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30화 (130/169)

〈 130화 〉 델리니아 ­ 4

* * *

회의를 마친 뒤 로제와 함께 방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엘라가 내게 따로 방을 준다고 했지만, 로제가 ‘응? 그레고리님이랑은 원래 같은 방을 쓰니까. 굳이 안 줘도 되는데?’라고 거절을 하고 말았고 그 때문에 또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어, 언니랑 그레고리님이 같은 방을 썼다고요?! 지금까지 계속?! 대체 밖에서 뭘 하고 다닌 거예요!’

엘라에게는 아직 소환사와 소환수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기에 나는 ‘심상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카데미에서도 같은 호실을 쓰긴 하지만 방은 따로 사용하고 있다고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결국 같이 자는 건 아니라는 거네요……. 언니는 본인이 유글리아 가문의 장녀라는 사실을 좀 더 생각해야 해요!’

결국 로제의 옆방에 배정받게 된 나는 편한 모습으로 있기 위해 바퀴벌레의 모습으로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좋군…….”

마치 휴양지에 온 느낌이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편백나무의 냄새와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의 소리. 그리고 오로지 나 혼자서 쉴 수 있는 방.

이렇게 평화롭게 누워서 쉬던 것이 대체 얼마만 인지 몰랐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이대로 누워있고 싶은데.”

하지만 결국 내일은 핼러윈이라는 강대한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현실.

기왕 이런 세계로 보내줄 거면 재앙이 봉인되고 평화로웠던 시절로 보내주지, 왜 굳이 재앙이 있는 시점에 이곳에 오게 되었단 말인가.

아니, 그렇기에 이 시기에 내가 온 것일까.

평소라면 하지도 않았을 생각을 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레고리님! 마을에 가요!”

평화를 깨는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어, 언니! 노크는 하고 들어가야죠!”

“괜찮아~ 그레고리님은 평소 이 시간에 침대에서어어아아아아아악?!!!”

“무, 무슨 일이에요 언니이이이이익?!”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본 두 자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아앗, 그레고리님이시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들어서는 로제.

“정말, 어두운 곳에서 그레고리님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아무래도 이쪽이 본 모습이다 보니 이 모습이 편해서 말이다.”

아이들이 왔기에 다시 인간폼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적응하기 힘들다는 듯 밖에서 멍하니 나와 로제를 바라보고 있는 엘라.

“……뭔가, 언니는 익숙해 보이시네요. 저는 진짜 기절할 뻔했는데.”

“히히, 내 소환수님이니까.”

“……그러는 너도 날 처음 본 날에 기절을 하지 않았나. 연속으로 3번 정도 기절했었지 아마?”

“그, 그건 옛날 일이잖아요!”

옛날이야기를 엘라의 앞에서 말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와 팔을 방방 젓는 로제.

“아무트은!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에요! 우리, 마을에 가요!”

다시 이곳에 온 목적이 떠오른 것인지 방에 들어오며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는 로제.

“마을이라니, 유글리아의 마을을 말하는 거냐?”

“네! 핼러윈 축제에요!”

“……핼러윈 축제?”

아, 생각났다.

핼러윈 축제.

핼러윈의 무리가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그 도시의, 마을의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

그게 바로 이쪽 세계의 핼러윈 축제였다.

다만, 내가 놀란 부분은 다른 것이었다.

“엘프들도 핼러윈 축제를 하나?”

핼러윈 축제라고 한다면 보통 인간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나 하는 축제였을 터.

엘프들이 핼러윈 축제를 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네, 맞아요.”

이것에 대한 대답은 로제의 뒤에 있던 엘라가 말해주었다.

“본래 엘프들에겐 핼러윈 축제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릴리님이 다른 가문의 가주들을 붙잡고 핼러윈 축제의 장점에 대해 구구절절 설득을 했다고 해요. 이에 가주들 역시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사고를 방지한다는 취지를 듣고 동의를 했다고 하고요.”

어릴 때 어머니가 그렇게 설명해 주셨죠.

그렇게 이야기 하는 엘라의 모습에 로제는 머리를 긁적이며 ‘엥?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나?’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릴리의 설득이라…….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마침 밖의 해도 저물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슬슬 모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언니와 함께 온 그…… 데킬라 언니와 데모닉님도 같이 가기로 하셨습니다.”

아직 데킬라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이야기하는 엘라.

다른 아이들도 모두 간다는데 여기서 나는 가지 않겠다고 초를 쳐서는 안 되겠지.

“재미있겠군. 지금 바로 나가면 되나?”

자리에서 일어서며 묻자 로제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로제 그리고 엘라와 함께 1층 로비로 나가는 길, 엘라가 힐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그레고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궁금한 거?”

“네. 방금전 방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있었던 거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평소에 전투가 벌어지거나 하면 그 모습으로 싸우시는 건가요?”

“아, 그거 말인가.”

아무래도 처음에 나와 마주쳤을 때도 그렇고, 방에서도 바퀴폼으로 있던 걸 봐서 그런지 그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그 모습으로 싸우지.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뿐이에요. 그런 모습으로는 대체 어떻게 싸울까? 하는.”

“그런가.”

확실히, 나라도 궁금할 거 같긴 한데…….

“내일이면 질리도록 보게 될 거다.”

“그러겠죠?”

그렇게 잠깐 대화를 하는 동안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먼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데킬라와 데모닉의 모습이 보인다.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은 데킬라까지는 납득이 되었다. 외부인인 그녀의 신분을 보여줄 만한 물건은 아카데미의 제복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데킬라. 데모닉은 왜 저 꼴인 거냐.”

그 옆에 있는 데모닉의 모습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알록달록하게 꽃들을 붙여놓은 두개골과 뼈 사이사이에 걸어놓은 푸른 풀들과 나뭇가지.

그 모습은 마치 숲의 요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아 저거요? 저랑 엘라, 데킬라의 합작품이에요!”

자랑스럽다는 듯 데모닉을 바라보며 외치는 로제.

……역시, 범인은 너였구나.

“데모닉이 용케도 저런 걸 받아 줬군.”

누구보다도 완고할 줄 알았던 데모닉이 설마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 줄 줄이야.

역시 200년이란 세월이 지나며 데모닉도 많이 변한 걸까?

“아니요? 처음에 안 하겠다고 도망 다니던 걸 겨우 붙잡아 놓고 설득을 했죠~”

“……설득?”

“네! 데모닉님 때문에 델리니아까지 왔는데 이런 부탁 하나도 못 들어 주나요! 데킬라양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축제인데 이런 거 하나 못 받아 주나요! 우리 집에서 영약까지 먹어놓고 턱뼈는 싹 닫는 건가요! 뭐, 이렇게 이야기해 주니까 결국은 받아 주더라구요.”

“……음. 로제.”

“넹?”

우리는 그걸 협박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로제의 얼굴은 순박하기 그지없었다.

뭐, 결국 데모닉도 받아들였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오히려 내게 뭔가를 부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대로 바로 나가면 되나?”

“넹!”

그렇게 일행과 함께 유글리아의 저택 밖으로 나간다. 이미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 델리니아의 태양.

멀리 떨어져 있는 산등성이 뒤로 조금씩 내려앉는 태양은 닿는 것만으로도 따듯한 황혼의 석양빛을 내리쬐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히야~ 곧 있으면 해가 지겠네요. 핼러윈 축제는 해가 지고 나서부터 시작이니까 빨리 가요!”

축제에 간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들뜬 것인지 우리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가는 로제. 그 모습에 내 옆에 서 있던 엘라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다.

“언니! 뛰면 다친다니까요!”

“괜찮아! 언니는 무적이라고!”

그런 로제가 못 말리겠다는 듯 자신 역시 속도를 높여 로제를 잡기 위해 달려 나가는 엘라와 그 모습에 더욱 신나서 속도를 올리는 로제.

“으하하하! 델리니아의 폭주 기관차! 로제가 돌아왔다!”

“그거 좋은 별명 아니거든요! 뛰지 말라니까요! 아앗! 담배 물지 마요! 다른 사람들이 본다고요!”

“싫으면 잡아 보던가~”

앞서나간 둘을 멍하니 바라보며 데킬라와 걸음을 맞춰 걷고 있으니 옆에 있던 데킬라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로제는 여동생분과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요.”

“그러게 말이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로제가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있는지 이해가 될 심경이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열심히 뛰어다니는 두 소녀를 바라본다.

“불붙였죠! 지금 불붙였죠!”

“마나 딸린단 말이야! 날 말리지 마! 여긴 우리 가문의 땅이라구!”

“언니 땅이 아니라 가문의 땅인 걸 알면 그러면 더 안 되는 거잖아요오오!”

“내 맘이다!”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열심히 연기를 내뿜으며 유글리아가의 앞마당을 열심히 내달리고 있는 로제와 그런 로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엘라.

“……축제에 가기도 전에 저 두 사람은 지쳐 뻗겠군.”

“같은 생각입니다…….”

달그락! 달그락!

뭐,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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