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54화 (154/169)

〈 154화 〉 아카데미의 전학생 ­ 2

* * *

“본인의 이름은 유켈. 환영을 요구.”

너무나도 무뚝뚝한 표정으로, 국어책을 읽는 듯 자신을 소개하는 유켈.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다른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설명이 너무 단조로운데, 유켈. 좋아하는 거나 싫어하는 건 어떻나.”

보다 못한 교관이 얼굴을 푹 숙이고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린다. 이에 힐끔 교관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유켈.

“교관의 요청을 확인. 좋아하는 것은 천신님. 싫어하는 것은 악마. 이상.”

악마도 소환수로 존재하는 아카데미에 있어서는 파격적인 발언에 속하는 말이 유켈의 입에서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사실상 이 반에서 나와 로제의 서열이 1위이기도 했고, 그런 내가 악마였기 때문이다.

“…………”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몰리자 유켈의 시선 역시 내게로 움직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해하는 유켈. 이내 녀석은 차갑게 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기운. 악마…………”

음? 설마 날 못 알아보는 건가?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녀석에게 단 한 번도 인간폼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아하니 아직 로제는 제대로 보지도 못한 모양이고.

그래도 어째서인지, 예전처럼 악마랍시고 곧장 달려들지는 않는 모양. 교관의 태도나 녀석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사태에 대해 아카데미에서 직접 개입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 그, 그레고리님! 저 사람, 제국에서 봤던 그 사람 아닌가요?”

로제 역시 유켈을 알아본 것인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묻는다. 그리고 동시에 로제를 인식했는지 점점 눈이 커지는 녀석.

지금인가?

“변신.”

화려한 빛무리가 몸 주변을 휘감자, 반에 있는 누군가가 다급히 ‘다들 고개 돌려어어!!!’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바퀴폼을 보는데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켈. 그녀는 이내 빛무리가 사라지자 그녀의 몸이 움찔하고 크게 움직였다.

“거, 검은 벌레…………”

“오랜만이군. 유켈. 모습을 보아하니 잘 지낸 모양이지?”

그녀에게서 진한 공포의 향이 느껴진다. 과거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과 제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인지 차분하게 그지없던 그녀의 동공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교, 교관……”

유켈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교관의 뒤에 숨는다. 이에 한숨을 내뱉으며 표정을 찡그림과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교관.

“그리고 전달이 늦었지만………… 그레고리 존스공. 부총장님께서 찾으시니 가보도록.”

“호오?”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건가?

“그리고, 원활한 아침조회를 위해 그 모습은 좀 자제해주면 좋겠군.”

역시 교관이어도 정면에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 나 역시 유켈에게 보여주기 위해 변신한 것이었기에 다시 인간폼으로 변한 뒤 로제에게 다가갔다.

“로제, 부총장에게 다녀오마.”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저 녀석이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곧장 제압할 수 있도록.”

“네! 로제 펀치로 혼내주면 되는 거죠?”

잔뜩 기합을 주며 두 주먹을 꽉 쥐는 로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로제 펀치로 혼내줘도 무방하다.”

“넵!”

지금의 로제라면 저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제압할 수 있겠지.

로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뒷문을 통해 교실을 나와 레빈포트가 있는 부총장실로 향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레빈포트가 한 일이니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터.

“부총장. 나를 찾았다고 들었다.”

부총장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서류의 산에 둘러싸여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 레빈포트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그레고리 존스. 왔군.”

한숨 돌리려는 듯 미간을 꾸욱꾸욱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레빈포트. 이내 그녀는 자연스럽게 찻주전자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며 나를 향해 물었다.

“차는 뭘로 마시겠나. 커피? 홍차? 음료”

“…………커피로 부탁하지.”

“아. 커피야말로 삶의 활력소나 다름없지.”

주전자 하나를 집어 든 레빈포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전자의 입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평소에도 저런 식으로 커피를 보관한 뒤 마시는 모양. 찻잔에 커피 두 잔을 채운 레빈포트는 그대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와 내 앞과 본인이 앉을 자리 앞에 찻잔을 놓았다.

“흠, 그대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분명 오늘 전학 온 그 아이 때문이겠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 레빈포트가 나와 눈을 맞춘다.

“제국에서 체포되었을 그 아이가 어째서 아카데미에 있는 거지?”

“그거야 내가 데려왔기 때문이지.”

“제국 황실과 아카데미를 테러한 녀석을 전학생의 신분으로 데려왔다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레빈포트.”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레빈포트가 차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국에서 심문을 하던 도중 새로운 정보가 나왔다.”

“…………정보?”

“그래, 정보다. 지금 전학 온 인물이 신성교단이기 이전에,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겠지?”

갑자기 유켈에 대해서 내게 물어오는 레빈포트.

유켈이 어떤 인물이냐. 인가. 그거라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과거 신성교단의 비밀병기로서 재앙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소녀. 그리고 재앙의 소멸과 동시에 사라진 영웅.”

그것이 바로 유켈이 가지고 있는 과거였다.

“그래, 그런 유켈이기에 제국 측은 그녀가 천상신의 이름을 걸고 밝힌 정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대들이 이번에 델리니아에 다녀오며 남긴 보고서를 보고는 내가 맡는 게 합당하다는 판단을 했지.”

우리의 보고서를 읽고 아카데미로 데려왔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성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상상치도 못한 단어였다.

“자신이 성녀를 찾을 수 있다는 정보가 유켈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황실의 아래에서 성녀를 찾는 것을 돕는 조건으로 석방을 요구했지.”

“…………그래서 황실은 유켈을 석방했다 이건가?”

“그렇지. 석방하는 김에 최소한의 족쇄를 채우기 위해 아카데미로 보낸 것이고 말이야.”

황실의 판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레빈포트 정도의 실력자가 유켈을 돌본다면 도망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군. 분명 내가 있으니 아카데미로 보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거기에 추가 설명을 붙여주자면 족쇄는 나 혼자만이 아니다. 그대와 나. 둘이지.”

“나까지 말인가?”

“기숙사 테러 사건과 황실 테러 사건. 두 사건 모두 그대가 유켈을 제압하지 않았나. 프리실라가 말하길 그대의 얼굴만 보아도 벌벌 떨 것이라 하던데.”

프리실라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무언가 이상했다. 제국이 겨우 그런 이유로 성녀의 정보를 알고 있는 유켈을 이렇게 손쉽게 넘긴다니. 대체 제국은 왜 유켈을 이곳으로 보낸…………그거군.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음? 다른 이유 말인가?”

“그래, 다른 이유. 예를 들자면…………제국이 그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던가.”

내 말에 지금껏 무표정했던 레빈포트의 눈동자가 커진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고? 분명 제국이 내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소수밖에 모르는 사실일 텐데………… 역시 방심할 수가 없군.”

게임 속에서 레빈포트와 제국 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살짝 떠본 것이었는데, 역시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고대부터 인류를 위해 힘을 써온 드래곤. 레빈포트. 그런 그녀이기에 제국이나 되는 거대집단에 빚을 지워둘 수 있던 거겠지.

“그래, 그대의 말대로 제국은 내게 큰 빚을 지고 있고, 나는 그 빚을 조금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유켈을 데려왔다. 그 아이는 그저 잘못된 이들의 손에 들린 도구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게 바로 레빈포트의 본래 성격이었다.

‘모든 인간은 교육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과거 아카데미가 세워지며 레빈포트가 격언으로 삼던 말이었으니까.

“…………참으로 너 다운 이유로군.”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유켈. 그 아이는 지금 내 ‘용언’으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다. 아카데미의 학생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과 교사에게 반항하는 것, 그리고 외부 신성교단과의 접촉과 아카데미 외부로의 이동이 금지당한 상태이지.”

어쩐지, 자신만만하다는 듯 유켈을 데려왔다 싶었더니. 용언을 사용했던 건가.

세계의 규칙을 마력으로 구현하는 힘. 용언이라면 유켈에게 그런 제약을 씌우는 것 정도는 쉬웠겠지.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뭐냐.”

설마 유켈을 어떻게 제약했는지에 대해 자랑하고자 부른 것은 아닐 테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딱히 크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만, 그레고리 존스. 그대가 소환사인 로제와 함께 유켈이 아카데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군.”

“…………뭐?”

지금 이 도마뱀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이군.”

정확히는 도마뱀을 생각했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간 곧바로 사지가 분해될 터. 일단은 조용히 하기로 했다.

“유켈은 사실상 처음으로 포로로 잡힌 신성교단의 간부다. 그리고 현재는 오랜 세월을 겪은 부작용인지 자아가 무척이나 불안정한 상태이지. 그러니, 나는 이 아카데미에서 그녀를 교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유켈과 안면이 있는 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지.”

“…………나와 유켈이 안면이 있는 것은 맞다만, 서로 좋은 인상을 남기진 않은 걸로 기억한다만.”

“보다 보면 정도 들고 하지 않겠나? 그리고 물론, 공짜로 그대와 그대의 소환사를 부려 먹을 생각은 없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푸른 비늘에 새겨져 있는 그녀의 이름.

“블루 드래곤이 은인에게 건네는 증표이지. 내게 빚을 지웠다는 증표이기도 하고.”

즉, 블루 드래곤 1회 이용권이나 다름없는 물건. 그러한 물건이 지금, 내 앞에 놓여졌다.

“어떤가. 이제 흥미가 조금 생기는가?”

깍지를 끼고 자신의 턱을 받힌 레빈포트가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못하는 녀석 하나를 도와주는 대가로 드래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

“그래서, 내가 정확히 뭘 하면 되는 거지?”

개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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