 부총장의 귀환과 동시에 마계로 도망쳤던 파이몬만 보아도 아마 확실하겠지.

“으아……. 그런 대단한 분이 우리 아카데미의 부총장님이셨다니……! 뭔가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요.”

그러는 본인은 세계수로 만든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서, 드래곤 하나 믿지기 않는다니.

뭔가 이상한데?

“그러는 너는 세계수로 만든 담배로 세계수잎을 태우고 있지 않나. 다른 이에게 묻는다면 네가 더 대단하다고 하지 않겠나?”

“어어……. 그런가요?”

아무래도 로제는 세계수가 이쪽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로제의 가문과 엘프들이 섬기는 세계수는 그야말로 엘프를 수호하는 신이라고 해도 무방한 존재.

격으로 따지자면 드래곤보다도 더 높을 텐데……. 로제에게는 그저 동네 나무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오히려 주변의 인맥들이 문제인 걸까?

제국 황제랑 공작급의 대악마들, 제국의 황녀와 대천사를 곁에 두고 있으니…….

아니, 그러면 더 놀라면 안 되잖아.

아무튼.

“부총장은 평범한 소환사를 영웅으로 키워냈을 정도의 실력자다. 그녀의 가르침은 분명 네게 큰 도움이 되겠지.”

천천히, 벌써 물이 빠지기 시작한 머리에 손을 얹는다. 이제는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게 익숙한지 싱글싱글 웃는 로제.

“너는 금방 강해질 수 있을 거다. 그러니 조금은 힘들어도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는 없겠지. 알겠나?”

“……네!”

다행히, 내 말이 위로가 되었던 걸까. 담배 연기만 내뱉으며 잔뜩 죽상을 짓고 있던 로제의 표정이 그나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음……. 제국을 다녀오며 고생도 했고. 멘탈 케어를 해주는 편이 좋을까?

“로제.”

“넹?”

“너는 잘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1학년 최하위에서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최상위권에 진입한 로제였다.

이 정도의 칭찬은 해줘도 되겠지.

“……네!”

음, 이번 주말에는 어디라도 놀러 가는 게 좋으려나.

* * *

로제와 함께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올 사람이 있었나? 누구세요~?”

자신의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로제가 방에서 나와 현관문으로 향한다.

다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돌핀 팬츠와 흰 티 차림. 그리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뿔테 안경과 뒤로 묶어 올린 머리까지.

그야말로 공부하는 소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누구……어? 데킬라양? 그리고, 데모닉님이네요?”

달그락── 달그락──

“늦은 저녁에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상담을 드릴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만…… 혹시 시간 괜찮으실지요?”

“네? 아, 괜찮아요! 어서 들어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데킬라가 방 안으로 들어서다 이내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데킬라. 나 역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받아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데킬라.”

방금까지 로제의 공부를 도와주다 지쳐서 누워 쉬고 있었는데, 설마 손님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레고리님. 다름이 아니라 그레고리님과 로제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혹시 시간이 괜찮으실련지요.”

“……부탁?”

부탁이라니, 혹시 오늘 낮에 있었던 일에 관한 건가?

“우선 앉지.”

“감사합니다.”

달그락── 달그락──

그대로 내 맞은편에 앉는 데킬라와 데모닉. 로제는 주방에서 다과를 챙긴 뒤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는다.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제가 뭐 도와줄까요? 담배라도 필래요?! 저희 방에 흡연실도 있어요!”

“네? 어…… 잠깐, 흡연실 말입니까? 에에?”

“친구의 부탁이라니! 고민 상담 같은 거겠죠?! 처음이에요! 어떤 고민이든 말해주세요! 이 로제가 해결해드릴게요! 연애? 학교생활? 친구 관계?!”

얼마나 의욕이 넘치는 것인지 테이블까지 박차며 일어서는 로제.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듯했다.

“아, 그런 고민은 아닙니다만…….”

“힝.”

금세 죽었지만.

“제가 여러분을 찾아뵌 것은…… 데모닉님이 로제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데모닉……님이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데모닉.

데킬라는 어려운 부탁이라는 듯. 잠시 이야기하기를 머뭇거렸지만 이내 각오를 다진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로제를 바라보았다.

“힘든 부탁이라는 것은 압니다. 부디, 저와 데모닉님을 델리니아에 데려가 주실 수 있으신지요.”

“델리니아에요?”

델리니아. 엘프들이 살아가는 땅. 그곳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신비의 땅이라 불리는 장소로 델리니아 내부 지인의 추천이 없다면 들어가는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롭기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했다.

“둘이서 가면 되지 않나?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절차가 꽤 까다롭긴 해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소환사 아카데미의 재학생이라면 학교 교관 중 엘프의 추천서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저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정확히 델리니아가 아닙니다. 델리니아에 있는 릴리 폰 유글리아님의 묘소. 그곳이 가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학교 측의 추천서로는 힘들겠군.”

아무리 델리니아라 해도 외부인의 출입이 엄금 시 되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로제의 가문인 유글리아 가문의 농경지와 세계수 정도. 그리고, 방금 데킬라가 말한 릴리 폰 유글리아의 묘소는 세계수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어…… 증조할머니 묘소요?”

그리고 그 장소는 로제 역시 예상치 못한 장소였던 모양이었다.

릴리 폰 유글리아의 묘소라니. 데모닉의 부탁이라고 한 점을 미루어보아 과거의 일이 엮여있을 거란 짐작이 들었다.

“외부인인 저희가 가는 게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네크로멘서인 제가 가는 건 더더욱 힘들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하지만──”

“네! 가요!”

“──네?”

그럼에도, 로제의 입에서는 흔쾌히 긍정의 대답이 나왔다.

“친구를 데리고 집에 갈 수 있다니! 엘라는 물론이고 엄마랑 아빠도 엄청 놀랄 거예요!”

“……어, 그렇게 쉽게 되는 건가요?”

“넹? 안 될 건 뭐에요? 저 로제에요 로제! 저에게 가문에서 안 될 일은 없어요!”

흥! 흥! 하고 콧김을 내뿜으며 자신 있게 선언하는 로제.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 어디로 놀러 갈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에 델리니아로 가면 되겠군.”

엘프들의 땅이라.

왠지 모를 기대감이 내 가슴 속에서도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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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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