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델리니아 핼러윈 1
* * *
“와, 진짜 으스스하네요. 원래 이 시기에 여기가 이렇게 추운 곳이 아닌데.”
자신의 몸을 감싸곤 부르르 떨며 중얼거리는 로제. 갑작스러운 추위에 콧물까지 나온 것인지 킁! 하고 코 먹는 소리를 낸 로제가 주변을 둘러본다.
“아마 사기의 영향일 겁니다. 사기를 뿜어내는 언데드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의 온도는 다른 곳보다도 낮은 편이니까요.”
오히려 이 정도 추위는 익숙하다는 듯 묵묵히 걸어가던 데킬라의 손에는 얼마 전 우리와 함께 대련했을 때 사용했던 낫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데모닉. 데킬라는 지도가 없음에도 이미 와 본 길인 것처럼 익숙하게 사기의 잔향을 따라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그렇게 외치며 눈앞의 풀들을 제초하듯 베어내는 데킬라.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던 로제는 그 모습을 바라보곤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아, 데킬라양. 엄청 멋있네요. 저도 자세한 길은 모르는데 막힘없이 쭉쭉 가고 있어요.”
“다루는 마법과 소환수들이 그쪽 계열이니 익숙하다는 거겠지. 편하고 좋지 않나?”
“그렇네요~ 처음에 엘라가 길을 모르겠다고 했을 땐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 그건 부모님께 들었잖아요! 사기로 인해 변형된 지형에서는 길을 잃기 쉬울 수 있다고!”
자신에겐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듯 로제를 향해 곧바로 반박을 하는 엘라. 하지만 로제는 ‘늬에늬에~ 그러시겠죠~’ 라며 놀리듯 반응할 뿐이었다.
“으으……. 결국 자기도 길은 모르면서, 맨날 놀리기만 하고!”
“그건 다 우리 엘라의 반응이 귀여워서 그런 거야~. 그쵸 그레고리님?”
확실히 로제가 놀린 뒤의 반응을 보는 맛도 쏠쏠했지만, 곧이곧대로 대답했다간 나까지도 원망을 살 터.
적당히 중간 정도의 대답을 하는 게 좋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로제도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걸 거다.”
“그건 저도 알고 있지만요…….”
“헤헤, 맞아. 오랜만에 엘라를 만나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라. 응?”
곧바로 엘라의 팔을 붙잡고는 봐달라는 듯 헤실헤실 웃는 로제. 주륵. 하고 그녀의 코에서 콧물이 흘러내린다.
“푸핫!”
그리고 그런 로제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는 엘라.
“헤헤! 웃었다!”
“언니가 이렇게 나오면 제가 할 말이 없잖아요. 진짜 나빠요.”
“헤헤, 이게 다 우리 엘라가 좋아서 그런 거야.”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로제. 의외로 로제는 추위에 약한 편이었던 모양이었다.
“로제.”
“넹?”
“이거라도 덮고 있어라.”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로제의 몸에 걸쳐준다. 나야 이 몸이 되고 나선 더위나 추위를 느껴본 적 이 없었기에 있으나 마나 한 외투. 이렇게라도 로제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외투에게도 더 좋을 터였다.
“앗, 감사합니다……! 따, 따듯해!”
비록 적당한 두께의 외투였지만 다행히 로제에게 들이닥치는 추위를 막을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외투를 덮음과 동시에 서서히 줄어드는 로제의 떨림. 그렇게, 다시 앞서가는 데킬라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앞에서 데킬라가 주먹을 치켜들며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여기서부터 사향(死?)이 더 짙어지질 않는 걸 보니 거의 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모두 준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모두가 각자 전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 드는 엘라와 이미 자신의 애병이 되어버린 ‘불굴’을 쥐는 로제. 그리고 나는 변신을 통해 바퀴폼으로 변신한다.
그러고 보니, 방금 데킬라가 사향(死?)이라고 했나? 아직까진 그저 눅눅한 곰팡이 냄새 같은 것밖에 나지 않았기에 문뜩 궁금증이 들었다.
뭐, 확인해보면 되려나.
[(스킬 : 후각 상승)을 발동합니다.]
[후각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방금까지만 해도 눅눅하기만 했던 냄새에서 조금 톡 쏘는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데킬라가 말한 사향(死?)이라는 것일까. 그렇게 썩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저……. 그레고리님?”
내 앞에 서 있던 로제가 약간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본다.
“응? 왜 그러지.”
“그……. 더, 더듬이가 갑자기 엄청나게 움직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더듬이가?”
아무래도 후각 강화를 사용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실제로 내 눈에도 보이는 더듬이의 현란한 움직임.
스킬의 발동을 멈추자 그제야 더듬이가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별것 아니다. 잠시 뭐 좀 확인했을 뿐.”
그리고 덕분에, 핼러윈이 있는 위치를 확실히 판별할 수도 있었다.
“그럼, 다들 준비하도록 하지. 포지션은 저택에서 이야기 했던 대로. 괜찮나.”
“예. 후미에서 엘라를 지키겠습니다.”
“네! 앞에서는 제가 엘라를 지킬 거예요!”
“최대한 여러분을 서포트 하는 쪽으로 움직이면 되는 거였죠. 기억하고 있어요”
달그락── 달그락──
모두가 사전에 이야기 했던 대로 진형을 짠다. 가장 앞에는 나와 로제가. 중간에는 엘라가. 그리고 맨 뒤에는 데킬라와 데모닉이.
즉, 위치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느낌이었다.
나 로제
엘라
데킬라
데모닉
그리고, 이렇게 진형을 짠 우리의 바로 앞에는 해골의 군세가 쐐기 진형으로 길을 만들 예정이었다.
“데킬라. 준비는 됐나.”
“예,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온갖 영약을 먹고 마력을 비축해두었던 데킬라가 마침내 쌓아놓았던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생겨나는 보랏빛의 마법진들. 이내, 그곳에서 과거 대련에서 보았던 수많은 언데드들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R등급의 해골 소환사들과 그들을 지키는 스켈레톤 병사들.
순식간에 수십의 해골 병사들이 우리의 앞으로 움직이며 삼각형 모양의 진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핼러윈을 돌파한다는 것은 미친 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미친 짓을 하러 왔지.”
[소환사 아카데미아]의 메인 히로인이었던 릴리 폰 유글리아의 묘소를 방문하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미친 짓을 감행하고자 했다.
데모닉의 염원을 풀기 위해서.
그녀와 재앙을 물리쳤던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마지막을 확인하기 위해서.
친구를 돕기 위해서.
가족을 돕기 위해서.
소환수와 함께 더 강해지고자 해서.
이렇듯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모였지만 결국 목표는 같았다.
릴리 폰 유글리아의 묘소 방문.
“……핼러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는 데킬라.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새까만 연기가 마치 계곡을 흐르는 안개처럼 어딘가를 향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바로 핼러윈…….”
엘라 역시 핼러윈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지 꽤나 놀랍다는 얼굴로 그것을 바라본다.
죽은 자들의 행진.
망자들의 축제. 핼러윈.
그 이름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그것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 정신력을 갉아먹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행히도, 이곳의 멤버들은 모두 내 모습에 내성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기에 문제는 없는 듯했지만.
“그럼, 돌입할 준비를 하도록.”
두 쌍의 팔을 치켜들고, 핼러윈의 안으로 돌입할 준비를 마친다.
[(스킬 : 후각 상승)을 발동합니다.]
[(스킬 : 화염 인챈트)를 발동합니다.]
두 쌍, 네 개의 팔에 피어오르는 불꽃. 마력을 관리하기 위해 [특성 : 탐]을 인챈트하진 않았지만, 속성이 화염인 만큼 언데드에게 데미지를 주기엔 충분할 터였다.
“그럼──”
한번 숨을 고르고 정면을 바라본다.
망자들의 축제? 죽은 자들의 행진?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그들에게 불청객으로 기억되리라.
“──돌입.”
내 외침과 동시에 해골의 군세가 먼저 내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무언가에 흡수되는 듯하나 둘 핼러윈의 안으로 들어가는 스켈레톤의 군세.
뒤에서 스켈레톤들을 조종하고 있던 데킬라의 미간이 찡그려진다.
“예상대로 핼러윈에 돌입하자마자 스켈레톤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만한 공간은?”
“………지금. 지금 들어서면 될 겁니다.”
“좋다. 우리도 들어가도록 하지.”
그대로 우리 역시 핼러윈을 향해 내달리며 검은 안개의 안으로 돌입한다.
───!! ───! ─────!!! ───!! ─────!!!! ────!!
돌입함과 동시에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처음 듣는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 우리는 데킬라의 소환수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의 중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라! 릴리의 묘소는 어느 방향이지?”
내 외침을 들은 엘라가 재빠르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핼러윈의 변화 때문에 확실하진 않지만……. 정면! 정면이에요! 정면으로 돌파하면 돼요!”
“정면. 알겠다. 로제, 준비됐나.”
“후후, 제 ‘불굴’이 피를 바라고 있어요……!”
“……그래.”
준비됐다는 말이겠지?
“아카데미 1학년 최강의 엘프와 그 소환수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하자꾸나.”
“네!”
흑발의 엘프와 바퀴 형태의 악마 대공.
아카데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두 존재가 지금, 죽음의 땅에 강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