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델리니아 릴리 폰 유글리아 1
* * *
“응? 그, 그레고리님! 저 사람! 엘라를 닮았어요!”
갑작스레 등장해 묘소의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엘프의 모습에 로제가 당황한 표정으로 외친다.
“저보단 언니를 닮았거든요?! 그런데 대체 저 사람은…….”
“──릴리. 릴리 폰 유글리아.”
“네엑?!”
“누, 누구요?!”
내 입에서 나온 이름에 두 자매가 서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지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지금 내 눈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지금 어떻게 묘소 밖으로 나와 있는 거냐.”
내 반응을 보고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는 릴리.
“어라아? 저를 알고 계시는 분이 있었잖아요? 그 징그러운 모습은 저와 안면이 있는 분은 아닌데……. 누구시죠?”
그녀의 질문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하는 걸까. 과거 그녀와 모험을 함께 했던 플레이어? 그녀의 모든 일대기를 지켜보았던 사람? 아니면…….
“그레고리 존스! 제 소환수보고 징그럽다니! 아무리 조상님이라고 해도 제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사과하세요. 조상님!”
릴리의 반응을 본 로제가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나와 그녀에게 소리친다. 그 모습을 보고는 귀엽다는 듯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릴리.
“어라, 우리 후손님의 소환수분이셨나보네요.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이러면 됐나요?”
“흥! 이번 한 번만 넘어가 드리는 거예요!”
“우리 후손님은 착하네요~ 쓰다듬어드릴까요?”
“앗?! 진짜요?”
“다가가지 마라! 로제!”
아무 생각 없이 릴리를 향해 다가가려는 로제를 막아서며 눈앞의 릴리를 노려본다.
“사령술로 부활한 언데드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네? 조상님이 언데드라구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죽음의 향기. 이것은 언데드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사향이었다.
“……쓰다듬어주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는데, 아쉽네요.”
로제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릴 리가 손을 거둬들이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당신이 말 한대로예요. 저는 사령술로 인해서 부활했고 지금은……. 베릴이라는 자에게 영혼이 묶여있어요. 지금은 소환수의 입장이랄까요. 잘못된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은 뭔가 신비하네요.”
그렇게 말한 릴리가 몸을 돌리며 묘소의 문을 두 손으로 연다.
“자, 여기가 지금 제 주인이신 베릴님이에요. 여러분은 저를 막으실 수 있을까요? 막아주신다면 정~말 고맙겠는데. 헤헤.”
“뭐 하고 있나. 릴리. 음? ……주변을 지키라는 명령도 못 지킨 건가. 멍청한 녀석.”
묘소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를 둘러보는 검은 로브의 남성. 그의 가슴에는 전에 봤던 녀석과 같이 나베리우스의 추종자임을 상징하는 뱃지가 달려있었다.
“역시, 이미 늦은 거군.”
손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전투를 준비한다.
내 모습에 다른 아이들 역시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
달그락──!
우리들의 뒤에서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데모닉이 앞으로 나섰다.
달그락──! 달그락──!
“어? 데모닉? 오랜만이네요! 더 귀여워지셨네요?”
데모닉의 등장에 흥미롭게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릴리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달그락──!
“네~ 보시는 대로. 살아 돌아왔어요. 아니, 죽어서 돌아온 걸까요? 이제는 같은 신세네요.”
한 걸음. 한 걸음. 데모닉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그렇게, 서로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다다랐을 때.
“미안해요. 데모닉.”
얼굴에서 미소를 지운 릴리가 데모닉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데모닉 피해라!”
순식간에 빛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릴리의 손. 동시에, 뒤에 서 있던 데킬라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오며 데모닉의 몸을 끌어안고 옆으로 회피했다.
────!!!!
방금까지 데모닉이 서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그대로 있었다면 역소환 되었을 것이 분명한 상황.
숨을 헐떡이며 그 광경을 바라보는 데킬라. 그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다.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고통 없이 보내드리려고 했던 건데. 아쉽네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미소를 지은 릴리가 뒤를 돌아보며 새로이 등장한 추종자를 바라본다.
“마스터, 이 아이들. 처리해야겠죠?”
“……그걸 말이라고 하나. 전부 처리해라.”
“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우리를 바라보는 릴리. 그 광경에 나는 뒤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정신 차려라! 상대는 릴리 폰 유글리아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곧바로 릴리의 뒤에 있는 추종자를 향해 몸을 날린다.
“설마, 제가 그냥 보낼까요?”
동시에 눈앞에 솟구치는 새까만 나무. 릴리가 마법을 발동한 것이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나무가 부러졌지만 내 몸은 나무로 만들어진 벽을 뚫지 못한다.
“공격에 실패했으면 맞을 차례겠죠.”
곧바로 땅에서 뽑아낸 새까만 완드를 쥔 릴리가 나를 향해 완드를 겨냥한다.
[죽음의 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이런 미친!”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날개를 펼쳐 하늘로 솟구침과 동시에 내가 서 있던 장소가 새빨간 화염에 휩싸인다.
“아아……. 이것도 피하시면 서운한데요.”
겨냥당하는 것만으로도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할 정도라니. 대체 어떻게 되먹은 괴물인 걸까.
“이이익! 더이상 조상님이라고 안 참아요!”
나를 공격하는 릴리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일까. 로제가 ‘불굴’을 치켜들고 곧바로 릴리를 향해 달려든다. 땅을 즈려밟으며 발돋움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릴리의 앞으로 다가가는 로제.
로제 역시 릴리가 가벼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는지 곧바로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 ‘로제참’을 시전하기 위해 머리 위로 ‘불굴’을 치켜들었다.
“돌아가셨으면 얌전히 저승으로 가세요!”
있는 힘껏 검을 내려치는 로제. 하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우습게 완드로 로제의 검을 받아내며 고개를 갸웃해 했다.
“이거, ‘불굴’ 아닌가요? 라스와 처음 만났을 때 사용했던 검인데. 우리 후손님한테 잘 갔나 보네요. 아 그렇지! 우리 후손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자신의 검을 무척이나 우습다는 듯 막아낸 릴리의 모습에, 로제는 당황하며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어어, 로제인데요?”
“로제~ 이쁜 이름이네요. 로제의 이름은 제가 기억하고 있을게요.”
“언니!”
화륵. 하고 완드의 끝부분에서 다시 한번 피어오르는 불꽃.
“바퀴벌레 킥.”
로제가 공격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곧바로 릴리를 향해 바퀴벌레 킥을 발동하자 그녀의 완드에 서려 있던 불꽃이 사라졌다.
“참, 위쪽에 로제의 소환수도 있었죠?”
순식간에 그녀의 주변에 생겨나는 보랏빛 장막. 관통력에 치중되어 있는 ‘바퀴벌레 킥’임에도 불구하고, 내 공격은 우습다는 듯 장막에 막히고 말았다.
“기습은 정정당당하지 못해요?”
온몸을 훑고 가는 오싹한 기운. 곧바로 로제를 끌어안으며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장막이 폭발하며 주변을 초토화 시킨다.
“눈치도 빠르셔라.”
싱긋. 입가를 가리며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최종 보스. 아니, 여자 히로인이 타락하다니. 이게 무슨 블리자드 게임이라도 되는 거냐고.
대충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추종자에게서 느껴지는 마력만 해도 최소 5 서클. 릴리 한 명만 상대하는 것으로도 무척이나 버거운 상황에서, 저 녀석까지 합류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전원! 후퇴. 우리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상대다!”
그렇게 말하며 로제와 엘라를 회수해 도망치려고 하던 찰나.
“……누가 도망가도 좋다 했지?”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추종자가 입을 열자 주변에 거대한 돔 형태의 암막이 펼쳐졌다.
“다크 필드…….”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후퇴를 막는 적의 기술로 후반부에서나 나오는 기술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다크 필드가 재현될 줄이야…….
“그, 그레고리님? 이게 대체……!”
“아무래도 도망가는 건 그른 것 같다 로제.”
손에 들고 있던 로제와 엘라를 내려놓고 다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적들은 못 해도 5 서클 이상.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저항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설마 델리니아에 와서 이렇게까지 몰리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로제, ‘그걸’ 준비해라.”
“네? 그거요? 지, 진짜로 해요?”
“……그거 말고는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알겠어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킬라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며 묻는다.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래, 확실한 수는 아니지만…… 지금보다는 낫겠지. 우선, 엘라. 데킬라. 데모닉. 지금부터 전력으로 로제를 지킬 수 있도록. 가능하겠나.”
“……알겠습니다.”
“언니를 지키면 되는 건가요? 해볼게요……!”
그런 우리의 모습이 웃기게 보였던 것일까. 릴리가 이곳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양손을 모아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작전 준비는 끝나셨나요? 그럼, 공격할게요?”
공격을 해오겠다고 먼저 말해오는 건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자신을 막아달라는 릴리의 발악인 것인지.
확실한 것은. 지금 로제를 지키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시작은 화염 속성이에요. 잘 막아봐요?”
릴리의 완드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가장 먼저, 화염에 내성이 있는 내가 나선다.
“검은 늪.”
바퀴들을 소환. 녀석들로 하여 벽을 쌓게 만들어 1차로 화염구를 막아낸다.
“다음은 냉기에요!”
두 번째로 날아온 마법은 아이스 스피어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이번에 나선 것은 데킬라. 그녀는 네크로멘서들이 주로 사용하는 뼈의 벽을 만들어 아이스 스피어를 막아낸다.
“세 번째는 전격이에요! 막을 수 있겠어요?”
이쯤 되니 확신이 들었다.
릴리 폰 유글리아. 그녀는 자신을 막아주길 바라고 있다.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전기. 이번에 스킬을 막아낸 것은 엘라로 정령을 이용한 것인지 땅으로 벽을 만들어 낸 뒤 그곳에 화살을 박아넣어 전격을 모두 흡수해버린다.
“……릴리. 장난은 그만치고 바로 끝내도록.”
“아, 그럴까요? 마스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우리 후손분들. 최대한 열심히 막아주세요?”
“로제!”
우리의 가운데서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열심히 파이프 담배를 피워대고 있는 로제.
“어이……아…… 에으요……!”
이내, 한계까지 숨을 들이쉰 로제가 연기를 내뱉자 우리의 주변에 순식간에 연기가 자욱하게 생겨난다.
그리고.
“……웬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부르지 말라고 했거늘, 그걸 못 참고 소환하는 건가?”
식사를하다 온 것인지 와인잔을 든 채 식탁보를 두르고 있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지원군이 지금 이 자리에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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