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아카데미의 전학생 11
* * *
“창을 너무 도구처럼 다루는군.”
“거기서는 몸을 빼는 게 아니라 붙였어야지.”
“봉인되는 동안 뇌까지 같이 굳어버린 건가?”
“이런 게 교단의 사냥개였다니. 강아지 정도는 되겠군.”
“휘두르면서 거리를 벌려!”
로제와 나란히 앉아 파이몬과 유켈의 대련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와삭! 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음?”
“……움?”
무언가를 열심히 오물오물 씹고 있는 로제와 눈이 마주친다.
“로제, 뭘 먹고 있나.”
오물오물. 오물오물. 꿀꺽.
씹고 있던 음식을 모두 삼키고 나서야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로제.
“팝콘이요! 그레고리님도 같이 드실래요?”
팝콘은 대체 어디서 들고 온 것인지, 로제는 자신의 옆에 두었던 팝콘을 내게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팝콘이라…….
“좋군.”
역시 팝콘은 싸움 구경하면서 먹어야 진짜지.
로제가 건넨 팝콘을 받아들고 나 역시 편하게 앉아 먹으려고 할 때, 로제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찌릿 나를 째려본다.
“가져가라는 말은 아니었는데요!”
“……미안하군.”
“가운데 놓고 먹어요!”
“그래.”
팝콘을 우리 둘 사이에 놓고 나서야 환하게 미소를 짓는 로제. 다시 우적우적 팝콘을 먹기 시작한 로제는 지긋이 유켈과 파이몬의 전투를 눈으로 살피며 집중하기 시작한다.
“저기서는 유켈이 반 박자 느리게 들어가는 게 맞았겠네요. 그랬다면 파이몬님의 리듬이 흐트러졌을 거예요.”
“저 공격은 받는 것보단 옆으로 흘리는 게 더 효율적이었을 텐뎅…….”
“아프겠다!”
이미 검술에 있어서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로제이기 때문일까. 나와는 보는 눈이 많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계속 배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가 더 흘렀을까. 완전히 바닥에 나가떨어진 유켈을 뒤로하고, 개운하다는 듯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파이몬.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네. 나이가 들어서인지 격하게만 움직이면 금방 지쳐서 말이야.”
장정 1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계속 검만 휘두른 사람이 할 말인가…….
검을 다시 진열장에 올려놓고 마법을 통해 몸을 청결하게 만드는 파이몬.
“……역시 마법은 편리하군.”
“음? 클린 마법 말인가? 그레고리 그대는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원래 마법은 잘 사용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렇다면 그대는 전투를 벌인 다음 어떻게 몸을 닦지?”
“내 본신은 끊임없이 기름 같은 액체가 나오기 때문에 항상 청결한 편이다.”
"윽! 그, 그렇군.”
“물론 인간의 모습일 때는 샤워를 하거나 변신을 두 번 하는 것으로 청결을 유지하지.”
어떻게 보면 이 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변신을 두 번 하는 것으로 머리 스타일은 물론 몸의 청결, 의복의 세탁까지 한 번에 해결이 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유켈 저 아이도 유별나더구나. 오랫동안 봉인되어있어서 그런지, 몸은 확실히 굳은 것 같다만 중간중간에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더군.”
“그런가?”
“그래, 지금처럼 나한테 계속 맞거나 마르바스에게 맞으면 금방 과거 사냥개라 불리던 시절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다.”
파이몬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확실히 얼마 지나지 않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음,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확실히 레빈포트에게 아카데미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생각해보면 이게 아카데미 생활인가? 뭐, 학생회장을 소개해줬으니 불만은 없겠지.
“참, 그레고리. 로제여.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만.”
“……네가 부탁을?”
“어려운 건 아니고. 이번에 본인도 로제의 소환수가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말인데…… 본인도 아카데미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말이다.”
“네가?”
“파이몬님이요?”
“어렵……겠나?”
조심스레 묻는 파이몬에게 로제가 격하게 고개를 양쪽으로 흔든다.
“전혀요! 파이몬님이 아카데미에 오시면 너무 좋죠! 다른 아이들이랑도 같이 놀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로제의 말을 듣고는 표정이 환해지는 녀석.
“그런데 왜 갑자기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거지 파이몬?”
순수한 궁금증을 가지고 묻자 파이몬이 자신의 머리를 배배 꼬며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 그것이……. 예전에 릴리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말이다.”
“릴리?”
“아카데미는 무척이나 즐거운 곳이라고 했었지.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공부, 언제 먹어도 맛있는 식당까지. 심지어 마르바스마저도 내게 놀러 올 때마다 누구는 재능이 있네, 누구는 오늘 어떤 일을 저질렀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이라고 안 궁금하겠나?”
마르바스도 아카데미의 이야기나 하고 있었나.
“무엇보다도, 로제와 계약한 이상 그 드래곤도 나를 뭐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지. 이제는 귀찮을 것도 없는데, 한 번쯤 로제의 보호자로서 견학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로제의 보호자? 로제의 보호자는 나일 터인데?”
“나 역시 로제와 계약한 소환수이니 나도 보호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레고리여.”
갑자기 로제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파이몬을 노려보자 로제가 우리의 중간에 서서는 양팔을 펴며 외친다.
“제가 여러분의 보호자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거로 싸우지 마요오!”
“누가 보호자라고?!”
“누가 보호자라는 겐가!”
“엣?”
아무리 그래도 네가 보호자는 좀 아니지…….
***
“야호! 워커씨! 다녀왔습니다!”
아카데미에 돌아온 사실만으로 들뜬 것인지, 아카데미 정문 근처의 바닥을 쓸고 있던 워커를 발견한 로제가 손을 번쩍 들며 환한 웃음으로 워커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에 하고 있던 빗자루질을 멈추고 로제를 바라보며 껄껄 웃는 워커.
“오늘도 로제 아가씨는 기분이 좋으신가 보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네! 새로운 소환수와 계약을 하게 되었거든요!”
“오오, 정말 기뻐할 일이군. 축하하네.”
“헤헤, 감사합니다!”
“참, 거기 새로 온 전학생 아가씨는 서머니아 구경을 잘하고 왔는가?”
이번에는 로제의 뒤에 서 있던 유켈에게 질문하는 워커.
“부정. 열심히 맞고 옴.”
“앗하하! 그래도 열심히 수련이라도 하고 온 모양이군. 다들 조심히 들어가시게.”
“감사해요! 워커씨!”
“감사.”
“수고하도록. 워커.”
웃는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워커를 뒤로하고, 로제는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 쉬고 싶은지 흐느적거리면서도 열심히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참, 유켈은 교회에서 지낸다고 했죠. 곧바로 교회로 돌아가시나요?”
로제의 질문을 들은 유켈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귀가. 해지기 전까지. 아직은 오후.”
“아아~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라고 했는데 아직 해가 떠 있으니 괜찮다구요?”
로제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켈. 이에 로제는 유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제 방에 놀러 갈래요? 제 친구들을 소개해줄게요.”
“……친구?”
“네! 유켈은 제 짝꿍이니까 제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한 명은 유켈도 이미 아는 사람이에요.”
“……?”
고개를 갸웃해하는 유켈.
“프리실라 앤 하인베른. 아시죠? 제국의 황녀님!”
프리실라의 이름을 듣자마자 우뚝 멈춰서는 유켈.
“유켈?”
유켈이 왜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는 듯 표정을 짓는 로제에게 내가 대신 설명해주었다.
“옛날에 기숙사를 부순 게 누구고 그걸 다치면서까지 지킨 사람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거냐. 로제.”
“네? 어…… 어라? 그렇네요?”
“그뿐일까. 제국에서 있었던 일까지 떠올린다면 프리실라가 유켈을 보자마자 공격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거다.”
어떻게 본다면 유켈은 프리실라에게 있어 원수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유켈 본인도 그걸 알고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만.
“그래도, 언젠간 알게 될 거. 빠르게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프리실라도 제가 잘 말한다면 이해해 줄 거예요.”
그렇다고 로제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이야기를 나중에까지 미룬다면 프리실라에게 이 사실을 숨기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유켈도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제가 잘 말해볼게요. 대신, 유켈도 프리실라한테 사과해줄 수 있죠?”
로제의 질문에 잠깐 침묵하는 유켈.
봉인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의 유켈에게 있어서 신성교단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악마를 혐오하는 신성교단 출신에 아카데미에 있는 악마들을 처리하라는 임무까지. 아무리 유켈이어도 그 상황만큼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었다.
“……동의.”
겨우 침묵을 깨고 대답하는 유켈의 모습에 로제가 환하게 웃으며 유켈의 손을 잡아 이끈다.
“좋아요! 그러면 같이 제 방으로 가요! 아, 데킬라도 불러야지!”
가뜩이나 자신의 짝꿍을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으로 들뜬 로제와 레빈포트라는 절대적 강자에 의해 억지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 유켈.
심지어 이번에는 파이몬까지 아카데미에 오겠다고 하는 마당에…… 아카데미가 어떻게 굴러갈지 감이 안 잡히기 시작했다.
아, 이제 파이몬이랑 마르바스까지 있는데.
그냥 확 마계로 도망칠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