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델리니아 릴리 폰 유글리아 2
* * *
“……웬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부르지 말라고 했거늘, 그걸 못 참고 소환하는 건가?”
“와! 됐다!”
아직도 코와 입에서 연기를 풀풀 내뿜으며 신기한 듯 마르바스를 바라보는 로제.
가계약으로 이어져 있던 때라면 모를까. 정식으로 계약을 한 지금은 마르바스가 어디에 있든 소환이 가능하기에 전혀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문제는 우리가 델리니아로 떠나기 전 마르바스가 우리에게 당부한 말 때문이지만.
‘로제, 난 그대의 소환수이기도 하지만 그대들 때문에 아카데미의 교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사라지면 아카데미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정말 중요한 때가 아니라면 소환은 자제하게.’
즉, 그를 아카데미에서 먼 델리니아로 갑자기 부른다면 아카데미의 검술 과목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웬만하면 소환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대륙의 명운과 우리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소환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소환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소환한 이유가 뭐지?”
식사하기엔 글렀다는 듯 손에 든 와인잔을 등 뒤로 던져버린 마르바스가 우리를 바라본다.
이유가 하찮다면 화를 내겠다는 표정. 그렇기에, 설명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좋을듯싶었다.
“뒤나 봐라. 마르바스.”
“……음? 뒤?”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몸이 움찔하고 떨린다.
“……릴리?”
“앗, 마르바스님? 오랜만이에요~”
마르바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반갑다는 듯 위로 손을 뻗어 붕붕 휘두르는 릴리. 그 모습에 마르바스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해라. 최대한 짧고 간단하게.”
“나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릴리의 묘소로 들어가 강령술로 릴리를 부활시켰다. 추정되는 적의 서클은 5 서클 이상. 릴리의 맹공에 전부 죽을 뻔한 상황이다.”
“……미치겠군.”
잠자코 설명을 듣고 있던 마르바스가 탄식하듯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묵묵히 안주머니에서 커팅이 되어 있는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는 마르바스.
연기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내뱉은 마르바스가 입에 문 시가를 들고는 릴리의 옆에 선 추종자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나베리우스의 추종자고. 지금 릴리는 저 녀석에 의해 네크로멘시된 상태다? 억지로?”
“정확하다.”
뿌득. 하고 그의 손에 쥐어진 시가가 으스러진다.
“……감히. 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 감히──!”
노기 서린 외침을 끊임없이 내뱉으며 녀석들을 노려보는 마르바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분노에 뒤에 서 있던 다른 아이들의 몸이 움츠러든다.
“감히 나의 소환사였던! 나의 친우였던! 대륙을 구원했던 영웅의 휴식을 방해하는가! 나베리우스의 추종자 따위가───!”
분노를 터뜨린 마르바스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앞머리를 위로 넘긴다.
“그레고리여.”
“말해라. 마르바스.”
“만약 날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와 로제를 원망했을 걸세.”
“안다.”
“그런고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를 부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군. 고맙다. 그레고리, 로제.”
마르바스에게 있어 로제가 어떤 존재인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도 대충 예상한 일이었다.
“그럼, 나는 저기 보이는 나베리우스의 똘마니를 토막 내면 되나?”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저기서 저렇게 릴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가능하겠나.”
“……그레고리여.”
“왜 그러지?”
“나는 마르바스다.”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듯.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 저 멀리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릴리. 저게 정말 마르바스가 맞나.”
“네. 옛날에 저와 함께 재앙을 물리쳤던 그 마르바스님이 확실해요!”
“……설마 마르바스를 소환하다니. 평범한 조무래기들은 아니었나 보군.”
“그야, 제 후손들이니까요~”
마르바스를 보자마자 여유롭던 모습을 버린 두 사람이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한다.
아무리 내가 지금껏 모습을 숨기고 있던 마계의 대공이라 하더라도 마르바스의 등장만으로 이렇게 대우가 달라지다니.
마음이 살짝 아파져 왔지만, 그만큼 강한 아군이 합류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로 했다.
“지금까지 뒤에서 아무것도 안 하던 녀석이 합류했으니 더 어려워질 거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아군이 합류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해볼 만하겠지.”
릴리에게 베릴이라 불린 녀석이 스태프를 쥐고 중얼거림과 동시에 땅이 솟구쳐오르며 머리 없는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 수는 총 8명. 하나하나가 모두 R등급의 소환수인 듀라한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저와는 다르게 질적으로 우수한 언데드들을 다루는 네크로멘서 같습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데킬라가 한 손에는 낫을 든 채 중얼거린다.
“그래, 평범한 듀라한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놈들인 만큼 하나하나가 이름을 떨친 기사였을 거다.”
게임 속에서 듀라한의 설정은 과거 이름을 떨친 기사들이 망령이 되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었다.
즉, 녀석들은 다른 언데드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나 다름없다는 뜻. 그런 녀석들이 총 8마리이니 사실상 규모가 작은 기사단을 상대한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쪽에는 무려 검의 정점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저 추종자를 노리겠다. 다른 녀석들을 상대해줄 수 있겠나?”
어느새 허공에서 가느다란 검을 뽑아낸 마르바스가 우리를 향해 묻는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로제.
“네! 저희가 길을 열게요!”
“……든든하군.”
그리고 그런 마르바스의 옆에 나란히 선 다른 한 명의 검사.
달그락── 달그락──
“……데모닉님께서 릴리님은 본인이 맡아도 되겠냐 물으십니다.”
마르바스처럼 과거 릴리와 함께 여정을 떠났던 또 한 명의 검사. 데모닉이었다.
“그 몸으로 괜찮겠나?”
3성에 불과한 데모닉이었기에 마르바스의 걱정은 타당했다. 아무리 검술에 조예가 깊은 그라고 해도 8명이나 되는 듀라한들을 뚫고 릴리에게 당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
뒤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데모닉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뼈가 뒤틀리고, 색이 검게 변하며, 조금씩 거대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마르바스와 키가 같아진 데모닉이 입에서 새하얀 숨결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누굴 걱정하는 건가. 마르바스여.”
그는 용사다.
과거 인류를 지키는 데 성공했던 용사였다.
그는 재앙이다.
한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갔던, 재앙이라 불리던 존재였다.
그는.
“나는 데모닉.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을 치켜들며 선언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
“하, 여전하군. 그럼 부탁하겠네. 데모닉.”
……정말이지. 두 명이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것인지.
“듀라한 8마리는 나와 로제, 데킬라가 맡겠다. 너희는 목표만 바라보도록.”
“괜찮겠나? 많이 지친 거 같은데.”
걱정하는 말투로 내게 묻는 마르바스. 허나,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마르바스여, 나는 그레고리 존스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모습에 분노하는 또 한 명의 사람이었다. 나 역시 분노를 삼키며 억지로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내가 플레이했던, 나와 함께했던, 내 모든 것을 함께했던 소녀의 휴식을 방해한 것에 대해, 명예를 더럽히려 하는 것에 대해, 그녀를 부하 다루듯 하는 녀석에 대해 분노한 또 한 명의 사람이었다.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지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새로운 스킬이 해금됩니다!]
나 역시, 추종자 녀석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로제, 엘라, 데킬라.”
그렇기에, 나는 사전에 그녀들에게 경고했다.
“놀라지 말도록.”
[새로운 스킬을 발동합니다.]
[스킬 : 권속 소환]
[권속 소환 – 마계 대공 그레고리 존스에게 종속된 권속을 마계 대공의 권한으로 소환합니다.]
[(스킬 : 권속 소환)을 발동합니다.]
검은 늪과 같이 허공이 일그러지며 새까만 구멍이 생겨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본래의 검은 늪을 발동했을 때보다도 구멍의 크기가 훨씬 커다랗다는 것.
“그, 그레고리님? 저게 대체 뭐에요?”
“또 다른 지원군.”
쿵. 쿵. 쿵. 쿵.
구멍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
점점 커다랗게 다가오는 그 소리가 마침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털로 뒤덮인 거대한 거미의 몸.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인간형의 상체.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불구하고 내게 다가와 네 쌍의 다리를 꿇으며 입을 열었다.
“실비 엘리고스. 그 누구보다도 낮은 곳을 다스리시는 마계 지하의 주인. 그레고리 존스님의 부름을 받아 지금 도착했습니다.”
실비 엘리고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필요한 존재의 등장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