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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43화 (143/169)

〈 143화 〉 델리니아 ­ 릴리 폰 유글리아 5

* * *

녀석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가 나의 몸에 흘러들어온다.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공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막대한 감정.

공포는 갑피에 난 상처로 스며들어 순식간에 내 몸을 치유하며 부족했던 힘마저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간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무척이나 여유로운 걸음으로 녀석이 있는 방향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오지 말아라……! 오지 마! 릴리! 릴리 폰 유글리아!”

나의 접근에 녀석이 다른 인원들을 막으러 간 릴리의 이름을 애타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와 녀석의 사이를 가르는 새빨간 불의 장벽.

“아쉽지만 저희 마스터는 그만 괴롭히셔야 할 것 같은데요~”

불의 장벽의 끝. 그곳에는 완드를 들고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릴리 폰 유글리아.”

“결국 실패하셨네요.”

“그러는 네 모습도 꽤 만만치 않다만.”

“어머, 그런가요? 상대가 상대였으니까요.”

싱긋 웃는 그녀의 뒤로는 거의 서 있는 것조차 신기하게 느껴지는, 뼈 마디마디가 금이 가고 왼팔은 부서져 버린 데모닉이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검에 의지하여 겨우 서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데킬라의 모습까지. 사실상 중상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의 모습으로 겨우 서 있는 것에 비하면 릴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가벼운 경상이 전부였다.

그래, 경상.

5성급의 힘을 가진 릴리 폰 유글리아가 겨우 3성 소환수인 데모닉과 아카데미 1학년인 데킬라에게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천하의 릴리 폰 유글리아가 3성 소환수와 소환사 아카데미의 1학년 학생에게 상처를 허용하다니, 놀랄 일이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데모닉님이잖아요. 그리고…… 저기 있는 네크로멘서 아이도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구요. 억지로 소환수의 경지를 2단계나 올릴 수 있는 소환사가 평범한 학생일 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데킬라는 내가 인정한 몇 되지 않는 1학년이니까.

“……보아하니 마스터를 쓰러뜨리는 건 실패하신 모양이죠?”

릴리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팔을 부여잡고 있는 자신의 마스터. 베릴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직도 오른팔에서 격통이 느껴지는 것인지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는 베릴. 여전히 그에게선 공포가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펼쳐봤지만……. 저게 전부더군.”

5 서클에 경지에 오른 네크로멘서에게 저 정도의 피해를 입힌 것도 사실상 기적에 가까웠다.

“그럼, 이제 어쩌실 거예요? 제가 없는 마스터를 최강의 공격으로도 쓰러뜨리지 못했는데, 방법이 있나요?”

“방법? 방법은 차고도 넘치지.”

“그레고리님!”

듀라한들의 공격을 뚫어낸 것인지 내 옆에 도착한 로제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눈앞의 릴리를 노려보았다.

“이익! 감히 그레고리님한테! 조상님 꼼짝 마! 조상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내 몸에 난 상처를 릴리가 낸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로제가 눈앞의 릴리를 향해 소리치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은 릴리조차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로제를 바라보는 릴리. 이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눈가에 고여버린 눈물을 훔치며 내게 말했다.

“참, 재미있는 아이네요?”

“그렇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이니 말이다.”

“어머, 파이 그 아이가요? 그 아이는 잘 있나요?”

“작약공이란 이름으로 제국에서 열심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마르바스님과 당신, 데모닉님을 한데 모은 것도 저 아이의 능력이겠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서클이 하나 더 늘어나면 파이몬과도 계약하겠다 벼르고 있으니 파이몬도 포함이다.”

“네? 파이몬님까지요? 소환수 중에 당신 같은 대악마만 3명이라니, 제 후손이지만 대체……. 마왕이라도 꿈꾸는 건가요?”

“마왕……. 그레고리님. 조상님이 뭔가 멋진 별명을 지어준 것 같아요.”

“……좋은 별명은 아닌 거 같다만.”

뭐, 휘하에 마계 대공이 2명이나 있으면 마왕이 맞다고 볼 수 있으려나.

본인은 모르지만 이미 마왕이 되어버린 로제였다.

“릴리! 잡담은 그만하고 당장 저 새끼들을 죽여!”

뒤에서 팔을 부여잡고 있던 베릴이 보다 못한 것인지 릴리를 향해 소리친다.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와 로제를 바라보는 릴리.

“들으셨죠? 명령을 받은 이상 어쩔 수 없어요. 네크로멘시라는 게 원래 이러니까요.”

“그래,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설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어머, 여유로우시네요? 지금의 당신으로는 절 이기실 수 없어요? 알고는 계신 거죠?”

“본래 소환사여서 모르는 건가? 릴리 폰 유글리아?”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로제의 앞에 섰다.

“소환수란 본래 소환사와 같이 싸우는 법이다. 준비됐나 로제.”

“물론이죠! 조상님을 다시 묫자리로 돌아가게 해드리자구요! 저, 조상공격 잘해요!”

……보통은 조상공경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아니라면 엘프들은 조금 다른 거려나. 시간개념이 인간과는 다르니까……. 음, 말이 될지도?

“앗하하하! 하하! 그렇죠! 소환수는 소환사와 함께죠. 그러면, 기대해도 되는 거죠?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서 버텨주세요!”

릴리의 주변으로 생성되는 푸른 마법진들. 그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통나무라 불러도 될법한 거대한 얼음송곳들이었다.

릴리의 손짓과 동시에 이곳을 향해 수십의 얼음송곳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재빨리 회피하기 위해 몸을 굴리려는 로제. 그런 로제의 손을 붙잡고 나는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저거, 안 피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설마 저한테 막으라는 그런 건 아니겠죠?”

“설마, 내가 그러겠나.”

우리를 향해 올곧게 날아들던 송곳들이 갑자기 휘청이기 시작하더니 서로 부딪히기 시작하며 완전히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그 광경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로제.

“그레고리님. 눈빛만으로 송곳들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내가 가리킨 곳에는 양손에서 실을 뿜어내고 있는 실비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아아! 거미 언니!”

“내가 말하지 않았나. 소환수는 소환사와 함께라고.”

얼음송곳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 실비가 이곳을 향해 다가온다. 그녀의 뒤에는 어설프게 그녀를 막으려다 분쇄가 되어버린 언데드들의 잔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내 옆에서 발을 구르며 눈앞의 릴리를 바라보는 실비. 그녀 역시 한 명의 마계 대공이자 대악마의 반열에 오른 존재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릴리를 가리켰다.

“실비 엘리고스. 길을 열어라.”

“존명.”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실비가 릴리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나와 로제.

“마스터, 저도 마스터의 지원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아무리 저라도 대악마 둘을 정면에서 막는 건 힘들어서요~”

“……쓸모없는 것!”

릴리의 요청에 베릴이 땅에서 언데드들을 불러낸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실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는 언데드들. 그러나 실비는 귀찮다는 듯 허공에서 만들어낸 창을 휘두르며 언데드들을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거미 언니 엄청 쌔네요!”

대악마 수집가의 촉이 발동한 것일까. 눈을 반짝이며 실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로제.

“그녀 역시 마계의 대공이니 말이다.”

“네?! 그런 사람을 불러올 수가 있는 건가요?”

……자기는 이미 그런 마계 대공을 두 명이나 계약했으면서.

사실 실비의 '마계 대공' 칭호는 나 대신 마계지하공사를 관리하며 얻은 칭호였지만, 그녀가 다른 악마들에게 대공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지능이 상승하면서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더군.”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하신 모양이네요. 저도 그 검은 불길은 봤어요. 설마 5성의 기술이 다른 악마를 소환하시는 것일 줄이야.”

그렇게 말하며 로제가 입에 담뱃대를 물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레고리님. 제게 비장의 한 수가 있어요. 저기 네크로멘서의 앞까지만 저를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마력이 많이 필요한 모양이군.”

“네, 엄청.”

“반드시 길을 열도록 하지.”

“부탁드릴게요.”

────!!!

거침없이 나아가던 실비가 멈춰선다. 그녀의 앞에 새하얀 뼈의 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창을 휘둘러보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뼈의 벽. 동시에 위에서는 실비의 마법이 날아오고 있었다.

“──숙여라.”

우리의 뒤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실비가 고개를 숙이자 우리의 머리 위로 새까만 참격이 지나가며 벽과 마법을 동시에 베어냈다.

“난 이걸로 끝이다.”

커다랗게 성장해있던 데모닉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하며 본래의 모습인 조그마한 해골로 변한다. 그런 데모닉을 몸을 던져 받아내는 데킬라.

“밟고 나아가십시오.”

실비의 말에 나와 로제는 그녀의 거미형 몸을 밟고 위로 뛰어오른다. 동시에 벽 너머에 보이는 릴리. 그녀는 우리를 향해 완드는 겨누고 있었다.

“릴리는 내가 막으마. 너는 네가 할 일을 해라.”

“네!”

“──검은 늪.”

베릴에게서 흡수한 공포를 마력으로 변환하며 검은 늪을 형성.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얼음덩어리를 뒤덮어 버린다. 동시에 탐을 인챈트하여 릴리의 마법을 그대로 먹어 치웠다.

대체 로제가 말한 비장의 수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드래곤 브레스.”

“응?”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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