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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52화 (152/169)

〈 152화 〉 아카데미의 소문 ­ 6

* * *

“아, 늦지 않게 왔군. 그레고리 공.”

학생회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경을 올려 쓰며 서류를 보고 있던 스칼렛이 안경을 벗곤 눈을 한 번 비비더니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점심시간이 끝났음에도 서류를 들고 있는 모습에 질문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니, 그 일은 진작에 끝났네. 확인하겠나?”

스칼렛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팔랑팔랑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서류 봉투를 들어 나를 향해 흔든다.

저 안에 범인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건가.

“그럼, 감사히 받도록 하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손에 들려있는 서류 봉투를 건네받는다. 생각보다 가벼운 봉투.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살짝 흔들자 스칼렛이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는다.

“범인을 보면 꽤 놀랄걸세. 나 역시 놀랐으니 말이야.”

“그래?”

서류 봉투를 봉하고 있는 실을 돌돌 풀어낸 뒤 안에 있는 내용물을 살펴본다.

“…………확실히.”

“놀랍지 않은가?”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겠지.”

설마, 이 사람이 소문의 근원일 줄이야.

“뒷장을 보면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을 걸세.”

그녀의 말을 듣고 다음 장으로 넘겨 사건의 발단이 적혀 있는 페이지를 살펴본다.

“허.”

절로 기가 막히는 내용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서류를 봉투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그레고리 존스 공.”

“어쩌긴.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나.”

범인도, 이유도 모두 알아낸 시점에서, 할 거라곤 이제 정의 구현밖에 남지 않은 상황. 나는 곧바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려 범인이 있는 곳을 향하려 했다.

“잠깐.”

스칼렛이 학생회실을 나가려던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뭐지?”

“설마, 이대로 그냥 갈 셈인가? 이렇게 학생회가 발 벗고 나서서 일을 해결 했는데?”

“그거에 대해서라면 분명 오전에 말했을──”

“학생회는 흥신소가 아닐세. 그레고리 공.”

방금까지만 해도 친근함이 담겨 있던 스칼렛의 목소리가 차갑게 돌변했다.

“그러니, 빚을 달아 놓은 정도로 하지. 어떤가?”

다시 말끝에 친근함을 담으며 싱긋 미소 짓는 그 모습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물론이고 소문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까지 발 벗고 나서 완벽히 조사를 해줬으니, 빚을 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마음대로 해라.”

“후후,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그럼, 조심히 가게나. 그레고리 공.”

스칼렛의 인사를 뒤로하고 학생회실을 나와 곧바로 범인이 있을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20분 정도가 남은 상태. 지금이라면 범인이 어디에 있을지 예상이 갔기에 망설임 없이 빠른 걸음으로 1학년 교실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간다.

* * *

아직까지 점심시간이기에 시끌벅적한 교실. 원체 내가 1학년 소속이기도 하고 아카데미 이곳저곳을 쏘다고 다니기 때문인지 내가 들어왔음에도 내게로 몰리는 관심은 없었다.

뭐, 나로서는 이편이 더 조용하고 좋지만.

곧바로 고개를 들어 가장 먼저 소문을 퍼뜨린 녀석을 바라본다.

“글쎄, 거기서 다른 대악마인 엘리고스님이 나타나서는 그레고리님께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하는데 엄청나게 놀랐다니까요?”

마치 델리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눈앞에서 본 것, 마냥 이야기 하는 범인. 분명 저런 식으로 이야기 한 게 살이 붙으며 걷잡을 수 없게 된 게 분명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범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묻는 다른 학생.

“어쩌긴요! 저를 필두로 우르르 몰려가서 그 나쁜 네크로멘서들을 묵사발 내줬죠. 마지막에는 슬픈 이별………… 특히 마계로 돌아간다는 엘리고스님이 슬픈 눈으로 그레고리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리던지…………”

“아아…………”

그렇다.

그 상황을 겪고서 저렇게 말하고 다닐 녀석이 누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모험들을 이곳저곳에 퍼뜨린 녀석이 누가 있겠는가.

“데킬라양과 데모닉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위험했을 거예요. 역시, 강한 상대는 물량으로 상대하는 게 최고니까요.”

“역시, 머릿수 앞에 장사 없다! 라는 거군요.”

“맞아요! 그러니까 저보다 강한 녀석이 있으면 더 강한 사람들을 모아서 우르르 패버리면 되는 거죠!”

“멋져요. 로제!”

“엄청난 모험을 하고 오셨네요!”

“헤헤…………”

그렇다.

범인은 바로 저 녀석.

“로제 폰 유글리아.”

“응? 아! 그레고리님! 범인은 찾으셨어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로제.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녀석에게 다가가…………곧바로 새까만 정수리를 주먹으로 꾸욱꾸욱 눌러주었다.

“응? 갑자기 머리를 쓰담── 아아악! 아파요옷! 아파욧! 가, 갑자기 왜에에엣!”

“그야 범인을 찾았으니 응징하는 것 아니냐!”

“버, 범인이라니이잇! 아파욧! 아파욧! 아그갸야아악!”

설마, 로제 본인이 범인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평소 몇 명을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었던 로제. 하지만, 나의 등장과 동시에 큰 사건들을 해치우며 석차가 급상승한 로제의 모습은 주변 학생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로제에게 하나둘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아이들은 로제의 석차 반등의 비밀을 묻고자, 수많은 아이들이 로제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고 로제는 그런 아이들의 물음에 답하고자 지금까지 있었던 모험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로제에게는 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쭉 로제에게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던 로제는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무척 당황하면서도 들뜨고 말았고 본인도 모르게 이야기를 할 때 과장 하거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설명하고 말았고 덕분에, 그렇게 퍼진 이야기들에 살이 하나둘 붙으며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라는 게 바로 학생회에서 조사한 이번 사건의 전말이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설마 로제가 소문의 진범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로제의 이름을 보았을 때는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뒷장에 있는 보고서를 확인함과 동시에 내 기억 속의 로제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고 생각해보니 로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 곧바로 달려오자마자 이번 사태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현장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스칼렛이 전해 준 보고서를 안 믿을 수가 있을까.

“아파요오옷! 그, 그레고리니이이임!”

정말이지, 못 말리는 소환사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다들 죄송합니다아. 저 때문에 그런 소문이 퍼지고 말았어요.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아…………”

보충수업을 위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로제가 이번 소문에 연루된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게 되었다.

“설마 로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던 게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동감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라 다행이군요.”

다행히도 사건에 엮여있던 두 아이는 웃는 얼굴로 로제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로제.

“두 분 다 정말 고마워요오…………”

“아니에요. 정말 현실성 있는 소문이었다면 모를까. 지금 아카데미에 퍼지고 있던 소문은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얼마 안 있으면 헛소문으로 치부되겠죠.”

프리실라 역시 그러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독자적으로 조사한 것이 있었는지 곧 있으면 사라질 소문이라 믿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로제가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마왕 로제라던가, 그레고리님이 호색하다던가. 라는 소문이 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한편, 데킬라는 대체 어떻게 하면 로제의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와전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싱긋 웃으며 대답해주는 라파엘.

“인간들의 소문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소문이 소문을 낳고, 그렇게 생겨난 소문은 또 다른 새로운 소문으로 변하는 거지.”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를 하는 라파엘.

“그러니까, 소문도 소문을 낳는 세상인데. 우리도 아이나 낳을까 그레고리? 아이 이름은 그레고르 존스. 어때? 후후…………”

간만에 라파엘을 좋게 생각해주려 했더니 곧바로 이상한 소리를 내뱉어 준 덕분에 내 머릿속 라파엘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을 수 있었다.

대체 쟤를 누가 천사라고 데려다 놓은 걸까.

진짜.

“결국 이걸로 아카데미에 떠도는 괴소문은 일단락되겠군요. 앞으로 로제만 조용히 하면 될 테니 말입니다.”

데킬라의 팩폭에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귀가 축 처진 로제.

잔뜩 기가 죽은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아이들의 앞에서 스칼렛의 보고서 세 번째 장을 펼쳐 보였다.

“물론 로제의 잘못만은 아니다. 여기에 적힌 인원들이 바로 고의적으로 우리에 대한 헛소문을 덧붙인 자들이지.”

그렇다.

그녀는 소문의 근원지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괴상한 소문을 추가한 학생들 또한 조사하여 내게 전해준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네요.”

내 손에 들려 있는 이름들을 쭉 훑어보며 침음하는 프리실라.

“보아하니 프리실라를 견제하거나 최근에 떠오르는 로제를 끌어 내리기 위해 이러한 짓을 한 것 같군요.”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목적성을 간파한 데킬라.

“나도 데킬라의 의견과 같다. 분명 그러한 이유로 소문을 그렇게 괴상하게 만든 거겠지. 그러니, 나 역시 그들에게 대응하고자 한다.”

“피의 복수인가요?!”

축 쳐져 있던 귀가 바짝 솟아오르며 로제의 표정에 생기가 감돈다.

‘피의 복수’라니. 이러니까 마왕 소리나 듣는 거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주었다.

“같은 아카데미의 학생이니 피의 복수는 조금 힘들지. 대신, 내가 사전에 하려 했던 복수를 할 예정이다.”

“네? 그레고리님이 사전에 하려고 했던 방법이요?”

예상이 안 되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해하는 로제.

설명해 주었다간 분명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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