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델리니아 5
* * *
“설탕 옷을 입힌 과일입니다! 어서 오세요!”
“액운을 쫓아내는 조각상입니다~ 아이들에게 선물하세요!”
“거기 멋진 엘프 오빠! 연인에게 꽃 선물은 어때요?”
“당신, 언덕 밑에 사는 키릴리씨 아닙니까? 당신 나이가 200이 넘는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데 누가 오빱니까!”
“닥쳐 망할 꼬맹이!”
축제라 그런지 마을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무척이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와! 유글리아의 핼러윈 축제라니, 지인~짜 오랜만이다!”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잔뜩 신이 난 것인지 방방 뛰며 소리치는 로제.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엘라는 한숨을 내뱉는다.
“언니, 아카데미에 입학하시기 전에 저랑 한 번 왔었거든요? 애초에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 온 걸로 오랜만이라니요…….”
“나한테는 오랜만인 거 맞거든?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알아?!”
“……제가 알 턱이 있나요! 저만 여기에 내버려 두고 혼자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 언니거든요?”
“……동생이 ……말대꾸?!”
“그건 또 어디서 배워 온 거예요!”
“엘라는 몰라도 돼! 자자! 그레고리님! 데킬라! 데모닉님! 빨리 가요!”
로제가 내 손을 잡아 이끌며 마을의 안으로 들어선다.
주황빛을 내뿜고 있는 등과 호박의 속을 파내 만든 호박랜턴, 길을 따라 양쪽으로 나 있는 점포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분장한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여러분 안녀어엉!”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며 팔을 붕붕 휘두르는 로제.
로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고 있을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엘라님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랑 행동을 보니까 로제님이신가 보군요.”
“어머, 로제님. 염색도 하셨네? 돌아오신 거예요?”
“로제님! 오랜만이에요!”
“헤헤, 다들 오랜만이에요~”
처음에는 로제가 갑자기 이곳저곳에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주변에서 익숙하다는 듯 인사를 받아준다.
이쪽 사람들은 로제의 이런 행동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아이구. 우리 로제님. 홀쭉해 진 것 좀 봐! 아카데미에 가서 얼마나 고생을 하신 거예요?”
“거기! 닭꼬치 좀 가져와! 우리 로제님이 빼짝 말랐잖아!”
그리곤 이내 우르르 몰리기 시작하는 인파. 주변 사람들이 나눠주는 음식을 하나씩 받으며 로제는 행복하다는 듯 음식을 입에 넣는다.
“헤헤, 다들 고마워요~”
자신에게 차곡차곡 전해지는 음식들을 양손 한가득 끌어안는 로제. 그 과정에서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로제, 원래 고향에서 인기가 이렇게 많았나?”
“네? 그야 당연하죠~ 저, 로제라구요!”
의심된다는 눈초리로 로제를 바라보고 있자 우리를 뒤따라온 엘라가 추가 설명을 붙여준다.
“어릴 때부터 마을의 사고뭉치였거든요. 그것 때문에 어른들이 언니를 좀 많이 이뻐하긴 하죠.”
……동네의 사고뭉치 아이돌 같은 느낌이었구나.
“어머, 엘라님도? 엘라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엘라님.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엘라님, 로제님이랑 같이 놀러 오신 건가요?”
그리고 이내 엘라에게로 몰리는 관심.
로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자매가 쌍으로 마을의 아이돌 같은 위치에 있는 모양이었다.
“로제랑 엘라……. 인기가 많군요.”
“그러게 말이다.”
저런 상태의 녀석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은 저대로 두고 둘러봐야겠군.”
“……네. 끼어들 틈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을은 우리끼리 둘러보는 걸로 하지. 그런데…… 데모닉은?”
데킬라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지금까지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있던 데모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데모닉님은 아는 분을 만나고 온다며 잠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데모닉이 아는 사람?”
“예, 정확히 누구를 만나러 가신다는 말은 하지 않으셔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둘이서 돌아다녀야겠군.”
“네……. 아무래도 두 분이 저 상황이니…….”
그렇게 말하며 힐끔 로제와 엘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데킬라. 아직도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둘은 정신없이 주변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내가 데킬라와 둘이 있었던 적이 있나?
데킬라와 만났을 때는 보통 로제가 함께 있었지, 이렇게 둘만 남은 적은 거의, 아니. 사실상 없었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뭘 보러 가자고 해야 하는 거지?
음…….
“담배나 피우러 가겠나.”
“아, 예. 마침 담배가 피고 싶었던 차였습니다.”
“저쪽으로 가서 피면 되겠군.”
마침 마을 한쪽에 아무도 없는 장소가 눈에 띄어 그쪽을 가리킨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 역시, 이런 상황에서 흡연 장소를 찾는 법은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면 되는 법이었다.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시가를 하나 꺼내 끝부분을 도려낸 뒤 입에 물고 있을 때, 멍하니 담배만 입에 물고 안절부절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데킬라가 눈에 띄었다.
“……불을 안에 놓고 온 것 같습니다.”
“그래?”
아직 검지에 불이 붙어있었기에 데킬라의 연초에 불을 붙여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불을 받는 데킬라.
후우. 하고 연기를 내뱉은 데킬라가 아직도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로제와 엘라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즐거워 보이는군요.”
“축제니까 말이다. 네 고향에는 축제가 없었나?”
“고향, 말입니까?”
고향이라는 단어가 나옴과 동시에 데킬라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예,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축제도 오늘 처음 왔으니 말입니다.”
축제를 처음 와봤다고?
대체 데킬라는 어떻게 살아온 거지? 과거에도 크로프트라는 성을 쓰는 캐릭터가 없었기에 예측마저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로제가 말을 걸어주기 전까지 데킬라도 혼자였다고 했나.
“데킬라. 가자.”
“예?”
피우던 시가를 땅에 버린 뒤 즈려밟고 데킬라를 향해 손을 뻗는다.
“처음으로 즐기는 축제이지 않나.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겠나.”
얼떨결에 내 손을 붙잡는 데킬라. 그대로 그녀를 데리고 축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던 중. 익숙한 모습의 부스가 눈에 띄었다.
“공 던지기는 좀 할 줄 아나?”
“공 던지기입니까?”
부스 안으로 들어서자 나무 접시 안에 주먹보다 조금 작은 공을 담아놓고 있던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싱긋 웃는다.
“잘 어울리시는 커플분들이시군요. 게임을 하시려고 합니까? 동화 4개이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커플이시니 동화 3개만 주시지요.”
“커, 커플이라니. 그런 거 아닙니다.”
당황하는 데킬라를 뒤로하고 주인장에게 주머니에 있던 동화 3개를 건네주었다.
“한 게임 하지.”
할인해준다는데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곧바로 주인에게 건네받은 양동이를 데킬라에게 건넸다.
“저기 쌓아놓은 나무컵을 맞춰서 쓰러뜨리면 된다. 간단한 규칙이지. 주인장. 상품은 어떻게 되지?”
“예, 전부 쓰러뜨리면 세계수의 잎을 한 장 드리고 있고 3개 쓰러뜨리면 여기 있는 인형들. 1개는 제가 열심히 수집한 이쁜 돌들입니다.”
1개는 그냥 쓰레기를 준다고 하면 될 것을 어떻게든 포장을 하네.
“그렇다는군. 데킬라. 원하는 상품이 있나?”
“어……. 저는 이쁜 돌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인형 쪽에 시선이 가 있는 데킬라. 뭘 보는 건가 싶었더니 귀엽게 만든 새하얀 유령 인형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인형인가.
“우선은 먼저 던져 보지 그런가. 공은 3개나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가볍게 공을 쥐고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있는 컵들을 바라보는 데킬라.
일단 그녀도 아카데미의 학생이다. 그녀라면 충분히 저 컵들을───
“에잇.”
지나쳐 벽에 박히는 공.
“아이고, 아깝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주인장이 과장스럽게 탄식을 내뱉는다.
“……잘 맞지 않는군요.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이번엔 방금보다도 더 신중하게 컵들을 바라보는 데킬라. 이번에 던진 공은 확실하게 궤적을 그리며 컵을 향해 날아가───
“아이고. 아깝습니다.”
다가 궤도가 크게 휘며 다시 벽에 박히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2번이나 실패하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뒤로 물러서는 데킬라.
“아니다, 남은 하나는 내가 던져도 되겠나?”
“……부탁드립니다.”
양동이 안에 하나 남은 공을 쥐고 컵이 쌓여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집중하자 전방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컵과 나 사이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공기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지금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정령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대로 대처하면 될 뿐.
“주인장.”
“예. 신사 나리.”
“실프가 정령계로 돌아가는 꼴을 안 보려면 치우는 게 좋을 거다.”
“……예?”
얼을 타는 주인장을 뒤로하고 완벽한 투구자세를 취하며 있는 힘껏 컵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쓰러지다 못해 부서지는 컵의 파편. 공은 컵을 부수고 지나 점포의 벽을 부수며 밖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아, 3개를 부쉈다. 3개를 쓰러뜨렸을 때의 상품은 인형이었지?”
“……예? 아, 예!”
가판에 올려져 있던 유령 인형을 집어 들고 데킬라에게 건넨다.
“나는 인형을 모으는 취미가 없으니, 네가 가지는 게 좋겠군.”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건넨 인형을 받아드는 데킬라. 이내, 자신의 손에 들린 인형을 바라본 데킬라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인형을 끌어안은 채 꾸벅하고 고개를 숙이는 데킬라.
“별일 아니었으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머쓱함을 숨기고 데킬라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아아!! 그레고리님이랑 데킬라! 우리만 빼놓고 놀고 있고!”
저 뒤에서 양손 가득 먹을 걸 들고 있던 로제가 이쪽을 향해 와다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도 같이 놀아요오!”
“로, 로제. 그렇게 물건을 들고 뛰다 넘어지면 크게 다칩니다!”
이쪽을 향해 냅다 달려오는 로제를 바라보며 외치는 데킬라. 하지만 이미 로제는 코앞까지 도착한 상황이었다.
“후후, 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니까 안 넘어진다구요. 그런데…… 데킬라. 못 보던 인형을 들고 있네요?”
데킬라의 품에 안겨있는 인형을 보며 묻는 로제.
“아, 그레고리님께서 따주셨습니다.”
“아아! 저 빼놓고 이런 걸 하다니! 저도 공 던지기 잘한단 말이에요! 1등 상품이…… 세계수의 잎? 에이, 별로네……. 저희 다른 거 하러 가요!”
“언니! 저만 두고 혼자 가면 어떡해요!”
“아, 엘라! 우리 저쪽 가자!”
“언니이익!”
“역시 다시 모이니까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는군요.”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데킬라와 단둘이 있던 시간은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뭐, 나름 즐거웠으니 된 거 아닐까.
“와! 엘라! 천하제일 음식 많이 먹기 대회래! 저거 하러 가자!”
“그전에 손에 든 음식 먼저 어떻게든 하라구요!”
“그럼 엘라가 잠깐 들어줘!”
“저, 저도 많은데! 우아아악!”
“……축제라는 건.”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던 데킬라가 입을 연다.
“재미있네요.”
힐끔 옆을 바라보니 엘라와 로제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 있는 데킬라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아주 가끔 보이는 데킬라가 미소를 짓다니, 그 신비한 광경에 나 역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 즐거우면 된 거지.
축제는, 즐거워야 하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