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화 : 검술 훈련……훈련 맞지? (1)
* * *
여기 대장장이가 하나 있다고 하자.
평생 망치질을 한 사람에게 갑자기 실과 바늘을 주면서 나리꽃 자수를 두어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바느질 방법을 알려주고 자수본을 주더라도, 나리꽃은커녕 동그라미도 못 만들 것이다.
양손의 손가락이 바늘의 공격을 받고 빨간 눈물을 흘리는 건 덤이다.
여기서 망치질을 필사로, 바느질을 검술로 바꾸면 내 꼴이 된다.
그리고 조만간 옆구리 터진 허수아비처럼 팔, 다리, 또는 머리 중 하나가 터질 예정이다.
열받게도 또 하늘은 맑다.
왜 꼭 이런 날에만 날씨가 좋은 걸까?
“세상에, 너 막대 칼싸움도 안 해봤냐? 아니, 어떻게 한 합을 못 넘겨?”
바닥에 누워 하늘을 향해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는 내 귀에, 메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검술 사범님이 아니라 저 녀석이 나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 내가 이렇게 벌렁 뻗은 건, 내가 약골이라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저 녀석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거지.
마을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다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아마도.
“하…… 아무리 생각해도 넌 사범으로는 안 맞아. 배우는 사람 수준에 맞추어서 가르쳐야 할 거 아냐? 난 초보자라고!”
검술은커녕 막대 칼싸움도 제대로 안 해본 사람에게, 갑자기 횡베기돌진찌르기다리걸기 연속기를 걸다니.
이 새끼, 이거 훈련은 핑계이고 그냥 날 패고 싶은 거 아냐?
메린은 내 항의에 콧방귀를 뀌었다.
“야, 나니까 네가 그나마 덜 다치면서 배우는 거지, 사범님이었으면 너 벌써 머리 터졌어. 나 참, 어릴 때 배운 기초 검술 다 어디다 팔아먹었냐? 베릴도 너한텐 이기겠다.”
베릴은 올해로 열 살이 된 꼬마애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메린에게 목검을 겨누었다.
“그 말 취소해! 아무리 내가 약골이어도 그렇지, 그딴 모욕은 못 참아!”
“어머, 미안해. 화났니? 내가 좀 말이 심했지?”
동네 여자애처럼 몸을 배배 꼬면서, 메린이 콧소리를 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눈꼴 시린 모습을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왜 나만 저 가증스러운 꼴을 봐야 하는 거냐!
부당해!
메린은 배시시 웃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롭도 못 이길 텐데 말야.”
롭? 롭……, 내가 아는 롭은 여덟 살짜리 남자애인데.
아,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열 살도 모자라 여덟 살짜리 애도 못 이길 거라는 소리인 거지?
약한 걸 넘어, 아주 그냥 닭뼈다귀로 보고 있다는 거지?
“……”
그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내 다리가 멋대로 움직였다.
입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뜨거운 고함이 터져나왔다.
메린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녀석의 비웃음 가득한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얼굴, 묵사발을 내주겠어!
온 힘을 다해 휘두른 목검을 쳐내며, 녀석이 바로 반격을 해왔다.
“큭!”
오른쪽으로 찔러들어오는 검날을 거세게 쳐냈다.
나름 힘을 준 것인데, 녀석은 끄떡도 하지 않고 바로 팔을 휘둘렀다.
머리 위!
“어딜!”
옆으로 피하면서 녀석의 얼굴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녀석이 흠칫 놀라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갔다.
저 녀석은 지금 방심하고 있어.
그 틈을 노려야 돼!
곧바로 메린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간의 원한과 울분을 가득 담아 목검을 휘두르는 순간,
“……후.”
녀석이 눈을 부릅뜨며 미소지었다.
아. 예감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미 내 몸은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고, 앞으로 뻗은 팔도 역시 되돌릴 수 없었다.
“끄아아아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두어 번은 막은 것 같은데, 어느새 내 몸은 붕 떠서 하늘을 보고 있다.
아아, 역시 끝내주게 좋은 날씨다.
나는 부유감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그간 겪은 중요한 사건들의 장면장면이 눈앞에 쏜살같이 휙휙 지나갔다.
또 주마등인가?
투덜대는 중에, 가장 최근, 그러니까 이틀 전에 겪은 일이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가 물벼락을 맞고 깨어난 내게, 촌장님은 말했다.
내가 용사라고.
“아니, 제가 왜 용사에요?”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놀라며 묻자, 촌장님은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네가 용사의 성검을 가졌으니까.”
허허어, 실로 간단명료한 대답이로다.
그러나 나는 농담조로 대꾸할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뭔데요, 그 용사의 성검이라는 게?”
“모르는 척 말게. 먼 옛날, 이 세상을 어지럽히던 드래곤이 우리 나라 뒤쪽 산에 봉인된 건 알잖나? 이 드래곤이 다시 깨어날 때, 신께서 택한 용사가 성검을 가지고 사악한 드래곤을 해치울 거라는 전설이 내려져오고 있네.”
드래곤이 봉인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용사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다.
“용사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자네, 불경한 소리를 하는구만. 예언서에 적혀 있잖나?”
“그 예언서 제가 그저께 필사 마쳤거든요?!”
그러나 촌장님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새 신탁이 어제 내렸거든.”
“……”
장난해?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네, 뭐, 신탁이 내렸다는 건 그렇다치고, 아무 전조도 없는데 무슨 드래곤이에요, 드래곤은?”
“전조라면 있지 않나. 몬스터가 강해졌지. 목초지까지 몬스터가 쳐들어온 건 우리 마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일세.”
촌장님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니, 그 말은 맞을 것이다.
“좋아요. 그것도 그렇다 쳐요. 근데 제일 중요한 성검이 없네요? 뭐, 어디 치워두셨나요?”
촌장님은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예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기까지 했다.
거 봐. 역시 난 용사 같은 게 아니라고.
“……?”
근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촌장님은 단순히 고개를 돌린 게 아니라,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는 메린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버지도, 검술 사범님까지도 그녀를 보고 있다.
녀석은 나를 포함한 방 안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기절하기 전에 검 들고 있던 거 기억나?”
끄덕.
“그 검이 막 빛나던 것도 기억나?”
끄덕.
“그게 성검이었어.”
습관대로 끄덕이려던 고개에 힘을 주었다.
나는 이마를 찌푸렸고, 내 시선을 받은 메린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검이 칼자루에 보석이 막 박혀 있는 검으로 변했다니까? 딱 예언서에 나오는 용사의 성검이었어.”
“근데 왜 지금은 없냐?”
“몰라. 널 집으로 옮긴 다음에 신전에서 검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없어졌거든.”
혹시 내가 죽어서 검이 없어진 건가 싶어 집으로 왔더니, 내가 뒤척이며 끙끙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얼른 깨우는 게 좋을 것 같아 물을 뿌렸다며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취지는 좋다.
근데 사람 깨우겠다고 얼굴에 물을 뿌리다니 저 녀석도 머리를 다친 게 분명하다.
아무튼 내가 예언서에 나온 (그것도 어제 내용이 추가된) 성검을 들고 있었으니 나는 용사이고, 그래서 드래곤을 없애러 모험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세상에 용사의 출현을 알려야 하니 수도로 가서 왕을 알현해야 한다.
혼자서.
이 부분에서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검술 사범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불가능합니다, 촌장님. 이 드…… 에스트렐 군은 또래 아이들 중 제일 약해요. 제 스승님이 한창 가르쳤을 때도 뒤에서 세는 게 빠를 성적이었고요. 아무리 에스트렐 군이 용사의 성검을 가지고 있다 해도, 혼자서 수도까지 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글씨 쓰는 일을 맡긴 탓……이라는 것도 솔직히 핑계다.
내가 순순히 책상 앞에 앉았던 건, 나가서 다른 애들과 놀아봤자 따까리나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아버지 말 잘 듣는 효자라서 그런 것도 있다.
……아주 약간은.
촌장님이 난색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래도 성검을 깨웠으니 좀 다르지 않을까?”
“……”
아버지와 검술 사범님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신뢰감이 개미 눈곱만큼도 들어있지 않은 눈빛이다.
그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딴 데를 보는데, 갑자기 메린이 “아,” 하며 말을 꺼냈다.
“쟤 기절하기 전에 오크 몇 마리 잡더라고요.”
엥? 내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되는 대로 지껄이면서 필사적이었다는 것 밖엔 기억이 없다.
인상을 쓰며 기억 속을 헤집고 있는데, 갑자기 검술 사범님이 비장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좋아, 내 주먹을 막으면 인정해주지.”
환자한테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다니, 다들 어디 머리를 부딪치고 온 게 분명하다.
아무튼 검술 사범님은 굉장히 진지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나도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용사라면, 다른 수많은 전설들과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능력이 상승했을지도 모른다.
즉, 사범님의 움직임 따위 그냥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범님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몸 상태에서 사범님의 우락부락한 주먹에 맞았다간 정말로 엄마를 만날지도 모른다.
“……!”
사범님의 팔이 움직이는 듯했다.
좋아, 보였다!
나는 재빨리 손바닥을 오른쪽으로 내밀었다.
따콩.
“……”
“……”
일순,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양손을 오른쪽으로 내민 상태였고, 사범님은 내 정수리에 꿀밤을 먹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메린이 눈을 깜박거렸다.
“……정말 용사 맞아?”
내 말이.
……그렇게 되어서, 나는 최소한 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훈련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로 목검을 든 나를 쳐다보는 사범님에게, 메린이 자신이 가르치겠다며 먼저 나섰다.
“너…… 진짜 할 수 있겠어? 얘 잡으면 안 돼.”
사범님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메린은 하하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걱정 마세요. 예전에 얘한테 슬링도 가르쳤는걸요. 검술은 더 쉽죠.”
“그건 그래. 난 그냥 물수제비 뜨는 법 물어봤을 뿐이었는데 말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슬링과 물수제비 띄우기는 전혀 다른 종목이다.
물론 녀석은 물수제비 띄우는 요령을 가르쳐주긴 했다.
근데 어쩌다 그게 슬링으로 이어졌던 걸까?
메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왜, 불만이야? 그 덕분에 너도 양치기 노릇할 수 있게 됐잖아.”
그것도 사실이긴 하다.
어째 항상 이 녀석이랑 같이 목초지로 나갔다는 게 문제이지만.
검술 사범님은 그간 묵은 수수께끼가 겨우 풀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카엘이 슬링을 곧잘 한다 싶었더니……. 그래서 네가 4년 전부터 양치는 일도 맡았구나. 그럼, 뭐, 성과를 확실히 본 사람이 계속 가르치는 게 낫겠지.”
사범님은 메린에게 “수고해라”고 말을 남긴 뒤,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음…… 이번에는 이 녀석에게 검을 배우는 건가…….
슬링 배울 때도 제법 고생했던 것 같은데.
“하루라도 빨리 출발해야 한다니까 세게 갈 거야, 각오해. 아, 여긴 보는 눈이 있으니까 저쪽 빈 들에서 하자. 너도 그게 편하지?”
“어…… 그, 그래…….”
하긴, 두들겨 맞는 꼴을 누가 보는 건 피하고 싶다.
나는 한숨을 쉬며, 앞서 가는 메린의 뒤를 따라갔다.
세게 간다니, 얼마나 험하게 구르는 걸까.
슬링 때보다 더 힘든 걸까?
그러고보니, 슬링 때는 어땠더라?
“멍! 멍!”
들로 나가는 길에, 술집에서 키우는 개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었다.
목줄만 없었다면 바로 나한테 달려들어서 얼굴을 마구 핥아댔을 것이다.
……응?
달려들어……?
갑자기 기억 속에 깊이 묻혀 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피 묻은 고깃덩이, 나를 향해 마구 달려드는 늑대 두 마리, 내 옆에서 목검을 들고 감시하는 메린…….
자! 쟤가 널 물기 전에 빨리 맞춰!
“……핫!”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래, 맞아.
이 녀석은 ‘실전이 쌓여야 실력이 는다’면서 늑대를 꾀어 왔었다.
빨리 슬링으로 맞추지 않으면 물어 뜯길 거라며 옆에서 겁을 잔뜩 준 건 덤이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손끝이 덜덜 떨렸지만, 나는 물어보아야 했다.
“……야, 메린.”
“응?”
“……슬링 때보다 더 세게 할 거냐?”
메린은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후, 어깨를 으쓱였다.
“급하다고 하시니까. 아마도?”
“살려주세요, 사범님!! 이 녀석이 절 죽이려 해요!! 가지 마세요!!”
냅다 뛰었다!
“히히, 어딜 도망가려고?”
순식간에 잡혔다!
적어도 열 발자국은 달아나고 싶었는데!
“으와아아아…….”
녀석은 내 팔을 잡더니 끌고가기 시작했다.
안 가려고 다리와 발에 힘을 빡 주고 버텨도 소용없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끝이다.
내일 아침해를 못 보게 된다!
나는 필사적으로 버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거 놔, 이 또라이 새꺄! 난 죽기 싫다고, 놔!!”
“아하하, 카엘도 참, 호들갑 떨긴. 안 죽어, 안 죽어.”
그걸 누가 믿어?!
나는 더 힘껏 발버둥쳤다.
그냥 손을 확 물어버릴까?!
아니, 그래도 여자애 팔을 물기는 좀…….
그래, 아예 누워버리자!
그리고 갑자기 의식이 끊어졌다.
다시 눈을 뜨니 이미 빈 들에 와 있었고, 내 몸은 완전 흙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쉽게 상상이 갔다.
결국 나는 공포에 굴복하고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지금이 어떠냐고?물론, 공중에 떠서 뒤로 날아가고 있지.
조만간 떨어질 거고.
땅에 부딪치는 건 아프니까 어차피 기절할 거, 그냥 지금 기절했으면 좋겠다.
“커흐어억!”
진짜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네.
등과 엉덩이가 엄청나게 아프다.
팔도, 허벅지도, 아예 그냥 온 몸이 아파.
일어나려고 용을 써봤지만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드러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곧바로 의식이 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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