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델리니아 릴리 폰 유글리아 4
* * *
한편, 데모닉과 데킬라는 무척이나 여유롭다는 듯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릴리를 바라보았다.
“데모닉님. 저희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상대는 과거 재앙을 막아낸 영웅. 그에 비하면 본인은 아직 소환사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1학년 학생에 불과할 뿐이었기에, 데킬라는 평소보다도 많은 감정을 드러내며 조심스레 데모닉에게 물었다.
“힘들 거다. 평범한 5성도 아니고 언데드가 된 릴리이니, 지치지도, 고통도 느끼지 못할 거다.”
이에 데모닉은 냉정한 평가를 내리며 검을 들어 올린다. 릴리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션을 취해왔기 때문이었다.
“데모닉님! 같이 싸우는 건 오랜만이네요!”
“……서로 싸우는 것도 같이 싸우는 걸로 치는 거였나.”
릴리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데모닉이 대답하자 릴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럼요~ 이것도 같이 싸운다고 할 수 있다구요. 그렇죠? 거기 이쁜 소환사님?”
이번에 릴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데킬라였다. 뭔가 괴리감이 느껴지는 릴리의 말. 잠시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몇 번 중얼거린 데킬라가 이내 고개를 들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같이 싸우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같이 싸우도록 하죠.”
데킬라의 말에 릴리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데모닉.
이에 해답을 주겠다는 듯 데킬라가 입을 열었다.
“그레고리님이 뒤에서 무언가 하시고 계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릴리님은 아마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
데킬라의 말을 듣고는 힐끔 릴리의 표정을 살피는 데모닉의 모습에 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걸요? 제게 내려진 명령은 여러분을 말살하라는 것과 이곳을 막으라는 것뿐이니까요. 저는 그 명령을 따를 뿐이에요.”
그리고 동시에 주변의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재빨리 검과 낫을 들며 경계 태세를 취하는 데모닉과 데킬라.
“릴리가 마법을 전개하기 전 우리가 먼저 들어가는 게 좋을 거다.”
“동감입니다. 데모닉님께서 먼저 진입해주십시오. 제가 뒤를 따르며 지원하겠습니다.”
“그 말에 따르도록 하지. 나의 소환사여.”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데모닉의 주위로 검은 오오라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데모닉의 종족. 다크 나이트의 기본 강화기인 [스킬 : 다크 오라]를 발동한 것이었다.
효과는 전체적인 능력치 상승.
몸에 검은 오라를 두른 데모닉이 영창을 위해 손을 뻗은 릴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 속도로는 늦는데요!”
릴리의 손에서 사출되는 새빨간 불덩어리. 순식간에 날아오는 불덩어리에 데모닉은 칼을 위로 치켜들고. 뒤에 선 데킬라는 그런 데모닉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크 오라!”
데모닉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오라가 폭발하듯 퍼져나오며 더욱 거센 오라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크기와 능력이 향상된 데모닉은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바라보며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긋는다.
“이런 공격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릴리.”
“데모닉님은 옛날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을 베어내시던 분이셨죠.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역으로 데모닉을 향해 달려드는 릴리.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완드는 어느새 형태를 바꾸어 검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면 옛날에 제가 데모닉님과 마르바스님께 검을 배웠다는 사실도 당연히 기억하고 계시겠죠?”
데모닉을 향해 사선으로 검을 내려치는 릴리. 이에 데모닉은 비스듬히 검을 기울이며 릴리의 검을 옆으로 흘려냈다.
신체적인 스펙상 정면으로 막다간 검이든 자신의 몸이든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부서질 것이란 확신이 들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대에 대한 검의 재능은 내가 본 사람 중 두 번째로 재능이 뛰어난 제자인데.”
“어머, 두 번째요?”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리는 검격. 데모닉이 허리를 뒤로 완전히 꺾음과 동시에 데킬라의 낫이 릴리의 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막아내는 릴리.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무리 저라도 질투가 날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는 릴리의 몸을 걷어차 뒤로 밀어낸 데모닉이 자세를 고쳐잡는다.
“너무 질투하지 않아도 될 거다. 첫 번째는 네 녀석의 후손이니.”
“흐음. 그래요? 저기서 열심히 싸우는 아이일까요?”
“그래, 너와 같이 마르바스와 내게 검을 배우고 있는 아이이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방향을 보는 데모닉과 릴리. 그곳에는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듀라한들을 베어내고 있는 로제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바로 뒤에 데모닉님의 소환사분도 계시는데.”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데모닉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릴리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한다.
“내 소환사는 내가 본 네크로멘서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데킬라.”
“──준비되었습니다. 데모닉님.”
데모닉의 부름에 대답한 데킬라가 낫을 땅에 내리꽂고는 자신의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지금 무슨───”
♬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서글픈 멜로디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마치 죽은 자를 위로하려는 듯.
살아있는 자들에게 안정을 주듯.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들리는 이 노래의 속에서 유일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개체가 하나 있었다.
──으득.
──빠드득.
뼈가 뒤틀리고, 재조립되며 거대해진다. 뼈들의 틈에서 솟구치는 검은 기운은 마치 하나의 피부처럼 뼈를 뒤덮으며 질량을 만들어낸다.
죽음의 기운이 압축되어 피부를 만들어내는 광경.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는 황당함이 서린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처음 뵈었을 땐 3성 정도였는데. 그 모습은 데모닉님이 5성이었을 때의 모습이 아닌가요?”
“말하지 않았나. 나의 소환사는 최고의 재능을 가진 네크로멘서라고.”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이 땅에 존재하는 언데드들을 제령함으로서 막대한 마력을 얻게 된 데킬라는 그것들을 제물로 바쳐 오직 단 한 명의 소환수. 데모닉에게 집중한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아무리 너라도 쉽지 않을 거다. 릴리.”
“……기대할게요. 과거, 나의 기사님.”
과거의 인연이 지금, 다른 형태로 다시 재현되려 하고 있다.
* * *
자신이 상처 입을 것을 각오하고 날리는 필살기. 그것은 어찌 보면 주인공들의 전매특허인 기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기술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주인공이라 반드시 살 것이라는 확신이 아닌 나의 종족, 나의 몸에 대해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바퀴벌레.
그것은 생존력의 화신이자 지구의 지배자라 불리는 곤충 중 하나.
비록 혐오스럽고 괴상하게 생겼어도 바퀴가 강하다는 데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박 시에는 뭐…… 세스코거나 돈벌레겠지.
“이런 미친 녀석이……!”
탐과 바퀴벌레 킥의 콜라보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폭발은 예상대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며 베릴의 주변에 있던 듀라한들을 모두 부숴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래, 듀라한들만.
듀라한의 주변에 둘러싸여 있던 녀석은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손을 뻗어 보랏빛 장막을 펼쳐내며 내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감히……. 감히……!”
내 공격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오른팔을 부여잡고는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외치는 베릴.
그래도 내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팔이 재생되지 않는 거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원래는 팔이 잘려도 재생이 되었던 모양. 아무래도 내 탐이 닿으며 녀석의 재생능력을 막은 모양이었다.
대천사의 신성력도 먹어 치우는 불꽃이니, 네크로멘서의 재생력을 틀어막는 것 정도야 당연하겠지만.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네가 그 정도라는 거겠지. 멍청한 놈.”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억지로 붙들어 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직도 [특성 : 끈질긴 생명력]의 힘으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몸뚱아리. 이 특성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몇 번의 목숨을 잃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약속하마. 네 녀석만큼은 반드시, 나베리우스님께 부탁을 드려서라도 지옥의 끝자락에 처박을 것이다!”
녀석이 나를 향해 온갖 저주를 내뱉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웃긴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나베리우스에게 이르겠다는 말을 하는 건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고통이 몸을 지배해도, 주변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내게 부여되어 있는 특성 [귀족]이 있는 한 나의 표정과 몸짓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마르바스를 친우라 부른다. 실비 엘레고스가 나를 높여 부른다. 그럼에도 정녕 나를 나베리우스의 아래에 있는 악마라 생각하는 건가.”
상황은 녀석의 오른팔이 날아갔을 때부터 이미 내게로 넘어온 지 오래였다.
자신의 몸에 발생한 커다란 이변. 방어했음에도 오른팔이 사라져버릴 정도의 공격.
마침내, 녀석이 내게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네 녀석이…… 네 녀석이 대체 뭐기에──”
“마계에서는 나를 이렇게 부르더군.”
마계 지하의 지배자.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악마.
공포의 악마.
“그레고리 존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불리기를 원했다.
“───너의 공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