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4화 (24/475)

〈 24화 〉 24화 : 침묵의 검은 마녀

* * *

조금 전까지 골렘을 움직여서 우릴 찌그러뜨리려던 놈이, 무슨 순박한 낚시꾼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놈은 자신의 손발이 묶인 것을 보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왜 제가 묶여 있는 겁니까?! 당신들 누구에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진짜로 당황해하는 것 같은데?

왠지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진 것 같다.

로나가 옆에서 속삭였다.

“……냄새는 안 나는데…… 혹시 모르니 의식 치를까요?”

“아니.”

그 놈의 의식 진짜.

나는 팔짱을 끼고 놈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그냥 연기의 달인이시구만! 더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순순히 ‘마녀의 숲’에 가는 방법을 말해!”

“모, 몰라요! ‘마녀의 숲’을 오갈 수 있는 건 마녀뿐이라구요! 아이고, 선생님들, 제발 살려주세요. 원하는 건 뭐든 드릴 테니, 제발!”

……분위기가 다르다 못해 아예 딴 사람 같은데?

이게 정말 연기라면 대배우가 될 수 있을 거다.

“……정말인가?”

“정말이니까 빨리 풀어줘, 개 같은 망나니 새끼들아!”

“……”

역시 한 대 갈겨야겠어!

막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메린이 내 팔을 잡았다.

“아, 왜! 이 아저씨가 지금 우릴 망나니라고……”

“저 아니에요!”“그 아저씨 아니야.”

놈과 메린이 동시에 말했다.

메린이 내 팔을 잡은 채 뒤로 돌아섰다.

뒤에 뭐가 있나?

그녀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집 바깥 호숫가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이가 서 있었다.

어깨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앉아서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

아이는 말없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제자리에서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의 옷자락이 코 아래까지 가려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눈빛에서 미약한 적의가 느껴졌다.

그나저나……옷도 시커멓고 머리도 시커멓고, 눈가도 시커멓네.

내 장담하는데 밤에는 절대 못 찾을 것이다.

“피해, 위슨! 이 놈들 전혀 말이 안 통해! 난 됐으니까 얼른 숲으로 도망가!”

"말 잘 통하거든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내가 발끈하자, 놈이 나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특히 이 놈이 제일 정신 나갔으니까 얼른 도망쳐!"

"……당신, 사실은 기억 다 남아 있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숲이라고 했겠다?

숲……역시 ‘마녀의 숲’을 말하는 거겠지?

그럼 얘가 마녀……?

나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마녀, 위슨의 흑갈색 눈동자가 무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얼굴 빼고 전부 까만 어린 마녀는 말없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망나니 어쩌고 폭언을 질렀던 것 치고는 굉장히 얌전하다.

아까 저 나무집 주인처럼 냅다 공격을 해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애가 아까 그런 욕을 했다고?

전혀 상상이 안 가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엷은 음색이 귓가에 울렸다.

“뭘 봐, 등신 새꺄.”

따콩.

“……”

“……앗.”

나도 모르게 꿀밤 때려버렸다!

와, 손이 멋대로 움직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메린이 나 때릴 때도 이런 식인가?

그 녀석도 거의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던데.

아무튼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걸었다.

“음…… 이름이 위슨이라고? 못 믿을지도 모르지만, 우린 나쁜 사람이 아니야. 저 아저씨가 우릴 먼저 공격해서 그런 거거든? 일단 서로 얘기 나누지 않을래?”

물론 내가 먼저 아저씨 얼굴에 주먹을 날리긴 했지만, 그건 불가항력으로 벌어진 일이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거지.

……어쨌든 싸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특히 ‘마녀의 숲’으로 가야 하는 이 상황엔 더더욱 싸움을 피해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려 손을 뻗었다.

차악!

그리고 무참히 거절당했다!

소녀는 손을 쳐내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지성 강도놈들이 잘도 지껄이는구만! 저 오늘 내일 하는 노인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마법의 힘.”

어라?

왠지 소녀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진 것 같다.

“……헛소리 지껄이는 걸 보니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구만? 거지 같은 놈들! 싹 다 자연으로 돌려보내주마!"

“아니, 진짠데!”

왜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말을 안 듣는 거야?

소녀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품속에서 병을 꺼내어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병이 깨지면서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예감이 안 좋아, 이럴 땐 후퇴다!

“……?!”

재빨리 뒤로 크게 뛰자마자, 무언가 내 코앞을 스친 것 같았다.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피어난 연기가 한데 뭉치며, 내 눈앞에서 서서히 형태와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발톱? 털복숭이 발?

무늬가 있는……

“고양이?!”

……가 아닌 스라소니다!

보통 스라소니보다 더 크고 털이 더 북실거리는 것 같지만 아무튼 스라소니다!

“우와앗!”

스라소니가 쉴 틈없이 연이어 마구 발톱을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녀석의 발톱은 보통 스라소니보다 위력이 강한지, 내가 피하면서 바닥에 찍힌 발톱 자국이 엄청나게 선명했다.

“저리 가!”

검을 휘둘러 위협해봐도 몸을 조금 움찔할 뿐,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탓에 내 틈만 드러나버린 셈이 되었다.

한 발짝 물러난 스라소니가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우와와와아아악!”

“햐아아아아!!”

칼로 막은 탓에 발톱에 찍히는 일은 없었지만, 그대로 녀석의 무게에 깔려버렸다.

우와, 무거워! 발톱 장난 아니야!

이빨 봐, 우와, 이거 진짜 위험한데?!

“떨어져!!”

퍼어억!

메린의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스라소니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그녀는 스라소니를 걷어찬 오른다리를 중심으로 한 바퀴 회전한 후, 검을 뽑아 던졌다.

녀석의 몸이 검에 관통된 채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땅에 부딪칠 때 듣는 철푸덕 소리는 나지 않았다.

스라소니의 몸은 땅에 닿자마자 다시 한 뭉텅이 연기가 됐고, 위슨의 옆에서 다시 뭉쳐 스라소니로 돌아왔다.

이제 바닥에는 아무 혈흔도 묻지 않은 깨끗한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을 뿐이었다.

역시 그냥 죽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럼 또 저 애를 쓰러뜨려야 끝난다는 건데……

으으, 저 애를 건드리면 다른 마녀들도 적대적으로 나올지도 몰라!

어떻게든 말로 풀어야 돼!

“내 말 좀 들어봐, 우린 피해자라고! 저 아저씨가 서펀트를 부리고 골렘도 소환해서 우릴 죽이려고 했다니까!”

“개소리 마! 저 노인네는 마법을 못 써! 그냥 낚시꾼이 골렘 소환을 어떻게…… 째짹, 아니아니, 바보야, 흔적이 있잖아. 흔적.”

……응? 갑자기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저 아이 근처엔 아무도 없는데……?

아니지, 마녀라고 했으니까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게 보이는지도 몰라!

그때 위슨의 어깨에 있던 새가 갑자기 그녀의 얼굴 앞으로 날더니, 혼자 재잘대기 시작했다.

“땅 속 흐름이 뒤틀려 있다고. 조사해봐, 조사. 너도 마력은 다룰 수 있으니 알 수 있을 거 아냐.”

어라?! 저 목소리!

뭐야, 이제까지 저 놈이 떠들던 거야?

“……”

위슨은 말없이 파랑새를 빤히 쳐다보더니 몸을 숙이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천천히 좌우로 한두 번 바닥을 쓸다가 손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

위슨이 손바닥을 하늘을 향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스라소니가 다시 연기가 되어 흩어지면서 그녀의 손바닥 위에 모이더니, 마침내 작은 병으로 변했다.

파랑새가 위슨의 어깨에 다시 올라탔다.

“야, 너.”

누굴 말하는 거지?

“너 말이야, 제일 멍청하게 생긴 놈, 너.”

메린이 나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카엘, 너 말하는 거 같은데.”

“……”

이 새끼들이 쌍으로.

“너, 글씨 읽을 줄 아냐?”

“어.”

위슨이 손가락을 딱 퉁기자 파랑새가 펑 하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시험합니다. 잘 보이시나요?]

위슨의 머리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방금 전까지 새가 떠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정중한 어조이다.

“우와, 글씨 생겼어!”

[제가 말을 못해서요.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주세요.]

“어, 아냐, 괜찮아.”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서로 뭔가 오해가 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저 아저씨가 마법을 못 쓰는 건 정말이에요. 이야기를 들어드릴 테니 아저씨를 먼저 풀어주세요.]

“알았어.”

아까 땅을 손으로 쓸 때 무언가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쨌든 다행이다. 싸우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평화가 제일이지, 암.

나는 아직 나무집 안에 있던 로나를 향해 손짓했다.

“로나! 그 아저씨 풀어드려!”

“아, 네!”

이제야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명이 모여 이야기하기엔 나무집이 너무 좁았던 탓에, 바깥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두 개만 빼고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하나는 물론 이 집주인 아저씨, 레이크의 얼굴을 때린 이야기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용사라는 사실이다.

레이크도 돌변했는데 얘도 갑자기 또 덤벼들지 누가 알겠는가?

레이크의 얼굴은 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파랗게 되더니,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엔 완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군. 내가 서펀트를 부리고, 골렘을 소환했다고?”

“그렇다니까요. 진짜 기억 안 나요?”

절레절레.

거 참, 희한한 일이 다 있네.

그때 짤랑, 방울 소리가 나며 다시 위슨의 머리 위에 글자가 피어올랐다.

[골렘이든 뭐든 소환된 건 사실이에요. 요 앞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졌던 흔적도 있고요. 그런데, 아저씨가 호수 중앙에 떠 있었다고요?]

“그래.”

위슨은 팔짱을 꼈다.

[그렇다면, 이건 우리 숲을 침범하려던 놈이 아저씨의 몸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네요. 사례가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고. 서펀트도 그 놈이 소환한 걸 거에요.]

흠. 그래서 호수에 둥실 떠 있었던 건가?

근데 처음부터 보였던 건 아닌데…….

저 하늘 구름 위에라도 떠 있었나?

“그럼 드라우너도 그 놈이 소환한 건가?”

[드라우너? 아아, 물귀신이요? 아니요, 원래 하나 살고 있어요. 저 상류에서 흘러 들어온 것 같더라고요. 왜요? 없애셨어요?]

……숨겨봤자 소용없을 테니 그냥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그러자 위슨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래요? 잘 됐네요. 이제 위장 마법이 제대로 작동되겠어요. 그것 때문에 자꾸 물 속 마력이 흐트러진다고 수장님이 짜증내셨거든요.]

“아, 그래? 도움이 됐다니 잘됐네. 아무튼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야. 그럼 위슨, 우릴 ‘마녀의 숲’에 데려가줄래? 꼭 가야 되거든.”

검은 마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때문에……? 아, 종소리 때문인가요? 그러고보니 수장님이 곧 손님이 올 거라 말씀하긴 하셨어요. 지금 가실 건가요?]

나는 옆에 앉아 있는 메린과 로나를 쳐다보았다.

로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메린은 반대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뭐 해야 돼?”

설마 또 뱀 먹자는 소리하는 건 아니겠지.

말 꺼내기만 해봐, 아주 그냥……!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해서.”

“……”

오, 신이시여. 차라리 뱀 얘기가 더 나았겠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어이가 없네.

“하…… 너 그새 뭐 어디 갔다 왔냐? 아니, 코앞에서 얘기 다 하고 있었는데 뭘 들은 거야?”

“제대로 다 들었어, 한 명 빼고.소리가 아니잖아.”

“아니, 소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 아아~”

하하. 하하하하!

빌어먹을, 이건 웃을 수밖에 없어!

아하하하하!

……어지럼증이 더 심해지는 걸 느끼며 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사랑하는 고향의 특징을 다시 떠올려보자.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마을은, 글을 모르는 것보다 힘이 약한 걸 더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집에서 글공부 하고 있으면, ‘이놈이 정신이 나갔나, 무슨 공부를 하고 있어!’ 라며 바깥으로 쫓아낸다.

그 탓에 우리 마을 사람 대부분이 문맹이다.

괜히 나처럼 허약한 놈을 등신 취급하면서도 마을의 일원으로 꼽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아버지와 촌장님을 빼면, 마을에서 글을 술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거든.

거진 절반 자치령이긴 해도, 엄연히 왕국의 공문이 내려오는 곳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한다.

아무튼 마을 젊은이들은 혈기가 끓어서 그런지, 글공부보단 움직이는 걸 더 좋아했다.

메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즉, 메린은 위슨이 띄웠던 말을 읽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내가 끈질기게 가르친 게 있어서 완전히 못 읽은 건 아닐 거다.

다만, 위슨의 말은 단어씩 뚝뚝 끊겨서 빠르게 표시되고 금방 사라지니 많이 놓쳤겠지.

“하…… 됐어. 넌 내가 가면서 설명해줄게.”

짤랑, 가벼운 방울 소리가 울려 돌아보니, 위슨의 머리 위에 뜬 글자가 살짝 빛을 내고 있었다.

[그냥 파랑새가 나을 것 같아요. 입이 험하긴 해도 소통이 바로 되니까.]

“아, 잠깐.”

말리려고 했으나 위슨이 손가락을 퉁기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딱 소리가 나며 머리 위에 떠올라 있던 글자들이 사라지고, 아까 그 파랑새가 다시 나타났다.

“이제 됐냐, 등신 머저리들아?”

따콩.

또 꿀밤을 먹여버렸다.

위슨에게.

“……”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이래서 말리려던 건데.

위슨은 우리를 데리고 나무집에서 바로 직진하여 호숫가로 내려갔다.

물이 발목까지 잠겨 찰박거리는 곳까지 내려간 후, 몸을 굽혀 두 손안에 물을 가득 담았다.

촤락.

위슨이 손에 모인 물을 허공으로 뿌림과 동시에, 입 험한 파랑새가 목소리를 내었다.

“길을 내어라, 문을 열어라, 위대한 마녀 마일린의 집이여. 손님을 맞이하라, 손님을 대접하라, 오늘밤은 축제가 열리리라.”

허공으로 튕겨졌던 물방울들이 빛무리를 일으키며 문의 형태를 만들었다.

위슨이 크게 손뼉을 한 번 마주치자, 빛무리가 확 퍼지며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안쪽으로 울창한 나무들과 모래사장이 보였다.

우와, 이게 마법이구나.

“매번 이렇게 가는 거야?”

메린이 눈을 깜박이며 묻자, 파랑새가 대신 대답했다.

“너네 때문에 정식 절차 밟은 거야. 알았으면 후딱 움직여! 어이, 노인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그래, 위슨, 베르메 님께 내 안부도 전해다오.”

우와, 대단해. 저 건방진 새의 말투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어.

저게 바로 연륜이라는 건가?

나도 익숙해지면 알아서 걸러 들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근데 자신은 별로 없다.

로나의 무한 긍정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그나저나 이렇게 문을 여는 거면, 그 룬은 대체 뭐였던 걸까?

위슨에게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 중요고객용 출입구인데? 자격 없는 놈이 쓰면 바로 호수에 처박히게 돼있지. 왜, 써봤냐?”

뭔가 싸~한 느낌이 든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자격이라는 건?”

“수장의 힘이 담긴 물건 아무거나.”

나는 배낭에서 맹약서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위슨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종이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 딱 맞는 거 갖고 있네. 그거 들고 저기 서서,”

“박수 세 번 치고 ‘나를 데려가주시오’ 라고 외치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젠장!”

……괜한 고생을 한 것이었다.

* * *

0