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델리니아 핼러윈 4
* * *
“자, 잠깐만요! 녀석들이 릴리님의 시체를 부활시키려고 한다니, 제가 들은 게 맞아요?!”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라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릴리님이에요. 릴리 폰 유글리아. 용사 라스를 도와 함께 재앙을 무찌른 인류의 영웅이라고요. 그런데, 그런 릴리님을 네크로멘시로 부활시키려고 한다고요?”
“그래. 릴리의 묘소 정도 된다면 핼러윈이 없는 평소에는 경비들을 세워놓겠지. 맞나?”
“네, 맞아요.”
“그리고 이렇게 핼러윈이 찾아오면 잠시 묘소를 비우고 말이야. 이런 재앙을 뚫고 찾아올 미친 인간들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적기라 노린 거겠지. 인류를 구원할 정도의 힘을 가진 릴리 폰 유글리아. 그녀를 되살려내 종으로 부린다면 강대한 사역마를 두게 되는 거니까 말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과거, 나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고대의 영웅들을 사역해 왕국 하나를 멸망시켰던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게임 속에서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 오드벨 왕국의 멸망을 막아내는 에피소드는 나도 꽤 힘겹게 클리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했을 때가 3트 정도 했었나. 공략법을 알고 나서는 그냥 꿀 경험치 파밍 장소가 되었지만.
“……그레고리님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저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더 이상 몰려오지 않는 언데드들을 확인한 데킬라가 낫을 접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릴리님의 시체가 적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상징적으로도 대륙에 큰 데미지를 입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동감이다. 여기서 릴리의 시체를 탈취당해 언데드로 전장에 나타난다면 그녀를 상징으로 하는 수많은 엘프가 싸우기를 포기하고 절망하게 될 거다.”
즉, 지금 우리는 대륙의 명운이 달려있는 상황에 빠져든 것이었다.
“그러면 막아야죠. 어떤 수를 써서든.”
언데드들이 들이닥치지 않은 틈을 타,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문 로제가 굳은 각오 어린 눈빛으로 말한다. 그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그래, 싸워야겠지. 여기서 지원을 요청하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이 있다고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직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나무들과 어둠. 그 너머에 있을 나베리우스의 추종자.
아마 이곳의 언데드들이 없는 것도 아마 녀석이 손을 썼기에 없는 것이겠지.
“여기에 계속 서 있어봤자 녀석에게 시간을 주는 것밖에 되지 않을 거다. 최대한 빠르게 녀석에게 접근하는 거로 하지.”
“녀석이 우리가 접근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분명 무슨 수를 쓸 게 분명한데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라가 손을 들며 의문을 제기한다.
먼 거리에서도 엘라의 정령을 저격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그녀의 말대로 우리가 이대로 접근 한다면 분명 어떠한 수를 쓸 게 분명했다.
그러니──
“여기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내가 먼저 접근해서 녀석의 주의를 끌지. 너희는 그동안 합류할 수 있도록.”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곧바로 하늘을 날아오르며 녀석이 있을 거로 추정되는 방향을 바라본다.
저 멀리, 이곳을 향해 있는 녀석. 후드에 가려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본능으로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곧바로 녀석을 향해 날아간다.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녀석의 스태프. 그와 동시에 녀석이 스태프를 앞으로 뻗자 보랏빛 마법진이 펼쳐지며 보라색의 화염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퀴의 회피 능력은 상상 그 이상. 몸을 재빨리 옆으로 기울여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공격을 피해낸 나는 곧바로 자세를 잡으며 녀석을 향해 날아든다.
“바퀴벌레 킥.”
하나의 선이 되어 녀석을 향해 올곧게 날아가는 나의 날카로운 발.
“실드.”
후드 아래로 보이는 녀석의 입이 움직이며 동시에 보랏빛 막이 생겨나 내 발을 막아낸다.
“이딴 실드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네크로멘서.”
나의 기술 중 최강의 관통력을 자랑하는 바퀴벌레 킥. 그 말을 증명하듯 발과 실드가 닿은 접점에서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라.”
“뼈의 벽(Bone wall)”
녀석이 영창을 하자 땅 밑이 꿈틀거리며 새하얀 뼈들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녀석의 실드가 깨지며 내 발차기가 녀석이 만든 벽에 닿는다.
“칫.”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뼈의 벽. 하지만 이미 녀석은 안에서 내 공격을 튕겨낼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리펄시브 포스(repulsive force)”
녀석이 손을 뻗자 내 몸이 뒤로 크게 날아간다. 재빨리 날개를 펼쳐 나무에 들이박는 것은 막았지만 결국 녀석에게 시간을 주는 꼴이 돼버리고 말았다.
“네 녀석. 처음 보는 생명체군.”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대화할 맘이 생긴 것일까. 녀석이 마침내 입을 연다.
“네 녀석 같은 벌레형 악마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누구의 밑에 있는 악마냐.”
기껏 묻는다는 게 누구의 밑에서 일하냐는 건가.
“나는 스물네 번째 좌를 차지하고 계신 대악마 나베리우스님을 모시는 자다. 네가 어떤 악마를 섬기는지는 몰라도 대악마 중 한 분을 모시는 나를 건드는 게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닐 텐데?”
나베리우스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설득하려는 녀석.
“나베리우스라……. 내가 아는 까마귀머리 셋 달린 그 병신 새끼를 말하는 건가?”
“뭐, 뭣?”
“그 녀석을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한 거라면 지금 당장 그 생각은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자신이 섬기는 악마를 모욕했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걸까? 녀석이 쥐고 있던 스태프와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네, 네놈이 감히! 나베리우스님을 모욕하는가!”
“그깟 새대가리를 믿고 설치는 네 녀석이 우스울 지경이군.”
“……네놈의 머리를 꼭 나베리우스님께 바치겠다.”
“할 수 있다면.”
내 도발에 눈이 돌아간 듯한 녀석이 스태프를 손에서 놓고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펼쳤다.
그런 녀석의 옆에 둥둥 떠 있는 스태프. 아무래도 저 스태프 역시 평범한 물건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들이여. 내게로 모여라.”
마치 엄숙한 선언을 하는 듯 낮은 목소리로 녀석이 읊조리자 녀석의 주변에 보랏빛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
아무래도 녀석이 펼친 것은 흩어졌던 자신의 하수인들을 불러 모으는 마법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베리우스님의 종으로서, 네 녀석에게 예언하나를 해주마. 네 녀석은 이제 내 하수인들에 둘러싸여 죽게 될 거다.”
주변 자신의 하수인을 모으는 것으로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인지 순식간에 기고만장해지는 녀석. 그런 녀석을 위해, 나 역시 예언 하나를 해주기로 했다.
“나도 예언하나 하도록 하지. 너는 곧 있으면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두들겨 맞게 될 거다.”
“……뭐?”
──바람의 힘을 담은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녀석의 미간을 향해 날아간다.
실드 마법을 메모라이징 해놓은 것인지 녀석의 얼굴 앞에서 깨져나가는 보라색 실드.
“……화살?”
“이쪽이 먼저 도착한 모양이군.”
“그레고리님!”
뒤를 돌아보자 손을 흔들며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로제와 활을 들고 있는 엘라. 그리고 데킬라와 데모닉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네! 오면서 방해되는 나무는 전부 자르면서 왔어요!”
……아니, 너 숲을 지켜야 하는 엘프잖아. 그래도 되는 거야?
뭐, 나야 빨리 왔으니 오히려 좋지만.
“겨우 그딴 꼬맹이들을 믿고 설치는 꼴이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쿵── 쿵── 쿵──
숲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숲에 있던 새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소리에 맞춰 울리는 땅은 마치 무언가의 등장을 축복하듯 북을 치는 듯했다.
“저, 저게 뭐예요?!”
로제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거대한 형체의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군.”
“네?”
“이 주변의 언데드들이 없는 이유 말이다.”
서서히 가까워질수록 녀석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수많은 언데드들을 마치 한곳에 모아 빛은 듯한 끔찍한 모습. 그 모습에 내 옆에 있던 로제와 엘라가 표정을 찡그리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저게…… 대체 뭐죠?”
“시체 수집가. 언데드 컬렉터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다.”
주변의 언데드들을 흡수할수록 강해진다는, 귀찮은 특징을 가진 녀석. 다른 곳도 아닌 핼러윈의 언데드들을 모조리 흡수한 녀석이니 얼마나 강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몸집이었다.
“꽤 귀찮은 싸움이 되겠구나.”
꾸득. 꾸득. 갑피 마디를 풀며 녀석의 아래를 바라본다.
시체 수집가에게 흡수되지 않은 다른 언데드들. 하나하나가 평범한 언데드가 아님을 증명하는 주변에서 흉흉한 보랏빛 오오라를 내뿜어 내고 있다.
“이거, 물량전이 되겠는데요.”
이미 이런 위협은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검을 치켜드는 로제.
“그래, 물량전이라면 우리도 지지 않는데 말이다.”
비로소, 지금까지 비축해두었던 마력을 방출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며, 나는 녀석들을 향해 두 쌍의 팔을 뻗었다.
“검은 늪.”
진정한 물량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