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아카대공 120
* * *
“으아아아──!! 이건 아니잖아요! 이게 뭐야아아~!”
기숙사 방에 도착한 로제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땅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상처와 잔뜩 뻗쳐있는 머리. 이 모든 게 특별 수업에서 부총장인 레빈포트에게 찍히고 난 뒤 일어난 일이었다.
‘로제 폰 유글리아. 머리도 좋고 몸을 쓰는 것도 잘하는데……. 그 능력들에 비해 마법적이 부분이 부족하군.’
자신이 직접 가르쳐야 할 학생들의 수준을 봐야겠다며 가장 자신 있는 기술들의 시연을 직접 본 레빈포트의 감상.
‘우선은 아이템들로 그 부족함을 메꾸고 있는 건가. 지금은 아이템 덕분에 크게 부족해 보이지 않다만 분명 그것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거다. 로제 폰 유글리아. 오늘 수업이 끝나면 남도록. 다른 마법들도 봐야겠다.’
소환사이자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검술을 파고든 업보로 인해 그녀는 레빈포트에게 끌려가고 만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 탓도 있구나. 조금 미안해지는데?
아니, 그렇다고 미안한 기색을 보일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드래곤에게 1:1로 마법을 교육받은 게 아닌가.
여기서는 당당하게 나가도록 하자.
“그래서, 레빈포트의 1:1 수업은 어땠나. 도움이 된 것 같나?”
“네? 아……. 맞아요! 부총장님, 엄청 대단한 분이시더라구요! 막 제 몸에 손을 얹으시자마자 제 체질을 순식간에 알아내는 거 있죠?”
“그래?”
로제의 말은 이러했다.
로제의 등에 손을 얹은 레빈포트. 처음에 그녀는 로제의 체질을 파악하고는 크게 놀랐다고 한다.
‘어떻게 마나그릇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는 거지?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보는군. 어쩌면 성녀보다도 네 마나그릇이 더 깨끗할지도 모르겠구나.’
세계수의 잎을 심심할 때마다 태우며 살아온 로제의 몸은 그야말로 순백 그 자체였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드래곤이 놀랄 정도라니, 아마 로제는 전 인류사에서 가장 깨끗한 마나그릇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로제의 몸을 살펴본 레빈포트는 이내 그녀의 몸에서 세계수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세계수의 기운을 머금은 아이라니, 유글리아에서 무서운 아이를 만들었군.’
‘넹? 제, 제가 무섭게 생겼나요?!’
로제의 성인 유글리아와 세계수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아무래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버린 모양. 정작 이야기를 들은 당사자는 레빈포트가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의 깨끗함이라면 어떤 마법을 사용해도 괜찮겠군. 어떤 속성이든 받아들일 것이고 악마의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순식간에 분해되어 그 기운이 사라질 거다.’
즉, 우리 로제는 어떤 속성이든 사용할 수 있는 소환사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레빈포트도 그에 대한 조언을 해준 모양이었고 말이다.
‘로제 폰 유글리아. 너 같은 경우에는 한 가지 마법을 파고드는 것보다는 여러 마법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군. 결과적으로 너는 마법사가 아닌 소환사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레빈포트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리 로제가 뛰어난 마나그릇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본질은 소환사 마법 같은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넓히는 쪽이 훨씬 좋았다.
결국, 소환사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환수와의 호흡이었으니까.
“그다음으로는 저한테 마법을 보여주셨어요. 제 마력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 평범하게 사용하면 안 된다고. 이미지를 만들어서 제 몸에 깃든 세계수의 마나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로제에게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온갖 수를 써보았지만 계속되는 실패.
그렇게, 한숨 돌리기 위해 레빈포트의 허락을 맡고 담배를 피웠을 때. 레빈포트는 다시 한번 기겁했다고 한다.
‘……설마. 그거, 세계수의 잎인가?’
‘넹, 그런데요?’
‘하, 세계수의 잎을 담배 삼아 피우다니, 유글리아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마치 현자 타임이 온 듯한 레빈포트의 모습에 로제는 그녀를 위로해줬다고 한다.
‘어……. 한 대 하실래요?’
자기 담배를 꺼내며.
아, 이건 못 참겠다.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이건 절대로 안 될 것 같아 고개와 몸을 뒤로 돌린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
머릿속으로 아직 잊지 않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며 최대한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금세 본래의 표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레고리님?”
갑자기 몸을 돌려서 그럴까. 로제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음, 아무것도 아니다. 재채기가 나오려 해서 말이지.”
“오오……. 그레고리님도 재채기를 하시는군요.”
다행히 잘 넘겼다.
“그래서, 다음은?”
“네? 뭐……. 그냥 나눠 폈는데요?”
“그걸 또 나눠 폈다고?”
“네! 처음에는 머뭇거리시더니 ‘나도 아직 세계수의 잎을 피워 본 적은 없었지…….’ 라고 하시면서 받으시던데요?”
아무리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세계수의 잎으로 만든 담배는 못 참는 모양이었다.
로제의 말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레빈포트는 매우 흡족해했다는 모양이었다.
그야 영약이나 다름없는 세계수의 잎을 담배로 피우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아마 유글리아 가문의 장녀, 그것도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가 겹친다는 이유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감을 잡은 것도 있었어요.”
로제는 자신의 몸 안에 떠도는 세계수의 기운에 담배 연기라는 이미지를 씌웠다고 했다.
몸 안을 부유하고 있는 새하얀 담배 연기. ‘이 연기는 지금 폐 부근인 심장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마나를 운용하니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그런 이미지로 된다고?”
“되던데요?”
이게 바로 흡연계의 이단아. 아니, 영재라는 것인가.
로제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마나에 속성을 씌우는 것을 성공한 것이다.
단 하루 만에.
“자 보실래요? 얍!”
자신 있게 외치는 로제의 검지 손가락 위로 피어오르는 새빨간 불꽃. 그곳에서는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아닌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꽃향기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사실은 엄청난 재능이 있는 거 아니었을까요? 두, 두렵다! 나 자신!”
그러면서 갑자기 난리를 치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고생이 많았구나. 얼른 샤워하고 와라. 밥이나 먹자”
“넹~”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욕실로 향하는 로제. 그녀가 욕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을 때, 안에서 ‘아 맞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레고리님! 그러고 보니 부총장님이 그레고리님은 왜 오늘 안 오셨냐고 묻던데요?]
레빈포트가 날 찾았다고?
“그녀가 나는 무슨 일로?”
[으음~ 무슨 이유라 찾는지는 말을 안 해주시고 그냥 다음번에는 오면 좋겠다. 전해달라 하셨어요.]
“알겠다.”
[넹~]
혹시 나에게도 무슨 가르침을 주려는 걸까?
부르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가도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가긴 해야겠군.”
설마, 악마라고 때려죽이겠는가.
* * *
“나와 한 번 겨루어보는 건 어떤가. 그레고리 존스.”
“……뭐?”
로제의 말을 듣고 특별 수업에 참관하자마자 나를 본 레빈포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한 판 뜨자.’
“……나보고 그대를 상대하라고? 4성밖에 되지 않는 몸뚱어리로?”
아무리 내가 악마 대공이고 지금까지 나보다 강한 적들을 상대해 왔다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상대는 고대부터 인간계에서 생활해온 드래곤. 소환사가 이미 8성에 이르러 8성의 경지를 그대로 뽐낼 수 있는 소환수 그 자체.
지금의 내가 덤빈다?
장담컨대 5초 아니, 2초면 역소환 될 게 분명했다.
“호오, 반응을 보아하니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모양이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나. 부총장.”
“확실히, 그대 정도의 악마라면 내 정체를 모르는 것도 이상하겠지. 어쩌면 과거에 만났을 수도 있고.”
아니, 그레고리의 외전을 플레이하며 느낀 것은, 그레고리 존스는 과거에 레빈포트와 만난 적이 없었다.
그레고리 존스의 행동반경은 어디까지나 마계였으니까.
“아카데미에 있는 그대의 정보는 모조리 확인해 보았지.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마계의 대공이라……. 확실히, 과거에 다른 대공들에게 숨겨진 대공이 더 있다는 정보를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다만…… 그게 바로 그대겠지? 그레고리 존스.”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게 그리 묻는 레빈포트.
하지만 이미 이곳에 로제의 소환수로서 온 시점부터 나는 내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인적 사항은 전부 확인해 보았을 텐데? 왜, 부총장 그대도 내가 마계의 대공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가?”
내 물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레빈포트.
“아니아니, 그럴 리가. 확실히 그대에게는 다른 대공들과 맞먹는 격이 느껴져. 그대가 대공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확인하고 싶은 거라네.”
“그 절차가 그대와의 승부이고. 말이지?”
내 물음에 아카데미의 드래곤. 레빈포트는 싱긋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 질문이 많은 거지?”
그리고 그녀는
“혹시…….”
남자라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쫄?”
“──당장 나와라. 도마뱀.”
너는 해선 안 될 말을 내뱉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