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아카데미의 소문 3
* * *
“……대부분 사실이지 않나.”
“뭐?”
아카데미의 부총장실.
그곳에는 나와 레빈포트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해보도록. 로제가 마계대공들과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 그것도 4명 밖에 없는 마계대공 중 3명이나.”
“……그렇지.”
“그리고 그 중 둘은 계약관계고.”
“맞지.”
“나머지 하나는 계약 예정이고.”
“맞다.”
“휘하에 대공을 셋이나 두면 뭐라고 부르는지 아나? 왕이다. 왕. 그렇다면 로제가 마왕이라 불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레빈포트. 뭔가,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반박하기가 힘들다.
“그뿐일까. 제국의 황제는 이미 그대들에게 푹 빠져 후원금을 보내질 않나. 그대는 과거, 총장을 겁박해 영약을 뜯어낸 적도 있다지?”
“그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그래, 있었겠지. 하지만 그 이유를 다른 학생들이 모두 알리는 없지.”
“……그래서, 못 도와주겠다는 건가?”
내 이야기를 들은 레빈포트가 차로 목을 한 번 축인 뒤 나를 바라본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건 너무 악의적으로 누군가 퍼뜨린 느낌이 강한 거 같군. 그거 아나 그레고리 존스? 다른 소환수의 차원에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라는 범죄가 있다더군.”
“……뭐?”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도 그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처벌해야한다는 뜻이지.”
“그런 말도 안되는 법이 있을리 있나.”
“처음 들었을 때는 나도 놀랐지. 사실을 말했는데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니 말이야. 아무튼, 이걸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사실이더라도 범죄일 수도 있다. 이것이지.”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중요한가? 결국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리를 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을 낸 자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한 번 찾아보도록 하지.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것만으로도 고맙군.”
“고맙긴. 제자의 일인데. 그건 그렇고, 방금전 마르바스에게 한 가지 보고를 받았다만……. 너희. 대체 델리니아에 가서 무슨 짓을 하고 온 거냐.”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변했다.
“델리니아?”
설마 어젯밤 온종일 보고서를 쓴 건가?
“……아카데미의 교사직도 힘들겠군. 설마 파이몬에게 들렀다가 곧바로 보고서를 쓴 건가.”
“호오? 파이몬? 역시 소문은 사실이었던 거군?”
내 중얼거림에 레빈포트가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정말이지……
“어차피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서머니아에 파이몬이 있다는 사실을 네가 몰랐을 리는 없을 텐데.”
“글쎄 말이다? 그야 모르는 일이지.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베리우스의 추종자들이 움직였다는 말이 사실인가?”
다시 미소를 지우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레빈포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릴리를 사령술로 부활시켜 자신들의 선전 영웅의 용도로 사용하려 했다더군.”
이야기를 하다 문뜩, 로제가 드래곤 브레스를 외치며 불을 쏘던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네가 로제에게 알려준 드래곤 브레스 덕분에 막아냈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보고서에서 보지 못한 것인지 꽤나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레빈포트.
“그 아이가? 알려준 기억은 있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 성공한 모양이군. 드래곤이 아님에도 브레스를 쏘는 엘프라……. 확실히 마왕이라해도 이상하지 않다만?”
“놀리는 건가.”
“들켰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레빈포트.
“아무튼, 그대들 덕분에 재앙 측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회의를 열어야 겠지.”
레빈포트가 개최하는 회의라…….
“회의라 함은, 대륙회의를 말하는 건가?”
“그래, 설마 릴리의 묘를 노릴 줄이야. 그렇다는 것은 다른 국가의 영웅들을 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휴식이라 생각했건만, 또 바빠지겠군.”
오랜만에 돌아온 아카데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에 치여 사는 그녀.
“그렇다면 이제 보충수업은 없어지는 건가?”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었지만…….
“그럴 리가. 이번 회의의 소집은 아카데미에서 할 예정이다.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포기할 수는 없지.”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부총장실을 나섰다.
“……여전히 바쁜 여자군.”
자, 그럼 어떡할까. 선도부에도 말했고, 총장에게도 말했고, 방금은 부총장에게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학생회 뿐.
“……가볼까.”
혼자만이 남은 부총장실. 찻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다음 목적지인 학생회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학생회실]이라는 표찰이 달린 방의 문을 두드리자 나를 맞이한 것은 안경을 쓴 차분한 모습의 여자 아이였다.
넥타이의 색을 보아선 2학년인 모양. 아무래도 학생회의 멤버 중 한 명으로 보였다.
“1학년 로제 폰 유글리아의 소환수인 그레고리 존스다. 잠시 학생회장을 만나러 왔다.”
“아, 당신이 그 소문의…….”
학생회에서도 알고있다고?
아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그래서, 학생회장은 안에 있나.”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죄송합니다만 회장님께서는──”
“되었다. 안으로 모셔라.”
“예? 아, 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레고리 존스님.”
자신의 몸만 보일 정도로 문을 열고 있던 여성이 문을 완전히 열며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학생회실의 풍경. 확실히, 아카데미 학생 조직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자랑하는 조직인 만큼 꽤나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는 학생회실이었다.
“……그럼, 실례하도록 하지.”
그녀를 지나쳐 학생회실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녀석들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호기심, 경계, 놀람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학생회실 속에서, 유난히 내게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대가, 신성교단으로부터 제국을 지켜준 제국의 영웅. 그레고리 존스공. 이겠군?”
본인이 회장이라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듯 책상 위로 새하얀 양발을 올린 채 고개를 젖히고 있는 여성.
“그렇다면 네가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겠군.”
“……정답일세.”
자줏빛 머리를 길게 느러뜨리며 재미있다는 듯 킥킥 웃는 저 여자가 바로 현재 소환사 아카데미의 3학년 수석.
학생들의 정점에 선 자.
“반갑네. 그레고리 존스 공. 본녀의 이름은 스칼렛 룬 게르스톨. 부족한 몸이지만 과분하게도,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자일세.”
바로 이 소환사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었다.
"이크, 손님이 오셨는데 자세가 좀……그렇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내게 다가와 손을 건넨다.
첫 만남부터 기싸움을 하자는 건가?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내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한 적이 없었다.
"학생회장이 이렇게나 나를 신경써서 반겨준다면, 나 역시 예의를 갖춰야겠지. 그렇지. 본래의 모습으로 인사를 받는 게 맞겠지? 변신."
곧바로 그녀의 앞에서 바퀴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반짝이는 섬광에 잠시 눈을 찌뿌리는 스칼렛.
"반갑군. 학생회장. 나는 그레고리 존스. 마계의 대공이자…… 1학년인 로제 폰 유글리아의 소환수다."
녀석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지면을 받히고 있는 2개의 팔을 제외한 다른 팔 중 하나를 그녀를 향해 뻗었다.
이에 움찔하고 몸을 떠는 학생회장.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굳어있다.
"음? 왜 그러지 학생회장? 표정이 꽤 굳어있지 않나."
"딸꾹──!"
학생회장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굳은 표정과 심하게 떨리고 있는 동공, 그리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공포.
하지만 이내, 그녀의 주변에서 마나가 몰아치며 이내 떨림이 잦아들었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그레고리공의 본모습이군. 하핫, 생각했던 것 보다…… 대단하군."
사자심과 같은 공포 내성 계열의 스킬을 쓴 건가.
방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한 층 차분해진 스칼렛이 미소를 지으며 내가 건넨 손을 붙잡아 흔든다.
아무리 공포 내성 스킬을 사용했다지만 내 손을 곧바로 잡는다고? 로제도 날 직접 만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보아하니 3학년 수석인 만큼 사용하는 스킬의 수준도 높은 모양이었다.
"자, 우선 앉게나. 제니? 손님께 내드릴 차를 부탁하지."
"아아아, 네, 네? 넷? 네!"
그나마 떳떳한 모습을 보이는 스칼렛과는 다르게 방금 전까지 나를 맞이해 주었던, 제니라 불린 여성은 벌벌 떠는 모습으로 곧장 몸을 돌리며 티세트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레고리공도 괜찮다면 그 모습은 이제 그만해주는 게 어떻겠나?"
그녀의 말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학생회들은 모두 벌벌 떨거나 고개를 돌리며 최대한 내 모습을 바라보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내 일전의 무례는 사과할 터이니. 부탁하네."
"무례라니,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네 말대로 하도록 하지."
변신을 해제하자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공포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명 학생회라면 1학년 말고도 2,3 학년들도 섞여있을 터.
그들에게까지 내 모습이 통하는 걸 보아서는 나 역시 5성이 되며 좀 더 주변인들이 공포를 느끼기 쉬운 체질 된 모양이었다.
"후, 역시 그 모습이 훨씬 잘생긴 것 같군. 자 ,그럼 우선 앉겠나? 아, 제니. 손님께 드릴 차를 좀 부탁하지."
"네, 넷? 네?! 네!"
방금까지의 충격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것인지 어리버리 티세트가 있는 곳으로 후다닥 발걸음을 옮기는 여성. 이름이 제니인가?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그레고리공께서는 어떤 이유로 우리 학생회를 찾으셨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그녀가 안내한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그녀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듯 내가 온 목적에 대해서 물어왔다.
흠,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본론을 묻겠다 이건가.
나쁘지 않겠지.
"최근 나와 내 소환사. 로제 폰 유글리아에 대해 떠도는 소문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나 물어보러 왔다. 짚이는 부분이 있나?"
"아, 그거 말인가?"
내 말을 듣고는 곧바로 반응하며 몸을 일으키는 스칼렛.
"분명 그대와 그대의 소환수가 아카데미와 제국을 정복하려 한다는 소문이었지 아마? 그쪽 그레고리공은 여자들을 함락시키고 다니고 말이야. 흠…… 확실히 그런 외모라면 충분히 다른 여자들을 공략하고 다닐 만 하겠군. 아, 내 취향은 아니지만 말이네."
"……그래서, 소문을 낸 사람에 대해 아는 정보는 있나."
"아아, 그걸 물어보러 온 거였나?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질문을 하러 온 건 아니었군. 난 또 학생회에 도전하러 온 건 줄 알았지 뭔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한 스칼렛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그 질문이라면 대답할 수 있다네. 그렇다면, 그대는 내게 정보의 조건으로 무엇을 제시할텐가? 그레고리공."
설마 여기서 내게 제안을 해 올 줄은 몰랐다.
정보의 대가를 달라……. 이거, 재미있게 나오는데?
"아카데미와 학생회의 평화. 를 가져다 준다면. 정보를 줄 텐가?"
"그런 대가라니, 그거라면 우리가 쉽게 질 것 같진 않다만…… 흠. 표정을 보아하니 농담은 아닌 모양이지?"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미소를 짓다 이내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스칼렛.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