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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35화 (135/169)

〈 135화 〉 델리니아 ­ 핼러윈 3

* * *

과거, 저글링 막기라는 게임을 무척이나 즐겁게 했던 적이 있었다.

한정된 수량의 유닛으로 최대한의 컨트롤을 하며 밀려 들어오는 적 유닛을 막아내는, 무척이나 심플 한 게임.

지금의 상황이 마치, 그때의 상황을 보는 것 같아 조금 더 빠른 판단이 가능해진다.

"로제, 뒤로 물러서서 한 대 피우고 와라."

"넵!"

로제의 빈자리까지 내가 채우며 밀려드는 녀석들을 막아낸다. 뒤에서 앞의 상황을 노려보며 열심히 마력을 회복하고 있는 로제. 그녀의 얼굴은 이미 언데드들의 살점과 피로 얼룩덜룩해진 상황. 마력을 일으켜 마법으로 물을 가볍게 씻어낸 로제가 다시 내 옆자리에 합류한다.

“벌써 합류해도 되겠나.”

“네! 문제없어요!”

코 아래를 스윽 훑으며 내 옆에 다시 자리를 잡는 로제. 그녀의 표정이나 주변에서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을 하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데킬라! 마력은 괜찮나!”

“안으로 나아갈수록 병사들을 유지하는 게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10분 안에 방어망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세계수의 잎을 태우며 유지를 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그것까지 예상해서 드린 답변입니다. 조금씩 해골 병사들과 언데드들 간의 격차가 크다 보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는 도착하기 힘들다는 뜻.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데킬라. 모든 소환수의 소환을 해제하고 데모닉만 유지할 수 있도록.”

“……예? 지금 당장 말입니까?”

어차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라면 지금부터 마력을 비축해 데킬라 스스로가 막아내는 것이 훨씬 유용했다.

규모가 줄어드는 만큼 속도는 빨라지고 방어할 곳은 줄어들 터였으니까.

“지금 바로 숫자를 세지. 너와 데모닉은 해골 병사의 소환을 해체함과 동시에 엘라의 뒤로 바로 붙을 수 있도록.”

내 지시에 평소에도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데킬라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속도를 조금 높일 예정이니 잘 따라오는 게 좋을 거다. 엘라. 너는 방어망이 사라지면 따라붙는 것과 주변에 특이사항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할 수 있도록.”

“아, 네!”

“그럼, 셋, 둘, 하나. 지금.”

내 신호와 동시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해골 병사들이 모두 무너져내리며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향해 물밀듯 몰려드는 수많은 좀비와 구울, 스켈레톤의 무리들.

그러나 우리가 속도를 높이며 앞으로 나아가자 몇몇 개체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땅에 넘어지기 일쑤였다.

“이대로 직진.”

한 번의 주먹질에 피어오르는 새빨간 화염. 그것에 닿은 녀석들은 괴성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거나 저 멀리 땅에 처박히고 만다.

두 쌍의 팔에서 화염을 뿜어내는 나는 그야말로 하나의 아수라. 파이어 아수라 바퀴라고 칭하기 마땅한 존재였다.

그래, 이 기술을 그렇게 부르기로 할까? 파이어 아수라 파천──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

“……?”

옆을 돌아보니 나를 따라 하겠다겠다고 주먹에 화염 인챈트를 한 로제가 한 손으론 검을, 다른 한 손으로는 펀치를 열심히 날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우리 그레고리류의 새로운 비기인가요……! 언데드들이 힘도 못 쓰고 나가떨어지고 있어요!”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며 좀비들의 골통을 박살 내고 있는 로제. 왜 안 뜨거운가 했더니 주먹에 마나막을 만들어 열기를 차단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 주먹으로 죽이는 것보다 칼로 휘두르면서 죽이는 게 훨씬 많잖아.

“……너는 칼을 사용하면 될 것 같은데, 굳이 그래야 하나?”

“멋있잖아요!”

그렇다고 한다.

멋있으면 뭐, 어쩔 수 없지.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

옆에서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는 로제의 목소리를 듣자니 괜스레 마음 한구석에서 부끄러운 감정이 기어 올라올 것만 같이 주먹의 불을 꺼버렸다.

“어? 왜 불을 끄신 거예요! 저희! 완벽한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 듀오였는데!”

여전히 검과 주먹을 휘두르는 와중에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곤 불만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로제.

너 때문에 쪽팔려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좋게 좋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직 반도 가지 못하지 않았나. 마력을 관리하며 가야 하니 끈 것뿐이다.”

“다, 담배라도 빌려드릴까요?”

“……됐다.”

아직 로제의 담배를 빌려 필 정도로 마력을 사용하진 않았으니 굳이 빌려 필 필요는 없었다.

“힝, 그레고리님이랑 같이하지 않으면 트윈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가 아닌데…….”

그런 이름은 또 언제 붙인 거냐.

“……언니. 창피해요.”

“뭐?! 너는 그레고리님의 비기, 파이어 그레고리 펀치가 창피해?! 너는 우리 그레고리류의 수습생으로서 자격이 없구나!”

“네?! 제가 언제 수습생이 된 건데요? 그것보다 앞에! 앞에나 봐요!”

“흥! 나 정도 되는 소환사면 그 정도는 안 봐도 알거든!”

계속해서 뒤를 돌아본 상태로 앞을 향해 칼을 내지르는 로제. 그와 동시에 로제를 향해 달려들던 구울 한 마리의 미간이 뚫리고 만다.

“로제, 집중해라.”

“넵.”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경고하니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칼을 휘두르는 로제.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슬슬 옆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릴 때쯤.

“어, 언데드 숫자가 줄고 있는데요?”

우리의 뒤에서 정령을 통해 주변을 살피고 있던 엘라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언데드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확실히, 조금 더 앞서나가자 주변으로 몰려드는 언데드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원래는 초당 두 마리씩 몰려왔다면 지금은 3초에 한 마리 정도.

처음보다 언데드들의 질적인 부분 역시 상승했지만 그렇다고 막아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반도 오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나?”

“네, 사실상 이제 막 반 정도 왔다고 할 수 있는데……어? 자, 잠깐만 멈춰주세요!”

다급한 엘라의 외침에 선두에서 달리던 나와 로제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자리에 멈춰섰다.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들의 숫자도 줄었기에 잠깐 멈춰 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엘라.”

“저 앞에, 언데드가 아닌 게 있어요.”

“뭐? 언데드가 아닌 것? 자세히 설명해봐라.”

“잠깐만요.”

엘라가 상공으로 날려 보낸 정령과 교감하기 위해 두 눈을 감고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청색 로브를 입고 있어요. 오른팔에는 동물의 두개골로 보이는 뼈로 장식한 지팡이를 들고 있고…… 왼팔에는 낡은 책을 들고 있어요.”

……지팡이와 책?

“다른 특징은?”

“음……. 가슴에 금색 뱃지를 달고 있는데, 새의 머리 같은 게 3개 가…… 꺄악!”

공중에서 폭발음이 들림과 동시에, 엘라가 눈을 부여잡으며 휘청인다.

“엘라!”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들어 엘라가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몸을 껴안는다.

“엘라, 무슨 일이냐.”

“……정령이. 역소환 당했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니 무언가가 폭발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에 정령이 격추당한 모양.

아마도 범인은…… 엘라가 보았다던 그 녀석이리라.

“지금은 괜찮아요.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내 품에 안겨있던 엘라가 눈에서 손을 떼며 천천히 일어선다.

“꽤 먼 거리임에도 한 번에 바람의 정령을 격추시켰어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거예요. 대체 핼러윈 안에 왜 사람이……?”

핼러윈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세계의 상식이다. 어떤 인간이 휘몰아치는 허리케인 안으로 몸을 던지겠는가.

우리야 주말 안에 릴리의 묘소에 들르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들어왔다고 하지만 대체 누가……….

“알겠군.”

짐작 가는 게 생겼다.

“네?”

“엘라를 공격한 범인을 알겠다는 겁니까?”

로제와 데킬라가 나를 바라보며 동시에 묻는다.

엘라가 보았다던 지팡이와 책. 그리고 가슴에 달려있는 뱃지의 새의 머리들.

게임 속에서 지팡이와 책을 들고 다니는 부류는 크게 두 가지이다.

전통 마법사의 계보를 잇는 위자드와 강령술을 다루는 네크로멘서.

그리고, 가슴에 새들의 머리가 그려진 뱃지를 차고 다니는 것은 그 녀석들밖에 없겠지.

“엘라. 녀석의 뱃지에 그려진 새들. 혹시, 까마귀의 머리가 아니었나.”

“네? 확실히, 까마귀를 닮긴 했었어요.”

이것으로 예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소환사 아카데미아]에 등장하는 빌런 집단 중 하나. 과거 아몬과 함께 재앙을 도왔던 악마, 나베리우스를 따르는 최악의 단체 중 하나.

“트리플 크로우. 녀석들이 분명하다.”

“트리플 크로우요? 녀석들은 재앙이 사라진 뒤 천상교에 의해 멸절했다고 들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이야기하는 엘라.

“신성교단도 부활해서 날뛰는 마당에, 트리플 크로우 녀석들이 부활했다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아니, 오히려 녀석들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재앙이 나타난 새로운 대륙의 위기였으니까.

“이미 녀석은 우리의 위치를 파악했을 거다. 그리고, 이곳에 트리플 크로우 녀석이 나타난 이상 목적도 분명하지.”

“목적이 분명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뒤에서 묵묵히 낫을 휘두르던 데킬라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릴리의 묘소까지 나타난 네크로멘서 집단. 그렇다면 목적은 뻔하지 않은가.

“릴리 폰 유글리아. 녀석들은 그녀를 강령술로 부활시킬 생각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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