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아카데미의 소문 4
* * *
“지금 학생회를 상대로 협박하는 겁니까!”
우리의 대화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학생회 멤버 중 한 명이 버럭 화를 내며 나를 향해 소리친다.
힐끔.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방금전 스쳐보았던 2학년 남학생이었다.
“저자는?”
“……부회장인 타르 고슬링. 고슬링 왕국의 왕자이지. ……타르. 지금 손님과 대화 중인 건 나일 텐데?”
“하지만! 저자가 지금 우리를 겁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슬링. 나는 지금 손님과 대화하고 있다 확실히 말했다.”
조용히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그제야 자신이 무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움찔하고 몸을 떠는 부회장.
“죄, 죄송합니다. 회장.”
“그대의 충심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회장인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이야기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조금 자중해 주었으면 싶군.”
“……예.”
“호오.”
고슬링 왕국의 왕자를 저런 식으로 대할 수도 있는 건가. 아무리 제국 공작가의 후계자인 스칼렛 룬 게르스톨이라 하지만 설마 한 왕국의 후계자를 저렇게 대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게 학생들의 정점에 있다는 학생회장의 모습인가.
“이야기 중간에 미안하게 되었네. 그레고리 공.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오도록 하지. 그래, 우리에게 학생회와 아카데미의 평화를 주겠다고?”
다시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올린 스칼렛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혹시, 그대의 눈에는 우리 학생회가 우스워 보이는가?”
방금 부회장에게 했던 것처럼 무거울 뿐만 아닌 적의가 담긴 목소리. 방금까지만 해도 부회장의 무례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도 곧바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공과 사는 철저히 하겠다는 스칼렛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꼬리를 내릴 내가 아니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렸나? 이것 참, 나도 무게를 잡고 말할 걸 그랬군.”
“……뭐?”
“잘 들어라. 학생회장.”
그녀와 나를 양단하고 있는 책상에 손을 올리고 몸을 기울여 그녀의 얼굴에 다가간다.
“내 소환사인 로제가 평범한 소환사 같나? 평범한 학생인가? 이런 소문의 대상이 되어 명예가 훼손되어도 좋은 사람인가? 이에 대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소환사인 로제는, 절대 이런 소문이 돌도록 방치해도 되는 소환사가 아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회장의 동공이 얇게 떨린다.
비록 인간의 모습이라고 해도 내 본질은 악마. 바퀴폼이 아니어도 미미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신성교단에서 아카데미를 침공했을 때,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그리도 당당한가. 소환사 아카데미의 회장. 스칼렛 룬 게르스톨.”
그녀는 지금, 자신의 위치에 빠져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성교단의 침공으로부터 학생들을 지켜낸 자가 누구지? 제국의 위기에 빠졌을 때, 누가 제국을 구원하고 막대한 양의 지원금을 벌어들였지? 지금 아카데미를 위해 가장 열심히 움직이는 자가 누구지?”
단언컨대, 나는 대답할 수 있다.
“로제 폰 유글리아. 나의 소환사이자 아카데미의 구원자. 제국의 구원자. 유글리아 가문의 장녀이자 릴리 폰 유글리아의 후손. 그녀의 묘소를 지켜낸 델리니아의 영웅. 이 모든 게 바로 나의 소환사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아카데미에 떠돌고 있는 소문이 과연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스칼렛 룬 게르스톨 회장?”
“…….”
그래, 할 말이 없겠지. 지금 아카데미의 학생회는 그저 자신들만의 권력 놀이에 빠져 있던 귀족들에 불과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자격이 있다. 아카데미를 위하는 학생회라면, 진정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라면, 이런 일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스칼렛 룬 게르스톨 공녀.”
학생회장인 그녀를 도발하기 위해 마지막은 일부러 이름으로 불렀다.
이렇게 말해야만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테니까. 내가 현재 그녀를 학생회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까.
“아카데미가 침공받을 때 우리 회장님은 다른 아카데미에───”
“분명 대화 중에는 끼어들지 말라고 했을 터인데, 그대마저 나를 무시하는가! 타르 고슬링!!!”
“회, 회장!”
노기 서린 스칼렛의 외침에 부회장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뱉는 스칼렛. 숨을 몇 번 고른 것으로 감정을 추스른 것인지 처음 봤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이내 입을 연다.
“그대의 말대로, 우리 학생회는 그대의 소환사. 로제 폰 유글리아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러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그대에게 말해봤자 변명이 되어버리고 말겠지. 음, 그러니 단 한 마디, 딱 한 마디만 하도록 하겠네.”
그렇게 말한 스칼렛이 갑자기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멱살을 부여잡는다.
“학생회를 얕보지 말아라. 악마.”
그리고는 곧장 나를 뒤로 밀치고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향해 몸을 돌리는 스칼렛.
“타르 고슬링.”
“예. 회장님.”
“두 시간 주겠다. 2학년과 3학년 전체를 조사하여 로제 폰 유글리아의 소문과 관련된 정보들을 모두 모아라.”
“존명.”
그리고는 곧장 학생회실 밖으로 나가는 부회장.
“제니.”
“예! 회장님.”
“부회장이 소문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동안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에 대해 조사를 해라. 물론, 눈에 띄지 않게.”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대답과 동시에 부회장을 따라 방을 나가는 학생회 서기. 제니.
“준 막드라.”
“부름을 받았습니다. 회장.”
“아카데미의 뒷 조직을 매수해서 작금의 소문과 관련된 정보들을 모아 내게 제출해라. 한 시간 주겠다.”
“그리하겠습니다. 회장.”
그렇게 스칼렛의 명령을 들은 마지막 남학생까지 밖으로 나가고, 결국 학생회실에는 나와 스칼렛.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그레고리 공.”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스칼렛.
“뭐지? 설마 내게도 무슨 명령이라도 할 셈인가?”
내 말에 뒤돌아 있던 스칼렛으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대, 농담도 할 줄 아는 남자였군?”
“귀족에게 분위기를 풀 수 있는 적당한 농담은 중요 사항이지.”
“……방금까지 나와 학생회를 헐뜯던 모습을 생각하면 괴리감이 심하군.”
“악마는 원래 제멋대로인 법. 이해하려 하는 쪽이 이상한 거지.”
“……말은 참 잘하는군.”
“그런 악마이니.”
지금껏 창가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던 스칼렛이 다시 내 쪽을 바라본다.
그녀의 표정은 방금까지만 해도 내 농담을 받아주던 사람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다.
“그레고리 존스 공. 내가 어째서 학생회의 간부 셋이나 동원해 그대를 도우려 하는지 아는가?”
“음? 내 도발 때문에?”
그런 내 대답에 아주 조금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스칼렛.
“……도발? 뭐, 그런 면도 조금 있긴 하지. 하지만, 그게 확실한 이유는 아닐세.”
내 도발 때문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게 원하는 게 있는 건가?”
내 두 번째 대답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는 스칼렛.
“그렇지. 당당히 학생회실에 찾아와 도발과 요구를 하는 그대의 모습을 보고 그대에게 원하는 게 생겼지.”
“설마 사과는 아니겠───.”
“내 남자가 되어주게. 그레고리 존스 공.”
“──뭐?”
네?
뭐요?
“방금……뭐라고 했지?”
“이런이런, 본녀에게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다시 한번 더 하게 할 심산인가? 역시 악마라 그런지 짓궂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남자가 되라고 했네. 그레고리 존스 공.”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도발하고 내 소환사를 대상으로 발생한 악의적인 소문을 처리하라 한 것 때문에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대체 언제부터 ‘소환사 아카데미아’에 고백 공격이 존재 했던 거지?
“어째서라니, 진심으로 묻는 건가? 마계의 대공이라는 지위, 현재 아카데미 및 제국과 대륙에서 떨치고 있는 명성, 그리고 준수한 외모. 소환사 아카데미의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공작가를 이어야 할 소녀의 눈으로 본다면 아카데미에 그대만 한 배후자는 더 없을 듯싶은데?”
“아니, 그렇다 쳐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음, 역시 싫은가? 알겠네. 그렇다면 대신 우리 학생회에 들어오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은 어떤가?”
하, 결국 이게 목적이었나.
“역시, 앞서 말했던 건 이 제안을 하기 위해 그냥 던졌던 말이었군. 이쪽 제안이 진짜였나.”
“음? 그것 역시 진심이었다만.”
……이 여자가 진짜.
“앗하하! 그렇게 무서운 표정이라니, 왜. 공녀가 여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겐가? 그대의 소환사인 로제 폰 유글리아의 미모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소문을 들어 알고는 있었다만, 그런 눈빛을 받으니 꽤 상처로군.”
여기서 이 이야기를 더 했다간 결국 내가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우선은 한숨을 내뱉으며 방금 꺼낸 제안에 대해 묻기로 했다.
“그래서, 나보고 학생회를 들어오라는 소리인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그렇지. 공녀. 스칼렛으로서가 아닌 학생회장의 스칼렛으로서 그대는 정말 탐나는 인재거든. 아, 물론 그대의 소환사인 로제 폰 유글리아도 포함해서 말이야. 제국의 영웅이자 용사의 후손. 그리고 마계의 대공이 함께 있는 학생회라니. 분명 그대들이 학생회에 합류한다면 새로워질 아카데미는 용사 라스와 릴리 폰 유글리아가 있던 때 보다 분명 더 눈부신 아카데미가 되겠지.”
그렇게 말한 그녀가 그대로 내게로 다가와서는 자연스럽게 내 양손을 붙잡고는 고개를 올려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대와 그대의 소환사는 충분한 인재야. 마침 내가 졸업을 하게 된다면 이 빈자리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었는데, 마침내 눈앞에 나타나고야 만 것이지. 어떤가? 그레고리 존스 공. 내가 그대를 학생회장으로 만들어 주겠네.”
다른 사람들이 있었을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초롱초롱한 눈동자.
괜히 마주치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은 눈동자를 피하며, 나는 단호히 말했다.
“거절한다.”
“──어째서!”
“그야 나는 소환수일 뿐. 나보다도 내 소환사인 로제의 의견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그뿐이겠나.”
내 몸의 원주인인 그레고리 존스는 관리하는 것을 귀찮아해 실비에게 전권을 위임한 악마였다. 그런 악마에게 아카데미의 관리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학생회장의 자리를 권하다니.
이미 내 머리와 몸은 전력으로 그 자리를 하지 말라 외치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귀찮다.”
“……귀, 귀찮? 소환사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들의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자격, 가장 뛰어난 학생임을 증명하는 자리. 그런 자리가 단순 귀찮다고?”
“그래, 귀찮다. 다른 녀석을 알아보던가 내 소환사인 로제 아니면 그대 제국의 황녀인 프리실라에게나 권하도록.”
로제나 프리실라가 학생회장이 된다면 나는 뒤에서 권력을 이용하기만 하면 될 터인데, 굳이 내가 학생회장까지 해야 할까? 나는 억지로 학생회장의 자리에 올라 책임마저 지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 권력은 책임 없는 권력이 최고지. 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