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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6화 (6/475)

〈 6화 〉 6화 : 한 번의 결투와 이어지는 대전(?戰) (1)

* * *

튜르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놈은 내가 겨눈 목검을 툭, 하고 쳐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투? 내가 너랑? 푸핫! 너 바위에 대가리 박았냐? 야,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럼 착한 내가 딱 한 대만 치는 걸로 봐줄게.”

그러면서 놈은 자신의 졸개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진짜 졸렬하다. 쪽팔리지도 않나?

나는 한숨을 쉬고, 저 놈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마법의 대사를 날렸다.

“새끼가 혓바닥이 왜 이리 길어? 쫄았냐? 쫄았으면 꺼지고.”

“이 새끼가! 넌 오늘 뒈진 줄 알아!”

……그렇게 결투를 하게 되었다.

“……”

둘 다 목검을 쥐고 자세를 잡은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생각해보니까, 저 녀석은 지금도 검술을 배우고 있다.

반면, 나는 어렸을 때 의무교육으로 딱 일 년, 막대기만 잡아본 생초보다.

무턱대고 달려들면 바로 두들겨 맞고 끝장날 거다!

“오, 꼴에 간을 보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

놈이 달려온다.

그야 내가 안 가면 저 놈이 오겠지!

갑자기 긴장이 솟아오르며 몸이 뻣뻣해졌다.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막대 칼싸움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내가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대체 10분 전의 나는 뭔 생각으로 결투를 건 걸까?!

놈이 목검을 휘둘렀다.

왼쪽 아래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목검이 서로 부딪쳤다.

반동으로 뒤로 물러나며 저절로 고개가 발치로 향했다.

아, 이런, 앞을 봐야 되는데!

“……!”

오른쪽으로 온다.

그런 강한 느낌을 받고 몸을 틀었다.

목검이 바로 코 앞에서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놈이 그대로 팔을 접는 게 보였다. 팔꿈치 찍기다!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쫄랑쫄랑 잘도 피하는구만. 그래봤자 너만 손해라고!”

놈이 다시 목검을 마구 휘둘렀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그리고……!

퍼억!

“큭?!”

바닥을 굴렀다. 배가 얼얼하다.

……제길, 발차기라니. 그걸 어떻게 막아?!

휘두르기 막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놈이 씨익 웃으며 다시 달려왔다.

똑같이 서너 번을 막다가, 발차기에 맞……지 않고 피하니 이번에는 주먹이 날아왔다!

“으와악!”

본능적으로 빈 손으로 주먹을 받았다!

놈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지금이다!

놈의 얼굴을 향해 팔꿈치를 날렸다.

“윽!”

놈이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몰아붙여야 돼!

그러나 놈은 역시 경험자라고, 내 공격을 바로 받아치다가 반격해왔다.

결국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려야 했다.

놈이 얼굴을 감싸던 손을 치웠다.

“……!”

튜르가 코피를 흘리고 있어!

놈도 알아차렸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거칠게 닦았다.

……이걸로 분명히 알게 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

놈은 역시, 메린보다 약하다.

내 눈에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느리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웃어? ……이젠 안 봐준다!”

놈이 씩씩대며 뛰어온다.

그러나 처음처럼 몸이 굳을 정도로 긴장이 되진 않았다.

해볼 만하다면 얼마나 터지든 상관없다.

‘사람이 아니라’는 망발을 지껄이는 저딴 새끼한테 절대 질 수 없어!

목검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덤벼, 염병할 새끼야!”

“뒈져버려!”

목검이 부딪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신음과 바닥 구르는 소리가 들판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쓰러진 놈의 가슴팍을 밟고 목에 목검을 겨누었다.

놈은 버둥거릴 힘도 없는지 내 얼굴을 노려보기만 했다.

이겼다.

내가 이겼어……!

놈의 몸에서 발을 치우고, 목검을 거두었다.

“허억, 허억, 헉…… 벼, 별것도 아닌 놈이…… 까, 까불, 콜록콜록! 까불고 있어…….”

“야, 숨이나 고르고 말해.”

메린이 차갑게 적신 수건과 물을 내밀었다.

수건에서는 지난번에 맡았던 것처럼 박하향이 진하게 풍겼다.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하고, 순순히 받아들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저딴 놈한테!”

튜르가 부들부들 떨며 일어났다.

얼굴 여기저기가 퉁퉁 부은 게 꼭 벌에 쏘인 것 같다.

……내 얼굴도 저렇겠지?

윽,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야겠다.

“이건 무효야! 무효라고!”

녀석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목검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상대하기도 귀찮다.나는 메린에게 손짓했다.

“가자.”

바위를 질질 끈 데다 결투까지 한 탓에 피곤해 죽을 것 같다.

집에 가자마자 쓰러져 잘 거 같아.

메린이 나를 따라오며 뒤를 힐끗거렸다.

“그냥 가게?”

“좀 저러다 알아서 집에 가겠지……. 냅둬, 냅둬.”

우리가 멀어지면 그 졸개들이 알아서 놈을 달래고, 알아서 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하품을 하며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안 돼, 그만해, 놔, 등등 뒤가 좀 소란스러운데, 뭐, 좀 있으면 조용해지겠지.

갑자기 메린이 홱 뒤를 돌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몸을 돌린 순간,

“……!”

바로 눈앞에 칼날이 멈춰 있었다.

그리고, 메린이 그 칼날을 손가락 두 개로 잡고 있었다.

“무, 뭐야?!”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메린이 잡은 칼은 손잡이 자루가 없는, 토끼 잡을 때 쓰는 투척용 나이프다.

그녀는 한손으로 그 나이프를 공중에 띄우고 다시 잡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칼날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메린?”

팽그르르, 착.

그녀는 나이프를 조용히 까닥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안 돼, 말려야 돼!

힘이 빠진 다리에 채찍질을 하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딱 붙어 있으면 바로 팔을 잡을 텐데, 하필이면 이때 두세 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

“메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가자. 가자니까!”

“……”

그녀의 입이 무어라 중얼거린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되묻자, 그녀는 그 오싹한 웃음을 지은 채, 또박또박 말했다.

“이거, 돌려줘야지.”

빌어먹을! 돌겠네, 진짜!

그녀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으나, 내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저만치 달려가버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너무 빨라!

“야, 이 미친년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정신없이 달렸다.

도중에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는 걸 가까스로 다잡고 뛰었다.

튜르의 졸개들이 땅에 나자빠져 있는 게 보였다.

얼굴이 새빨갛다. 뭐 때문에 새빨갛게 된 건지 알고 싶지 않다.

저 앞에 메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튜르 위에 엎드린 채 나이프를 들고, 내려치고 있다.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온 들판을 울렸다.

놈의 손이 풀 위를 미친듯이 헤집고 있다.

……그 다음은……

글쎄, 정신을 차리니 나는 메린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녀석을 떼어내려고 당기고, 무어라고 계속 소리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튜르 녀석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며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일단 사지는 멀쩡하네.

그리고 녀석이 처음에 누워 있었던 자리에는 사람 머리 모양으로 죽 칼자국이 나 있었다.

“……미친.”

다시 털썩 누웠다.

기억엔 안 남아 있는데, 이 새끼가 뭘 했는지는 알겠다.

튜르가 저렇게 넋 나간 것도 당연하다.

바로 눈앞에서 누가 칼로 자신의 머리 모양을 따라 바닥을 찍고 있는데,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겠나?

“……”

방금 전까지 살벌한 정신고문을 했던 메린은,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축 늘어져 있다.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메린, 너……”

갑자기 풀을 밟는 소리가 여럿이 울렸다.

누가 온다!!

메린을 그대로 굴려버리고,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두 바퀴쯤 굴렀다.

아, 힘 다 썼다.내일 것까지 당겨 써버렸어.

이거 눈 감으면 그대로 기절이야, 기절.

“어머머, 이렇게 가느다란 아가씨가 용사님이로군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판을 쩌렁쩌렁 울렸다.

덕분에 가물가물하던 의식이 확 깨어버렸다.

나는 쇳덩어리 같은 몸뚱이를 일으켜서, 메린 쪽을 보았다.

메린의 앞에는 긴 망토로 몸을 감싼 여자가 서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촌장님도 그 옆에 서서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바닥을 기는 당신의 아들과 메린을 번갈아 보았다.

“그렇죠? 방금 이 아가씨의 움직임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본 걸요! 어머, 그 짧은 나이프로 목검을 조각낸 건가요? 세상에나!”

그러고보니 튜르가 목검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내가 가까이 갔을 땐 이미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토막난 나무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나무조각?

고작 투척용 나이프로 목검을 저 꼴로 만들었다고?

“저, 그 애가 아니라…….”

촌장님은 내 쪽을 힐끔 보며 여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여자가 촌장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촌장님! 저, 용사님의 활약을 더 보고 싶어요! 국왕 폐하께 미리 말씀드릴 무용담이 필요하답니다! 도와주실 거죠? 네? 꼭 도와주시겠지요?!”

여자가 정말 무시무시한 기세로 촌장님을 압박했다.

국왕 폐하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왕성에서 온 사람인 모양이다.

그건 즉, 촌장님보다 높은 사람이다.

촌장님은 친히 내 예측에 더 힘을 실어 주셨다.

난처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예에, 물론이죠……. 트, 특별 무투회를 개최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마치기까지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간절한 눈으로 날 쳐다보시는 거지?

뭐. 나보고 어쩌라고?

……그리고 이틀 뒤.

나는 마을 중앙 광장에 펼쳐진 천막 아래에 앉아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광장 맨 아래쪽, 두꺼운 가벽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선 한창 귀 따가운 쇳소리와 함성이 울리고 있다.

원래 공연장으로 쓰이는 곳이라서, 맨 뒤에 앉은 내 눈에도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훤히 다 보인다.

보이긴 하는데, 머리에 들어오진 않는다.

지금 내 머릿속엔 이 생각 하나뿐이다.

나, 대체 여기 왜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앉은 자리 맨 앞에는 팻말이 하나 달려 있고, 볼 때마다 기가 차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말이 되냐고?!

제대로 검도 못 휘두르는 내가 무투회 참가자라니?!

턱, 누군가가 내 어깨를 짚었다.

돌아보니 촌장님이 허허 웃고 있었다.

“나는 널 믿는다, 카엘! 네 안의 용맹함을 드디어 깨울 때가 온 게야! 용사의 활약을 기대하마!”

뭔 소리야, 이게.

촌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뜻 모를 소리만 남긴 후, 귀빈석 쪽으로 가버렸다.

……정말 이해가 안 되네.

당신의 늦둥이 아들을 두들겨 팬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힘차게 격려할 수 있지?

혹시 촌장님도 평소에 쌓인 게 많았나?

어쨌든 지금 우리 마을 광장에서는 무투회가 열리고 있고, 나는 대전자 대기실에 앉아 있다.

내 앞줄에는 다른 대전자들이 몸을 풀거나, 지금 열리고 있는 대전을 구경하거나 하고 있다.

참고로 맞은편이 대기실 B고, 여기 있는 사람들의 상대가 거기 앉아 있다.

“이야~ 이번 판은 다들 혈기왕성하구만! 재미 좀 보겠어!”

“하하, 재미는 무슨. 너나 나나 그 애 앞에선 한 방이잖아!”

그 애……라면 뭐, 뻔하다.메린을 말하는 거겠지.

두 아저씨는 서로 하하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하하, 소더는 천재지변이지. 그러고보니 너, 지난번엔 그 애한테 1분만에 깨졌지? 훗, 난 10분 버텼다고.”

“하하하하, 그야 네가 너무 물렁하니까 노약자 대우해준 거지. 너 모르냐? 소더는 제대로 된 전사일수록 봐주지 않는다고.”

“하하하하하, 잘못 알고 있네. 소더는 기본이 안 된 놈일수록 빨리 끝내는 애야. 네 실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증거라고.”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두 아저씨는 서로 등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마에 핏대가 세워져 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참고로 두 아저씨 모두 틀렸다.

1분짜리 아저씨는 그날 메린과 오후에 붙어서 그런 거고, 10분짜리 아저씨는 점심 후에 붙어서 그런 거다.

상대의 실력에 따라 힘을 조절하다니 그럴 리가 있나…….

“안녕!”

“아, 깜짝이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인기척도 없이 소리를 지르다니, 예의를 밥 말아먹었나!

시원하게 한 방 쏘아붙이려고 고개를 돌리자, 숯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옆에 서 있었다.

모슬린 드레스를 펄럭이며, 넉살 좋게 손을 흔드는 그녀는,

“뭐야, 율스 누나잖아…….”

이틀 전에 내가 두들겨 팬 튜르의 셋째 누나였다.

“어머, 기껏 응원해주러 온 사람한테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니니?”

“불평하러 온 게 아니고? 튜르가 별말 안 했나봐?”

아니면 이 누나도 막냇동생에게 엄청난 원한이 있었거나.

율스 누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튜르? 글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벌 떨기만 하고 말을 못하더라고. 얼굴이 많이 부었더라. 어머니가 어찌나 길길이 날뛰시던지……. 왜? 뭐 아는 거 있어?”

“아니요. 아는 게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촌장님의 아내 되시는 벤스 부인은 이런 험난한 마을의 여주인답게 굉장히 억센 분이다.

다른 아낙네가 곡식 한 포대를 짊어질 때, 혼자서 세 포대를 나르는 분이다.

그리고 튜르는 늘그막에 겨우 얻은 하나뿐인 아들이라, 벤스 부인에겐 남편 다음으로 소중한 보물이다.

그런 보물의 얼굴을 내가 쥐어 패고, 메린이 넋을 완전히 빼놓은 거다.

들켰다간 그냥 벌받는 걸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

율스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뜨끔해서 시선을 피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

“모, 모른다니까요.”

……아무래도 이 기회에 물리적으로 기억을 지워야겠다.

내 대전 상대에게 머리 좀 때려달라고 해야겠어.

“그래? 뭐, 메린도 거기 있었다니까 걔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아무래도 메린의 머리를 때려서 물리적인 기억상실을……

……될 리가 없지.

미리 변명거리나 생각해두자…….

“아무튼, 용사님을 위한 무투회라고 하니 열심히 해, 카엘 용사님!”

그런 말을 남기고, 율스 누나는 관객석 쪽으로 걸어갔다.

“……용사님을 위한 무투회라…….”

우스운 이야기다. ‘용사를 위한 무투회’라며 열린 건데, 그 계기는 내가 아니라 메린이다.

역시, ‘용사’라면 나이프로 목검을 토막내는 것쯤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바위 좀 끌었다고 나자빠지는 게 아니라.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기석 맨 앞에서 운영 도우미가 소리쳤다.

“카엘 에스트렐! 다음 준비하세요!”

아, 이제 내 차례구나.

내키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였다.

은근히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지는 게 거북하다.

……어차피 기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텐데.

“……에휴.”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대전장 안으로 들어섰다.

훤히 뚫린 시야 한가득,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사회자가 무어라 떠드는데, 머릿속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맞은편 문이 열리며 내 대전 상대가 들어왔다.

누구인지는 이미 대전표를 봐서 알고 있다.

“여, 용사님. 훈련은 잘 받고 있나?”

“……예에.”

씨익 웃으며, 검술 사범님이 손을 흔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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