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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23화 (123/169)

〈 123화 〉 아카대공 ­ 123

* * *

“그 망할 도마뱀! 옛날이었으면 실컷 두들겨 패줬을 텐데!”

현재, 완전히 떡실신이 된 모습을 침대에 누운 채 억울하다는 듯 고래고래 고리를 치는 천사가 지금 내 옆에 있었다.

대천사 라파엘.

레빈포트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기절한 채 이곳에 실려 온 그녀는 방금 막 정신을 차리자마자 레빈포트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헤츨링 때만 해도 천사님! 천사님! 하고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

진 것이 그렇게도 억울한 것일까. 침대보까지 부여잡고 부르르 떠는 모습은 한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그나저나.

“레빈포트가 헤츨링일 때 천사님 천사님 하면서 쫓아다녔었다고?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거냐. 라파엘.”

“그레고리?”

방금까지만 해도 부르르 떨리던 라파엘의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질 만큼 차분해진다.

“아무리 자기여도 물어봐서는 안 되는 게 있어요?”

“미, 미안하군.”

내가 실수를 했구나…….

“응, 다시는 그러면 안 돼?”

“……알겠다.”

“확실히, 그레고리님이 잘못하셨어요! 레이디의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구요!”

내 침대 옆에 앉아 부스럭부스럭 빵을 먹고 있던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까지 끝난 마당에 끼어든다.

얘는 또 왜 이럴까. 라는 생각으로 힐끔 바라보았더니 우물우물 양 볼 한가득 빵을 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응? 드릴까여?”

“……됐다.”

“맛있는뎅…….”

축 처지는 기다란 두 귀 그럼에도 로제는 계속해서 빵을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파엘. 너는 레빈포트에게 어떻게 당한 거지?”

“나? 음…… 별거 없었지. 때리려고 하면 피하고, 다시 때리려고 하면 반격당하고. 그렇게 20분은 맞았나? 내가 계속 회복하면서 공격하니까 그 도마뱀이 그러더라고? ‘이래서는 안 끝나겠군…….’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진심을 다해서 나를 후려치는데……. 정신을 차리니까 프리실라가 부축해주고 있었지 뭐야?”

결국, 계속 두들겨 맞았다는 거구나.

당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던 것일까. 라파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운 것이 보였기에 재빨리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로제. 내일이면 델리니아로 가야 하는데, 짐은 준비했나?"

그렇다.

내일은 주말의 시작. 데킬라와 함께 델리니아에 가기로 한 날이었던 것이다.

"네! 담뱃잎은 충분해요!"

"……그런 거 말고."

"어……. 안 챙겼는데요?"

설마 했지만 설마 짐을 하나도 안 챙겼을 줄이야…….

"그레고리님? 로제? 이번 주말에 델리니아에 가시는 건가요?"

라파엘의 옆에서 묵묵히 그녀의 칭얼거림을 들어주고 있던 프리실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네! 이번에 그레고리님이랑 같이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어요!”

“아아, 로제의 본가는 유글리아 가문이었죠. 델리니아라…….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엄청 아름다운 곳이었던 기억이 있어요.”

“네?! 프리실라도 델리니아에 왔었던 적이 있어요?”

“네……. 일단은 제국의 황녀였으니까요. 외교적인 문제로 몇 번 갔었죠.”

과거 로제가 지금의 델리니아가 옛날과 비교해 외교에 적극적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설마 프리실라도 델리니아에 가봤을 줄이야.

“서머니아에서 델리니아까지는 거리가 꽤 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그거라면 파이몬에게 나이트메어를 빌리기로 했으니 걱정 없다.”

아마 파이몬의 나이트메어라면 한나절 안에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나의 말에 프리실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하하하’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이트메어라면 파이몬님이 아끼는 소환수 아니었나요? 뭔가 그레고리님이랑 로제한테는 너무 쉽게 빌려주는 느낌인데요…….”

“헤헤, 파이몬님이랑은 친구니까요!”

부디, 델리니아에 가서는 저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엘프들의 땅에 가서 ‘제 소환수는 악마 대공이고 친구들도 악마 대공이에요!’라고 말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보건실 내부에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보충수업이나 방과 후 활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오후 일과가 모두 끝났다 알리는 종소리였다.

“아! 끝났네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로제.

“……여기서 왜 계속 기다리나 싶더니, 특별수업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런 거였나?”

“헤헤……. 프리실라도 동의했거든요.”

로제의 말을 듣고 프리실라를 바라본다.

우등생의 표본인 프리실라가?

그러자 뻘쭘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는 프리실라.

“……부총장님의 수업은 힘드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멋쩍다는 듯이 헤헤 웃는 프리실라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부총장의 수업이 조금 힘들긴 하지.”

라파엘이 잔뜩 처맞고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돌아가지. 로제.”

침대에서 일어서며 신발을 신자 로제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어, 몸은 괜찮으신가요?”

“보다시피. 멀쩡하다.”

사실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하며 진작에 완벽히 치유된 상황이었지만 정신적으로 지쳐서 쉬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모두 괜찮아진 상황이기도 하고.

“자기가 가면 나도 가야겠다. 프리실라. 우리도 갈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침대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는 라파엘. 나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라파엘은 그대로 프리실라를 껴안으며 싱긋 웃는다.

“네, 그러죠. 로제. 같이 갈까요?”

“네!”

오늘도 이렇게, 험난했던 아카데미의 하루가 끝이 났다.

* * *

“……로제. 그레고리. 약속은 지키는 거겠지?”

“그럼요! 당연하죠!”

“우리에게도 너의 합류는 좋은 일이니,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서머니아 시내에 위치한 파이몬의 술집 ‘파리와 염소’.

로제의 담뱃잎에서 나는 냄새를 품은 연기가 천천히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파이몬의 방에서 우리는 델리니아에 가기 하루 전 나이트메어를 빌리기 위해 파이몬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희니까 빌려준다는 걸 잊지 말도록.”

파이몬과 약속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델리니아에서 선물을 잔뜩 사 올 것.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파이몬과의 계약이었다.

“그런데, 파이몬님은 정말 저 같은 소환사랑 계약해도 괜찮으신 거예요?”

파이몬 정도 되는 악마라면 중간계에 나와 있는 소환 가능한 인물 중 최상위에 속하는 소환수였다.

그런데 다른 훌륭한 소환사들이 아닌 자신과 계약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로제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영감과 그레고리. 너희 둘만 계약하고 제멋대로 강해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하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라며, 파이몬이 이어서 말한다.

“그레고리와 영감이 선택한 소환사가 아니더냐. 너 정도는 되어야 나의 소환사로 걸맞다고 할 수 있지.”

파이몬이 로제와 계약하고자 하는 이유는 타당했다. 다른 대악마들은 로제와 함께 계약자 없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4성을 돌파하려 하고 있는데, 본인 혼자 4성에 머문다? 아마 나라도 주변에서 그러고 있다면 참지 못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기르고 있는 로제, 내가 기르고 있는 소환사였다.

실패할 리가 없지 않은가.

“파이몬니임……!”

파이몬의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로제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파이몬님이 최고예요! 안아줄게요!”

그러면서 갑작스레 파이몬을 와락 끌어안는 로제.

“가, 갑자기 끌어안다니! 이게 뭐하는 짓이냐!”

로제의 품에 안겨 바둥거리는 파이몬. 한 손에 들고 있는 담뱃대 때문에 함부로 로제를 떼어낼 수도 없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파이몬님 최고!”

“으윽……! 답답하다!”

“그래도 최고예요!”

“그마아안……!”

로제가 좋아하니 됐나.

“그레고리!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빨리 로제 좀 때어줘라!”

“두 사람 모두 사이가 좋아 보이니 좋군. 로제, 더욱 세게 끌어 안아주도록.”

“네!”

“아니 잠깐……! 됐다. 마음대로 하거라…….”

결국 로제에게서 벗어나기를 포기한 파이몬이 체념한 얼굴로 몸을 추욱 늘어뜨린다.

그럼에도 활짝 웃는 얼굴로 파이몬을 끌어안고 있는 로제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고 만다.

게임 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파이몬은 언제나 든든하네요! 최고예요!’

재앙과의 전쟁 중.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상처 입은 파이몬을 치료해주며 와락 끌어 안아주었던 엘프, 릴리.

‘다른 아해들이 보고 있는데…… 놔주거라. 릴리!’

‘싫어요! 끌어안고 있을 거예요! 파이몬이 고생한 만큼! 안아줄 거예요!’

아마, 지금의 파이몬이 로제를 힘으로 내치지 않은 것은 나처럼 그때 당시를 떠올리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저랑 꼭 계약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파이몬님은 못 넘겨요!”

“알았으니까아……. 알았으니까 그만 좀 놔 줘어…….”

……맞겠지? 응, 맞을 거야. 아마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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