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델리니아 입성기 3
* * *
“……언니?”
로제를 바라보고는 멍하니 서서 팔을 늘어뜨리는 상대. 경황이 없어 미처 살피지 못했지만, 상황이 조금 진정되고 나서 보게 된 상대의 얼굴은 정말이지…….
“닮았군.”
로제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아니, 언니가 왜 이런 사악한 무리랑 같이 있는 거예요?! 서, 설마 언니가 사악함에 물든 건……!”
“엘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소환수인 그레고리님께 무례하잖아!”
“……네? 소, 소환수요? 이 괴상하게 생긴 게요?!”
“……괴상하게 생겼다니, 너무하는군.”
과거의 나였다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만한 발언. 하지만 이쪽 세계로 넘어온 지 꽤 시간이 흐른 탓일까.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당신은 보는 것만으로 사악한 기운이……!”
“그야 종족이 악마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아, 악마? 저, 저희 언니가 지금 악마를 소환수로 두고 있다는 건가요?! 그것도 이렇게 끔찍하게 생긴 악마를?!”
아무리 그래도 2번이나 이런 소리를 들으면 조금은 쓰라린데…….
아무래도 이러다간 계속 내 외견에 관한 이야기만 나올 것 같아 우선 변신을 해제하기로 했다.
잠깐의 반짝이는 섬광. 이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내 모습을 본 로제의 동생, 엘라의 표정이 변한다.
“그, 그 모습은 대체 뭔가요?!”
“내 또 다른 모습이지. 왜, 본래의 모습 쪽이 더 좋겠나?”
“아, 아니요! 그대로인 편이 더 낫습니다. 이상한 모습과 인간의 모습.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악마라니 이게 대체…….”
“후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소환수 님이니까! 어때, 오랜만에 본 언니가 조금은 달라 보여?”
콧대를 잔뜩 높인 채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로제. 너무나도 당당한 그 목소리에 지금껏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엘라가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풀었다.
“……저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세뇌당하거나 하지 않은 저희 언니가 맞네요.”
“내가 평소에 어때서!”
“……로제가 좀 특별하긴 하지.”
“그렇죠?”
“왜 둘이 그런 거로 통하는 건데요?!”
아마 로제를 주변에서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정작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나저나, 언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저 악마 소환수는 대체 뭐고, 뒤에 저 해골 말이랑 다른 사람들은 대체 뭐고요?”
지금껏 후드를 쓰고 있던 엘라가 후드를 벗으며 로제를 향해 묻는다.
뿌리 부근이 까만 로제와는 달리 완전히 노란색을 띠고 있는 자연스러운 금발.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엘프의 외견과 매우 흡사했다.
“내가 우리 집에 오겠다는데, 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정말로 별것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로제. 그 모습에 엘라는 이마를 쥐어 잡고는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요, 언니는 오실 수 있죠. 저기 저분도 언니의 소환수니까 그렇다고 쳐요. 그렇다면, 저기 여성분과 조그마한 해골, 그리고 해골 말은 안 되죠!”
“왜 안돼?”
“그야 외부인이니까요! 심지어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수의 근처라니. 이곳에 오는 길에 다른 사람이라도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요?”
“응? 만났는데?”
“……네? 누, 누굴요?”
“유켈라이네 코찔찔이 있잖아.”
“아아, 코스터요? 그러면 별일 없겠네요.”
“그치?”
“아니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결국 외부인을 데려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완강한 엘라의 태도에 결국 양손을 불끈 쥐고 외치는 로제.
“외부인 아니거든! 내 친구야!”
그런 로제의 외침에 엘라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네? 어, 언니의…… 친구요?”
믿지 못하겠다는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데킬라를 바라보는 엘라. 그 시선을 느낀 데킬라는 엘라를 바라보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소환사 아카데미에서 로제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데킬라 크로프트입니다.”
“아, 네! 로제 언니의 동생인 엘라 폰 유글리아에요. 잘 부탁드려요. 어……. 네크로멘서. 맞으시죠?”
“언데드 계열의 소환수들을 주로 다루고 사령 계통의 마법을 사용하니 네크로멘서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아아, 그러면 저 해골마도……?”
“저건 로제님이 빌려오신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저 해골말은 로제 언니가…… 언니?! 악마에 이어서 언데드도 다루시는 거예요?”
“아니? 저건 파이몬님한테 빌려온 건데.”
“……파이몬님?”
“있어. 나랑 친한 대악마님!”
“대, 대악마? 제가 아는 그 마계 대공 파이몬은 아니겠죠?”
“맞는뎅.”
“아니,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대악마랑은 대체 왜 친한 건데요?!”
“음……. 친구니까?”
“……대체 아카데미에 입학하시고 나서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거예요.”
몸을 바들바들 떨며 로제에게 다가가는 엘라. 그녀는 로제의 양어깨를 붙잡고는 처절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지만 당사자가 저렇게 말한다면 굳이 할 말은 없었다.
“하아, 언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악마와 친구 관계라니. 부모님께는 절!대! 로 말씀드리지 말아요. 말했다간 부모님들도 놀라서 뒤로 자빠지실 거라고요. 알겠죠?”
“어……. 그게…….”
“네. 또 뭐가 있는데요? 집에 도착해서 말하지 말고 지금 당장 다 말해요.”
“나랑 계약하신 분 중에 대악마이신 마르바스님이라고 있는데, 그것도 말하면 안 되나?”
“……네? 농담이죠? 마르바스라니. 제가 아는 그 마르바스. 재앙을 베었다는 검성 마르바스가 맞아요?”
“응!”
“……언니가 무슨 마왕이에요?! 무슨 대악마랑은 친구고! 다른 대악마랑은 계약관계고! 이러다간 저기 있는 저 악마분도 대악마라고 하시겠네요?”
응? 나?
“아. 소개가 늦었군. 네 예상대로 마계의 대공인 그레고리 존스다.”
“하, 돌겠네. 진짜.”
* * *
“여기가 저희 가문이 다스리는 영토. 유글리아에요.”
마을에 도착한 엘라가 숨을 돌린 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숲의 한 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구획 별로 나누어져 있는 농업구역들. 그곳에는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농작물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별로 멀지 않은 곳에는 돌과 나무를 이용해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 위치해 있었다.
“여기가……. 엘프들의 마을.”
그 아름다운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데킬라. 그리고 그 옆에는…….
“습! 하! 습! 하! 확실히 고향 공기가 좋긴 좋네요!”
열심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고향에 돌아왔음을 기뻐하는 로제가 있었다.
“확실히, 엘프들의 마을이라 그런지 조금 색다른 느낌이군.”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졌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 밭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낙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야 하는 거였지만…….
로제에게 진실을 들은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 일하는 사람들이 좀 늘었네?”
“네, 요즘 들어 델리니아에 침입하려고 하는 자들이 꽤 많았거든요. 결국은 다 저렇게 됐지만요.”
저들은 모두 엘프를 잡으러 왔다가 오히려 잡혀버린 노예들이었으니까.
“델리니아의 침입자들 말입니까……?”
연유를 모르는 데킬라는 그런 엘라의 말에 의문을 표하고 그 옆의 데모닉은 과거에 릴리에게 들은 게 있는 것인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서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언니의 친구분과 릴리님의 소환수셨던 언데드분이니까 여기까지 모시고 온 거예요.”
이곳으로 오는 길, 나는 과거 데모닉이 릴리의 소환수였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덕분에 데모닉에 대한 적의심도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아아! 저기 저희집도 보이네요! 그레고리님! 데킬라! 저기가 저희 집이에요!”
주변을 둘러보던 로제가 환하게 웃으며 마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로제가 가리킨 곳에는 다른 건물들보다도 더욱 규모가 큰 건물이 한 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저기가 바로 저희 가문이 관리하는 세계수! 릴리님의 묘지는 저기 세계수의 뒤쪽에 있어요.”
다음으로 가리킨 장소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밭들의 중앙에 떡하니 서 있었다.
다른 나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나무.
말로만 듣던 세계수를 이렇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무척이나 신비한 광경이었다.
“세계수의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건가?”
“네! 어른들이 그래야 영약이 잘자란다나? 그러더라구요? 그렇지? 엘라.”
“언니! 그건 외부인에게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인데요…….”
“엉? 그래? 뭐 어때! 다들 짐작은 하고 있을 텐데.”
로제의 무책임한 답변을 듣고는 이마를 부여잡는 엘라.
하지만 로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 있는 제 동생이 바로 세계수와 교감을 할 수 있는 엘프인 세계수의 무녀예요!”
“자, 잠깐만요! 어, 언니!”
로제의 말에 이마를 잡고 있던 엘라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갑자기 이어진 자신의 소개가 부끄러웠던 것일까? 완전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저택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그……! 우선 모두 집으로 모실게요. 부모님께 손님들이 오셨다고 보고는 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우리보다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엘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제가 화들짝 놀란다.
“야! 같이 가!”
“언니는 손님들을 데리고 오셔야죠!”
“아, 맞다!”
그렇게 말하며 호다닥 엘라의 뒷모습을 쫓는 로제.
“……대체 누가 언니인지.”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로제의 동생 엘라.
그녀는 로제보다도 훨씬 어른스러운 동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