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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28화 (128/169)

〈 128화 〉 델리니아 ­ 2

* * *

“와! 여기가 저희 집 정원인데…… 대박이네요? 개쩐다……!”

자기 집 정원에 본인이 데려와 놓고는 스스로가 감탄하는 로제. 뒤를 돌아보니 엘라가 ‘대체 뭐하는 엘프인 거지?’라는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공감은 한다만.

“엘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처음 보는 식물이 잔뜩인데!”

정원을 둘러보던 로제가 도도도 달려와 엘라에게 묻는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엘라.

“언니가 떠나신 지 거의 반년이 다 되어가니 당연한 거지요. 부모님께서 언니가 타지에 있으니 보약이라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심으신 게 이렇게 됐어요.”

“에에엑?! 이게 다 내꺼라고?!”

“……아니, 다 언니 거라곤 안 했는데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자매를 뒤로하고 정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 옆에서 데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진짜 어이가 없을 정도군요. 어떻게 한 가문의 정원에 영약들이 잡초처럼 곳곳에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앞에 핀 꽃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데킬라. 그녀의 앞에 있는 꽃은 백진달래라 불리는 영약으로 게임에서 경험치를 올리는 데 사용되던 아이템이었다.

“……포기해라. 포기하면 편하다.”

로제의 기행이나 믿을 수 없는 배경 같은 것은 계속 보아오지 않았던가.

이미 나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참이었다.

“그런데 언니, 갑자기 정원에 나오자고 한 거 보니 담배 피우려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어라? 어떻게 알았어?”

“몸에서 나는 향기가 옅어지는 걸 보니 슬슬 때가 됐구나 싶어서요.”

“헤헤, 들켰네.”

로제는 그렇게 말하며 파우치에서 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진 파이프에 세계수의 잎을 끼워 넣는 모습 마침내 준비를 모두 끝낸 로제가 파이프를 입에 물고는 힐끔 데킬라를 바라본다.

“데킬라양! 데킬라양도 지금 피워도 돼요. 우리 집 정원은 흡연공간이거든요.”

“아, 그런가요?”

“네! 주변 풀이나 꽃들이 냄새를 가려줘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여기서 담배를 피우시곤 했어요.”

확실히, 정원에서 풍기는 이 정도의 냄새라면 어떤 담배를 피워도 순식간에 가려질 것 같았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헤헤. 네!”

그리고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엘라.

“……진짜 어른들이시네요.”

“후후, 엘라는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금지야!”

엘라가 로제보다 한살이 어리다고 했던가. 이쪽 세계의 기준으로 엘라의 나이는 18세였기에 19세인 로제와는 달리 어른 취급을 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언니는 어릴 때부터 약이라면서 담배를 폈잖아요!”

“어쩔 세계수~”

“또! 이상한 말 하신다!”

“하지만 진짜 약인 걸 어떡해? 너도 몰래몰래 내꺼 같이 피웠었잖아?”

“윽! 그걸 여기서 지금 말하면……!”

“너도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렴? 언니는 지금 아카데미도 다니는 성.인이니까.”

“이익……! 어쩔 세계수예요!”

“응 저쩔 드래곤.”

“이이이익……!”

둘은 정말 사이가 좋구나……. 그렇게 멍하니 둘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을 때, 정원 쪽으로 누군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로제 아가씨. 엘라 아가씨. 그리고 손님분들. 주인님께서 여러분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셨다고 합니다.”

단정한 집사복 차림의 엘프. 그의 부름에 로제가 양팔을 번쩍 들며 외친다.

“와! 밥이다! 빨리 밥 먹으러 가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로제. 그런 로제를 바라보는 엘라의 표정은 언제 싸웠냐는 듯 금세 웃는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이 자매.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 * *

“차린 건 없지만 부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엘프 집사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유글리아 저택에 위치한 식당으로 다른 귀족들의 식당과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가 무척이나 많았다.

예를 들자면 통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의자와 나무를 통째로 가공한 듯한 식탁. 그리고 정령을 이용한 등불까지.

그야말로 유글리아 가문이기에 가능한 광경이구나 싶었다.

“백진달래 무침과 만드라고라 볶음. 그리고……십년매화꽃전이라니, 제국의 황족이라도 이만한 식탁은 커다란 행사 때나 먹을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완전히 넋을 놓아버린 데킬라. 그야말로 진귀한 식탁이라 할 수 있는 이 자리에서 로제는 양손에 포크와 스푼을 들고는 볼을 빵빵하게 불리고 있었다.

“나는 고기가 먹고 싶운뎅…….”

“어머, 저기 고기가 있지 않니? 우리 로제도 많이 먹으렴.”

싱긋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민트였지만 로제는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고기보다 가지랑 버섯이 더 많잖아요! 저건 고기볶음이 아니라 가지 버섯볶음이라는 표현이 맞다구요!”

그런 로제의 투덜거림에도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던 민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어머, 우리 로제가 아카데미에 가더니 본인의 의사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갑자기 여기서 칭찬을 한다고?

“그럼 먹지 말고 당장 밖에 나가서 사냥이라도 해오지 그러니?”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무서운 말을 내뱉는 민트. 이에 잔뜩 겁에 질린 로제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니에요! 와아아~ 집밥이라니, 정말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이쁘기도 하지.”

……이게 유글리아 가문의 교육방식? 사람이 웃으면서도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며 나 역시 식탁 위로 손을 움직였다.

“아, 데모닉님께는 차려진 식사를 하시지 못할 것 같아. 저 나름대로 준비했습니다만. 괜찮으십니까?”

민트의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발렌타인이 데킬라의 옆에 앉아있던 데모닉에게 묻는다.

달그락── 달그락──

해골뿐인 데모닉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사기(死?)를 폴폴 풍기고 있던 검은색 버섯으로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검은 사신 버섯’이라 불리는 영약으로 언데드가 섭취하면 보너스 효과가 붙는 영약일 터였다.

“데모닉님께서 너무나도 만족스럽다며 감사를 표하십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입으로 버섯을 씹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사기를 몸으로 흡수하는 데모닉. 그의 코가 있어야 했을 구멍으로 들어간 검은 연기는 이윽고 그의 뼈에 달라붙으며 서서히 흡수되어가고 있었다.

“그렇지. 로제,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는 많이 사귀었니?”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던 민트가 고기버섯가지볶음에서 고기만 쏙쏙 빼먹고 있는 로제를 바라보며 묻는다. 이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떠는 로제.

“치, 친구요? 그, 그럼요! 친구도 엄청 많고 엄청 강한 소환수랑도 계약했어요.”

이번엔 로제의 말을 들은 발렌타인이 흥미롭다는 듯 묻는다.

“강한 소환수? 그래, 저기 계시는 그레고리님 말고 다른 소환수가 더 있는 거니?”

“그럼요! 지금 아카데미에 가면 마르───”

“──언니이이! 고기 더 드시지 않을래요?! 제 것 좀 드세요!”

잔뜩 신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로제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로제의 그릇에 가지와 버섯을 잔뜩 가져다 놓는 엘라.

“야! 이건 고기가 아니라 버섯이랑 가지잖아!”

“어머 그러네요! 조금만 기다려요. 고기도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던 엘라가 조심스레 로제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니의 소환수에 대한 이야기는 부모님께 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로제의 소환수들이 전부 악마이고 마왕인 점을 걱정해 이곳에 도착하기 전 엘라가 부탁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아이, 참! 고기 더 드세요!”

“이건 버섯이라고!”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던 민트는 뭔가 알아챘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짓고는 시선을 데킬라에게로 옮겼다.

“그렇지, 데킬라양. 음식은 입에 맞으신가요?”

“……네. 너무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째서 데모닉님과 함께 할머님의, 릴리님의 묘소에 들리려고 하시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민트의 질문을 받고 데모닉을 바라보는 데킬라. 이에 데모닉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킬라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민트를 바라본다.

“……데모닉님께서는 재앙을 물리친 뒤,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한 나머지, 깊은 잠에 드셨고 그 때문에 릴리님께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늦게라도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님께서도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데모닉 경께서 마을에 있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역소환이 되시면서까지 재앙의 추종자들을 막아내셨다고…….”

데모닉의 마지막 인연 이벤트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분명, 과거 자신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마을의 아이들을 지켜내는 장면이었지.

실제로 커뮤니티에서도 갓모닉이라며 찬양할 때는 무조건 그 이야기를 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데모닉경과 데킬라양이 어째서 할머님의 묘소에 가려는지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방금전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더군요.”

어두워진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민트.

“사실 얼마 전, 핼러윈이 발생하며 릴리님의 묘소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이 꽤 고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벌써 핼러윈이 발생할 시기였어요?”

핼러윈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로제. 엘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묵묵히 민트와 로제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핼러윈입니까?”

“예,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니까요.”

핼러윈.

지상에 남아있는 죽은 자들이 사후세계로 넘어가기 전 벌이는 축제로 쉽게 말하자면 언데드들이 때로 뭉쳐서 돌아다닌다는 소리였다.

사실상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사건. 하지만 대략 짐작이 가는 이유는 있었다.

“세계수를 통해 성불하려는 언데드들이 모여든 거군.”

“네, 정확하세요.”

세계수는 일종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신들에게는 죽은 자를 성불시켜줄 만한, 사후세계로 넘어가게 해줄 만한 힘이 잠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 핼러윈의 종착지는 언제나 신성력이 잔뜩 있는 땅인 만큼 자주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유글리아의 병사들을 파견하여 도와드리고 싶지만……. 이번 핼러윈의 경로가 마을과 겹치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의 언데드들은 세계수의 근처에만 가도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을 농장 관리에 투입한 상황입니다.”

즉, 유글리아 가문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들에게 핼러윈은 그저 건들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사라지는 재앙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발렌타인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데킬라와 데모닉을 바라본다.

이에, 물을 한 모금 마시는 데킬라. 이내, 그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무표정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네크로멘서입니다. 그리고 데모닉님의 소환사이지요. 그리고, 어디까지나 저와 데모닉님의 일이었으니 유글리아 가문의 도움을 받았다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저에게 있어선……”

핼러윈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데킬라의 말이 맞다는 듯 데모닉이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후후, 데킬라.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유글리아 가문의 최고 전력인 제가 같이 가드릴 거니까요!”

“……로제가요?”

“네! 친구끼린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엘라가 말한다.

“누구 맘대로 언니가 유글리아 가문의 최대 전력이에요?!”

“응? 맞잖아. 나랑 계약한 분들만 해도 읍읍──!!!”

“맞아요! 언니 말이 맞아요! 언니가 최고 전력이에요!”

……빠른 인정이구만.

그리고, 지금껏 데킬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죠. 비록 병사는 보내드리지 못해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엘라?”

“……네?”

“네가 언니와 언니의 친구분을 도와드리렴. 할 수 있지?”

찡긋. 엘라에게 윙크를 날리며 이야기하는 민트. 이에 엘라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쩔 수 없죠. 언니만 보냈다간 무슨 사고를 칠 줄 모르니까요.”

“내가 무슨 사고를 친다구!”

“언니가 예전에 담배 피운다고 밭 태워 먹은 건 생각 안 나요?!”

“윽……!”

“아무튼! 어머니의 말씀이니까 저도 같이 갈 거예요.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데킬라님?”

“얼마든지요.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저는 로제의 친구니까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데킬라. 그 대답에 엘라의 귀가 움찔하고 움직였다.

“어머, 우리 엘라에게 언니가 한 명 더 생겼네?”

“어, 어머니!”

“엘라 부끄러워하지 마~ 언니의 친구이니 언니라고 부르는 건 당연하다구? 자, 데킬라 언니! 해봐! 데킬라 언니!”

“그, 그만!”

점점 붉어지는 엘라의 얼굴.

“어. 언. 니~”

“으아아! 어쩔 세계수!”

그렇게, 우리의 저녁 식사는 어쩔 세계수를 외치며 도망치는 엘라와 함께 마무리되고 말았다.

“재미있군.”

이렇게 화목한 가정에서 즐긴 저녁 식사라서 그런 걸까?

평소보다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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