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아카데미의 전학생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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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살겠군. 지금까지의 인간계 생활이 모두 손해라는 기분이 들 정도야.”
5 서클 소환사인 로제와의 계약을 통해 본인도 5성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파이몬. 그녀는 로제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손안에서 마력을 굴리며 마력 운용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역시 소환사가 있다 보니 마력의 운용도 한층 편해졌구나.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꽈악. 주먹을 쥠과 동시에 공중으로 사라져버리는 마력의 잔재. 화려한 그 모습에 로제는 신기하다는 듯 파이몬의 손을 바라본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파이몬님!”
“역시 그대라면 알아볼 줄 알았네. 로제여. 그렇지, 이제 남도 아닌 나의 소환사가 되었겠다. 나에게도 검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나?”
“제, 제가 파이몬님의 검을요?”
“그래, 내 검술은 마르바스 영감과 많이 다르겠지만…… 재능이 있는 그대라면 우리 둘의 검술을 너만의 것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네. 어떤가. 한 번 배워 볼 텐가?”
설마, 파이몬이 먼저 로제에게 검술을 알려주겠다 할 줄은 몰랐다.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부탁을 하려 했는데, 설마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파이몬의 말에 로제가 힐끔 내 쪽을 쳐다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파이몬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로제.
“네! 꼭 배우고 싶어요!”
“좋구나. 그럼, 바로 움직이도록 할까.”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선 파이몬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급속도로 주변의 풍경이 바뀌며 고성의 내부로 보이는 장소로 변화하였다.
“여긴…?”
갑작스러운 장소이동으로 인해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하는 로제. 얌전히 뒤에 앉아있던 유켈 역시 갑작스러운 변화에 자리에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자 파이몬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내가 창고로 쓰고 있는 공간 중 하나라네. 5 성의 경지에 이르니 이 정도 마법은 펼칠 수 있더군. 아, 이상한 곳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게야.”
그렇게 말하며 벽면으로 걸어간 파이몬은 벽면에 걸려있는 진열장에서 검 하나를 집어 들고는 무게를 가늠하며 로제의 앞에 섰다.
“로제, 그대와 나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공통점이요?”
“그래, 공통점. 마르바스와 그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통점이지.”
“파이몬님이랑은 같고 마르바스님이랑은 다른 공통점이라……. 으으음……. 성별인가요?”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정답은 아니라네.”
“앗! 아깝다! 그럼 대체 뭔데요?”
“마법. 마법과 검술 두 부분에서 모두 뛰어나다는 것이지. 그대도 알다시피 마르바스는 마법보단 검술에 치중된 악마이니 말일세. 그래서, 본인은 지금부터 그대에게 마법과 검술을 이용한 전투를 알려주고자 하네.”
자신의 키보다도 더 거대한 대검, 쯔바이핸더라 불리는 검을 집어 들며 로제를 향해 겨누는 파이몬. 위압적인 그 모습에 로제가 움찔 떨며 뒤로 물러선다.
“참,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될 게야. 오늘을 위해 이곳에 아카데미의 대련장과 같은 준비를 해놓았거든.”
어쩐지, 건물 구석구석에 프리즘 스톤이 보인다 했더니, 처음부터 이곳에서 로제를 가르칠 생각이었던 건가.
아카데미의 대련장과 같은 시설이 준비되었다는 말에 조금이나마 긴장을 푸는 로제.
“어……. 그렇다면 일단 파이몬님과 싸우면 된다는 건가요?”
허리춤의 「불굴」에 손을 가져가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는 로제.
“그런데, 제가 아까 아침에 드래곤이랑 대련하고 오느라 잔뜩 지친 상태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본인이 그대의 소환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은 겐가? 로제, 그대의 마력이 널널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네.”
“윽──!”
“자, 그럼 어디 한 번 그대의 방식으로 내게 덤벼 보겠나? 그리고……그레고리여. 거기서 놀고만 있지 말고 저기 있는 유켈과 함께 지켜보고라고 있게나. 로제를 봐준 뒤에는 유켈을 봐줄 터이니.”
“……그렇게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닌 파이몬과 로제의 대결. 유켈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을 것이 많을 터였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 그냥 5성의 파이몬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확인만 하면 되겠지.
“자, 그럼 로제. 이쪽에서 먼저 가도록 하겠네.”
“아악! 진짜 힘든데에!”
“자! 놀아보자꾸나. 로제여!”
쯔바이핸더를 양손으로 쥐어 든 파이몬이 머리 위로 검을 치켜들고는 공중에서 검을 휘두르며 가속도를 붙인다.
과거 황실에서 전투를 보여줬을 때와 같이 원심력을 이용해 파괴력을 높이는 기술.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파이몬의 검술이었기에, 불굴을 손에 든 로제는 곧장 몸을 낮추고 빈틈을 찾기 위해 파이몬의 손목을 살피는 듯싶었다.
“이런 경우에는 막지 말고 피하게나!”
원심력을 받은 검이 로제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처음에는 막으려 했으니 파이몬의 말을 듣고는 곧장 옆으로 굴러 검을 피해내는 로제. 그러나 파이몬의 맹공은 멈추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막았다간 최소 뼈에 금이 갈 테니 알아서 극복해보게나!”
“시작부터 너무하잖아요오오!”
점점 빨라지는 검의 속도에 이제는 허공에서 바람을 찢는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파이몬의 말대로 저런 공격을 정통으로 막았다간 최소 뼈에 금이 갈 수 있는 상황.
“헤이스트, 스트렝스, 파워 업!”
기본적인 3단 강화 마법을 발동한 로제가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리며 파이몬의 공격을 흘려낸다.
“호오?”
“무슨……! 강화 마법을 써도 뼈가 울리는 것 같은데요……!”
“시도는 좋았네. 방금 그대가 했던 대로 마법을 최대한 사용해 보는 게야.”
파이몬이 땅을 구름과 동시에 바닥에서 새빨간 불꽃이 솟아오른다. 이에 전방의 시야가 화염으로 인해 제한되어버리는 로제. 그러나 로제는 당황하지 않고 곧장 몸을 굴리며 화염의 너머에서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파이몬의 검을 피해낸다.
“어떻게 피했지?”
“저라도 마법으로 시야를 가리면 곧장 공격을 해왔을 테니까요!”
“그렇네. 그게 바로 경험의 차이이지. 하지만, 아직 너무 안일한 거 아닌가?”
다시 한번 땅을 구르는 파이몬. 이번에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로제의 주변을 새빨간 불꽃이 휘감기 시작했다.
“그 정도 마법은 정말 눈을 가리는 용도일 뿐.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지.”
“그렇다면 저 역시 마법으로 짓누르면 되는 거예요!”
왼손으로 파우치에서 지팡이를 꺼내든 로제. 곧장 그녀가 위에서 아래로 지팡이를 휘두르자 위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마치 불을 찍어 누르듯 불기 시작했다. 그러며 화염의 벽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파이몬.
“이번에는 안 놓쳐요!”
몸을 살짝 뒤로 뺀 로제가 반탄력을 이용하여 파이몬을 향해 튕겨 나간다. 그녀의 불굴의 끝이 향한 곳은 바로 파이몬의 가슴. 하지만 왼손 주먹으로 로제의 검을 쳐낸 파이몬은 싱긋 이빨을 보이며 로제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감행했다.
“잊지 말게나. 로제여. 지금만큼은 내가 사냥꾼. 그대가 사냥감이라네.”
“사냥감이 육식 동물이라면 사냥꾼을 사냥하기도 하는 법이에요!”
파이몬의 돌격에 몸이 뒤로 밀려난 로제가 곧장 발을 위로 차올리며 파이몬의 공격을 막아낸다. 하지만 충격이 상당했는지 표정을 찡그리며 발을 회수하는 로제.
그 모습에 파이몬이 먼저 입을 연다.
“발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그대에게는 더 좋은 방법이 남아 있었을 텐데?
곧장 검을 버리며 로제를 향해 양팔을 뻗는 파이몬. 동시에 그녀의 양손에 보랏빛 마력이 뭉치기 시작하며 요란한 마력의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저, 생각보다 단단하거든요!”
“그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
로제를 향해 뭉친 마력 덩어리를 박아넣으려는 파이몬. 이에 로제 역시 불굴에 화염을 입힌 뒤 손을 뻗쳐오는 파이몬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검사는 자신의 검을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네. 그렇다면, 지금 그대는 어떻게 싸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지?”
로제의 불굴은 브로드 소드에 속하는 검. 한 손 검인만큼 파이몬의 검에 비해 움직임이 빨랐고 공간을 좁게 차지하는 찌르기가 유리하게끔 만들어진 검이었다.
파이몬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 것일까? 지금껏 베기 위주로 움직이던 로제가 점점 찌르기 위주의 움직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강화 마법을 건 것인지 점점 빨라지는 로제의 동작.
아직까지 여유롭게 로제의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있던 파이몬은 뒤를 향해 손을 뻗는 것으로 자신의 쯔바이핸더를 회수한 뒤 자신의 가슴을 향해 찌르고 들어오는 불굴을 튕겨내며 머리 위에서 검을 한 바퀴 돌린 뒤 로제를 향해 휘두른다.
“미리 죄송해요!”
파이몬이 사용하는 검의 리치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로제는 곧장 파이몬의 몸으로 파고들며 자신의 주먹에 불꽃을 둘렀다.
“파이어 로제 펀치!”
나의 기술을 본인만의 기술로 승화한 로제. 갑자기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오는 불꽃의 주먹에 뒤로 밀려나는 파이몬이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는 듯 무척이나 밝은 표정이었다.
“이 정도로 근접전을 잘하는 소환사는 오랜만이군! 앗하하하!”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요!”
“마르바스 영감에게 배운 걸 이용하면서 들어오게나!”
“으아아아앙!”
“울지 말고! 한 번 더 간다!”
“그마아아안!”
천천히 기초부터 알려주는 마르바스와는 달리 직접 행동함으로써 경험을 강제로 때려 박는 파이몬. 이렇게 로제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뿌듯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강해지고 있구나! 로제.
이대로 30분 정도만 더 붙여놓으면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두 사람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을 때.
“체크.”
파이몬이 로제의 목 밑에 검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두 사람의 대련이 마침내 끝나고야 말았다.
저게 바로 마르바스와 함께 검의 악마라 불리는 파이몬의 진짜 실력.
거친 숨을 내뱉으며 혓바닥까지 내밀고 숨을 고르는 로제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스승 복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잉. 졌어요.”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아직 검을 제대로 잡지 않은 그대가 나를 이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으니.”
땅에 검을 꽂아 넣은 파이몬이 허공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다.
방금의 짧은 대련만으로도 지쳤다는 증거.
“10분 휴식 후 다음엔 유켈을 봐주도록 하지.”
정말이지,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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