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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41화 (141/169)

〈 141화 〉 델리니아 ­ 릴리 폰 유글리아 3

* * *

“실비 엘리고스. 그 누구보다도 낮은 곳을 다스리시는 마계 지하의 주인. 그레고리 존스님의 부름을 받아 지금 도착했습니다.”

실비의 등장에 한껏 분노를 표하고 있던 마르바스의 표정이 멍해진다.

“……자네, 지금 마계에 있던 실비를 부른 겐가? 어떻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

“……되던데.”

죽을 뻔했더니 지능이 올라 그 능력으로 실비를 소환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냥 그렇게 말하니 마르바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는다.

“내가 누구한테 설명을 요구한 건지……. 됐네.”

“……마르바스? 아몬 일당에게 쫓겨나 인간계로 떠났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그건 그대의 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걸세.”

“……그레고리님께 말씀입니까? 아, 그렇군요. 당신도 그레고리님의 위대함을 깨닫고 그레고리님 산하로 들어온 거군요.”

등장과 동시에 시작부터 엄청난 착각 발언을 내뱉는 실비. 그런 실비의 태도에 마르바스가 질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제발 닥치게.”

“그렇다면, 상황이 상황인 만큼. 농담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상황 역시…… 농담할 분위기는 아닌 모양이군요.”

주변을 살며시 둘러본 실비가 곧장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저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는 릴리와 베릴을 바라본다.

“저들이 바로 그레고리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실비의 표정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래, 나베리우스의 추종자와 과거 용사 파티의 일행이었던 릴리 폰 유글리아다.”

“……예? 릴리 폰 유글리아라니. 그녀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기 있는 저 여성이 그 릴리 폰 유글리아라는 말씀이십니까?”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실비가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베리우스로군요. 전 용사 파티 멤버를 언데드로 살릴 생각을 하다니. 그 시체 박이 녀석다운 생각입니다.”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한 실비가 옆을 향해 손을 뻗자 새하얀 몸과 대비되는 새까만 창 한 자루가 불꽃과 함께 생겨난다.

“명령을.”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듯 내 표정조차 살피지 않고 곧바로 달려 나갈 준비를 하는 실비. 이미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실비의 분위기에 물들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래, 비록 나 자신은 실비가 모시던 그레고리가 아니었지만 그레고리 존스로서 생활한 지 수개월. 이미 내 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두 알고 있었다.

“실비 엘리고스. 나의 가장 충직한 종이자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마계 지하 군단의 군단장이여.”

나 역시 다른 이들과 함께 뛰쳐나갈 준비를 하며, 그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들을 섬멸하라.”

콰앙────!!

발로 땅을 내리밟음과 동시에 릴리와 베릴의 앞에 탐을 두른 바퀴들을 솟아오르게 만들어 시선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로제와 엘라, 마르바스와 데킬라, 데모닉과 실비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내 스킬로 소환된 실비이기 때문일까? 그녀와 나의 마력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지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약 4성 정도의 힘. 아무래도 내 등급에 따라 실비의 능력도 제한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어어, 갑자기 등장하신 거미 언니분. 저희 편이 맞겠죠?”

“그레고리님한테 인사드리는 거 못 봤어요?! 딴생각하지 말고 달려요. 언니!”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두 엘프 자매와

“엘리고스라면 분명…….”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달리는 데킬라. 그리고──

“데모닉. 반드시 릴리를 구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과거 동료였던 두 검사까지.

모두가 한뜻으로 적들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설마 마르바스에 이어 마계에 있을 실비 엘리고스가 나타날 줄이야……. 일이 귀찮아졌군.”

그리고 동시에, 벽을 이루고 있는 바퀴들을 통해 릴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베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엘리고스라면 마계의 대공 중 한 명 아닌가요? 마르바스님까지 있으면 꽤 위험한데…… 후퇴할까요?”

“아니, 결정에 번복은 없다. 목격자들은 전부 제거하라는 것이 그분의 뜻. 릴리. 지금부터는 전력으로 적들을 상대하도록.”

“네, 알겠어요. 마스터.”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끊긴다. 그 이유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따로 설명해주었다.

“하, 어이가 없군.”

탐으로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불꽃을 일렁이다 말고 얼어붙는 화염의 벽. 그 너머로 완드를 들고 있는 엘프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괴물.”

게임에서도 드래곤 브레스를 통째로 얼어붙게 만든 그녀였다. 어째서 탐이 얼어붙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일까.

이렇게 된 이상 나 역시 뒤에서 지원하는 것보단 다른 이들과 함께 달려드는 편이 더 나을 터였다.

“언니 조심해요!”

먼저 앞서나가던 엘라가 로제의 팔을 붙잡으며 뒤로 잡아당긴다.

“엘라?!”

화들짝 놀라며 그대로 끌려가는 로제. 동시에, 방금까지 로제가 서 있던 곳이 폭발하며 흙이 솟구쳐 오른다.

“이, 이건 또 뭐야아아!”

“언더 구울 이예요!”

눈앞의 구울을 향해 소리치며 그대로 마력을 운용해 바람의 칼날을 날리는 엘라. 하지만 바람은 구울을 뒤로 밀려나게만 했을 뿐. 목을 베어내지는 못했다.

지하에서 광물을 섭취하는 언더 구울의 특성인 단단한 피부를 뚫지 못한 것이었다.

“비켜 엘라!”

앞을 향해 발을 내디디며

언더 구울의 목을 향해 불굴을 휘두르는 로제.

터엉! 하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언더 구울의 목이 허공을 가른다.

“앗싸 베었다!”

“언니! 앞! 앞! 앞!”

“이게 뭐야아아아아!!!”

릴리에게로 향하는 길이 울룩불룩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내 동시에 솟아오르는 땅들.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언더 구울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지휘 개체인 언데드들이 왜 이렇게 떼거리로 있는 건데요!”

“로제. 로제 동생. 숙여라.”

“엣?”

“엘라. 숙여!”

로제가 엘라의 머리를 잡아 짓누르며 자신 역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동시에 무척이나 부드러운 몸짓으로 검을 일(一)자로 휘두르는 마르바스. 동시에 방금 기어 올라온 언더 구울들의 머리가 순식간에 몸과 작별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마르바스의 옆.

“방해입니다. 언데드들.”

달그락──!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는 듯 다리가 8개인 거미의 몸으로 매서운 돌진을 하며 창을 휘두르는 실비와 그들의 뒤에서 솟아 나오는 언더 구울들을 무참히 베어내는 데모닉까지.

그야말로 전장이 되어버린 숲의 한복판에서, 나는 천천히 모습을 숨긴 채 두 녀석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스킬 : 동화)를 발동 중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친 녀석들이군.”

“헤헤, 저와 함께 재앙을 무찔렀던 동료들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적이지.”

“맞아요. 운명도 참 야속하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베릴이라는 자는 끊임없이 네크로멘시를 통해 언데드들을 소환하고 있었고 릴리는 그런 베릴의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용사의 파티 중 감이 가장 좋다는 설정을 가진 릴리. 그렇기에 최대한 집중하며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간다.

“왼쪽이 뚫릴 것 같군. 릴리, 저쪽을 지원하도록.”

“마스터 혼자 계셔도 되겠어요?”

“……듀라한들을 주변에 배치해 뒀으니 문제없다.”

“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싱긋 웃으며 실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릴리.

“몸조심하세요?”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면 베릴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을 태지만……. 어째서인지 방금 릴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그렇게 나를 지나쳐가는 릴리를 뒤로하고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베릴에게 접근한다.

릴리가 자리를 비운 틈을 차지하고 있는 듀라한 4마리. 남은 듀라한들은 모두 마르바스와 로제, 엘라가 있는 방향에 몰려 그들의 전진을 막고 있었다.

릴리도 없고, 듀라한들의 반 이상이 자리를 비운 상황.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음을 깨달은 나는 곧장 녀석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했다.

비록 ‘전진무의탁’은 사용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기술이 있는 법.

여전히 언데드를 뽑아내느라 이곳을 신경 쓰지도 못하는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숨을 한 번 고른 뒤 땅을 박찼다.

[(스킬 : 날개 펼치기)를 발동합니다.]

[(스킬 : 폭발적인 속도)를 발동합니다.]

[(스킬 : 화염 인챈트)를 발동합니다.]

[(특성 : 탐)을 발동합니다.]

[(스킬 : 바퀴벌레 킥)을 발동합니다.]

“바퀴벌레…… 다크 킥.”

지금까지의 바퀴벌레 킥이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는 것에 특화가 되어있었다면, 온갖 스킬을 떡칠한 다크 킥은 좀 달랐다.

일반 바퀴벌레 킥이 총알이라면 바퀴벌레 다크 킥은 대전차 미사일.

언데드들의 뒤에 숨은 녀석을 공격하기 위해선 하늘이 아닌 땅에서 승부를 봐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마력의 기류를 느낀 것인지 녀석이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언데드들을 자신의 몸 앞으로 옮긴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곳은 하늘이 아닌 땅이라고.

엄청난 속도를 유지하며 방향을 바꾸기 위해 중간 다리 하나를 포기하며 방향을 왼쪽으로 튼다.

이것으로 한 마리 돌파. 그리고 다른 녀석이 나를 잡기 위해 칼을 휘두르지만, 유선형 몸에 빗겨나가고 만다.

그렇게 두 마리 돌파.

세 번째 녀석은 온몸을 벌려 나를 막아내려 하는 모양새. 그러나…….

“두 마리면 충분하다.”

듀라한 두 마리 정도야. 공격 째로 날려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대로 죽어라. 나베리우스 따위나 숭배하는 것.”

그 말을 끝으로, 언데드의 몸통에 내 다리가 닿음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주변을 휘감았다.

아, 또 뒤지게 아프겠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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