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아카대공 122
* * *
[특성 : 지독한 생명력] 이 발동하며 상승한 지능. 그 때문일까? 주변의 풍경이 급격하게 느려지며 자연스럽게 눈앞에 떠오른 창에 집중하게 된다.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 공포 연소]
[설명 : 주변의 공포를 흡수한 뒤 에너지로 변환합니다.]
그야말로 간단한 스킬이었다.
주변의 공포를 내 힘으로 변환하는 스킬이라니.
그러다가 문뜩,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 대련장 밖에서 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녀석들 중 2명이 내게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프리실라와 라파엘.
이 두 명을 제외한다면 남는 인원은 로제와 아멜, 그리고 휴고와 셀루아 네갈 교관뿐.
이 네 사람의 공포로는 눈앞의 드래곤을 이기기에는 부족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드래곤의 공포는 무슨 맛일까.”
부총장. 레빈포트의 공포를 흡수하는 수밖에.
“공포 연소.”
우선은 세 사람에게서 흘러들어오는 공포를 불태우며 힘을 끌어모은다.
평소에는 그저 약간의 자양강장제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던 공포의 감정이 도핑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느낌이군.”
더욱더 느려지는 레빈포트의 몸동작.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여기에 속도를 더해주는 두 가지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르며 순식간에 레빈포트의 머리 위로 날아오름과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치며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곳이 반파된다.
“……이걸 피한다고? 기대 이상이군. 그레고리 존스.”
땅에 박혀버린 팔을 회수한 레빈포트가 공중에 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미소를 지을 때가 아닐 텐데.”
공중에서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번에 [가울의 만물상]에서 구매했던 아이템을 모두 장착했다.
고통의 가시 팔찌
기괴한 해골 반지
벌레 갑피 팔찌 등……
그렇게 총 6개의 팔에 온갖 장비를 장착한다.
이 아이템들의 공통된 특징은 단 하나.
상태 이상 공포 증폭.
실제로, 모든 아이템을 착용하자마자 아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으니 효과는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바로 내 아래,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던 레빈포트가 헛웃음을 내뱉는다.
“이 감정은……하, 공포? 아무리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 했다 하더라도 공포를 느낀다고? 내가?”
실제로 그녀의 몸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팔이 6개인 나이기에 가능한 행위.
그렇게 레빈포트에게서 흘러들어온 공포는 충만한 힘이 되어 내 몸에 깃든다.
아마도 로제가 담배를 피우며 전투할 때 이러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충만하다.
“진심으로 막는 게 좋을 거다. 레빈포트.”
[(스킬 : 화염 인챈트)를 발동합니다.]
[특성 : 탐(?)을 발동합니다.]
내 몸에 깃든 공포가 칠흑의 화염으로 변화한다. 공포를 태우며 발화하는 흑염.
“그래, 그대 역시 마계의 대공이라는 거구나! 와라! 전력으로 받아주마!”
양팔을 활짝 벌리며 나를 향해 광기 어린 웃음을 짓는 레빈포트를 바라보며, 나는 선언하듯 조용히 읊조렸다.
“바퀴벌레── 킥.”
나 스스로가 하나의 공포가 되어, 칠흑의 불기둥이 되어 녀석을 향해 내리꽂힌다.
레빈포트의 몸에 발이 꽂히는 동시에 일어난 엄청난 폭발이 대련장을 뒤덮는다.
순식간에 대련장이 반파되며 주변의 모든 것이 흙먼지로 뒤덮인다.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주변의 풍경. 그럼에도, 나는 내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승리다. 레빈포트.”
서서히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조금씩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변으로 푸른색 마나 방패를 두른 레빈포트의 모습.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 안에서 고고히 서 있던 레빈포트는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마법을 쓰면 패배로 인정하겠다 말한 것은 그대 자신이다. 그럼에도 다른 말을 할 셈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그……. 괜찮은 건가?”
“음?”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내 몸 상태를 살핀다.
대체 내 꼴이 어떻기에 레빈포트가 저런 표정을…….
“아.”
신체의 60% 정도가 사라진 내 모습은 그야말로 어떻게 살아있나 싶을 정도였다.
“어쩐지.”
눈앞에 왜 계속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을 발동합니다!] 라는 알람이 뜨나 했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털썩. 하고 눈앞이 새까맣게 물든다.
그래도 명색에 바퀴인데……. 살아남겠지.
* * *
사람이 실생활에서 정말 이런 말을 할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낯선 천장이군.”
사람은 실제로 처음 보는 천장을 보면 진짜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앗? 그레고리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확인하니 눈 밑으로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로제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오래 잠들었었나?”
내 물음에 고개를 젓는 로제.
“일어나자마자 그것부터 물으시다니……. 너무해요. 진짜.”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로제.
“부총장님이 상처 때문이 아니라 마나그릇이 과부하 되며 벌어진 일이라고 말해주셨기에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돌아가신 걸로 알았을 거라구요!”
“나는 소환수라 죽기 전에 역소환되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역소환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서 자기 소환수의 몸이 반이나 날아가는 걸 봐봐요! 제정신이 유지가 되나!”
갑자기 로제가 그렇게 소리치며 나를 끌어안는다.
“다시는 그런 모습 보여주지 말아요! 심장 아프니까!”
내 몸에 안긴 로제의 몸에서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담배의 향이 짖게 풍긴다.
대체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워 댄 것인지…….
달라붙어 있는 로제의 몸에서 미약한 떨림이 느껴지며 목 옆부분이 축축해지는 게 느껴진다.
지, 진짜로 운다고? 그 로제가?
그와 동시에 머릿속의 생각이 뒤죽박죽 뒤섞이기 시작한다.
대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위로라도 해줘야 하나? 아니, 나 때문에 우는 건데 내가 위로를 해도 되는 걸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다 이내 떠오른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왼손으로는 로제의 등을 토닥거려주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게 정답이었던 걸까? 로제의 몸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떨림이 점차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정답이니까 이번만 봐 드릴게요.”
내 품속에 안긴 탓에 뭉개진 발음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로제.
다행히 정답을 고른 모양이었다.
이후 로제가 조금 진정된 후, 내가 쓰러지고 나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처음에는 다들 놀랐어요. 그레고리님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요.”
내가 쓰러진 직후, 다른 사람을은 신체의 반 이상이 결손 된 내 모습을 보고는 놀라 달려왔다고 했다.
로제는 완전히 흥분해서는 부총장을 공격하려고 했고 이를 막아선 것이 바로 프리실라와 라파엘이었다고 했다.
“갑자기 저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 거예요. 진정하라고. 그레고리님이 역소환 되지 않은 걸 보니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게 확실하다고.”
그리고 부총장 역시 무척이나 당황하여 내 몸의 상태를 살폈다고 한다.
“그러면서 뭐? 머리가 잘려도 일주일은 살 수 있는 생명력? 그게 말이 돼요? 머리가 잘려도 일주일 동안 살 수 있는 생명체가 대체 어디 있다고!”
그때 당시의 상황이 다시 떠올랐는지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투덜거리는 로제.
드래곤인 레빈포트가 그렇게 말했다면 사실상 진실이겠지만…… 여기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간 로제가 토라질 것이란 예감이 들어 참았다.
“그다음부터는 별거 없었어요. 그레고리님의 몸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고, 부총장님이 그레고리님을 보건실로 옮겨주셨거든요.”
공주님 안기 자세로.
“……공주님 안기 자세?”
“네. 그 상태의 그레고리님을 옮기는 게 힘들었거든요. 뭐랄까…… 평소보다도 다가가는 게 힘든 힘이 느껴졌고 할까요.”
아무래도 내가 기절한 이후에도 아이템의 효과 때문에 상태 이상인 공포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라파엘님이랑 프리실라가 본인이 데려가겠다고 때를 엄청 써댔지만…… 부총장님이 본인이 저지른 일인 만큼 본인이 책임지신다는 거 있죠. 그래도 끝까지 본인들이 옮기겠다고 했는데 부총장님이 한 번 째려보니 다들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그렇게, 레빈포트는 바퀴폼인 나를 끌어안고 보건실까지 왔다는 모양이었다.
그 과정에서 온몸의 손실 난 부분이 수복되고 난 후에서야 변신이 풀렸고, 말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아직 특별 수업 중인 건가?”
내 물음에 로제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레고리님의 복수를 하겠다면서 라파엘님이 대련을 신청한다고 하셨는데…… 응?”
그때 벌컥 열리는 보건실의 문.
그곳에선 라파엘을 안고 있는 레빈포트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 왔네요.”
“……그렇군.”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