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아카데미의 소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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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장의 끈질긴 스카웃은 2시간이나 이어졌다.
학생회에 들어오면 대륙의 수많은 귀족들과 연을 쌓을 수 있다던가, 추후 귀족 사교모임에서 뛰어난 경력이 된다던가, 아카데미 내부에서의 영향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던가.
물론 이러한 이유들은 내게 쓸모가 없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아카데미에서의 영향력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2시간 내내 스칼렛의 말을 무시하며 학생회실에 눌러앉아 있길 약 2시간 정도 흘렀을 때, 비장한 눈빛을 한 부회장과 서기, 총무가 동시에 학생회실의 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회장님.”
“음, 고생했다. 어디까지 알아냈지?”
방금까지만 해도 내 옆에서 계속 학생회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던 스칼렛이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부회장 일행을 바라보고, 이에 부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절도 있는 동작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선다.
“예, 회장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부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발짝 나오며 똑같이 고개를 숙이는 학생회 서기 제니.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회장님이 정보를 조사하는 도중 이상행동을 보인 인물들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열에 서며 고개를 숙이는 총무, 준 막드라.
“암흑상인 동아리에 접근하여 알아낸 결과 익명으로 지금 퍼지고 있는 소문에 대한 정보들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아직 의뢰서를 가지고 있었기에 필적 대조를 위해 원본을 가져왔습니다.”
“완벽하군. 그레고리 존스 공? 자료를 확인하고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니 식사라도 먼저 하고 오는 게 좋겠군. 나는 …………음.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모든 일을 마쳐 놓도록 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본래 자신의 자리에 앉아 가슴 주머니에 꽂혀있던 만년필을 꺼내 들고는 빙글빙글 손가락 위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밥도 안 먹고 곧바로 일할 생각인가?”
“하아.”
내 말에 준 막드라가 서 있는 곳에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
“회장님은 원래 식당에서 식사를 안 하십니다. 항상 매점 도시락이나 빵을 드시며 업무를 보시죠. 1학년 1학기의 막바지라면 왜 교내식당에 회장님이 한 번도 모습은 안 보이시는지 보통은 궁금해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공격적으로 나를 쏘아 붙이는 녀석. 녀석도 저기 부회장 녀석처럼 회장빠 같은 건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대가 이해해주게. 본인의 소환사라고 나를 생각해서 저리 말해주는 것일세.”
“음?”
아무래도 회장의 소환수였던 모양이다.
“그럼 저 녀석의 직책은 학생회장의 소환수. 그런 건가.”
“…………준은 원래 세계에서 마법사이자 상단의 후계자였다네. 그 능력을 살려 총무로서 나와 함께 학생회를 이끌고 있지.”
아, 총무인가.
확실히, 저 싸가지 없는 표정은 돈 계산에 목숨을 거는 상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군. 이해했다.”
자기 소환사를 아끼겠다고 저렇게 말하는데, 굳이 뭐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군요. 당신은.”
1절까지만 했다면 말이야.
“꼴에 총무라고 태도를 지적하는 꼴이라니, 어이가 없군.”
2절에 뇌절까지 해오면 아무리 인내심이 뛰어난 나라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쩌겠는가. 내게 붙어있는 [특성 : 귀족]이 나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부들거리고 있는 것을.
“이미 회장과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사이좋게 헤어지려고 하는데, 꼭 이렇게 초를 쳐야 했나? 총무라고 해서 조금은 냉정히 생각할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그래도 역시 자신의 소환사를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으니 정상참작을 해주는 편이 좋을 터, 나는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가 목소리에 공포를 담으며 녀석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학생회라는 직위를 믿고 마계의 대공을 우습게 보지 말아라. 애송이.”
‘소환사 아카데미아’의 설정상. 마계는 다른 차원보다도 상위의 취급을 받는 차원이다.
대부분의 차원이 2중, 3중으로 꼬여 오갈 수 없는 것과는 달리 마계와 천계 그리고 정령계는 이 세계와 연관이 깊어 서로에게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소환수들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천사인 라파엘이 다른 학생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는 모습만 보아도 평범한 소환수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물론, 악마를 숭배하는 이들이나 검을 숭배하는 이들은 검성으로 알려진 마르바스를 숭배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어린 꼬맹이는 나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다시 한번, 나중에 다시 마주칠 때는 내 위치와 네 위치. 내 영향력과 네 영향력. 내 명예와 네 명예에 대해 상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다음에는 정말 말로 끝나지 않을 수가 있었으니까.
자신을 감싸기 위해 끼어든 소환수가 내게 쓴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뒤에 앉아 있는 스칼렛은 아무 말이 없다.
아마 그녀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한 말에 틀린 말이 없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준 막드라가 안일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공작가에서 태어난 그녀이기에, 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그녀이기에 지금 저렇게 참고 있는 것이리라.
“훌륭한 네 소환사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은 하지 말도록.”
그대로 녀석을 지나쳐 출구를 향해 걸어가다 문뜩 언제 다시 찾아올지 말을 안 해줬다는 것이 떠올라 고개를 돌려 스칼렛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찾아오지. ,학생회 측에 제공할 보상도 같이 말이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잔뜩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뭐, 학생회 입부 신청서라도 가져올 셈인가?”
“…………또 그 소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학생회실을 빠져나왔다.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10분 전.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식당에서 가장 가까운 흡연실에 들어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얼리로제 흡연!”
잔뜩 신이 난 목소리와 함께 모래바람을 휘날리며 한 소녀가 흡연장으로 난입했다.
“어? 그레고리님? 먼저 와 계셨네요?”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인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로제. 이내 자신이 뭐라고 외쳤는지 떠오른 듯 점점 얼굴을 붉힌 로제가 휙 하고 몸을 돌린다.
“드, 들으신 건가요!”
“…………뭘 말이냐. 얼리로제 흡연?”
“히야아아악! 역시 들으셨어! 창피해! 쪽팔려!”
“…………내 눈앞에서는 잘도 파이어 로제 펀치를 외치면서. 겨우 그런 걸로 창피한 거냐.”
“네? 응? 어, 그런가요? 그런가?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다행스럽게도, 내 말에 창피함이 사라졌는지 양쪽 뺨에 손등을 대고 있던 로제가 손을 떼며 허리춤의 파우치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어디에 두고 혼자 왔나.”
“아! 원래 프리실라랑 데킬라는 조금 걸음이 늦으니까요! 제가 호다닥 달려와서 이거 한 대 싹 피고 나가면 두 사람도 딱 알맞게 도착할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뛰어온 거였나. 뭔가 로제라서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뭐랄까, 친구들과 나란히 걷다가 신발 끈이 풀리면 앞에 먼저 달려가서 묶는 아이를 보는 느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되는 희한한 느낌이었다.
먼저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내가 먼저 꽁초를 버리고, 그다음으로 로제가 파이프를 털어낸 뒤 마법을 이용해 파이프의 내부를 청소한 뒤 우리는 나란히 흡연실을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어? 그레고리님?”
“오늘은 자기도 같이 있네?”
“로제와 같이 있으셨군요.”
“…………”
정말 거짓말같이 프리실라와 데킬라, 라파엘과 데모닉이 흡연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헤헤, 제 말대로죠?”
예는 대체 이런 타이밍을 어떻게 기억하는 거람.
다른 의미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래.”
“히히………….”
그리고 그런 로제의 모습을 보며 쿡쿡 웃는 프리실라.
“로제, 표정을 보니까 오늘도 저희가 언제 오는지 맞추고 있던 거죠?”
“맞아요. 그리고, 오늘도 귀신같이 성공했어요! 강하다 로제! 두렵다 로제!”
그리고 그 모습에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데킬라가 입을 연다.
“사실 저희는 3분 전부터 여기에 서 있었습니다.”
“네? 지, 진짜요? 그럼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처음 듣는 사실이라는 듯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로제. 이에 프리실라는 치사하다는 표정으로 데킬라를 바라본다.
“그,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지금까지 비밀이었는데!”
“…………그랬습니까?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프, 프리실라. 그렇다면 지금까지 항상 저를 기다려 준 거예요…………”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질문하는 로제. 그 질문에 프리실라는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히 저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로제가 미안해할까 봐요.”
“으으…………진짜아…………프리실라아…………”
점점 목소리를 높인 로제가 그대로 프리실라를 향해 뛰어들며 프리실라를 와락 껴안는다.
“최고예요! 너무 착해요! 진짜 천사! 완전 천사! 완전 감동!”
“으윽! 로제 숨 막──”
“몰라요옷! 이대로 껴안고 있을래요!”
“로제에에…………”
“프리실라아아아~”
…………정말이지. 사이가 좋다고 생각되는 두 사람이었다.
“아, 어………… 저도 껴안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프리실라를 안고 있는 로제를 한 번 더 껴안는 데킬라. 덕분에 프리실라는 양쪽에서 끌어안기는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제는 셋이구나.
“숨 막── 라파에엘~”
“보기 좋은걸? 그레고리. 나도 안아── 꺅?!”
“더우니까 떨어져라. 라파엘.”
“…………힝.”
이런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악의적인 소문이라니.
점심시간이 빨리 끝나길 기다리는 건 오늘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