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아카대공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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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약고에 갔을 때처럼 우리는 모두 레빈포트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 키를 꽂자 보이지 않던 지하 6층의 버튼이 나타난다.
“저번에는 5층이더니, 이제는 6층이군.”
6층 버튼을 누른 레빈포트는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대련장과 같이 개방된 곳에서 내 힘을 보일 수는 없어서 그러는 것이니 양해를 부탁하지.”
“……그런 이유라면야.”
아마 레빈포트는 아카데미의 숨은 비밀전력과 같은 포지션인 모양이었다.
분명 다른 아카데미와 세력들에게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있는 모양, 그 때문에 아무에게나 개방되지 않는 지하의 대련장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띠링.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선다. 저번 보았던 영약고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대련장.
“그, 그레고리님! 저기 보세요!”
문이 열림과 동시에 어느 장소를 바라보던 로제는 입이 떡 벌어져서는 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있기에 저렇게 난리를…….
“……어이가 없군.”
이 정도라면 로제가 놀랄 만도 하지.
대련장의 한 구석. 원래라면 대련 도중 공격에 의한 충격을 막아내기 위해 프리즘 스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프리즘 쥬얼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비싼 걸 대련장의 충격을 줄이는 데 사용한다고?”
내가 어이없다는 투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부총장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 정도가 아니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무엇보다도…… 바로 위가 영약고인 만큼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다.”
즉, 대련장의 충격이 영약고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좀 더 확실한 촉매를 사용한다는 건가.
납득은 가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있는 프리즘 쥬얼들보단 위층의 영약들이 훨씬 비쌀 테니까.
“이것이 바로 드래곤의 재력……!”
그런 레빈포트의 모습에 로제가 감탄하고 있자 레빈포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이건 총장의 사비로 만들어진 대련장이다. 내 돈은 단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지.”
이게 전부 총장의 사비라고?
“……아카데미의 부총장이자 드래곤이라면 축적한 재산이 꽤 될 텐데?”
그런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자 레빈포트의 표정이 차갑게 변한다.
“내 재산은 장학금으로 이용되고 있지. 최근에는 어떤 악마와 하프엘프가 장학금과 영약을 쓸어가서 손실이 좀 있다고 들었다.”
……어?
“그래서, 이번 대련에는 조금 사심이 들어가 있지. 힘 조절을 하겠지만 누가 알겠는가. 중간에 실수라도 나올지.”
그거다. 분명 그거 때문에 대련을 신청한 게 틀림없었다.
“우리 특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대한 정보들은 모두 살펴봤다. 그리고 그레고리 존스, 네 항목에는 이렇게 적혀있더군.
[예상할 수 없는 전투방식, 끔찍한 외형을 이용한 정신계 공격, 비정상적인 회복력] 등…….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들이더군. 무엇보다도 끔찍한 외형이라니……. 대체 어떤 모습이기에 이런 평가가 붙었는지 기대해도 되겠지?”
설마 내 평가가 아카데미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 줄이야.
끔찍한 외형이라니……. 그래도 인간폼은 꽤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뭐랄까. 괜히 마음이 아파져 왔다.
“그, 그레고리님! 저는 변신하신 모습도 엄청 멋있다고 생각해요!”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프리실라가 양팔을 모으고 나를 향해 외친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라파엘.
“맞아. 나도 처음엔 무서웠지만, 지금은…… 멋있다고 생각하니까. 후후.”
그래도 역시 변신폼을 좋아해 주는 건 너희 둘밖에 없구나.
힐끔 로제를 바라보자 그녀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저, 저도 멋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로제는 과연 알까.
본인이 거짓말을 할 때 귀가 움찔움찔 움직인다는 사실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시선을 레빈포트에게로 돌린다.
“그래서, 대련의 규칙은?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하면 되겠나?”
“좋군, 아카데미의 규칙으로 하되 내가 제한을 가지는 쪽으로 하지. 첫 번째로는 그레고리 존스. 그대가 즉사할만한 공격, 중상을 입을만한 공격은 하지 않겠다. 두 번째, 육체의 능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은 일절 사용하지 않겠다. 세 번째. 음…… 내 신체에 상처가 나면 패배하는 것으로 하지. 어떻지?”
사실상 완전히 봐주겠다는 의사 표명. 마음만 같아선 전력을 다해 덤비라 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8성의 드래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지금은 이 호의를 받아들여 예상치 못한 반격을 해 코를 눌러주는 게 최선이었다.
“좋군. 대련이라……. 정말이지 오랜만이라 두근거리는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땅을 한번 박차는 것만으로 대련장의 반대쪽을 향해 날아가는 레빈포트.
그렇게 건너편으로 넘어간 그녀는 팔을 몇 번 휘두르고는 이내 손을 까딱거리며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긴장조차 하지 않고 있군.”
그렇다면, 시작부터 진심으로 할 수밖에.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레빈포트는 아직 내 변신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 그렇기에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갑작스러운 변신이었다.
“변신.”
레빈포트의 코앞까지 당도한 나는 주먹을 날리는 모션을 함과 동시에 변신을 발동한다.
반짝하고 퍼지는 섬광. 허나 그 와중에도 레빈포트의 눈은 움찔거리지도 않는다.
허나, 변신을 통해 갑자기 변한 주먹의 궤도까지는 계산하지 못할 터. 심지어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주먹은 총 3개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오, 이게 그 끔찍한 외형이라는 거군. 확실히, 이 정도로 소름 끼치는 외형의 생명체는 처음이야. 끔찍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군.”
우습다는 듯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내 모든 주먹을 쳐낸 레빈포트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내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말이 심하군.”
그게 당사자를 앞에 두고 할 소리인가? 괜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사실인 것을. 오히려 내게 소름을 끼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다.”
드래곤을 소름 끼치게 한 외형! 이라고 말한다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내 외형만으로 녀석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렇다면 이건 몇 점을 줄지 궁금하군.”
나는 뒤로 물러서며 레빈포트를 향해 [스킬 : 검은 늪]을 발동한다.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오른 새까만 구멍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레빈포트.
“음……? 공간계 마법? 마법도 무투가인 줄 알았는데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았───”
멍하니 구멍을 바라보고 있던 레빈포트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지며 엄청난 바람이 대련장에 일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뚫린 새까만 구멍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바퀴의 군세들.
어느새 [스킬 : 검은 늪]으로부터 약 5m 떨어진 장소로 이동한 레빈포트는 어이없다는 듯 쏟아져 나오는 바퀴들을 가리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것들을 내 머리 위에 부으려고 했다고?”
“그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오히려 색다른 경험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이런 경험은 사양이다.”
자신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바퀴들을 바라보는 레빈포트. 마침내 바퀴들이 그녀의 발에 닿기 직전, 그녀는 땅을 한번 구르는 것으로 다가오는 바퀴들을 모조리 자신으로부터 멀리 날려 보냈다.
그리고, 나는 녀석이 내게서 눈을 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스킬 : 동화)를 발동합니다.]
바퀴들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바닥에 엎드린 뒤 이번에 새로 배운 스킬 동화를 사용한 것이었다.
“흐음?”
이변을 알아챈 것인지 주변을 둘러보는 레빈포트.
“재미있군. 그래, 본인의 기척을 지우는 기술이라……. 이건가.”
보아하니 동화를 발동한 나를 바로 찾지는 못하는 모양.
이대로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 기습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후우……하아……후우……하아…….”
레빈포트가 갑자기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부풀리는 레빈포트.
……설마?
하는 생각과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대련장 전체를 크게 진동시켰다.
────!!!
드래곤 피어.
자신보다 격이 낮은 존재들에게 공포감이나 강한 존재감을 심어주는 드래곤의 고유 기술.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성대를 사용한 기술이었기에 따지기에도 애매한 기술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거기 있었군.”
“미치겠군.”
레빈포트의 드래곤 피어에 [스킬 : 동화]가 풀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뿐이랴, 드래곤 피어에 압도당한 덕분에 움직이지도 않는 세 쌍의 다리들.
결국 제대로 된 공격하나 해보지 못하고 끝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눈앞에 오랜만에 보는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특성 : 지독한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4성이 된 이후로 처음 겪는 상황.
즉, 지금 레빈포트가 행하려는 공격이 내 목숨에 위협이 된다는 소리였다.
프리즘 쥬얼로 인해 보호받고 있어 죽지는 않겠다만 데미지는 상당할 터.
아무리 지독한 생명력이 발동하더라도 강력한 공격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경기가 끝날 것이라 생각하는 가운데, 시스템 창 하나가 더 떠올랐다.
[(특성 : 지독한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지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지능 상승?
…이거,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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