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아카데미의 전학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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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을 끝낸 뒤 대련장에서 나온 스칼렛은 땀에 젖은 제복 옷깃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 이렇게 개운한 게 얼마 만인지. 정말이지…………끝내주는 기분이군.”
“회장님! 이것 좀 마시세요.”
“아, 고맙군. 로제양.”
“헤헤, 편하게 로제라고 부르셔도 돼요~”
“그런가? 고맙군. 로제.”
로제가 건넨 시원한 물을 곧장 받아든 스칼렛은 옆머리를 넘기며 시원스럽게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하아, 살겠군. 눈앞에서 계속 열기를 맞는데 얼마나 덥던지………… 옷 안쪽이 홀딱 젖어버렸어.”
그리고는 스윽 고개를 올려 유켈과 로제를 바라보는 스칼렛.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어때, 같이 샤워라도 하러 갈 텐가?”
“샤워요? 아카데미에 샤워할 곳이 있나요?”
본인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해하는 로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대련장과 운동장 사이에 샤워실이 하나 있지. 그곳 설명도 해줄 겸 가는 게 좋을 거 같군.”
“저는 좋아요~”
“끈적끈적. 동의.”
다른 아이들도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땀을 많이 흘린 것인지 곧바로 좋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는 와중에 초월기를 사용했던 모습에서 어느새 본래 작은 몸으로 변한 알이 스칼렛의 어깨 위에 앉는다.
스칼렛. 미안해.
본인이 초월기를 사용했기에 졌다고 생각한 것인지 처음 들었던 때보다 잔뜩 침울해진 듯한 목소리. 이에 스칼렛은 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대도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초월기를 쓴 것 아닌가. 항상 고맙네. 알.”
응!
“아아, 방금 그 커다랗게 변했던 기술이 알의 초월기였던 거죠?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걸까요………… 솔직히 알이 커졌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나 무서웠어?
“그래도 지금은 귀여우니 괜찮아요~”
알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쓰다듬는 로제. 알 역시 방금 전 대련에서 화냈던 건 모두 잊었는지 곧바로 로제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고로롱 소리를 낸다.
“참, 회장님! 회장님 말대로 대련도 했는데, 오후 수업은 빠져도 되는 거예요?”
“음, 그 건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야호!”
수업에 빠지는 게 그렇게 좋은 것일까.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점프를 뛰는 로제.
“참, 그러면 유켈은 어디로 가요? 기숙사?”
“교회.”
“…………어. 교회요?”
“현재 교회에서 생활. 숙식 제공. 조건.”
방화 후에는 천상교에서 관리하기로 한 건가. 확실히, 비록 과격단체의 대표 격인 신성교단의 출신인 유켈이지만 천상신을 모시는 천상교 사람들과 천상교의 건물은 따로 어떻게 하지 못하리란 생각으로 교회에 맡긴 모양이었다.
실제로, 녀석은 천상신에 대한 믿음 하나만큼은 진짜니까.
“음………… 그러면 방과 후에 서머니아에 같이 갈래요?”
로제가 함께 서머니아에 가자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유켈.
“서머니아에는 가봤어요?”
로제의 질문에 유켈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일단 여기에 있는 동안은 사고 안 칠 거잖아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같이 가요! 서머니아에는 맛있는 게 잔뜩 있다구요!”
좀 더 격해지는 끄덕임. 유켈의 의사를 확인한 로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스칼렛을 바라본다.
“회장님도 같이 가실래요?”
자신에게까지 제안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스칼렛의 눈이 커진다. 하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스칼렛.
“제안은 고맙지만………… 아직 학생회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생각나는군. 아쉽지만 그대의 제안은 거절하겠네. 로제.”
“아쉽네요………… 그래도, 나중에는 같이 가실 수 있겠죠?”
“…………물론이네.”
슥슥 로제의 머리를 쓰다듬는 스칼렛.
“흠, 귀여운 후배가 생겼다는 다른 녀석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왠지 알 것 같군.”
“넹?”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샤워나 하러 가지.”
그렇게 발걸음을 떼는 세 사람.
“로제, 나는 먼저 서머니아에 가 있으마.”
“네? 같이 안 가시게요?”
먼저 간다는 말을 들은 로제가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그래, 먼저 가서 파이몬과 식사나 하려고 한다.”
“아아, 네! 그러면 저는 유켈이랑 같이 밥 먹고 천천히 갈게요!”
“그래.”
파이몬을 단둘이 만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녀석들이 샤워하는 동안 혼자 기다리고 있기도 뭐한 것 같아 먼저 교문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나저나 로제 녀석, 아무것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유켈에게서 자신의 과거라도 본 것일까? 의외로 유켈을 잘 챙겨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좀 더 투닥거리거나 말싸움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 이미 서열정리가 끝난 상황이라 그런 걸지도…………
“음? 외출인가? 그레고리 공.”
“아, 워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교문을 나서려고 하자 빗자루를 들고 교문 근처를 쓸고 있던 워커가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넨다.
“하하, 방금까지만 해도 학생회장과 헤츨링의 마력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아무래도 그레고리 공이랑 한바탕 한 모양이구만?”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아무렴, 아카데미 경비만 수십 년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어깨를 으쓱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워커.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마력이었는데 느끼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렇군. 참, 그럼 밖에 좀 나가봐도 되겠나.”
“어이쿠, 내가 바쁜 사람을 오랫동안 붙잡아 놓고 있던 거 같군. 사실 그대나 되는 사람이 아니면 나와 대화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네.”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워커.
“이 정도야, 그대가 하는 일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거지. 우리는 음…………우호적인 관계이지 않나.”
“하하! 우호적인 관계라. 그대가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군. 그럼, 조심히 가게나 그레고리 공.”
“아카데미를 부탁하지. 워커.”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아카데미를 나와 곧바로 변신한 뒤 날개를 펼쳐 서머니아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사실 마차를 타고 서머니아를 향해 가도 무방했지만…………
공포를 섭취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어서 그럴까. 마치 흡연자가 담배를 갈구하게 되는 것처럼 공포의 달콤함이 그리웠다.
그렇게 해서 생각한 방법이 바로…………
“녀석이다! 녀석이 나타났다!”
“전부 고개 숙여!”
“엄마아아아!!!”
과거 서머니아의 상공을 비행하며 떠돌게 되었던 소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타났을 때, 하늘을 바라보지 말아라. 그것은 너의 영혼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나는 그저 하늘을 날아다녔을 뿐인데, 어째서 그런 도시 전설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얻는 공포는 그야말로 상당했기에 끊을 수가 없었다.
아, 이게 진짜 악마의 삶이지.
몸에 끓어 넘치는 활력을 날개로 움직이며 곧장 파이몬의 아지트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가게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하고, 문에 걸린 종이 흔들리자 내부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나를 바라보고는 움찔 몸을 떤다.
“히익!”
“저, 저게 대체…………”
“닥쳐라! 멍청아! 저분이 누구신 줄 알고! 그냥 눈을 감아!”
나를 처음 보는 흑마법사의 머리를 후려치며 자신 역시 푹 고개를 숙이는 흑마법사.
생각해보니 아직 변신을 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미안하군.”
곧장 변신을 풀자 술렁이던 주점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방금 자신이 보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흑마법사와 그런 흑마법사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는 듯한 흑마법사를 뒤로하고 곧장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파이몬은 안에 있나?”
내 얼굴을 보고서는 반갑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짓는 바텐더.
“드, 드디어 오셨군요. 그레고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내 물음에 어휴. 하고 크게 한숨을 내뱉는 바텐더.
“말도 못 합니다. 마르바스님께 그레고리님과 로제 아가씨가 델리니아에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매일매일 저희를 괴롭히시는데………… 말도 못 합니다. 진짜!”
“파이몬이 말인가?”
“예! 곧 자신도 이쪽 세상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지금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흑마법사는 전부 어젯밤 파이몬님이 술로 죽여놔서 그런 겁니다. 어제만 생각하면 진짜…………우읍!”
갑자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헛구역질을 내뱉는 바텐더. 급하게 컵에 물을 따라 마신 바텐더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처량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디,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그레고리님…………”
대충 상황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파이몬은 마르바스를 통해 로제가 5 서클에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
그것 때문에 잔뜩 신이 난 것인지 매일매일 흑마법사들과 술 파티를 벌이며 아래 있는 흑마법사들을 괴롭히고 있던 모양이었다.
“…………내가 처리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성으로 제약되어 있는 힘이 로제와의 계약을 통해 5성으로 확장되면 확실히 기분 좋을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신날 일이었던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며 뒷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곧장 파이몬이 있는 방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진입했다.
“파이몬. 어제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네 추종자들이────”
“그레고리여!”
폴짝! 하고 튀어 오른 무언가가 내 얼굴을 덮친다.
“웁?!”
“드디어 와주었구나! 드디어! 기다리고! 갈망하고! 기다렸도다! 그레고리여!”
전혀 보이지 않는 시야임에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알코올의 향기.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덮치고 있는 것을 때어내자 내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파이몬의 모습이 보였다.
“…………파이몬.”
“헤헤, 그야말로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닌가! 자자! 그대도 한잔하게나!”
술잔을 들고 내게 뛰어든 것이었는 지 손에 들린 술잔을 내게 권하는 파이몬.
그녀를 땅에 내려놓은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오늘 점심 메뉴를 곧바로 정하고는 녀석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해장이나 하러 가지.”
“응? 앗! 그레고리?!”
“하………”
얘를 진짜 어떻게 할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