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아카데미의 전학생 4
* * *
“그러니까, 부총장님께서 이 전학생을 부탁했다는 말인가?”
스칼렛과 함께 본교를 걸으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물론, 그녀가 제국 황실과 아카데미의 기숙사를 테러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빼놓고.
“그래, 제복 디자인을 보면 알다시피 천신교와 관련된 아이여서 말이다.”
아카데미의 모든 제복은 기본 틀에서 본인의 취향에 맞게 개조를 할 수 있었다.
초대 총장이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자.’라는 취지로 만든 교칙이라고는 하는데………… 이 세상이 게임인 걸 아는 나로서는 그저 캐빨을 위한 설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로제의 제복 역시 그녀의 어머니가 로제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제복이었다.
“확실히.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럴 거 같다고 생각했다만, 부총장님이 천신교를 따로 챙길 줄은 몰랐군.”
“그만큼 특별한 아이이니 그런 거겠지.”
힐끔 고개를 돌려 로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켈을 바라본다.
“유켈씨. 저번에 봤던 이프리트는 어디 갔어요?”
“심상 공간.”
“호오, 불의 정령이 쉬는 심상 공간은 불바다일까요?”
“모름.”
“에엑?! 소환사인 유켈씨도 모른다고요? 아, 생각해보니 저도 그레고리님의 심상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네요.”
“바보.”
“오랜만에 맞을래요?”
“부정.”
벌써 잔뜩 친해져서는 로제와 함께 이상한 대화나 나누고 있는 유켈.
본래 원작에서도 그다지 말이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저렇게 로제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유켈.
여전히 인형과 같은 무표정을 지은 채 그녀는 그저 고개를 갸웃해 한다.
“내 심상 공간은 상상 이상의 것들이 있지.”
내 이야기에 움찔하고 몸을 떠는 유켈.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본래도 새하얀 피부가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정말 이쪽 세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물건들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건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후후, 그러니까 앞으로 맞먹으려 들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그 와중에 유켈이 겁먹은 모습을 본 로제는 이 기회에 서열을 정리하겠다는 듯 유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잔뜩 거들먹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협박에 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유켈.
…………로제가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나 때문인가?
음, 강하게 자랐으면 된 거겠지. 음.
“후후. 역시 소문의 로제양이로군. 자, 그럼 우선 본교에 있는 시설들을 하나씩 소개시켜주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우리를 첫 번째로 데려간 곳은 탕비실이었다.
“여기는 탕비실이다. 아카데미에 있는 교관들이 언제든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디저트바 같은 곳이지.”
탕비실에 대한 소개를 하며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는 스칼렛.
열린 문 안쪽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방과 양쪽으로 늘어선 디저트바가 눈에 띄는 방이었다.
“우와………… 우리 아카데미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그야말로 과자의 산이 펼쳐진 거나 다름없는 풍경에 잔뜩 흥분한 로제가 재빨리 스칼렛의 뒤를 따라 탕비실의 안으로 들어간다.
꼴딱.
옆에서 들려오는 침을 삼키는 소리.
힐끔 옆을 돌아보니 바뀌지 않은 표정으로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유켈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얘도 먹을 거에 약한 타입이었나.
“스칼렛. 탕비실치고 너무 화려한 거 아닌가? 대충 둘러만 보아도 평범한 인테리어와 음식들은 아닌 것 같다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든 의문을 스칼렛에게 묻는다. 이에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스칼렛.
“아, 그거 말인가. 아무래도 교관이나 직원들도 귀족 출신이 많으니 이렇게 지은 걸로 알고 있다. 덕분에 이곳에 있는 음식들도 꽤 질이 좋은 편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디저트 바에 올려져 있던 마카롱 하나를 집어 들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입에 털어 넣는다.
“그, 그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탕비실은 원래 교관님들이 먹으라고 만든 공간 아닌가요?”
스읍 하고 흘러내리려는 침을 삼킨 로제가 묻자 스칼렛이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안 걸리면 그만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로제양과 유켈양도 한 입 하겠나?”
“너무 좋아요!”
“긍정.”
곧바로 마카롱을 손에 집어 들고는 누가 볼세라 순식간에 입에 넣는 두 사람.
단 게 그렇게 좋은지 로제의 입꼬리는 이미 헤실헤실 귀까지 닿을 듯했다.
“마싯써요오~”
“긍정.”
다행히 주변에 탕비실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은 없는 상황.
몇 시간 뒤면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할 시간임에도 세 사람의 먹방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쩌다 내가 망을 보는 신세가 된 거지.
“탕비실은 여기까지만 보는 게 어떻나. 앞으로 볼 곳이 잔뜩일 텐데.”
“음? 아 그렇군. 간식을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신경 쓰지 못했어.”
“제가 귀엽다니이~ 회장님도 차암~ 회장님은 좋으신 분이네요오~”
“긍정.”
“두 사람 모두 붙임성이 있는 아이들이라 다행이군. 자, 그럼 간식은 여기까지 먹고 다른 곳으로 가보도록 하지.”
“네! 저는 이런 곳이라면 얼마든지 소개받아도 좋아요!”
“긍정.”
마침내 탕비실 체험은 여기서 끝낼 모양이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향한 곳은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몇 번 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여기는 아카데미의 부상자들이 찾아오는 보건실이다. 아무리 대련장이 프리즘 스톤으로 보호되고 있다 하더라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거나 아카데미 내부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찾아오는 곳이지. 나중에 넘어지거나 하면 여기로 오면 된다.”
세 번째는 나도 처음 와보는 장소였다.
“여기는 도서관이다. 소환사 아카데미의 도서관은 꽤 수준이 좋은 편이니 찾고자 하는 책은 거의 다 있을 거다.”
“여기가 도서관이군요…………”
“한 번도 안 가봤나?”
“네!”
“…………그렇군.”
해맑게 웃는 로제의 얼굴을 보고는 그냥 고개를 돌리는 스칼렛. 아무래도 무슨 말을 꺼내려 했지만, 로제의 표정을 보고 그냥 넘기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카데미 본교 안에 있는 대부분의 시설에 대한 설명을 마친 스칼렛은 우리와 함께 본교 건물에서 나왔다.
“끄응………… 이 시간에 본교 밖으로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군. 이렇게나 뜨거운 햇볕 냄새………… 반가울 지경이야.”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지개를 켜고는 하늘을 바라보는 스칼렛. 왠지 모르게 그녀의 표정이 더욱더 밝아 보였다.
“평소에는 이 시간에 안 나오는 모양이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모든 일을 마무리하면 저녁 시간이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지 않나. 학생회실에 창문마저 없었다면 진작에 자살했을지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먼저 발걸음을 떼는 스칼렛.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로제가 안쓰럽다는 듯 스칼렛의 등을 바라본다.
“학생회장은 많이 힘든가 보네요…………”
아까 전 책상에 올려져 있던 서류뭉치만 봐도 예상이 가는 바였다. 이놈의 아카데미는 가장 윗사람들이 항상 제일 고생하는구나.
“안 오나?”
우리가 멈춰있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돌리는 스칼렛.
“네! 가욧!”
“감.”
이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총총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르고, 그 모습에 스칼렛은 싱긋 미소를 짓는다.
“후배들이랑 이렇게 아카데미를 거니는 것도 나쁘지 않군. 그렇지. 유켈양. 아카데미의 대련장을 가본 적은 있나?”
스칼렛의 질문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유켈.
“그런가? 그러면 미리 대련장에 견학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직 오전이라 사용하는 인원도 없을 테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스칼렛은 곧장 대련장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곳을 둘러보던 때와는 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음? 아아, 대련장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말이지. 대련을 치루면 오후 업무를 사실상 할 수 없게 되니 빠진 지 오래되었지.”
“대련 수업을 명목으로 업무를 안 하는 건 안 되나 보지?”
"…………그때마다 다른 아이들이 붙잡아서 말이야. 어쩔 수 없었지. 오늘 업무는 양만 많을 뿐 평소보다 어렵지 않으니 상관없다.”
“뭔가, 대련을 하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군?”
내 말을 듣고는 제자리에 멈춰서는 스칼렛. 이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티가 많이 나던가?”
“엄청.”
“하하! 어찌 보면 나와 내 소환수는 이미 욕구불만이나 다름없는 상태여서 말이야. 아카데미 소개까지 도와주는데,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고개를 살며시 들며 부탁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스칼렛.
그녀는 학생회장이자 아카데미 외부의 의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학년인 2학년이었다. 심지어 제국 공작가의 공녀인 만큼 가문에서도 여러 훈련을 받아왔을 소환사.
이미 평범한 2학년 학생의 수준을 뛰어넘은 로제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좋은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아카데미를 소개해주는 것만으로 빚을 청산하는 건 너무 싸게 청산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
“그렇지?”
“나는 상관없지만 내 소환사는 어떨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며 로제를 바라보자 맹한 얼굴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로제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제가요? 학생회장이랑요?”
“이번 대련을 받아들여 준다면 교관들에게는 내가 잘 설명해서 오후 수업을 뺄 수 있게 해주지. 이 정도면 로제양. 그대에게 있어서도 괜찮은 조건 아닌가?”
“오후 수업 면제………… 전 좋아요!”
그럼 결국 나와 로제가 스칼렛과 싸우는 건가.
“유켈양. 그대는 어떻지?”
“음?”
유켈도 같이?
“우리와 유켈을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건가?”
내 이야기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스칼렛의 눈이 커진다.
“당연한 것을. 그레고리공.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을 너무 깔보는 거 아닌가?”
“일단 우리도 평범한 1학년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로제만 하더라도 최근 온갖 수라장을 겪어오며 5 서클에 오른 소환사였고 나 역시 5성의 소환수가 된 상황. 유켈 역시 4서클 이상의 소환사인 만큼 우리 셋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학생회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이리 온. 알 테그너.”
그녀가 자신의 소환수를 부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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