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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32화 (132/169)

〈 132화 〉 델리니아 ­ 6

* * *

"지쳤어요……. 아무리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이렇게 잡아 두다니이…… 으으윽…….“

저택에 돌아옴과 동시에 계단의 난간에 몸을 기대며 추욱 늘어지는 로제.

저걸 엄살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정말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로제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대체 델레니아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

“헤에으……. 힘들어어…….”

“언니! 여기서 뻗으면 안 돼요! 빨리 일어나요!”

“엘라아~ 업어죠오~”

“……언제는 유글리아 가문의 최고전력이라면서요? 지금, 꾀병 부리는 거죠?”

“칫. 이래서 눈치 빠른 엘프는 싫다니까.”

“자자, 빨리 올라가서 씻고 자요!”

“네에…….”

“아, 로제는 제가 방까지 데려다주고 오겠습니다.”

“그래, 데킬라. 부탁하지.”

데킬라의 부축을 받으며 흐느적흐느적 계단을 오르는 로제.

그런 로제의 뒷모습에 엘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언니가 오시자마자 이렇게 저택이 시끌벅적해지다니. 역시 언니는 대단하시다니 까요.”

나 역시 로제가 완전히 올라간 것을 확인한 후. 저택이 우리가 나서기 전보다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희 부모님들은 자리를 비운 건가?”

“네? 아, 네! 아무래도 축제니까요. 부모님은 유글리아 영토의 영주이기도 하시니 이런 날에는 축제에서 자리를 지키고 계셔야 하거든요.”

“그렇군.”

확실히 엘프 중에서도 대가문의 영주인 로제와 엘라의 부모님이니 저택 안에만 있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데, 그레고리님도 영주이신 거 아닌가요? 제가 알기로 마계 대공들이라 하면 대개 본인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내 영토 말인가?”

맞다. 그런 게 있었지.

솔직히 말해서, 과거에 한 번 들른 이후로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5성이 되면 가야지 가야지 하며 온갖 생고생을 했음에도 아직 4성.

저번에 영토에 갔을 때도 파이몬의 도움이 있었기에 겨우 갈 수 있었던 것이지 스스로 간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레고리님?”

설정으로만 따지자면 마계의 모든 지하는 나의 영토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마계의 모든 지하가 바로 나의 영토다.’라고 못을 박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단언컨대 분명 미친놈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럴 바에는…….

“그냥 적당한 영토를 가지고 있지. 지금은 신하에게 대리로 영주 업무를 맡기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요. 언니의 소환수가 마계의 대공이라니. 그것도 두 명이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꿈인가 싶다니까요.”

……정확히는 곧 3명이 될 예정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도, 언니가 여전히 밝은 모습이어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뭐랄까. 많이 불안해 보였거든요.”

“……로제가 말인가?”

“네, 집으로 오는 편지의 레파토리들이 전부 비슷했거든요. ‘오늘은 친구랑 밥을 먹었어요’, ‘친구랑 놀았어요’, ‘친구랑 대화를 했어요’, 이런 거요. 처음에는 걱정하지 않았어요. 정말로 잘 지내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죠. 언니의 편지에는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도 적혀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대략은 로제의 아카데미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편지가 안 오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도 했었죠.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요. 언니의 편지가 도착한 거예요. 참나,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아세요?”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러나.”

“미안! 노느라 깜빡했어! 이러는 거 있죠. 진짜! 저랑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했는지는 아는 건지!”

볼을 부풀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엘라. 지금껏 로제의 앞에서는 어른스럽게 굴었으면서 언니가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심통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동생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좋았던 거 아닌가?”

“네?”

내 물음에 엘라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결국 그 편지를 받음으로써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그,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요…….”

“로제의 말대로 착한 동생이구나.”

“네, 넷?! 차, 착한 동생이라니 무슨!”

“로제가 한 번씩 네 이야기를 하곤 했지. 자기보다 더 대단한 동생이라고. 너무나도 착한 동생이라고 말이야.”

“어, 언니가 그런 말을요?”

“그렇다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진 말아 줬으면 좋겠군. 그랬다간 내게도 삐질 것 같으니 말이야.”

로제에게로부터 들었던 말을 조금 들려줬을 뿐인데 얼굴이 붉게 물들어버린 엘라.

왠지 그 모습에서 순수함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일정이 바빠질 테니 나도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마.”

그런 엘라를 뒤로하고 나 역시 계단 위로 올라간다.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내, 내일 찾아뵐게요! 푹 쉬세요!”

“그래.”

……엘라도 은근 로제를 닮았구나.

* * *

[그레고리님! 로제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얇은 커튼 너머로 비쳐오는 햇살이 뺨을 간지럽히고 있을 때, 방문 너머로 로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기다려주겠나.”

[아, 네!]

바퀴폼으로 침대에 누워있었기에 로제가 또 놀랄까 변신을 해제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옷차림을 한 차례 확인한 뒤 로제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외쳤다.

“이제 들어와도 된다.”

“넵! 실례하겠습니다!”

벌컥 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서는 로제.

그런데…….

“로제.”

“넹?”

“그 꼴은 뭐냐.”

“머가영?”

사제나 수녀들이 하고 다닐 법한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와 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고개를 갸웃해하는 로제.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로제.”

“넹?”

“그거 다 놓고 가라.”

“네엑?! 이, 이걸 전부 다요?! 마을 사람들이 언데드 조심하라고 선물해 준 건데요……?! 신성력이 있어서 언데드로부터 지켜준다고 했어요!”

짤랑짤랑 손목을 흔들며 내게 열심히 이유를 설명하는 로제.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나는 곧바로 로제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그레고리님?”

“로제.”

“네, 넵!”

“내 종족이 뭐지?”

“네? 어, 어…… 악마요?”

“그렇지. 그렇다면 내가 신성력이 담긴 이 팔찌를 만지면 어떻게 되어야 하지?”

“……아프겠죠?”

“아프겠지? 그런데, 지금 내가 어때 보이지?”

“안 아파 보이는데요?”

“왜 안 아픈 걸까?”

“그레고리님이 짱짱 쌘 악마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허…….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 내가 꽤 강한 악마이기는 하다만, 세상의 어떤 악마도 신성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네? 그러면 그레고리님이 강해서 안 아픈 게 아니라…….”

“그래, 마을 사람들이 너를 걱정해서 준 건 알겠다만……. 그 팔찌, 신성력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네?! 신성력이 없다니! 그럼 그냥 평범하게 이쁜 팔찌였던 건가요!”

“……그러겠지.”

“힝…….”

결국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팔찌와 목걸이를 벗기 시작하는 로제. 얼마나 기대를 했던 것인지. 빳빳했던 기다란 두 귀도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음…….

“팔찌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진짜요?!”

“그래, 이쁜 팔찌이지 않나.”

“헤헤! 그러면 팔찌는 차고 갈래요!”

마을 사람들이 선물해 줬다는 팔찌가 그렇게도 소중했던 것인지 순식간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어루만지는 로제.

그런데.

“로제. 그래서 아침부터 왜 찾아온 거냐.”

“네?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요! 엄마가 아침 식사하게 그레고리님을 모셔오라고 해서요!”

“……아. 아침.”

난 또 아침부터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들어오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 다행히 별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엄마가 오늘은 꽤 힘들 테니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면서 그레고리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 같이 가지.”

“네!”

로제와 함께 방에서 나와 식당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로제가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레고리님. 질문이 있는데요.”

“뭐지?”

“저희, 릴리님의 묘소로 가기로 한 시간이 오후 1시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대낮에 가도 핼러윈이 우리를 덮치는 건가요?”

“아, 너는 아직 핼러윈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지.”

“네, 어른들이 핼러윈 시기에는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 하게 했으니까요.”

흠,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좋을까.

“핼러윈은 일단 망자들이 모인 군체 같은 거다. 그리고 그 군체의 특성상 엄청난 사기(死?)를 뿜고 다니지. 그리고 그렇게 응축된 사기는 태양으로부터 군체를 지켜주는 일종의 공간을 형성하지. 우리는 이 공간을 ‘이클립스’라고 부른다.”

게임 속에서는 던전의 이름이 이클립스였지만, 설정상 아마 이게 맞을 것이다.

“그러면 안은 엄청 어둡다는 거네요?”

“그렇지. 낮에는 이클립스를 형성하고, 밤에는 돌아다니고. 그리고 이번 경우에는 릴리의 묘소 근처에 이클립스가 생긴 거로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언데드의 무리와 싸우게 되겠지.”

아무리 완벽한 작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였다.

“그레고리님은 최강이니까요! 문제없을 거예요!”

“그래.”

로제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로 ‘최강’이 되면 될 뿐이었다.

“어머, 도착하셨네요.”

식당에 도착하자 로제의 어머니인 민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두 사람을 반겨 주었다.

“오늘 큰일을 하러 가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힘을 써봤어요.”

“……확실히, 대단한 식탁이군.”

어제의 음식들이 몸에 무척 좋은 요리들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진짜배기 영약들로 만든 식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그야말로 황실의 축제에서도 보기 힘든 식재료들이 식탁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위험한 곳에 가는 거니까요. 다쳐서 오면 안 되잖아요?”

이쪽을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리며 자리에 앉는 민트. 그러자 이번엔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발렌타인이 입을 연다.

“로제. 이클립스가 뭔지는 알고 있니?”

“당연하죠! 사기가 뭉쳐서 만들어진 공간이잖아요!”

갑자기 자신을 향해 질문하는 발렌타인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코웃음을 치는 로제.

방금까지만 해도 몰랐으면서 지금은 그야말로 당당하기 그지없다.

“그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로제 네가 말한 대로 이클립스는 낮에 활동하지 못하는 언데드들을 위한 공간이란다. 그러니,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이클립스만 탈출하면 되는 거지. 알겠니?”

“유글리아 가문의 최강 전력. 로제만 믿으세요!”

자신 있게 외치는 로제의 모습을 본 민트와 발렌타인이 이번엔 내 쪽을 바라본다.

“부디, 로제와 엘라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레고리 공만 믿겠습니다.”

그렇다. 이들 역시 부모였다. 비록 아카데미에 다니며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눈에 로제는 그저 여린 딸일 뿐.

그렇기에, 그들은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딸들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여기서, 내가 말할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목숨을 걸고.”

그녀들을 지키겠다고 그들에게 선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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