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속 악마대공이 되었다-155화 (155/169)

〈 155화 〉 아카데미의 전학생 ­ 3

* * *

레빈포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이미 1교시는 끝나 있었다.

“아! 그레고리님! 금방 오셨네요?”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라 생각한 것인지 쉬는 시간 중간에 뒷문으로 들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서는 휘둥그렇게 눈을 뜬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끝나서 말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녀석은 얌전히 있던 모양이구나?”

“헤헤, 네!”

얌전히 로제의 옆에 앉아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켈. 대충 모습을 보아하니 로제에게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얌전히 수업을 듣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엎드려 자는 동안 망이나 보라고 했어요!”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구나.”

“그쵸? 그런데, 부총장님이 뭐래요? 얘 감시하고 있으래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유켈의 어깨 위에 손을 툭툭 올리는 로제. 이에 유켈이 불만스럽다는 듯 힐끔힐끔 로제를 바라보지만, 로제가 ‘뭘 봐요? 콱 씨!’ 라고 하자마자 바로 눈을 깔아버린다.

이미 기강은 확실하게 잡은 모양이네…………

“레빈포트의 말로는 유켈이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라고 하더군.”

“네? 저도 아카데미에 적응을 못 했었는데, 부총장님은 무슨 이유로 우리한테 시키셨데요?”

아 맞다. 얘도 왕따였지.

“…………우리 말고 달리 녀석을 감당할 수 있는 학생을 찾을 수 없던 거겠지.”

“선배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두 번이나 제압한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부총장이 꽤 좋은 물건을 보상으로 주기로 해서 우리가 하는 게 좋을 거 같구나.”

“부총장님의 보상이요?! 그럼 당장 저희가 해야죠!”

레빈포트의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로제는 보상이라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그럼 어떡하죠? 우선 수업부터 재끼고 아카데미 소개 먼저 해주는 게 좋을까요?!”

설마 이게 진짜 목적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수업은 듣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자 이번에는 예상치도 못한 녀석이 벌떡 일어선다.

“짝꿍의 의견에 동의. 동의. 소개 요구.”

너도 수업 듣기 싫은 거구나…………

“다음 수업이 뭐지?”

“넵. 다음 수업은 수학입니다!”

수학?

“아카데미나 보러 가지. 수학은 안 배워도 된다.”

“와! 땡땡이!”

“환호.”

이 세계에 오기 전 천성 문과였던 나는 알고 있다.

수학은 배를 부르게 할지언정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절대 내가 수학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아라. 즐거운 수학 시간이다.”

마침 교관도 왔기에 나는 곧바로 교관에게 다가가 레빈포트의 이름을 팔아넘기며 수업에 빠질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 수업에 빠져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레빈포트의 이름이 나오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교관.

역시, 인생은 인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쉽게 수업을 빠질 수 있다니. 인맥…………최고예요!”

“동감.”

교실을 빠져나오며 신나 죽겠다는 듯 양 주먹을 꾸욱 쥐는 로제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켈. 두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미 둘이 친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로제.”

“네? 그레고리님?”

“너, 아카데미 구조는 좀 알고 있나.”

“넹?”

나보다도 먼저 아카데미를 다녔다 하는 로제지만 평소에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은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 간의 교류도 없던 로제. 그런 로제가 과연 아카데미의 구조를 설명해 줄 정도로 잘 알고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물어본 것이었지만…………

“아카데미 곳곳에 있는 흡연장은 전부 꿰고 있죠!”

역시 녀석이 알고 있는 것이라곤 밥 먹는 식당과 흡연장이 전부인 모양이었다.

“…………우리 둘이서는 가망이 없겠군.”

“저 잘할 수 있거든요?!”

내 중얼거림을 듣고는 빈정이 상한 것인지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보는 로제.

“이 녀석이 담배를 피러 흡연장에 갈 일은 없지 않겠나.”

애초에 설정부터가 신실한 천신교의 수녀인 유켈이 담배를 피겠어?

유켈 역시 흡연장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히잉…………”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숙이는 로제.

아쉬워도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 것을.

시무룩해 하는 로제를 위로해주기 위해 물이 빠진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이 일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프리실라? 아니, 이쪽도 생각해보면 인싸는 아니었지.

데킬라? 얼핏 보면 모범생 같아 보이지만, 결국 이 녀석도 로제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는 친구가 없던 녀석이고…………

아멜? 녀석한테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진 않은데………… 저번에 찾아갔을 때도 많이 바쁘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가장 한가한 녀석이 누구지? 라는 고민을 하다 문뜩, 최근에 생겼던 인연을 떠올렸다.

“그 녀석들이 있었군.”

“네?”

“의문.”

“따라와라. 마침 지금 같은 상황에 우리를 도와줄 녀석들을 알고 있으니.”

그대로 정수리 쓰다듬기를 멈추고 곧장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몸을 돌리자 내게 머리를 맡기고 있던 로제가 호다닥 내 뒤를 뒤따라오고, 뒤이어 종종걸음의 유켈이 그런 로제의 뒤를 따라온다.

수녀와 엘프 그리고 악마라는 괴상한 조합들의 이동이라 그런지 수업 시간임에도 복도를 돌아다니는 우리를 보고서도 뭐라 하는 교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뭐, 비주얼들이 모두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 소환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레고리님. 저희 어디 가는 거예요?”

아무 말 않고 잠자코 따라오던 로제가 무척 궁금했는지 조심스레 물어온다.

“학생들의 머리가 있는 곳.”

“네? 학생들의 머리가 있는 곳이요? 호, 혹시! 인골 탑 같은 건가요?! 저…………무서운데요오…………”

인골 탑이라니,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무서운 장소가 아카데미에 있겠나.”

“네? 아닌가요?!”

“그래, 우리가 갈 곳은…………여기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며 눈앞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입구부터 떡하니, 이곳이 뭐하는 장소인지 알리는 표지판.

“어…………학생회인가요?”

“그래, 전교 회장이 있는 학생회다.”

“하, 하지만 학생회장님은 항상 바쁘시지 않나요?”

“생각이 있으니 상관없다. 그럼, 들어가지.”

“아, 넷!”

문을 짧게 두어 번 두드리자 안에서 ‘네~’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 곧장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자 정면으로 서류를 결재하는 스칼렛과 그녀의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제니의 모습이 보였다.

“응?”

갑자기 열린 문에 힐끔 내 쪽을 향해 시선을 올리는 스칼렛.

“그레고리 존스공?”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하루만이군. 잘 지냈나.”

내 인사에 썩은 동태눈 같던 스칼렛의 눈에 조금씩 총기가 맺히기 시작한다.

“서, 설마! 마침내 학생회에 들어오기로 한 것인가?!”

책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덕분에 그녀의 주변으로 흩날리는 서류들.

이에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본론부터 꺼냈다.

“그건 아니고, 학생회장. 너를 빌리기 위해서 왔다.”

“응? 나를 말인가?”

“네? 회장을요?”

내 말에 스칼렛과 제인의 목소리가 겹친다.

동시에, 흩날리는 서류를 해치고 내게 다가오는 스칼렛.

뚜벅뚜벅 우아한 걸음걸이로 코앞까지 다가온 스칼렛은 내 오른손을 붙잡더니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빚을 갚으러 왔군…………”

“자, 잠깐! 회장님! 아직 할 일이 산더미인데요!”

일을 하고 있던 회장이 자리를 비운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는 제니. 그녀의 말을 들은 스칼렛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린다.

“그, 그렇지…………”

“부총장인 레빈포트의 부탁이어서 말이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부총장이라는 말에 잔뜩 풀이 죽었던 스칼렛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부총장님의 부탁이라고?”

“그래, 부총장의 부탁이다. 그런 거라면 학생회장의 일은 부회장이나 서기에게 잠깐 맡겨도 되지 않겠나?”

사실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상대가 지금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며 탈출구를 제시하는 것.

이것만으로 대부분의 인간들은 순식간에 설득당하고 만다.

물론, 평소의 학생회장이라면 이러한 방법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번에 본 그녀의 모습은 학생회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권위를 이용해 일을 떠넘기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잔뜩 지쳐있는 정신과 그럴듯한 명분이 합쳐진다면? 그리고 그 명분이 아카데미에서는 치트키나 다름없는 레빈포트의 부탁이라면?

“부, 부총장님의 부탁이라면 별수 없겠군. 음. 그분이 부탁하실 정도의 일이라면 아카데미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일세.”

천하의 학생회장이라도 넘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 회장님…………”

결국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온 회장의 모습에 덜덜 떠는 제니.

방금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라 느꼈던 업무들의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제니. 뒷일을 부탁하지. 정 혼자 못하겠다면 부회장과 총무를 불러서 함께 처리하도록.”

“회장니이이임…………”

털썩 무릎까지 꿇는 제니지만 스칼렛은 이미 몸을 완전히 내게로 돌린 상태였다.

“그럼 갈까. 그레고리공? 아, 이쪽이 소문의 로제. 그리고…………아, 오늘 온다던 전학생인가 보군. 반갑네. 공녀의 이름은 스칼렛 룬 게르스톨. 소환사 아카데미의 회장일세. ”

“아, 처음 뵙겠습니다! 로제에요!”

“유켈.”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사이에 껴서는 자기소개를 하며 학생회실을 나서는 스칼렛.

자신이 이미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니에게선 공포와 부정의 감정만이 천천히 흘러나올 뿐이었다.

“회장님이 악마한테 홀리셨어어…………”

…………틀린 말은 아니라 뭐라 못하겠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